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 사악한 화폐의 탄생과 금융 몰락의 진실
엘렌 호지슨 브라운 지음, 이재황 옮김 / 이른아침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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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는 미국의 공식 화폐인 달러를 둘러싼 역사적 논쟁, 특히 연방준비은행의 허구성과 유력 금융사, 기업들의 개입, 정부와의 커넥션, 관련 정치인들에 대한 내용 등을 총 700여 페이지에 걸쳐 설명한다. 1971년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닉슨이 변동환율제를 채택하면서 브레튼우즈 체제가 사실상 무너지고, 달러가 세계의 실질적인 기축통화가 된 이후의 정세를 비롯해, 중동 산유국과 달러의 연계, 다른 나라(미국의 입장에서 멕시코, 독일, 러시아, 일본, 중국, 인도 등을 지칭)의 통화 정책 사례가 이어진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 대한 얘기가 덧붙여진 것도 주목할 만하다. 


원제 'The Web of Debt(빚의 그물)'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누구도 보장해주지 않는 통화인 달러의 불안정성 때문에 세계 금융이 위기에 몰렸다고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달러는 미국 정부가 아닌 연방준비은행(FRB)에 의해 발행되는데, 연방준비은행의 실상은 민간은행과 금융사의 합작사에 불과하다고 한다. 결국 일부 민간은행과 금융사의 계산에 따라 달러의 가치와 향방이 결정되고, 달러 대비 환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대부분의 국가들(수입국)은 점점 이들의 계략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얘기들은 오늘날 대부분의 대학 강의실에서 논의되는 주류 경제학의 입장 -특히 자유무역이나 시장경제- 을 전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아담 스미스가 얘기한 경제학의 바탕은 지키되 , 어느 정도 국가와 중앙은행의 역할(FRB처럼 민간은행이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정부은행의 형태)을 확장해야 한다는 입장에 가까운 것 같다. 노동에 근거한 화폐 가치의 산출, 수요보다 공급 창출에 기여하는 정책, 자국 화폐와 무역 수호 등에 대한 입장은 (요즘의 주류 경제학에 비하면) 파격적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이 책은 전반부와 각 챕터 서두에 걸쳐 미국의 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언급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동화 속의 인물, 지역, 명칭부터 내용 하나하나가 연방준비은행이 택한 통화제도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더욱 재밌는 것은 이 동화가 미래의 상황까지도 예견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을 언급하는 챕터에서 언급된 이야기는 정말 작가의 예견일까, 아니면 저자의 추측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일까? 


정치외교학이 주전공이다보니 경제나 금융에 대한 얘기보다도 달러의 영향을 받는 미국 외 국가에 대한 얘기가 특히 재밌었다. 국제 분쟁사의 주요 이슈 중 하나인 석유 문제도 결국 미국의 유력 은행과 금융사들이 개입된 것이고, 남아메리카의 뿌리 깊은 반미감정, 세계 패권을 두고 (보이지 않게) 대립하고 있는 미-중 관계도 결국 달러 문제로 귀결된다는 것이 책의 주장이다. 2차 세계대전과 이후의 냉전도 실상은 통화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외국(주로 미국이나 영국)의 견해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모든 대립과 분쟁의 원인인 달러를 만든 미국은 영국에 대해 조세를 폐지하고 통화정책에 간섭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다가 독립을 한 나라이다. 그런 미국이 오히려 이제는 달러를 통해 국제 금융은 물론 주권국의 경제정책에 간섭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다는 주장을 읽으니 기분이 묘했다.
 
 
금융, 통화, 화폐 등의 개념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다양한 답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인 '기회비용'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 환경과 에너지 위기, 식량 안보의 위협, 끊이지 않는 분쟁 등의 이슈를 포함하여,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는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 책의 주장대로 달러의 불안정성이 일부 집단의 잘못된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에 따른 대가는 이미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연약한 세계가 그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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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심다 - 박원순이 당신께 드리는 희망과 나눔
박원순 외 지음 / 알마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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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은 선물은 나중에 풀어보듯이, 혹은 가장 좋아하는 반찬은 아껴뒀다가 나중에 먹는 마음이었다고나 할까? [희망을 심다] 는 대략 한 달에 걸쳐 읽었다. 사진이나 삽화가 많지 않고 4백 여 쪽 꼬박 활자로만 채워져있는 탓(?)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 왠지 그 동안의 방황을 끝내고 박원순 변호사님이 가시는 길에 나 자신을 심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희망을 심다] 는 현재 ‘희망제작소’에 몸담고 계신 박원순 변호사님과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님의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터뷰 형식으로 쓰여 있기 때문에 구어체라서 읽기 편하고, 독자가 궁금해 할 법한 질문들을 바로바로 지승호 님이 물으셔서 속 시원(!)했다.

