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역습 Idea Ink
우치누마 신타로 지음, 문희언 옮김 / 하루(haru)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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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공개된 '2015 국민 독서 실태조사 따르면, 한국인 10명 가운데 6.5명이 1년 사이에 종이책을 1권 이상 읽었다. 2년 전보다 6퍼센트 감소한 수치다. 그런데 같은 조사에 따르면, '독서자 기준 평균 독서량'은 2013년의 12.9권에서 2015년에는 14권으로 늘었다. 전체 국민 중 책 읽는 사람은 줄고 있지만, 책 읽는 사람들의 독서량은 늘고 있다는 것이다. - 어수웅 <탐독> pp.8-9 


출판업계의 미래는 어둡다고들 말한다. 영화, TV, 인터넷에 이어 스마트폰까지 등장해 책의 위상은 더욱 낮아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정말 그럴까. 통계에 따르면 전체 국민 중 책 읽는 사람이 점점 줄고 있는 건 맞지만 책 읽는 사람의 독서량은 오히려 늘고 있다. 안 읽는 사람은 안 읽고 읽는 사람은 더 읽는, 지식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책의 역습>의 저자 우치누마 신타로는 대학 재학 중 출판 업계에 관심을 가졌다. 오라이도 서점에서 일하며 서점 업계의 생태를 익혔다. 저자는 2003년에 인터넷 헌책 서점 '북 픽 오케스트라'를 설립했고 2006년 말에 'numabooks'를 설립했다. 2012년에는 시모키타자와에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서점 'B&B'를 열었고 현재는 온 오프라인을 불문, 다방면에서 책의 미래를 모색하는 북 코디네이터로서 활약하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출판 업계의 미래'는 확실히 말해서 어둡지만, 살아남는 방법은 많이 있으며, '책의 미래'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밝고 가능성의 바다가 넓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섣부른 짐작도 아니고 듣기 좋으라고 하는 허세도 아니다. 


저자는 책의 다양한 가능성을 십 년 넘게 실험했다. 'TOKYO HIPSTER CLUB'이라는 숍을 프로듀스할 때는 비트 시대 시인들의 문학에서 매장 콘셉트가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매장 전면 서가에 책을 배치했다. 이를 통해 책을 인테리어 도구로, 브랜드 홍보 매체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필기할 수 있는 서점'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도 있다. 누구나 새 책을 좋아한다는 통념을 깨고 매장에 들어온 사람들이 아무 책에나 필기나 낙서를 할 수 있게 했다. 남이 필기나 낙서를 한 책을 누가 살까 싶지만 예상과 달리 책이 엄청난 속도로 팔려나갔다. 문고본 헌책을 그림엽서처럼 활용한 아이디어도 인상적이었다. 


책은 이미 정의할 수 없고, 정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책은 모든 콘텐츠와 커뮤니케이션을 집어삼켜 영역을 횡단해서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이야말로 '팔리지 않는다', '활기가 없다'라는 말을 계속 들어온 책에 의한 책을 위한 '역습'이라고 생각합니다. (pp.64-5) 


지난 1,20년 사이에도 책을 둘러싼 환경은 급속하게 바뀌었다. 어린 시절 나는 주로 동네 서점이나 헌책방에서 책을 샀다. 대형서점은 서울에 올 때나(그때는 경기도에 살았다) 갈 수 있었다. 인터넷서점은 꿈도 못 꿨다. 지금은 집 근처에 대형서점이 몇 개나 있다. 인터넷서점은 매일같이 드나들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주문을 한다. 책을 주문하면 당일 배송을 해준다. 책을 직접 사러 갔다 오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편리하다. 


독립출판물과 전자책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했다. 최근에는 작가가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펀딩을 받아 출판을 하는 경우도 본다. 자비 출판이 일반적인 동인지 시장의 규모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특히 만화). 이러한 비주류, 마이너 시장을 포함하면 오히려 책의 가능성은 다양해지고 풍성해진 것이 아닐까. 출판 업계의 미래는 어두울지 몰라도 책의 미래는 밝다는 저자의 말에 한 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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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7-11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같이 침체된 우리나라 출판시장에 소수만 역습을 시도하지, 대부분은 여전히 과거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어떤 특정 분야의 책이 잘 팔리면, 그 유행에 편승하는 출판사들이 많아졌어요.

