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도 동정탑 - 2024년 제17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구단 리에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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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는 흔히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이 꼽힌다.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에는 여러 차이점이 있는데, 아쿠타가와상은 주로 신인 작가에게 수여되는 반면 나오키상은 기성 작가에게도 수여된다. 아쿠타가와상은 작품의 예술성, 독창성 등을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반면 나오키상은 대중성, 오락성 등을 두루 평가한다. 내가 읽어본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과 나오키상 수상작만 해도 그랬다. 특히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은 <헌치백> (2023년 수상작), <최애, 타오르다> (2022년 수상작), <편의점 인간> (2016년 수상작) 등 주제나 소재, 문장과 형식 면에서 기발하고 참신한 작품이 많다.


2024년 제17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구단 리에의 <도쿄도 동정탑> 역시 여러 면에서 새롭고 독특하다. 주인공인 마키나 사라는 삼십 대 후반의 여성 건축가이다. 개인 사무소를 운영하는 그는 도쿄 도심 한가운데에 새로 지어지는 교도소의 설계 공모전에 참가해 당선된다. 문제는 정부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이 정한 교도소의 명칭이 '심퍼시 타워 도쿄'라는 것이다. 사라는 죄수들을 수감하는 장소인 교도소의 명칭 어디에도 교도소를 의미하는 단어가 들어있지 않다는 것과 일본인들 자신이 일본어 사용을 기피하고 영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분노한다.


미쳤다. 무엇이? 머리가 미쳤다. 아니 '머리'라고 하기엔 범주가 너무 넓은가? 아니, 오히려 좁지. 게다가 '머리가 미쳤다'라고 하면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여기서는 '네이밍 센스' 정도가 좋겠다. (중략) 자동 모드로 단어 선택에 대한 검열 기능이 바쁘게 작동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성장하고 있는 검열관의 존재에 피로를 느끼고, 에너지 충전을 위해 급히 수식이 필요해진다. (7쪽) 


사라는 "일본인들이 일본어를 버리고 싶어"한다고 느낀다. 노숙자는 홈리스, 육아 방임은 니글렉트, 채식주의자는 비건, 소수자는 마이너리티, 성적 소수자는 섹슈얼 마이너리티... 이런 식으로 일본어 표현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영어 표현을 부러 사용하는 이유는 기존에 사용하던 언어에 담긴 차별적, 혐오적 뉘앙스를 피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미혼모 대신 싱글맘을 사용하는 정도는 괜찮을지 몰라도, 범죄자를 범죄자라고 부르지 못하고 '호모 미세라빌리스(불쌍한 인간을 뜻하는 라틴어)'라고 부르는 건 괜찮지 않은 것 아닌가.


이 소설은 일본의 상황을 그리고 있지만 한국의 상황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 한국 여자의 줄임말인 '한녀'는 혐오 표현이 아닌데 한국 남자의 줄임말인 '한남'은 혐오 표현인 것,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의 후손들이 중도우파, 합리적 절충주의를 위시하며 그들을 규탄하는 정당과 대다수 국민들의 주장을 극단적 좌파, 비합리적 억지 논리로 일축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소설은 생성형 AI로 만든 문장을 사용한 것으로도 화제가 되었는데, 언어가 담고 있는 사상이나 판단에 대한 평가 또는 해석 없이 그저 답만 제공할 뿐인 생성형 AI의 사용이 인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하면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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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루비] Life 선상의 우리들 - 뉴 루비코믹스 2157
토코쿠라 미야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ruvill)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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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보고 원작 달렸는데 원작은 두 주인공의 말년까지 다뤄서 더 감동적이네요.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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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의 츠가이 6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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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의 작가 아라카와 히로무의 최신 연재작 <황천의 츠가이>는 일본의 어느 산속에서 밤과 낮을 양분하는 쌍둥이로 태어난 유르와 아사의 모험을 그린다. 아사는 어릴 때부터 마을 사람들과 격리되어 감옥에 유폐되어 지냈는데, 어느 날 유르는 감옥에 갇혀 있는 아사가 가짜이며 진짜 아사는 부모와 함께 도시로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모와 아사를 찾으러 츠가이들과 함께 도시로 간 유르는 온갖 사건에 휘말린다. 유르는 가짜 아사와 마을 아이를 인질로 잡은 이반이 지정한 장소로 갔다가 도리어 자신이 납치당하는 신세가 된다.


