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 토니오
정용준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서양의 화산섬 마데이라의 남쪽 해변에서 수십 마리의 고래떼가 죽은 채로 발견된다. 연구를 위해 그곳에 와 있던 미국인 화산학자 시몬 엘리엇과 일본인 지진학자 요시다 데쓰로는 고래들이 떼로 죽은 상황에 의문을 가지고 조사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밤 해변에서 고래 떼를 조사하던 시몬은 고래 떼에 섞여 있던 유일한 흰수염고래의 입 속에서 괴상한 생명체가 나오는 것을 본다. 처음에는 '그것'이었다가 나중에는 '토니오'라고 자신을 밝힌 존재와의 만남으로 인해 시몬과 데쓰로는 각자가 감추고 있던, 끝내 잊고 싶어 했던 과거의 상처들을 떠올리게 된다.


정용준의 장편 소설 <프롬 토니오>는 물리적인 시공간을 초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판타지가 섞여 있는 작품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소설의 주인공인 시몬과 데쓰로는 각각 소중한 사람과 사별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시몬은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해양학자 앨런이 바다 속으로 사라진 이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데쓰로는 고향인 고베에서 일어난 대지진으로 인해 가족을 잃었다. 시몬과 데쓰로는 물리적으로는 현실에서 살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현실이 아닌 곳을 추구한다. 특히 시몬은 앨런이 사라진 바다를 볼 때마다 자신도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그런 시몬과 데쓰로 앞에 나타난 토니오는 여러모로 이상한 존재다. 처음엔 분명 흰수염고래의 입에서 튀어나온, 아무리 봐도 인간으로는 볼 수 없는 '그것'이었는데, 점점 인간의 형태를 갖추더니 나중에는 자신이 2차 대전 때 전투기를 조종했던 노인이라고 밝힌다. 토니오의 말을 믿을 수도 없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시몬과 데쓰로는 생애 마지막으로 고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아내를 만나고 싶다는 토니오의 부탁을 받고 갈등한다. 과연 시몬과 데쓰로는 토니오의 부탁을 들어줄 것인가. 들어준다면 어떻게 들어줄 것인가. 판타지이지만, 현실에서 한 번은 만나고 싶은 판타지 아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주하는 인류 - 인구의 대이동과 그들이 써내려간 역동의 세계사
샘 밀러 지음, 최정숙 옮김 / 미래의창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류 문명이 발전하기 시작한 건 수렵과 채집을 위해 유목 생활을 하다가 한 곳에 정착해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면서부터라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상식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역사와 정치를 전공하고 BBC의 뉴델리 특파원을 지낸 언론인 샘 밀러의 책 <이주하는 인류>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주성이 강한 동물이고, 인류가 정착하기 시작한 건 고작 1만 2천 년 전의 일이며, 최근까지도 - 실제로는 지금도 - 수많은 사람들이 정착 대신 이주 또는 이민을 택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양한 이주 또는 이민의 사례를 제시한다. 에덴동산, 노아의 방주, 선사시대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이동, 그리스 로마의 정착지 건설, 북유럽의 바이킹,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이주, 노예무역, 황색 위협, 유대인, 남북전쟁, 이주 노동자 등 수많은 예시가 나온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든 사례의 대부분이 서양, 그중에서도 유럽과 미국의 역사에 기반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제1세계에 포함되지 않는, 제2, 제3세계 국가들(러시아, 중국, 쿠바, 베트남, 동유럽 국가들, 인도, 이집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 등등)은 어떤 이주 또는 이민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이주의 역사와 유전학이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Who do you think you are?>라는 TV 프로그램의 클립을 보고 한동안 빠져 살았는데, 이 프로그램은 유명인들이 자신의 가계도를 추적하며 조상의 삶과 역사를 발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빅뱅이론>의 배우 짐 파슨스는 프랑스계 조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더 페이보릿>의 배우 올리비아 콜먼은 인도계 조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슷한 미국의 TV 프로그램 <Finding your roots>에선 일본계 미국인 코미디언 프레드 아미센이 사실은 한국계임이 밝혀져 화제가 되었다. 나는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5 루나파크 일력 (스프링) - 매일매일 심력 충전
루나(홍인혜) 지음 / 미디어창비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양도 좋고, 스프링 제본이라서 루나파크 님의 예쁜 일러스트에 손상을 가하지 않고 종이를 넘길 수 있어서 좋아요. 대만족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5 루나파크 일력 (스프링) - 매일매일 심력 충전
루나(홍인혜) 지음 / 미디어창비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년에 쓸 일력으로 <2025 루나파크 일력>을 구입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완전 대만족. ​ 


일력을 사본 건 이번이 두번째인데, 

전에 샀던 일력은 일러스트는 예쁜데 스프링 제본이 아니라서 사용하기 불편했다 

(내지가 내 뜻대로 안 찢어질 때마다 내 마음도 찢어졌다 ㅠㅠ). ​ 


반면 <2025 루나파크 일력>은 스프링 제본이라서 넘기기 쉽고, 

요일만 안 보면 만년 일력으로도 사용 가능하다(환경보호 자원절약!).






사양도 풍성하다. 박스와 일력 외에 

스티커, 부적, 엽서 등등 다양한 굿즈가 들어 있다. 