키치 2016-07-11 17:3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독자로서는 역습을 시도하는 출판사 혹은 출판인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
 
완벽에 대한 반론 - 생명공학 시대, 인간의 욕망과 생명윤리
마이클 샌델 지음, 김선욱.이수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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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 커플이 아이를 갖기로 결정했다. 단,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이를 원했다. 레즈비언 커플인 샤론 듀세스노와 캔디 매컬로는 청각장애인이었고, 그런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청각장애인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듣지 못하는 것을 치료해야 할 장애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정체성이라고 생각했다. 듀셰스노는 "듣지 못하는 것은 그저 삶의 방식일 뿐이다. 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스스로 온전하다고 느끼며, 청각장애인 공동체의 훌륭한 소속감과 유대감을 아이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우리는 귀가 들리지 않아도 진정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p.15) 


몇 년 전 미국의 청각장애인 레즈비언 커플이 자신들처럼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를 가지길 원했다. 이들은 5대째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가족 출신인 정자 기증자를 찾아내 결국 청각장애인인 아들을 얻었다. 이들의 이야기가 신문에 소개된 후 미국 각지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이들이 자식에게 고의로 장애를 유발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하지만 이들은 항변했다. "우리는 우리 행동이 이성애자 커플들이 아이를 가질 때 하는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성애자 커플들이 아이를 가질 때 하는 행동을 보자. 이들은 배우자를 택할 때 본능적으로 앞으로 태어날 2세를 염두에 둔다. 몸이 건강한지, 외모가 준수한지, 키가 큰지, 학벌이 높은지, 재산은 많은지 따지는 것은 부모가 원하는 특성을 가진 아이를 낳을 확률을 높이기 위한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이들은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아이의 키를 인위적으로 늘리거나 지능을 높이기 위해 교육기관의 도움을 받거나 성형수술을 받게 하기도 한다. 이는 방법만 다를 뿐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대신 결정한다는 점에서 청각장애인 레즈비언 커플의 선택과 다르지 않다. 


이 이야기는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의 책 <완벽에 대한 반론>의 첫 장에 나온다. 2010년에 출간된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를 새롭게 번역, 감수한 이 책에서 저자는 인류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고 여겨지는 생명공학 기술이 도덕적으로도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평범한 운동선수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운동선수를 이기기 위해 근육강화제 주사를 맞는 것은 왜 나쁜가, 정신과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치료하기 위해 기억력을 약화하는 약물을 사용하는 건 되는데 학력을 높이기 위해 기억력을 강화하는 약물을 사용하는 건 왜 안 될까, 키 큰 아이를 낳기 위해 키가 큰 배우자를 선택하는 건 아무 문제없는데 아이의 키를 인위적으로 늘리는 치료를 받는 건 왜 비난을 받을까 등등 생명공학 관련 이슈는 다양하다. 


우리가 던져야 할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자녀가 이미 충분히 건강한데도 그 자녀의 키를 몇 센티미터 더 늘리기 위해 거금을 써야 한다고 느끼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저자는 생명공학을 둘러싼 이슈들 대부분이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성과주의'의 폐해를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운동선수가 근육강화제 주사를 맞아가면서까지 경기에 임하는 건 스포츠가 승자만을 기억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기억력을 강화하는 약물을 복용하면서까지 공부에 집착하는 건 이 사회에 학벌에 의한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식의 키를 몇 센티미터라도 늘리기 위해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는 것 역시 외모 차별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차별이 없다면, 모든 사람의 개성이 있는 그대로 존중된다면 그 누가 생명공학 기술에 의존할 마음을 먹겠는가. 저자의 지적이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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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의 배신
라파엘 M. 보넬리 지음, 남기철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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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들과 외국어로 대화를 나눈다면 효과는 있겠지만 인생에서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한때는 인간관계를 지나치게 강조했지만, 요즘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성과다. 이제 우리 사회의 경기 규칙은 명확해졌다. 우리는 성과를 올려야 하며, 그것이 곧 자아실현이다. 이것이 정말로 옳은 사고방식일까? (pp.4-5) 


출근할 때마다 영어 유치원 차에 오르는 아이들을 본다. 아이들은 원래 이름 대신 제시카니 레이첼이니 하는 영어 이름으로 인사한다. 퇴근 시간 아파트 상가 앞을 지날 때면 교복 차림 그대로 학원에 들어가는 학생들을 마주친다. 학생들은 내가 집에 도착해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다 잠이 들 때도 새하얀 형광등 불 아래서 꼼짝없이 공부를 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우는 것 좋다. 학생 때 열심히 공부하는 것 좋다. 하지만 모두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렇게 살아야만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는 걸까. 


