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고 생각할 때 해야 할 42가지
밈 아이클러 리바스.크리스 가드너 지음, 이다희 옮김 / 흐름출판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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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스물 여섯.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일찍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면 경력이 제법 쌓였을 것이고, 대학 졸업 후 바로 대학원에 진학했더라면 석사일 것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 들은 충격적인 사실. 아는 언니가 나보다 고작 한두살 많은데 애가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간다고... 외숙모가 결혼은 될수록 일찍 해야 좋다고 했는데, 작은엄마가 경력은 어릴 때부터 쌓는 게 좋다고 했는데, 어영부영 하다 보니 이제 전부 늦었구나 싶다. 

우울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차에 내 눈에 뜨인 책이 바로 <늦었다고 생각할 때 해야 할 42가지>였다. '늦었다'는 말이 어찌나 내 가슴을 후벼파든지... 게다가 저자 크리스 가드너는 바로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행복을 찾아서>의 원작이 된 실화의 주인공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행복을 찾아서>의 후속편 격인 것인데, 그렇다면 영화를 먼저 봐야겠지 싶어 지난 주말에 보았다. 영화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크리스 가드너(윌 스미스 분)는 어렸을 때는 명석하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지금은 오늘 실적을 못 내면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세일즈맨이다.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살았으나 그의 뜻과 달리 형편이 점점 안 좋아져 아내마저 그를 떠났고, 셋집에서도 쫓겨나 홀로 하나뿐인 아들 크리스토퍼를 키우는 노숙자 신세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샌프란시스코 주식거래소 앞을 지나가다가 그는 이 곳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우여곡절 끝에 딘 워터 사의 인턴 자리를 따냈다. 하지만 고생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6개월 간의 수습 기간을 거친다 해도 정직원으로 뽑히는 것은 고작 단 한 명. 고졸 학력에 아들 딸린 노숙자 신세인 그가 명문대 출신들을 따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그는 해냈다. 무료 구호소에서 밤잠을 청하고 그마저도 안 되면 지하철 화장실에서 자고, 당장 1달러가 급해서 피까지 팔아가면서 말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란 언제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크리스처럼 아내가 자신을 떠났을 때, 집에서 쫓겨났을 때, 세일즈맨으로서 실패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늦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행복해지겠다는 신념, 아들과 결코 헤어지지 않겠다는 의지만 생각했다. 늦었다는 것은 남들의 판단일뿐, 한번뿐인 내 인생에 늦은 때라는 건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 할 수 있는 방법이 마흔두 가지나 소개되어 있지만, 영화를 보고 그의 인생 여정을 떠올리며 읽었더니 마치 에세이나 후일담을 읽는 것처럼 편안하게 읽혔다. 무엇보다도 그의 굴곡 많은 인생이 남들에게 힘이 되는 뜻 깊은 경험으로, 성공의 모델로 보여진다는 것이 멋있었다. 그의 삶을 보면, 정말이지 단 하나도 나보다 나은 것이 없었는데 오로지 끈기와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을 이루었다. 이런 사람을 두고 안 된다, 늦었다고 말하는 것은 사치이고 오만이 아닐까. 

그러고보니 몇 년 전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묻기에 대답했더니 '네 까짓게 되겠냐'며 비웃음 당한 일이 있다. 잘 아는 사이도 아니고, 게다가 물어보니 대답을 했을 뿐인데 비웃어서 기분이 팍 상했다. 덕분에 보란듯이 성공해주겠다고 굳게 마음먹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잘 된 일이기는 하지만, 아직 꿈을 이룬 것은 아니라서 그 일은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그 때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 가드너의 말대로 '내 꿈은 나만의 것이고 내가 지켜야' 하는 것(p.124), 영화에 나온 대사까지 인용하면 '누구도 내 꿈을 남이 할 수 없다고 말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Don't ever let somebody tell you "You can't do something".)  