 

책에는 변호사님의 어린 시절부터 대학교 때 학생 운동을 하다가 구치소에 수감된 일, 우여곡절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검사가 되었지만 일 년 만에 그만두고 인권 변호사가 된 일, 유학, 참여연대 시절, 아름다운가게와 지금의 희망제작소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삶의 기록이 담겨 있다. 순박한 시골 소년이 한국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칠 만한 인물이 되어가는 과정이 뭉클했다. 이제까지 쓰신 책만 해도 수십 권에 달하지만, 인터뷰 형식인데다가 변호사님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적힌 책은 [희망을 심다] 가 처음이지 않나 싶다. (변호사님의 책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희망을 심다] 에는 젊은이들에게 주는 충고, 사법계와 한국 시민운동에 대한 생각 등 구체적인 이야기부터 한국 사회 전체에 대한 제언까지 폭 넓은 내용이 담겨있다. 그래서 읽는 이에 따라 인상 깊은 부분이 다를 것 같다. 나는 한국 시민운동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운동’이라고 하면 이념이나 과격한 시위를 먼저 떠올리는데, 박 변호사님은 생활 습관을 바꿀 것을 제안하거나 재미있는 이벤트를 마련하여 시민들이 쉽고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 문화를 만드시지 않았나 싶다.

 

대학교 1학년 때, 아름다운가게 ‘나눔장터’(벼룩장터와 비슷한 개념)에서 활동천사로 참여한 적이 있다. 교육을 받으며 활동에 대한 안내를 들을 때만 해도 시민들이 얼마나 많이 참여할지 의문스러웠는데, 예상 외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행사를 ‘즐기는’ 모습을 보며 감동마저 느꼈던 것이 떠오른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작든 크든 아름다운가게와 희망제작소의 활동에 참여하거나 관심을 가진 적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의 이런 사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희망의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서울 법대, 사법고시 합격, 검사 출신이라는 명예와 영광을 버리고 고달픈 시민운동가의 길을 택한 박원순 변호사님의 삶은 그 자체가 이 사회에 몇 안 되는 희망의 증거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나 물질적, 문화적으로 혜택을 받고, 대학 교육까지 받은 것은 하늘이 주신 복(福)이나 선물 따위가 아니다. 오히려 멍에이고 부담이다. [희망을 심다] 를 읽으면서, 이 멍에를 지고 ‘살아갈지’, 아니면 멍에의 무게조차 느끼지 못하고 ‘죽어갈지’ 고민하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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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살, 도전의 증거
야마구치 에리코 지음, 노은주 옮김 / 글담출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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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제목은 ‘裸でも生きる(hadakademo ikiru, 알몸으로라도 살아간다)’이다. [26살, 도전의 증거] 라는 한국판 제목이 희망차고 밝게 느껴지는 반면, 원래 제목은 생기발랄한 스물여섯이라는 나이와 맞지 않게 처절하고 고독하게 느껴진다. 왜 이런 제목이 붙여졌을까?  

책을 읽어보니 수긍이 되었다. 이 책은 저자인 야마구치 에리코의 자전적인 에세이인데, 그가 이제까지 살아온 삶은 스물여섯 먹은 여성의 인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파란만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시절 학급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불량한 청소년기를 보낸 점이나,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걷는 모습은, 오랫 동안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였던 오히라 미쓰요의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야마구치는 이후 공고 출신으로는 드물게 일본의 명문 게이오 대학에 입학하고, 대학 시절에 워싱턴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에 가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원조를 논하는 모순적인 현실에 한계를 느끼고, 혈혈단신 세계 최빈국인 방글라데시로 떠난다. 그곳에서 개발학을 공부하며 그곳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지 끊임없이 고민한 끝에, 천연 소재인 ‘주트’ 천으로 가방을 만들어서 방글라데시 고유의 브랜드를 개발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주식회사 ‘마더 하우스(mother house)’다.   