<완벽의 배신>을 쓴 라파엘 M. 보넬리는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다. 저자는 번아웃 증후군을 비롯해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정신질환 대부분이 '완벽주의'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완벽주의는 문자 그대로 완벽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해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피하려는 방어기제다. 일을 완벽하게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남한테 책잡히거나 실패할 염려를 없애기 위해 완벽이라는 수단을 내세우는 것이다. 


문제는 완벽주의자가 스스로 만든 완벽이라는 철갑 때문에 압박감을 느끼고 불만족, 자기 경멸, 불쾌감 등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만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며 자신의 고통을 전가한다. 거절을 못하는 사람,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람, 남한테 이래라저래라 참견하는 사람은 완벽주의자에 속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실패를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 완벽을 가장하고 남한테까지 완벽을 요구한다. 


모리츠 에르하르트는 사망하기 2년 전 독일의 오토 바이스하임 경영 대학에 제출한 자기소개서에 이렇게 썼다. 사람은 한 가지 목표에 몰두하면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저의 주요 관심사는 지속적으로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고, 최고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의 부모는 그가 늘 최고가 되고 싶어 했다고 증언했다. 모리츠는 미래를 생각하며 살았다. (pp.171-2) 


완벽주의자는 과로사할 위험도 높다. 스물한 살 청년 모리츠 에르하르트는 메릴린치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하다가 숨졌다. 주변 사람들은 모리츠가 죽기 직전 7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했다고 증언했다. 모리츠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고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부모에게도 동생에게도 좋은 아들, 형이었다. 일찍부터 금융인이 되고자 했던 모리츠는 대학 시절 내내 금융계에서 '스펙'을 쌓았다. 메릴린치의 인턴사원이 된 걸 성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 올랐다고 여겼다. 하루 열다섯 시간씩 일하다가 스물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뜰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글도 다 떼기 전에 영어 유치원에 다니고 밤늦은 시간까지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개중엔 영어를 배우는 게 무엇보다 즐겁고 학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는 게 행복한 아이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공부만 하느라 다른 재미를 누려본 적 없는 아이가 과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고만 배운 아이가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을까. 자기 스스로 원해서 뭔가를 해본 적 없는 아이가, 성공이나 발전, 자기 계발 같은 남들이 주입한 가치만을 신봉해온 아이가 무엇에 만족할 수 있을까. 제2, 제3의 모리츠가 나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완벽주의자의 내면은 텅 비어 있다. 완벽주의자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필사적으로 완벽을 추구한다. 무의식적으로 난공불락의 요새를 구축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중략) 완벽주의자들은 밤낮없이 일하지만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알지 못한다. 완벽주의자들은 쉬지 않고 부단히 움직이지만 희망도, 방향성도 없다. (pp.319-20) 


한국 사회를 보면 패자에게 가혹한 만큼 승자를 보는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누가 성공하면 어떻게든 단점을 찾아내려고 하고 약점을 잡아 끌어내리려고 한다. 유명인이든 주변 사람이든 얄짤없다. 이런 사회에서 승자가 되는 게 뭐가 좋은가. 차라리 내면을 꽉곽 채우고 하고 싶은 일을 충실히 하면서 자기만이라도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게 낫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못해도 괜찮고 포기해도 괜찮고 실패해도 괜찮다. 남한테 가혹하고 나한테 후한 사람 말고, 남한테도 나한테도 후한 사람, 넉넉한 사람이 되자. 일단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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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게 길을 묻다 - 트라우마를 넘어선 인간 내면의 가능성을 찾아서
고혜경 지음, 광주트라우마센터 기획 / 나무연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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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는 꿈에 관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라일리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이 들면 라일리의 머릿속에 있는 '꿈 제작소'는 그제야 활동을 시작한다. 라일리가 그날 겪은 일을 일종의 꿈 영화로 제작해 잠든 라일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로써 라일리는 미처 받아들이지 못한 생각이나 감정을 처리하고 소화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만약 꿈을 통해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처리할 수 없고 생각이나 감정을 소화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될까? 벌어진 일 자체가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역사적 비극이라면? 


