하필 책이 좋아서 - 책을 지나치게 사랑해 직업으로 삼은 자들의 문득 마음이 반짝하는 이야기
김동신.신연선.정세랑 지음 / 북노마드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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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도 직업이 되면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한다. 출판계도 예외는 아닐 터. <하필 책이 좋아서>는 책을 너무 사랑해서 직업으로 삼은 세 사람의 희로애락을 담은 산문집이다. 공저자 중 김동신은 돌베개 출판사 디자인팀 팀장으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동신사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신연선은 출판사 홍보 기획자, 온라인 서점 MD, 독서 팟캐스트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작가 출신의 프리랜서 작가다. 정세랑은 출판사 편집자 출신의 소설가다. 에세이 형식을 취하지만, 책과 관련된 다양한 직업을 거친 세 사람의 실제 경험을 통해 한국 출판계의 '내부 사정'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논픽션적인 면모도 지니고 있는 책이다.


소설가 정세랑은 이 책에서 저자의 입장을 들려준다. 요즘은 신간이 나오면 굿즈를 제작하고 리커버를 만드는 것이 일종의 관행처럼 굳어졌는데, 환경을 걱정하는 저자 입장에서는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소위 인기 작가가 되면 집필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원고료는 몇십 년째 그대로인 데다가 부족한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강연, 심사, 외부 원고 등 다른 일들을 하다 보면 집필에 집중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작가는 연예인도 아닌데 인터넷에 사진이나 영상이 올라가 온갖 악플을 받을 위험에 노출되고, 스토커 등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있지만 경호를 받기는 어렵다. 웹소설, AI가 쓴 소설 등 디지털 기술과의 경쟁 역시 저자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다.


북 디자이너 김동신은 독자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북 디자인의 세계를 상세히 소개해준다. 북 디자인 하면 책 표지 만드는 일을 떠올리기 쉬운데, 실제로 북 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책 표지 만드는 일에 한정되지 않는다. 본문 글자를 왼끝맞춤으로 정렬할지 아니면 양끝맞춤으로 정렬할지 정하는 일부터 책등 디자인, 출판사 로고 디자인도 전부 북 디자이너가 하는 일이라고 해서 놀랐다. 이른바 'PPT로 한 것 같은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책이라는 매체는 물성을 지닌 상품이기도 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미감 또는 취향을 만족하는 시각적 형태를 띠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이었다.


프리랜서 작가 신연선은 출판사 홍보 기획자, 온라인 쇼핑몰 도서 MD로 일한 경험을 들려준다. 특히 온라인 쇼핑몰 도서 MD 시절의 이야기가 강렬했다. 매출 경쟁이 심한 건 온라인 서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도서 이외의 다른 품목들도 취급하는 온라인 쇼핑몰의 경우 도서 MD는 경쟁사뿐 아니라 타부서와도 경쟁해야 하는 이중, 삼중의 압박에 놓인다. 더욱이 이 시절은 도서정가제 시행 이전이라서 매출을 높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고, 그것이 나중에 죄책감으로 돌아왔다고. 그런 저자가 여전히 책의 곁에 있는 건, 출판사 재직 시절 옥상에서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했던 친구 정세랑의 존재 덕분이라는 대목을 읽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책읽아웃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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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책 - 금서기행
김유태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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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금서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 지역 공공 도서관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비롯한 수천 권의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금서가 아직 유효한 이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김유태의 <나쁜 책>은 동서고금의 금서를 소개하는 책이다. 어떤 책이 금서로 지정되는 이유는 다양해 보이지만 사실은 단순하다. 어떤 책을 금서로 지정할 만한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력에 손상을 입힐 만한 책에 대해 주로 금서라는 딱지를 붙인다. 아이리스 장 <난징의 강간>, 팡팡 <우한일기>, 옌롄커 <딩씨 마을의 꿈> 등이 대표적이다. 


때로는 그 권력이 정치 권력이 아닌 종교 권력, 젠더 권력인 경우도 있다. 주제 사라마구 <예수복음>, 니코스 카잔차키스 <최후의 유혹>, 미셸 우엘벡 <복종> 등은 특정 종교의 경전 내용에 위배되거나 종교적 갈등을 낳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금서가 되었다. 넬리 아르캉 <창녀>, 필립 로스 <포트노이의 불평>, 마광수 <운명> 등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독서가 금지되었다. 이 책은 단순히 금서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각의 책이 금서로 지정된 배경과 이후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덕분에 금서가 된 책뿐 아니라 그 책을 쓴 작가, 그 책을 금서로 지정한 나라의 역사와 정세까지 알 수 있는 점이 유익하다.


재미있는 점은 (금서를 지정하는 자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금서가 금서 지정을 통해 더 유명해지고 책의 수명이 연장되는 효과를 얻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팡팡의 <우한일기>이다. 중국 작가 팡팡이 코로나 19 확산 초기 봉쇄된 우한의 일상을 솔직하게 기록한 이 책은 중국 정부로부터 출간 금지 조치를 당하고 중국작가협회에서 작가를 제명하는 등 온갖 수난을 겪었지만,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큰 관심을 받으며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진실은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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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3
서이레 지음, 나몬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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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3권은 <춘향전>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매란국극단의 정식 연구생이 된 정년이 규칙을 어기고 다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을 들켜서 국극단에서 쫓겨나는 내용이 나온다. 국극단을 나온 정년은 가수로 데뷔시켜 주겠다는 방송국 PD의 말에 혹해 트레이닝을 받게 되는데, 이때 만나는 귀인이 패트리샤 김이다. 드라마에선 패트리샤 김이 이혼을 했다는 정도만 나오는데 원작에선 남편의 폭행으로 얼굴을 다쳐서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어 엄청난 위약금을 물게 된 패트리샤 김을 정년이 도와주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되는 것으로 나온다.