누구에게나 살면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그리고 그것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 포기할 것인가, 끝까지 계속 할 것인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다. 크리스 가드너는 이 책을 통해, 그리고 그의 전 인생을 통해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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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30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 같은 거 꾸어도 잘 이뤄지지 않고, 회한으로 남는다..고 느끼는 게 보통 많은 사람들의 경우일 거예요. 그치만 진짜 꿈을 꾸었다면 그런 얘긴 안 할지도 모르겠어요. 꿈은 꾸는 순간 벌써 이루어진다고 하던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이만교, 그린비) 1장 내용에 설득당해 버렸기 때문이죠. (이 책, 1장만이라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이 1장은, 누구라도 읽어보면 좋을 장이죠.)
여튼 저도 '모든 것을 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는 생각을 요즘 의식, 무의식 통틀어 줄곧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좀 생각을 바꾸자고 반성해 봅니다.

키치 2011-08-31 00:21   좋아요 0 | URL
와, 저 그 책 읽었어요. 지금 어딨는지 몰라서 살짝 민망합니다만, 글쓰기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해준 책이었어요. 반갑습니다 ^^ 좋은 꿈 꾸시고 꼭 이루세요.
 
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집, 개정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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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의 벗을 얻는다면... 10년 동안 뽕나무를 심고 1년 동안 누에를 길러... 백 번 달군 금침바늘로 내 벗의 얼굴을 수놓게 하리라.'  

언젠가 인터넷인가 책에서 <나를 알아주는 벗>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짧은데도 묘사가 어찌나 강렬한지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게다가 조선 시대에, 임금도 아니요 공자님도 아닌 '고작' 벗에게 이런 정성을 쏟은 학자가 있었다니, 당시로서는 불경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글쓴이가 누군지 궁금하여 이름을 찾아보니 이덕무라고 했다. 같은 시대 사람인 정약용이나 박지원만큼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정조대왕 시절 규장각 검서관으로 일했던 인물이라고 했다. 마침 그의 글을 모은 <책에 미친 바보>라는 책이 있다고 하여 서둘러 읽어보았다. 이덕무가 쓴 글과 서간문 등을 모아 만든 산문집인데, 책 제목은 생전에 그가 책 읽기를 마치 미친 사람처럼 좋아했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 '간서치'에서 따왔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많이 보았는데 이런 뜻이었구나. 

고전이나 유학에 대해 잘 몰라서 간혹 읽기에 어려운 글도 있었지만, 친구나 가족에 대한 글은 읽기 쉬웠다. 무엇보다도 글 한편 한편 이덕무라는 인물의 사람됨이 드러나 재미있었다. 그 중 내가 가장 열광한 글은 바로 이 글. 이서구에게 쓴 편지다.

이서구에게 2

내가 단것에 대해서는 마치 성성이(오랑우탄)가 술을 좋아하고 원숭이가 과일을 즐기는 것만큼 좋아한다오. 그래서 내 친구들은 단것을 보면 나를 생각하고, 단것이 생기면 내게 주곤 했는데, 오직 박제가만은 그리 하지 않았소. 박제가는 세 번이나 단것을 먹으면서도 나를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주지도 않았소. 어떤 때에는 남이 내게 준 것까지 빼앗아 먹곤 했다오. 친구의 의리상 허물이 있으면 바로잡아 주는 것이 당연하니, 그대가 내 대신 박제가를 깊이 나무라 주기 바라오. (p.157) 

이 글에 등장하는 이서구는 조선 후기의 문인이고 박제가는 알다시피 '북학의'의 저자다. 두 분 다 국사 시간에 책에 밑줄 죽죽 그어가며 배운 위인들 맞다. 그런데 이 글을 보니 위인으로서의 품위는커녕, 이덕무가 좋아하다못해 환장하는 단 음식을 빼앗아 먹는 얄궂은 벗(박제가)과 그런 이덕무의 투정을 받아주는 너그러운 벗(이서구)만 보인다. 게다가 이덕무는 어떠한가. 박제가에게 불만을 바로 말하지 않고 이서구에게 이른바 '뒷담화'를 늘어놓다못해 대신 혼내달라는 부탁까지 한다. 이쯤되면 사람 냄새 나다 못해 시트콤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그래, 그들에게도 이렇게 시트콤처럼 즐거운 시절이 있었겠지, 암... 