(일력을 샀는데 굿즈가 왔어요) ​ 


루나파크 님 손편지(인쇄)도 들어 있으니 

팬이라면 무조건 구입하시길. 보고 있기만 해도 행복하다 :)






일력 내지 디자인과 일러스트, 내용도 너무 좋다. 

매월 이달의 미션 만나기, 하루하루를 즐기기, 오늘의 행복을 위한 심력 키우기 등 

하루하루를 더 즐겁게, 재밌게, 잘 사는 방법이 담겨 있어서 

매일 한 장 한 장 넘기는 기분이 아주 좋을 것 같다. ​ 


일력의 전체적인 톤이 민트색이라서 더 좋다 

(루나파크 님 영향으로 민트색 좋아하게 된 1인 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이미리내 지음, 정해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치학에서는 국가의 3요소를 '영토, 국민, 주권'으로 규정한다. 디아스포라 문학은 이 3요소 중 하나 이상을 결여한 사람 또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이미리내의 소설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은 어떠한가. 이 소설은 한 요양원에서 근무하는 마흔일곱 살 여성인 '나'가 그곳에서 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고 있는 환자들 중 한 명인 묵 할머니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치매 환자들이 주로 수용된 병동에서 생활하는 묵 할머니는 여느 환자들과는 다르게 정신이 멀쩡하고 언변도 뛰어나다. '나'는 묵 할머니의 부고 기사를 작성해 준다는 명목으로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경기도 파주 임진강 근처에서 태어난 것으로 짐작되는 묵 할머니는 사실상 평생을 디아스포라 상태로 살았다. 어린 시절에는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조선의 백성이었고, 십 대 시절에는 위안부로 인도네시아 스마랑에 끌려갔다. 귀국 후에는 남쪽의 국민도 북쪽의 국민도 되지 못하고 그의 정체를 의심하고 심문하는 말들 속에서 뜬 상태로 지냈다. 묵 할머니의 삶에서 국가는 언제나 부재하거나 불완전했을 뿐 아니라 국가 자체가 그의 삶을 뒤흔드는 폭력인 적도 많았다. 나라 없는 국민으로 산 이후에는 나라가 있어도 보호받지 못하는 국민으로 살았다고도 볼 수 있다. 


평생을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상태로 지낼 수 밖에 없었던 묵 할머니의 상태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이름 없음'이다. 사실 묵 할머니에게는 이름이 없는 게 아니라 이름이 많다. 어릴 때는 캐나다 퀘벡 출신 목사가 지어준 '데보라'라는 이름이 있었고, 위안부 시절에는 일본인 군인에게 '간요'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고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강간 위협을 피하기 위해 남자 행세를 하면서 '용말'이라는 이름을 썼고, 고향으로 가서는 아예 용말로 살았다. 나중에 묵 할머니는 이름을 미란으로 바꾸고 요양원에 들어간다. 무엇도 그의 이름이지만 무엇도 그의 진짜 이름은 아니다.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진 묵 할머니는 여러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자이기도 했다. 식민지 시절 피지배 국민으로서 배운 일본어와 외국인 목사에게 배운 영어와 프랑스어 덕분에 묵 할머니는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대에 스스로 밥벌이를 하기도 했고, 눈 뜬 사람도 코를 베어 가는 시대에 세상 물정을 알면서 살아갈 수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바로 그 능력 때문에 의심을 받거나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만약 묵 할머니가 영토, 국민, 주권이 온전한 나라에서 평생을 살았다면, 그의 언어 능력은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거나 간첩으로 활동하는 데 쓰이는 대신 외교관이나 상사 주재원이 되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묵 할머니가 살면서 경험한 고통 중에는 그가 식민지 백성이기 때문인 것도, 분단국에 살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가 여성이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그가 여성이 아니었다면 위안부로 끌려갈 일도 없었을 것이고, 성인 남성처럼 보이지 않는 외모로 인해 몽키하우스로 보내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묵 할머니가 여성이 아니었다면 용말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용말의 남편도 못 만났을 것이다. 세상은 노예, 탈출 전문가, 살인자, 테러리스트, 스파이 등으로 규정하는 그를 어머니로 보아주는 아이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험한 세상으로부터 그 아이를 지키는 보람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묵 할머니는 자신이 가진 안 좋은 패를 좋은 패로 바꾸는 법을 알았고, 그것을 배우는 과정이 그의 인생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몇 해 전 돌아가신 친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나의 친할머니는 묵 할머니와 연배가 비슷한데, 그 나이대 여성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십 대 때 결혼해서 일곱 남매를 낳고 평생 농사 일만 하다가 돌아가셨다. 이렇게 보면 할머니의 삶이 슬프고 우울하게만 보이지만, 할머니 자신은 해로한 남편도 있고 잘 키운 자식들에게 손주들도 많이 보았으니 다복했다고 여기셨을지 모른다. 그런 할머니가 자식들을 교육하고 열심히 노동한 덕분에 나의 아버지가, 그리고 내가 전보다 나은 세상을 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묵 할머니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내느라 괴로운 시절이 길고 또 많았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삶을 연민의 눈으로만 보지는 않기를 바라지 않을까. 묵 할머니의 삶에서 그가 경험한 고통만 보지 말고, 그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루어낸 일들을 봐주기를 원하지 않을까. 자신이 가진 안 좋은 패를 좋은 패로 바꾸는 법을 아는 사람이 어른이고, 그런 어른들 덕분에 전보다 살 만한 세상이 되었다고 믿는다. 나는 그런 어른인지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