 

   
  꿈을 이루기 위해 꼭 이 길로만 가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래서 우린 꿈의 여정 속에서 세상과 타협을 하곤 한다. 그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타협하다 보면 굳이 할 필요도 없는 것과도 타협을 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그렇게 해서 다다른 꿈의 도착점은 진정 나만의 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 꿈을 위해서라면, 내 꿈이 펼쳐지는 길이라면 어떤 것에도 타협해서는 안 된다. (p.159)  
   



그녀의 삶에는 끊임없이 위기가 찾아왔다. 왕따, 불량한 친구들, 고된 유도 훈련, 공고 출신이라는 딱지, 상상한 것과 다른 국제기구에서의 생활, 방글라데시의 낙후된 환경, 사업상의 어려움 등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하지만 야마구치는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자신의 꿈을 생각했다. 그는 ‘저만 잘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저 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은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p.111) 라고 말한다. 언제나 최고, 1등을 고집하며, 자기 안의 소리에 솔직한 그의 성격과 이러한 꿈이 만났기 때문에 지금의 성공을 이룬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동시대, 동세대 여성으로서 야마구치 에리코의 삶은 공감이 되는 한편, 그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자극도 되었다. 생각만 많고, 정작 행동은 하지 못하는 안일한 삶을 반성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알몸으로라도 살아간' 그의 삶에서 '도전의 증거'를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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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행가 - 불굴의 개척자 6人의 열정과 도전정신
우한 엮음, 김숙향 옮김 / 살림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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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소위 ‘자기 계발서’라는 책들이 많이 눈에 띈다. 개중에는 뛰어난 책들도 있지만, 대부분 내용이 비슷하고 구성이 획일적이어서 이제는 ‘과잉 상태’에 이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조심스럽게 추측하건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인지 몇몇 출판사들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살림출판사에서 나온 [기적의 양피지 - 캅베드] 가 대표적인데, 이 책은 선박왕 오나시스의 일생을 토대로 캅베드의 교훈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되어있다. 실제 인물의 일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평전을 읽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고, 교훈 역시 생생하게 다가왔다. 만약 기존의 자기 계발서처럼 스토리가 허구이고 교훈을 일방적으로 주입했다면 이 책의 매력은 덜했을 것이다.  



이번에 같은 살림출판사에서 나온 [대여행가] 역시 중국 역사에 실재했던 여섯 명의 '대여행가‘의 삶에서 교훈을 도출하는 방식의 책이다. 인문서로 분류된 책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일반적인 역사서에 비해 구성이 독특하고 교훈이 강조되어 있다. 이 책에는 장건, 법현, 현장, 감진, 정화, 서하객 총 여섯 인물의 ‘역사를 바꾼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한나라의 장건은 최초로 서역을 개척한 인물이고, 법현은 65세의 나이에 히말라야를 넘은 스님이다. 감진은 당시만해도 중국인들에게 멀게만 느껴졌던 일본으로 가기 위해 여섯 번이나 시도한 스님이며, 서하객은 중국 최초의 지리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유기] 에 나오는 ‘삼장법사’의 모델이기도 한 현장, 사회시간에 ‘정화의 원정’이라는 제목으로 배운 적이 있는 정화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여섯 명의 여행가들은 저마다 살았던 시대와 사회적인 위치가 다르다. 국가의 명령을 받고 여행을 떠난 장건 같은 이가 있는가 하면, 국가가 막는 데도 길을 떠난 현장이나 감진 같은 이도 있다. 처음에 여행가들은 무조건 걸어야 했지만, 중국이 사회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후기의 감진이나 정화 같은 인물들은 배를 타고 여행할 수 있었던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시대를 불문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먹고 잘 일을 걱정하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여행이라고 하면 먼저 뭘 타고 갈지, 뭘 먹으며 어디서 머물지를 걱정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들은 일단 길을 떠났고, 길 위에서 필요한 것을 구했다. 여행가 한 사람의 힘은 미미하지만, 이런 한 사람의 꿈과 도전이 작게는 불교 종단과 중국, 크게는 세계 역사에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영달에만 힘을 쏟는 현대인들이 이 책을 읽으며 반성했으면 좋겠다. 



