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웰 가는 길
코니 윌리스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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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프랜시는 대학 시절 절친인 세리나의 결혼식 초대를 받고 결혼식이 열릴 예정인 로즈웰로 떠난다. 프랜시의 목적은 세리나의 결혼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막는 것. 대학 시절부터 세리나의 남자 취향은 형편없었는데, 지금 세리나가 결혼하려고 하는 남자는 못말리는 UFO 덕후로, 로즈웰에서 결혼식을 하는 이유조차 로즈웰이 UFO 덕후들의 성지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막상 세리나를 만나자 그 남자와 결혼하지 말라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던 프랜시는 세리나가 준비한 들러리 드레스를 입어 보려고 세리나의 차로 갔다가 뜻밖의 일을 당한다. 갑자기 어디선가 외계인이 나타난 것이다. 


외계인에 의해 운전석에 몸에 묶인 프랜시는 외계인의 감시를 피해 경찰이나 FBI에 신고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게다가 프랜시를 납치한 이 외계인, 아무리 봐도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지 않는 데다가 왠지 모르게 곤경에 처해 있는 듯 보여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설상가상으로 차를 세울 때마다 뜻밖의 사건으로 일행이 늘면서 프랜시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세리나의 결혼을 막겠다는 본래의 목적과 곤경에 처한 외계인을 도와주고 싶다는 새로운 목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프랜시의 모험은 과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로즈웰 가는 길>은 SF계의 노벨 문학상으로 불리는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SF 그랜드 마스터 코니 윌리스가 2023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이다. 책 표지에 '스크루볼 코미디'라는 용어가 나와 있어서 검색해 보니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에 유행했던 코믹극의 한 종류로, 빈부나 신분 격차가 큰 남녀 주인공이 갈등과 애증을 극복하고 행복한 결말에 이르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나는 오히려 이 소설이 '스노볼 코미디'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눈길 위를 굴러가면서 점점 더 커지는 눈덩이처럼, 등장 인물들이 길 위를 자동차로 달리면서 점점 더 일행이 늘고 사건의 규모도 커지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는 SF에 기반한 레퍼런스뿐 아니라 미국 서부극에 기반한 레퍼런스도 많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존 포드의 1939년 서부극 <역마차>를 두드러지게 인용했다. 존 포드 주연의 1939년 영화 <역마차>는 원주민(인디언)들이 출몰한다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길을 떠난 역마차에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줄줄이 오르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다. 이 소설도 외계인이 출몰한다는 소문을 무시하고 로즈웰에 도착한 주인공이 외계인 납치 방지 보험 판매원, UFO 음모론 덕후, 서부 개척 시대 애호가, 카지노 단골인 할머니 등과 같은 차를 타고 다니며 겪게 되는 모험을 그린다. 비교하면서 읽어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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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8
서이레 지음, 나몬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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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 공연 <바보와 공주>를 둘러싼 극단들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결국 공연은 매란의 단독 공연이 된다. 부담이 더욱 커진 영서는 어머니에게 인정 받고 싶은 마음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 사이에서 번민하다 연습을 망친다. 보다 못한 단원들이 영서의 기운을 북돋아주려고 애쓰지만 영서는 좀처럼 힘을 내지 못한다. 그러다 영서가 미처 읽지 못한 언니의 편지를 발견하고 읽게 되는데, 이 언니의 편지가 참으로 명문이다. (인정을 바라는 마음은 결국 자신감 부족에서 비롯되는 걸까.)


한편 국극단을 나와 고향에 간 정년을 찾으러 온 사람들이 있었으니 한 명은 단장인 소복이고 다른 한 명은 부용이다. 소복이 오랜만에 만난 공선과 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부용과 정년은 바닷가에서 그야말로 몸싸움을 벌인다. 항상 다소곳하고 온화한 태도로 정년을 대했던 부용은 드물게 화를 내며 극작가로 활동 중인 아버지의 비밀을 털어놓고, 목이 상하거나 소리를 못해도 국극을 할 수 있다고 정년을 격려한다. 부용의 말을 듣고 정년은 몇 년이 걸리더라도 실력을 다져서 다시 한 번 입단 시험을 치르기로 결심한다.


<정년이> 8권은 정년과 영서 각각에게 큰 전환이 일어나는 대목이다. 오랫동안 어머니의 인정을 갈구하고 언니에게 경쟁 의식을 느꼈던 영서는 마침내 둘 다 극복하고 자신만의 국극 연기에 집중한다. 정년 역시 어머니와의 불화를 해소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년 자신이 국극을 하고 싶어서 국극을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런 두 사람이 1년 만에 다시 만나 공식 대결을 벌이는 대목이 다음 9권부터 펼쳐진다. 얼른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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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7
서이레 지음, 나몬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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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 공연 <바보와 공주>의 오디션 준비가 한창인 매란국극단. 원래는 오디션을 포기했던 정년은 이번 공연에서 옥경의 아역을 연기하면 차기 국극 스타 자리는 떼놓은 당상이라는 부용의 말을 듣고 뒤늦게 초록과 짝을 이뤄 오디션을 준비한다. 연기는 괜찮은데 소리가 별로라는 말에 충격을 받은 정년은 패트리샤 선생님과 임진 선생님까지 만나며 소리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결국 연습이 중요하다는 도앵의 말을 듣고 산 속 동굴로 들어가 독공을 시작하지만 무리한 연습으로 목에 이상이 생긴다.