하지만 이 글만으로 그들의 우정을 전부 판단해서는 안 된다. 뒷부분에 훗날 이덕무가 소중한 벗인 박제가가 북학만 좋아한 나머지 행여 임금의 노여움을 살까 걱정하여 임종을 앞두고도 박제가에게 '임금의 노여움을 사지 말고 부디 몸조심하라'는 글을 남기는 부분이 나온다. 죽음이 코 앞까지 다가왔는데도 행여 존경하는 임금과 사랑하는 벗 사이가 멀어질까 염려하는 이덕무의 마음이 애처로웠다.  

역사 속의 인물이라고 하면, 역사라는 단어의 무게 때문인지 근엄하고 무게 있는 어르신의 모습만 떠올랐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친구를 흉보면서도 걱정하는 모습도 그렇고, 박지원이 새로 펴낸 글이 멋지다며 찬사를 보내고, 넉넉잖은 살림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은 지금 내가 작가와 예술가를 좋아하면서도 가벼운 지갑 사정을 걱정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역시 사람 사는 모습은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일까. <책에 미친 바보>를 읽으며, 책만큼이나 벗과 인생에 미쳐있었던 조선 후기의 선비 이덕무의 모습에서 오늘을 사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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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30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오늘 저도 읽기 시작했어요.^^ 아까 커피숍에서 '문장과 학풍에 대하여'까지 읽었는데.. 반갑네요.

키치 2011-08-31 01:33   좋아요 0 | URL
제가 모르는 게 많아서 읽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벗에게 쓴 편지와 가족에 대한 얘기가 좋았어요. 섬 님 마음에도 좋은 느낌으로 남는 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회색 쇼크 - 고령화, 쇼크인가 축복인가
테드 피시먼 지음, 안세민 옮김 / 반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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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이 vegan diet 중이라고 한다. vegetarian diet 이 육류 섭취만 안 하는 것이라면 vegan diet는 생선, 우유, 치즈, 계란 등도 먹지 않는 '초강력' 채식주의라고. 채식주의자가 전보다 늘었는데 뭐 별난 일인가 싶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빅맥을 즐겨먹는 모습이 여러번 찍혔을만큼 패스트푸드와 육식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2004년 심장 수술을 받은 뒤 섭식 조절을 시작했고, 작년에 있었던 딸 첼시의 결혼식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슬림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옛날 같으면 먹을 것도 없는데 식단을 조절한다는 것이 가당치도 않은 소리로 들렸겠지만, 이제는 몸에 필요한 영양소만 집중적으로 섭취할 수도 있고 식습관을 바꿀 수도 있으며, 먹고 찐 살까지 의학의 도움으로 쉽게 뺄 수 있다. 빌 클린턴처럼 일찍부터 몸을, 건강을, 그리고 수명까지도 조절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건강을 관리할 수 있고 수명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 자연히 따라오는 문제는 고령화다. <회색 쇼크>는 국가를 넘어 국제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이 고령화 문제에 관한 책이다. 도서관에서 보고 일본의 사례가 재밌기에 훌훌 읽다가 잘 알아두면 좋을 내용인 것 같아서 아예 통독했다.  

고령화. 사실 아직 젊은 나이라서 몸으로 느껴지는 정도는 아니지만, 당장 부모님 정년이 가까워오고, 집안의 최고 고령자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닌 외증조모(즉 나의 어머니의 외할머니)인 것을 생각하면 먼 일도 아니다. 외증조모님 연세가 100세 가까우시다고 들었는데 나도 그 때까지 살게 될지 모른다. 

고령화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책에서 보니까 전세계에 100세 이상의 인구가 현재 45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100세 이상 인구수는 1,800명 이상. 일본이나 유럽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고.) 무려 100세 이상의 인구만 45만명이니, 80세 이상, 60세 이상의 인구는 오죽 많을까. 

일본,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유명 대학을 중심으로 '장수학', '노인학' 같은 강좌가 개설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고령화는 또한 산업과 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산업은 고령화로 인해 노동자 평균연령과 분포가 바뀌니 생산성이 달라지고 경제가 개편된다는 것은 알 수 있겠는데, 문화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읽어봤더니 내가 요즘 궁금해하던 문제가 딱 나왔다. 바로 오디션 프로그램의 범람! 

