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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이미리내 지음, 정해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평점 :
정치학에서는 국가의 3요소를 '영토, 국민, 주권'으로 규정한다. 디아스포라 문학은 이 3요소 중 하나 이상을 결여한 사람 또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이미리내의 소설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은 어떠한가. 이 소설은 한 요양원에서 근무하는 마흔일곱 살 여성인 '나'가 그곳에서 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고 있는 환자들 중 한 명인 묵 할머니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치매 환자들이 주로 수용된 병동에서 생활하는 묵 할머니는 여느 환자들과는 다르게 정신이 멀쩡하고 언변도 뛰어나다. '나'는 묵 할머니의 부고 기사를 작성해 준다는 명목으로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경기도 파주 임진강 근처에서 태어난 것으로 짐작되는 묵 할머니는 사실상 평생을 디아스포라 상태로 살았다. 어린 시절에는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조선의 백성이었고, 십 대 시절에는 위안부로 인도네시아 스마랑에 끌려갔다. 귀국 후에는 남쪽의 국민도 북쪽의 국민도 되지 못하고 그의 정체를 의심하고 심문하는 말들 속에서 뜬 상태로 지냈다. 묵 할머니의 삶에서 국가는 언제나 부재하거나 불완전했을 뿐 아니라 국가 자체가 그의 삶을 뒤흔드는 폭력인 적도 많았다. 나라 없는 국민으로 산 이후에는 나라가 있어도 보호받지 못하는 국민으로 살았다고도 볼 수 있다.
평생을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상태로 지낼 수 밖에 없었던 묵 할머니의 상태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이름 없음'이다. 사실 묵 할머니에게는 이름이 없는 게 아니라 이름이 많다. 어릴 때는 캐나다 퀘벡 출신 목사가 지어준 '데보라'라는 이름이 있었고, 위안부 시절에는 일본인 군인에게 '간요'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고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강간 위협을 피하기 위해 남자 행세를 하면서 '용말'이라는 이름을 썼고, 고향으로 가서는 아예 용말로 살았다. 나중에 묵 할머니는 이름을 미란으로 바꾸고 요양원에 들어간다. 무엇도 그의 이름이지만 무엇도 그의 진짜 이름은 아니다.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진 묵 할머니는 여러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자이기도 했다. 식민지 시절 피지배 국민으로서 배운 일본어와 외국인 목사에게 배운 영어와 프랑스어 덕분에 묵 할머니는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대에 스스로 밥벌이를 하기도 했고, 눈 뜬 사람도 코를 베어 가는 시대에 세상 물정을 알면서 살아갈 수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바로 그 능력 때문에 의심을 받거나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만약 묵 할머니가 영토, 국민, 주권이 온전한 나라에서 평생을 살았다면, 그의 언어 능력은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거나 간첩으로 활동하는 데 쓰이는 대신 외교관이나 상사 주재원이 되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묵 할머니가 살면서 경험한 고통 중에는 그가 식민지 백성이기 때문인 것도, 분단국에 살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가 여성이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그가 여성이 아니었다면 위안부로 끌려갈 일도 없었을 것이고, 성인 남성처럼 보이지 않는 외모로 인해 몽키하우스로 보내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묵 할머니가 여성이 아니었다면 용말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용말의 남편도 못 만났을 것이다. 세상은 노예, 탈출 전문가, 살인자, 테러리스트, 스파이 등으로 규정하는 그를 어머니로 보아주는 아이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험한 세상으로부터 그 아이를 지키는 보람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묵 할머니는 자신이 가진 안 좋은 패를 좋은 패로 바꾸는 법을 알았고, 그것을 배우는 과정이 그의 인생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몇 해 전 돌아가신 친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나의 친할머니는 묵 할머니와 연배가 비슷한데, 그 나이대 여성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십 대 때 결혼해서 일곱 남매를 낳고 평생 농사 일만 하다가 돌아가셨다. 이렇게 보면 할머니의 삶이 슬프고 우울하게만 보이지만, 할머니 자신은 해로한 남편도 있고 잘 키운 자식들에게 손주들도 많이 보았으니 다복했다고 여기셨을지 모른다. 그런 할머니가 자식들을 교육하고 열심히 노동한 덕분에 나의 아버지가, 그리고 내가 전보다 나은 세상을 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묵 할머니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내느라 괴로운 시절이 길고 또 많았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삶을 연민의 눈으로만 보지는 않기를 바라지 않을까. 묵 할머니의 삶에서 그가 경험한 고통만 보지 말고, 그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루어낸 일들을 봐주기를 원하지 않을까. 자신이 가진 안 좋은 패를 좋은 패로 바꾸는 법을 아는 사람이 어른이고, 그런 어른들 덕분에 전보다 살 만한 세상이 되었다고 믿는다. 나는 그런 어른인지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