3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방자 연기 이후 기고만장해 있는 정년에게 선배 도앵이 훈계하는 장면이다. 도앵은 다른 단원들에게 <자명고> 오디션에 같이 들어가 달라고 부탁하라면서 말한다. "어떻게 합을 맞출 수 있었다고 생각한 거냐? 설마 네가 천재라서? 그저 서 있는 게 다인 촛대 역을 수십, 수백 번 연습한 애들이야. 그애들이 들인 시간, 노력, 열정이 네 방자를 '받아'준 거다. 네가 방자를 훌륭하게 해낸 건 그애들이 있어서야." (<정년이> 3권 61-2쪽) 정년이 '군졸1' 역을 맡은 것도 다른 배우들과 합을 맞추면서 더 겸손해지라는 도앵의 뜻이 담긴 것이었는데 드라마에선 이 부분이 생략되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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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2
서이레 지음, 나몬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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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2권은 자선공연 <춘향전> 무대에서 방자 역할을 맡게 된 정년이 난생처음 해보는 남자 연기를 어떻게 해낼지 고심하는 과정이 나온다. 여기서 매우 인상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바로 '고사장'이다. 정년이가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파스텔 다방의 단골손님인 고사장은 여자만 보면 치근덕거리는 행실 때문에 정년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 정년은 고사장이 남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의 이야기를 힌트 삼아 생애 첫 남자 연기를 해낼 수 있게 된다. 여기서 고사장의 명대사가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세상은 거대한 여성국극 무대 같아. 이성적이고 용감하고 근육질인 남자와 상냥하고 사랑스럽고 가녀린 여자. 사람들은 여자와 남자를 연기하며 살지. 국극 배우처럼. 하지만 평범한 삶 어느 날, 어떤 사람은 느끼고 말아. '피곤하다', '답답해', '이건 내가 아냐', '이 지긋지긋한 연극 때려치우고 싶어.' '하지만 그래도 될까?' 돼. 내가 그 증거야." (<정년이> 2권, 103-6쪽) '남자됨'과 '여자됨'이 천부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며, 배우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남자 혹은 여자를 연기하며 살고 있음을 깨달은 정년은 여성인 자신도 남자를 연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자신만의 방자 연기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드라마 <정년이>를 보기 전에 만화 <정년이>를 읽을 때에는 국극 장면이 나올 때 배우들의 노래와 춤, 연기를 멋대로 상상하며 읽었는데, 드라마를 보고 나서 만화를 읽을 때에는 배우들이 들려주고 보여준 노래와 춤, 연기가 머릿속에 떠올라 훨씬 더 다채롭고 풍성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만화를 읽을 때에는 흐릿하게 인식되었던 이야기 전개와 인물들의 관계 등도 드라마를 보고 나서 만화를 읽으니 훨씬 더 명료하게 보였다. 드라마 <정년이>든 만화 <정년이>든 하나라도 재미있게 보셨다면 다른 형식으로도 만나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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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1
서이레 지음, 나몬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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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정년이> 만화책 보는 재미에 빠져 살고 있다. <정년이>를 웹툰으로는 안 보고 만화책으로는 4권까지 보다 말았는데, 드라마 <정년이>를 보면서 원작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지막 권까지 전부 구입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원작 <정년이>와 드라마 <정년이>는 같은 점도 많지만 다른 점도 많다. 여성 국극이라는 소재를 다룸에 있어서 원작 <정년이>가 '여성'에 집중했다면 드라마 <정년이>는 '국극'에 집중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정년이>는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여성 국극의 재미, 화려함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즐길 수 있어서 좋았고, 원작 <정년이>는 여성이 여자도 남자도 연기하는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여성성, 남성성이라는 관념이 지닌 허구성, 폭력성을 보여주는 점이 좋았다.


<정년이> 1권은 1956년 목포에서 생선을 팔며 살고 있던 소녀 윤정년이 노래 한 소절을 불렀다가 기적적으로 발탁되어 서울 최고의 여성 국극단인 매란국극단의 단원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드라마 <정년이>와는 다른 설정이 많이 보이는데, 가령 원작의 정년에게는 언니가 아니라 여동생이 있다. 정년의 어머니 채공선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정년이 번 돈을 전부 헌금으로 내서 정년의 속을 뒤집는다. 드라마에선 문옥경이 정년을 발탁한 것으로 나오지만, 원작에선 국극단 단장 강소복의 지인이 정년의 재능을 처음 발견한다.  


1권의 하이라이트는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백도앵에게 미움을 산 정년이 도앵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인데 드라마에선 다 잘렸다. 원작 <정년이>에서 도앵 캐릭터가 정말 멋있는데 드라마에선 비중이 많이 축소되어 아쉽다. 단행본마다 특별부록으로 '매란국극단의 일상생활'이라는 SD캐릭터 만화가 실려 있는데 이 만화도 정말 귀엽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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