수전 보일의 에피소드는 용의주도하게 계획된 것일 수도 있다. 텔레비전 제작자들은 옛날부터 18~35세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돈을 어떻게 지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력이 여전히 베이비부머와 그 부모에게 있는 고령화사회에서, 영국의 <브리튼스갓탤런트>, 미국의 <아메리칸아이돌>,<댄싱위드더스타즈> 같은 리얼리티쇼는 비록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나이 든 시청자들을 끌어당기는 위력을 보여주었다. 미국에서는 베이비부머가 일주일에 39시간 동안 텔레비전을 본다고 알려져 있다. 인터넷과 핸드폰에 더 많은 시간을 뺏기는, 대학교를 갓 졸업한 세대에 비해 12시간 더 많이 본다. (p.380)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라지만 내가 TV를 많이 안 봐서 실감이 안 났는데, 이제보니 우리 부모님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광팬이셨다. '청강이, 청강이' 하시기에 누군가 했더니 '위대한 탄생'인가 하는 프로그램에 나왔던 친구라고. 요즘은 슈퍼스타K 3를 열심히 보시고, 댄싱위드더스타도 보신다고. 나가수는 재방송까지 보신다. 남자의 자격에서 하는 청춘합창단도 굉장히 좋아하시던데, 오디션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일반인이 TV출연해서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맥락은 비슷하다. 

젊은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고, 우리 부모님처럼 나이 드신 분들까지 TV 앞에 붙들어매는 것을 보면 이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매력이 대단한가보다. 자식으로서는 밖에 나가서 친구분들도 만나고 취미 생활도 하셨으면 하는데, 막상 부모님 말씀을 들어보면 몸도 예전같지 않고 친구분들 만나기도 쉽지 않아서 TV로라도 대신하는 것이라고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아무리 미디어가 '마사지'라고 해도 언제까지나 대리만족만 주어서는 한계가 있을텐데... 

비단 TV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여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개인으로서도 라이프 플랜 전체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 노동과 여가에 대한 관점도 바꿔야 할 것 같다. 더 오래 살면 평생 먹고 살 걱정도 늘어나고, 뭐 하고 놀지, 누구와 살지에 관한 고민도 더 늘어나는 게 아닌가.  

참, 사는 게 걱정인데 오래 사는 걱정도 하는 시대가 왔구나.  

빌 클린턴처럼 나도 채식을 시작해볼까? 그 걱정도 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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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2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인분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아한다니, 왠지 의외군요. 저희 어머니는 드라마 팬이시라.. 근데 다른 걸 할 수 없기에 TV를 더 시청한다는 건 슬픈 현실이에요. 저희 어머니도 아프시게 되면서 티비를 더 많이 보시거든요.

키치 2011-08-31 01:34   좋아요 0 | URL
저희 부모님은 tv 잘 안 보시는 편이었는데 점점 드라마에 빠지시더니 요즘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그렇게 좋아하세요. 자식으로서 걱정될 정도로요...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 - 당신이 잊고 지낸 소중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
김원 글.사진.그림 / 링거스그룹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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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마땅히 놀거리도 없는 베드타운에 사는 청소년으로서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일탈(!)은 조금 번화한 지역에 있는 음반점에서 아이돌 가수의 음반을 사거나 서점에서 문제집 사고 남은 돈을 모아 월간지 <PAPER>를 사는 정도였다. (소심해서 이 정도로 만족한 것이지, 나중에 들으니 다른 친구들은 더 큰 도시로 나가서 남자친구도 만나고 옷도 사입으며 놀았다고 한다. 그 친구들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졸업 후 대학을 다니며 '종이'위의 청춘을 몸소 겪게 되면서 경험이 청춘에 대한 환상을 대체하게 되었고, 슬프게도 청춘은 잡지 속의 글과 사진만큼 아름답지도, 찬란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PAPER>를 발견하면 반가운 마음에 들춰보게 되는 것은 왜일까.  