유르를 납치한 자들은 스스로를 신고 가문이라고 밝히며, 유르에게 카게모리 가문과 신고 가문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말한다. 유르는 자신이 원하는 건 많은 돈을 가지거나 큰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며, 자신은 그저 가족과 평범하게 살 수 있기만을 바란다고 말한다. 한편 유르를 찾고 있는 좌우 님은 이반과 싸우다가 이반의 칼에서 유르의 부모님의 피 냄새를 맡는다. 6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가브, 일명 가브짱이다. 저택이 빈 틈을 타 아사를 공격하려는 자들에게 가브짱은 엄청난 분노를 표출한다(정작 아사는 "오라버니 보고 싶어."를 연발하며 징징대는...). 아사에 대한 가브짱의 사랑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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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못 내는 소녀는 「그녀가 너무 착하다」고 생각한다 10
야무라 이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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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심인성 실성증으로 인해 목소리를 못 내는 소녀와 타인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 초능력을 가진 소녀가 친구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만화다. 타인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 초능력을 가진 소녀 코코사키에게 어느 날 이변이 생긴다. 그동안 시끄러울 정도로 잘 들렸던 마음의 소리가 언제부터인가 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조용함에 쾌적함을 느낀 것도 잠시. 이번에는 남들의 본심을 알 수 없어서 괴롭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친절하게 대하는 상대방이 속으로는 나를 비웃는지 욕하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무엇보다 괴로운 건 마시로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괴로움은 남들의 본심을 알 수 없어서 느끼는 괴로움과 약간 다르다.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본 결과 마시로는 겉보기와 속마음이 다르지 않다. 그러니 마시로의 표정이나 행동, 스케치북에 글씨를 써서 전하는 말 등은 마시로의 속마음과 일치한다고 믿어도 괜찮다. 마시로가 믿어도 좋은 상대임을 새삼 확신한 코코사키는 자신에게 일어난 이변을 마치 친구의 일인 양 마시로에게 털어놓는다. 과연 코코사키의 진심은 마시로에게 통할 수 있을까. 평범하지만 특별하고, 특별하지만 평범한 두 사람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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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부녀지간 입니다만 10
초진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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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여의고 식당을 하는 친척 집에 얹혀 살던 여고생 나에는 평범한 할아버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대기업 총수였던 식당 손님의 눈에 들어 그의 손자 키류 카오루의 딸로 입양된다. 법적으로는 부녀 사이이지만 실제 부녀 사이도 아니고, 태생도 성장 환경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은 시종일관 충돌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부녀를 넘어 연애 상대로 서로를 보게 되고, 그때부터는 두 사람을 이어준 법적 가족 관계라는 인연이 속박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나에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속속 나타나고, 카오루가 이어받을 예정인 키류 기업은 경영난을 맞는데...


초진의 <못난 부녀지간 입니다만>은 입양으로 부녀지간이 된 남녀가 서로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의 만화다. 설정이 마음에 안 들어서 보다 말다 했는데, 오랜만에 읽은 10권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키류 기업이 경영난을 맞은 배후에는 코미야마라는 남자가 있는데, 그는 한때 키류 기업의 직원이었고 심지어 카오루가 어릴 때 그의 운전 기사로 일한 적도 있다. 키류 기업은 오너의 친족들이 경영권을 독점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직원들 간에도 연줄이나 학력 등에 의한 차별, 불평등이 심했다고. 카오루의 할아버지가 순수하고 성실한 나에를 손자의 가족으로 점찍은 것은 그를 이런 기업 문화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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