중국인 저자가 쓴 책을 번역한 것이므로 중국의 사례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중국의 역사와 지리, 불교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이나 [초한지], [서유기], [홍루몽] 등 중국 고전을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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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바디스 한국경제 (이준구) - 이준구 교수의, 이념이 아닌 합리성의 경제를 향하여
이준구 지음 / 푸른숲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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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이준구 교수님이 쓰신 [미시경제학] 책을 공부하면서, 막연히 이 교수님은 보수적이고 깐깐하실 거라고 상상했었다. 아무래도 미시경제학이 경제학 과목 중에서도 원론적이면서 친(親)시장적인 과목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나온 [이준구 교수의 쿠오바디스 한국 경제]를 읽으면서 나의 상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책을 읽어보니 주류 경제학자, 그것도 서울대 교수가 이렇게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써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쿠오바디스 한국 경제] 는 대운하, 주택 문제, 종부세, 교육, 한미 FTA 등 굵직한 사안에 대해 이준구 교수님이 이제까지 쓰신 글과 칼럼을 모아서 정리한 책이다. 사안에 따라 짧은 글 여러 개가 일목요연하게 편집되어 있기 때문에, 내용이 굉장히 어렵지 않고 읽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또한 오랫동안 공부한 학자가 쓴 글답게 문장이 간결하고 논리적인 것도 돋보인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1980년대의 저와 지금의 저 사이에 기본 입장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사람이 지금은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보수화된 데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 제 믿음입니다. 저는 예전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데 사회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다 보니 제 위치가 왼쪽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입니다. (p.9)   

주류 경제학의 대가(大家)인 저자는, 1980년대 운동권 학생들에게는 보수적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현 정부의 추종자들로부터는 오히려 ‘좌빨’이라고 불린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은 그의 입장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학자적인 견해를 정치적, 이념적으로 해석하는 사회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는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이는 정치적, 이념적인 견해가 아니라, 오로지 ‘시장 근본주의, 즉 시장의 힘을 맹신’하는 입장에 대한 반론일 뿐이다.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있기 때문인지, 유독 내게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이 많다. 되레 ‘어느 쪽으로 보이냐’고 물으면, 소위 보수적이라는 이들은 굉장히 진보적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진보적이라는 이들은 보수적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정치적인 신념이 뚜렷한(혹은 지나친) 그네들에는 내가 미지근하고 시금털털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신념이 있을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신념이 덜한 사람을 비난하는 것도 옳지 않다. 모든 것을 정치적, 이념적으로 해석하여 매도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이준구 교수님의 글을 읽으며, 비록 교수님의 태도는 냉철하지만 학문적인 열정과 사회에 대한 관심은 그네들보다 화끈하지 않은가 싶었다.  

어떤 일에 따르는 기회비용은 그 일을 하기로 결정함으로써 포기해야만 하는 다른 일의 가치로 평가된다. 영어 공교육 강화를 위해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면 그만큼 다른 과목의 수업을 더 충실하게 만들 기회가 줄어들고, 학교시설을 수리할 기회도 줄어들고, 실험실습을 충실화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들고, 나아가 좀 더 맛있고 영양가 있는 학교급식을 제공할 기회도 줄어들게 된다. (p.251)  

정치적인 사안을 경제학적으로 설명한 부분도 재미있었다. 이외에도 실생활에서 느끼는 문제에 대해 경제학적인 해석을 덧붙인 것도 좋았다. 가령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쌍방과실’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판결이 자주 나는데, 이에 대해 저자는 ‘문제의 핵심은 쌍방과실 판정으로 인해 보험료 할증의 불이익을 당하는 소비자의 숫자가 두 배로 늘어난다는 데 있다. 보험회사는 가만히 앉아서 바로 그만큼의 이득을 챙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p.320)’고 말한다. 차후 이런 방식으로 한국 사회를 비롯하여 세계적인 이슈에 대해 '경제학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는 책이 나와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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