한편 주란과 짝을 이룬 영서는 이번에야말로 어머니에게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이 앞선 나머지 좀처럼 연습에 집중하지 못한다. 결국 정년도 영서도 완벽하게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디션을 치르게 되고, 오디션 결과 영서가 옥경의 아역을 연기하게 된다. 목 상태가 안 좋아서 오디션을 제대로 치르지도 못한 정년은 그 길로 국극단을 나와 고향으로 향하고, 영서는 영서대로 자신에게 온달을 연기할 자격이 있는지 되물으며 방황한다. 


정년과 영서는 극과 극의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둘 다 각각 국악과 성악에서 천재 소리를 듣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고 그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소리를 뛰어넘고 싶어 하는 정년과 어머니와 전혀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며 인정 받고 싶은 영서의 노력이 다소 무리해 보이지만 무모하게 보이지만은 않고 오히려 애처롭게 느껴지는 이유다. 두 사람의 내적 갈등은 이어지는 8권에서 해소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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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있는 자부터 산화하라 5
아이다 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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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아이다 유의 만화 <용기 있는 자부터 산화하라>를 보면, 영생은 축복보다 저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오니우다 하루야스는 가족의 복수를 위해 수도인 에도로 왔다가 불사의 능력을 지닌 소녀 시노의 권속이 된다. 시노는 어머니로부터 불사의 능력을 물려받았는데, 문제의 어머니 미치토세는 열다섯 살 이후로 늙지도 않고 계속해서 불사인 아이들을 출산했다. 시노는 어머니를 불사의 저주에서 해방시키고 싶어하지만, 오빠인 이쿠마츠는 어머니를 피신시키고 싶어 한다. <용기 있는 자부터 산화하라> 5권은 이쿠마츠가 미치토세의 신병을 되찾기 위해 정부 고관과 대치하는 과정을 그린다.


시노는 불사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진 요도 '살생석'을 탈환하기 위해 신센구미 출신의 경시청 순사 후지타 고로, 도서계 간부 야마노우치 아리노리 등과 협력한다. 시노의 권속인 하루야스는 이쿠마츠의 권속인 키쿠지와 대결을 벌인다. 어릴 때부터 키쿠지를 자신의 부하이자 친구이자 검술 스승으로 여기며 아꼈던 이쿠마츠는 그가 자신을 대신해 목숨을 건 대결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시노 역시 자신의 권속인 하루야스가 자신의 오빠인 이쿠마츠의 권속과 대결을 벌이는 상황이 즐거울 리 없다. 불사로 이득을 보는 자들은 따로 있는데, 그렇지 않은 자들이 피와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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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밖에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지만 - 예민한 나에게 필요한 반경 5m의 행복
나오냥 지음, 백운숙 옮김 / 서사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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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밖에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지만>은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나오냥의 책이다. 나는 이 작가를 X(구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되었다. 푸근한 인상의 토끼 캐릭터가 너무나도 내 취향이라서 눈길이 갔는데 만화 내용도 공감이 가서 계정을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팔로우했던 당시만 해도 이 책이 한국에 출간되기 전이었는데 얼마 후 이 책이 한국에 출간되어 매우 반가웠다. 이 책 외에도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빠른 시일 내로 한국에서도 출간되면 좋겠다.


이 책은 심리적으로 외부 자극에 취약한 분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대학 졸업 후 출판사에 취직한 저자는 직장 생활이 맞지 않아 우울증 진단을 받고 휴직했다. 직장이 문제인 걸까 내가 문제인 걸까 고민하던 중에 친구로부터 HSP(Highly Sensitive Person, 무척 민감해 쉽게 상처받는 사람)인 것 같다는 말을 듣고 HSP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무척 민감한 성격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을 소개하는 만화를 그려서 X(구 트위터)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만화가 많은 공감을 얻으면서 여러 권의 책도 내고 강연도 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격이든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격이든, 성격을 바꾸기는 어렵다. 만약 당신이 남들보다 민감해서 쉽게 지치거나 상처 받는 성격이라면, 지치거나 상처 받을 일을 피하거나 덜하는 건 어떨까. 대인 관계가 힘들다면 사람 좀 덜 만나면 되고 아예 안 만나도 된다. 무리한 일을 하고 있다면 업무 시간을 줄이거나 그만둬도 된다. 관계도 일도 당장 그만둘 수 없다면 좋아하는 동물을 키우거나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어보는 건 어떨까.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는데 나까지 나를 힘들게 하면 누구라도 버틸 재간이 없다.


"시간은 물리적이고 객관적이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마음은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는 주관적인 영역이다. 설령 삶의 낙이 '잠'이라 해도 오늘도 마음껏 자서 행복하다고, 온종일 뒹굴뒹굴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느꼈다면 알찬 하루였던 거다. 그렇다면 누가 뭐라 하든 오늘도 행복하고 의미 있는 하루를 보냈다며 미소 지을 수 있지 않을까?" (128쪽)


이 책에는 저자가 X(구 트위터)에 연재하는 만화가 다수 실려 있지만, 만화에는 담지 않은 개인적인 이야기도 자세히 나온다. 팬데믹 시기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우울증을 진단 받은 아버지와 어머니 간의 갈등,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여자 아이돌에게 느낀 복잡한 감정 등 진솔한 이야기가 공감을 자아낸다. 무엇보다도 그림이 너무 귀여워서 평생 간직할 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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