각설하고, 그러고보니 요 근래 <PAPER>를 이끄는 두 분, 김원 님과 황경신 님의 책을 연달아 읽고 있다. 먼저 김원 님과 쉐인 선생님이 함께 쓴 <은밀한 영어책>을 읽었고, 그 다음에는 황경신 님의 <위로의 레시피>를 읽었다. (제목이 헷갈린다. '은밀한 레시피', '위로의 영어책'은 아니었겠지...?)  

이번에 출간된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는 글, 그림, 사진 모두 김원 님이 담당한 책이다. 편집장으로서, 누구와 함께 내는 책이 아닌, 온전히 자신의 이름으로 내는 책이기 때문인지 한장 한장이 예쁘고 정성이 많이 느껴진다. 이따금씩 내용 때문이든, 디자인이나 편집 때문이든 간에 '이런 책을 내고 저자나 편집자는 잠이 올까' 싶은 책을 만날 때가 있는데 이 책은 정반대다. 내가 작가라면 이런 책을 만들고 싶다. 

글도 한편 한편 얼마나 예쁜지. 꿈, 만남, 사랑, 친구, 취미, 일상 등등... 하나하나 아름다운 소재들이 글로 살아나 이 책을 가득 채운다. 읽다보니 절로 나에게는 어떤 꿈이 있고 인연이 있는지 떠올랐다.

 하지만 요상하게도, 가장 마음에 남는 글은 아름다운 글과 사진이 쭉 펼쳐지고 맨 끝에 나오는 에필로그다.

인간이 어떻게 '즐기기 위해서'만 살 수가 있는가? 그것은 어쩌면, 삶에 대한 매우 부도덕한 자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늘... 희생하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삶이 '가장 숭고한 가치를 지닌 삶'이라는 교육을 받으며 살아왔다. 집에서도 그랬고, 학교에서도 그랬고, 사회에서도 그랬다. 어딜 가나 늘 그랬다. '대한민국'이라는 조직사회는 늘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그것을 강요해왔다. 그런데 유럽은 달랐다. 미친 듯이 즐겁게 살기 위해서 산다. 물론, 노력한다고 해서 누구나 즐겁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삶의 지향점이 '그쪽 방향'이라는 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p.283) 

좋은 것에 대해 논하다가 갑자기 대한민국 어쩌고 하는 글을 보니 어색했다. 그러나 이 글이야말로 저자의 가장 깊은 진심 같다. 이제까지 김원 님에 대해 그저 미술을 오랫동안 해오신, 월간지의 편집장 정도로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글과 사진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오랫동안 추하고 못난 것들을 보아 왔고 남들보다 더 절절하게 느꼈기 때문에 사소한 것도 귀하게 볼 줄 알고,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모아 아름답게 이어붙일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꿈꾸던 청춘과 다른 청춘을 보냈음에도 여전히 <PAPER>를 들추고 있는 것 또한 그 때문일지 모르겠다. 정신 못차리고 지나보낸 청춘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아름답고 그리운 것 같다. 마치 못 이룬 첫사랑처럼, 고백하기 전보다 아프게 헤어진 후에 상대를 더 아름답게 기억하게 되는 것은 아닐런지. 

내 안의 모든 것이 바뀌어도, 스치고 지나간 것들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이 마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제목이 기억 속에 있는 한은 떠나 보낸 청춘에 대한 미련과 함께 오랫동안 마음에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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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8-20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나 삶의 지향점이 '그쪽 방향'이라는 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며 살고 싶어요. 책이 예쁘고 아기자기해요. 좀 더 어렸다면 이 책은 정말 딱 제 스타일인데 이제는 아니라서 아마 geenu님 리뷰가 전부가 되겠지만, 나를 아름다운 삶으로 이끌어가는 일이 퍽 대단한 일인 것 같긴 해요. 예쁜 리뷰 잘 봤어요.^^

키치 2011-08-21 09:59   좋아요 0 | URL
저자 에필로그를 읽고 전체 감상이 바뀐 책이에요. 사실 그 전까지는 약간 허세같았는데, 짤막하게나마 살아온 얘기를 읽으면서 낭만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좌절하고 시련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이 바뀌었어요. 덧글 고맙습니다. 인적이 뜸한 서재라서 덧글 한 줄이 귀하고 더 감사해요...^^

