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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메커니즘 - 경제학의 '오래된 미래' 케인스주의를 다시 읽는다
오노 요시야스 지음, 김경원 옮김, 박종현 감수 / 지형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2009-05-06
요즘 나는 미국 드라마 [grey's anatomy] 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드라마 속의 의사들은 환자의 병을 진단하고 어떻게 치료할지 답을 구하는 'Consult(컨설트)' 라는 것을 한다. 경제 문제를 접할 때마다 나는 이 문제들이 의학, 넓게는 과학 문제처럼 쉽고 간단하게 풀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안타깝게도 경제학은 '무엇을, 어떻게, 누구를 위하여' 라는 문제를 풀기가 녹록치 않다. 의사들이 '병을, 최적의 방법으로, 환자를 위하여' 치료하겠다는 하나의 답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다르게 말이다. 어쩌면 이는 경제학이 정치학, 나아가서는 철학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경제학의 아버지인 아담 스미스가 도덕철학자였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고, 마르크스의 '주의'는 원래 독일의 관념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경제학은 정치학 문제와 마찬가지로 다수와 소수의 싸움이며, 철학 문제처럼 답이 없고 골치 아프다.
[불황의 메커니즘] 은 일반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케인즈의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을 일본의 경제학자인 오노 요시야스가 해석한 책이다. 일반이론은 몇 가지 점에서 '불운한 명저' 라고 할 수 있다. '불운' 한 것은 케인즈가 이 책에서 완벽한 논증을 펼치지 못했으며, 이후 정치적으로 오남용 되면서 책의 의미가 변질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신고전파의 주류 경제학에 이의를 제기하고 다른 주장을 제시했으며, 현대 경제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명저' 라고 이를만 하다.
책은 총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케인즈 경제학의 기본 구조] 를 설명하고, 2장과 3장에서는 케인즈의 일반이론을 해석한다. 그리고 4장과 5장은 경제정책 및 불황이론에 주는 시사점을 정리한다. 각 장마다 경제학적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거시경제학과 화폐금융론 등 경제학 이론서와 병행하여 공부한다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케인즈의 주장에서 정치적 해석의 여지를 제하고, 이론의 적부에만 집중하여 서술했다는 점에서 읽어볼만 하다. 대부분의 경제학 이론서나 서적에서 케인즈는 유효수요의 중요성을 알리고, 정부의 공공지출을 늘릴 것을 주장하여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에 영향을 주었다(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을 뿐, 실제로는 관련이 없다고 한다 - 위키백과)고 알려져있다. 주류 경제학적 사고에 젖어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귀에는 언뜻 분배를 중시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이는 주류 경제학자들의 주장일 뿐, 케인즈 자신은 철저히 효율성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인력 감축은 불황 타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노동수요를 줄이면 임금이 낮아지고, 소비가 줄면 총수요가 줄어서 불황이 더 심각해질 분이다. 하지만 잉여노동력을 활용해서 임금을 주고, 소비가 늘어서 총수요가 늘어나면 공급이 다시 늘어난다. 이런 메커니즘이 어떤 정치적 입장을 옹호하는지를 생각하지 말고, 메커니즘의 옳고 그름 여부에만 집중해보자. 예비 실업자나 다름 없는 취업 준비생의 입장에서 나는 왠지 케인즈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 책은 일본 학자가 쓴 만큼 일본의 상황이 주로 등장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상황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고이즈미의 親기업적 경제정책이라든가 민영화, 잡 셰어링(Job-sharing) 등의 문제는 한국인의 눈에도 그리 낯설지 않다. 특히 저자는 일본의 높은 저축열(?)을 굉장히 비판한다. 한국도 저축율이 높은 나라였지만, 요즘은 저축보다는 투자(혹은 투기)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다. 저축이든 수익 자산의 보유든 똑같이 소비와 대비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을 간과하기 어렵다.
다만 예시가 많지 않고, 서술 방식이 딱딱해서 경제학적 지식이 아예 없는 사람이 읽기에는 벅찰 것 같다. 학부생 이상이 읽어야 대충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나는 '게으른' 복수전공생이라서 그런지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케인즈 경제학을 이렇게 집중적으로 다루는 책을 자주 만나기 어려운 만큼 한번쯤 읽어볼 만은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