2011-08-24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가는 리뷰네요. 그리고 청춘은 늘 정신 못 차리고 그냥 지내 보내기 마련인가 봐요.
김원씨의 이 책을 보면 geenu님의 리뷰가 겹쳐질 듯 합니다.^^

키치 2011-08-31 01:3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김원님, 좋아하게 된 분이라서 제 리뷰가 겹쳐진다면 조금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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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파산하는 날 - 서구의 몰락과 신흥국의 반격
담비사 모요 지음, 김종수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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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몇 주 전까지 미국 뉴스 최대의 이슈는 부채협상이었다. 협상 기한을 열흘, 닷새, 사흘 앞두고도 해결을 못 보다가 결국 기한이 거의 다 되어서야 양당이 극적으로 타협하여 파산 위기는 넘겼다는 보도가 나왔고 그제서야 사태가 겨우 진정되는 듯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미국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유례없는 일이 벌어졌고, 미국 주가가 폭락하는 바람에 그 여파로 우리나라 주가까지 폭락하여 쓴맛을 보았다는 분들이 주변에도 많다. 더 큰 걱정은 부채 한도를 단기적으로 늘렸을 뿐이지 완전히 청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경제가 이보다 더 큰 위기에 빠질 위험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담비사 모요의 <미국이 파산하는 날>을 읽었다. 원제는 'How the west was lost', 해석하면 '서구는 어떻게 길을 잃었나' 정도인데 구체적으로 '미국 파산'을 거론하다니, 국내판 제목을 시의성있게 잘 지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제목 덕분에 부채협상 문제와 함께 이 책이 언론에서도 많이 언급된 모양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미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어제 오늘일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미국이 명실상부한 패권국으로 자리잡고 마셜플랜 등 자유진영 국가에 대한 원조를 시작했을 때부터 미국 경제는 적자 지향이었다. 미국이 세계 경제의 최대 채무국이라는 부담을 감수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수출을 동력으로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학계에서도 지배적인 견해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의 국내 사정을 지적한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경고되어 왔던 금융계의 도덕불감증, 그리고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주범인 주택시장 버블, 과도한 복지정책 등 미국내에서 바로잡아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들이 현 상황을 낳은 것이라고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부상, 브릭스의 성장 등 탈냉전 이후 일극 체제에서는 생각지도 않았던 위기 요소들이 현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몇 가지 방안과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제조업의 부흥'이다. 저자는 제조업을 중국 등 신흥 공업국에 내주고 금융 등 서비스업에 비중을 두게 되면서 경제가 허약해졌다고 지적한다. 1차 산업인 농업, 2차 산업인 제조업에 이어 3차 산업인 서비스업으로 경제 중심이 이동해야 나라가 발전하는 것이라고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배웠던 것 같은데, 저자의 발언은 사뭇 신선하게 들린다. 

하지만 비단 저자만의 주장이 아니다. 요즘 미국 뉴스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내용이 바로 이 제조업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방송사인 ABC에서는 아예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라는 타이틀로 미국내 제조업 현황을 조명하는 코너까지 만들었다. 

나는 이 말을 미국 뉴스에서 들을 때마다 기분이 묘해진다. 만약 미국이 수출을 줄이고 자국내 제조업을 육성할 경우 우리나라 경제는, 그리고 세계 경제는 어떻게 될까? 자국이 소비할 것은 자국이 생산한다는 식으로 가는 것은 이제까지 미국이 주장해온 자유무역과는 거리가 멀다. 이렇게 미국이 자유무역으로부터 등을 돌리면 유럽은, 그리고 아시아는 어떻게 될까? 

미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 중국의 부상 등은 이제까지 많은 책에서 다루어졌으니 사실 그렇게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 파산에 대한 우려가 완전히 사그러들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읽어두면 좋을 책이다.

'경제활동은 단순히 잘 산다는 것뿐만 아니라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경제력은 아마 가장 중요한 힘의 원천일 것이다. 주요 국가 사이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세상에서 경제력은 국가 간의 우위를 결정하는 데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미국인들은 현재의 도전에 대해 우려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새뮤얼 헌팅턴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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