<꿈에게 길을 묻다>는 신화학자이자 꿈작업가인 고혜경이 광주 트라우마센터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및 고문과 국가폭력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대상으로 그룹 투사 꿈작업을 실시한 과정을 담았다. 5.18로부터 30여 년이 지났지만 이들은 여전히 악몽, 가위눌림, 잠꼬대, 몽유병 등에 시달리며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여럿이 함께 각자의 꿈을 나누고 다른 사람의 꿈을 자신의 꿈처럼 접근하는 그룹 투사 꿈작업을 통해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치유한다. 


저자에 따르면 "외부에서 위협이나 충격이 가해질 때, 꿈은 이를 완화하면서 다뤄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런데 5.18처럼 강력한 외부 위협과 충격을 받았을 때는 이를 소화하거나 삶의 경험으로 통합하기가 어렵다. 트라우마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악몽을 많이 꾼다는 연구도 있다. 참가자들의 사례를 보면 정말이지 끔찍하다. 어쩌다 한두 번 악몽을 꾸거나 가위에 눌리는 게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매일같이 반복적으로 악몽을 꾸거나 가위에 눌린다. 식구들이 깨워줘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고,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가까이 있던 부인이나 자식에게 해코지를 한 적도 있다. 


꿈 작업을 통해 이들은 오랫동안 숨겨온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고 공유했다. 공유함으로써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악몽, 가위눌림, 잠꼬대, 몽유병이 이들을 괴롭히려는 게 아니며 119 사이렌처럼 '모든 걸 다 제치고 여기에 주목해달라'는 사인이고 '어서 빨리 치료를 하자'는 신호라는 사실을 알았다. 꿈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꿈을 적극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고, 꿈이 보여주는 자기 인생에 관한 정보와 에너지를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인사이드 아웃>으로 치면 '꿈 제작소'가 애써 만들어 보여준 꿈 영화를 보다가 도중에 도망치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자기 내면이 들려주는 메시지를 찾게 된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꿈 작업이 필요한 사람들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외에도 무수히 많다. 그들 모두가 밤마다 악몽을 꾸고 가위눌림에 시달리는 걸 상상하면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 끔찍하다. 이들이 악몽을 꿀 걱정 없이 편하게 잠들 수 있는 날은 과연 언제 올까. 그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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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들의 과학 - 물건에 집착하는 한 남자의 일상 탐험 사소한 이야기
마크 미오도닉 지음, 윤신영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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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문과생인 나는 이과생들이 신기하다. 똑같이 점심에 회사 밖으로 나가 일본 라멘을 사 먹어도 문과 출신인 나는 음식점 이름이나(일본 남부의 하카타 라멘 전문점이군!) 메뉴 설명에(돈코츠 라멘이라고 쓰는 것과 돼지뼈 라면이라고 쓰는 건 어떻게 다를까?) 반응하는 데 반해, 이과 출신인 동료는 가게 구조나(이 집은 카운터 석을 늘려 회전율을 높였군!) 면의 재질과 굵기(이 집 면은 나선형으로 구불구불하게 꼬여서 탄력이 좋고 잘 안 불어) 등에 반응한다. 같은 나라에서 같은 말을 쓰며 살아도 문과냐 이과냐에 따라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건 전혀 다르다. 


<사소한 것들의 과학>의 저자 마크 미오도닉은 문과생인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지에 있는 '슈퍼 이과생'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기차역에서 낯선 사람에게 위협을 당하고 면도날에 등을 베이는 사건을 겪었다. 부모님은 놀라서 기절할 뻔했지만, 그는 작은 면도날이 그토록 위협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랐고 면도날의 재료인 철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열심히 과학 공부를 한 결과 대학에서 재료과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구소에서 공학자로 일하며 사물의 구조와 성질을 연구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책에서 그는 철, 종이, 초콜릿, 유리, 플라스틱, 흑연, 자기, 콘크리트 등 일상에서 누구나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탄소니 크롬이니, 원자 치환이니 전위니 하는 과학 용어들은 어렵지만 필기용 노트며 가족사진이며 심지어는 오래된 열차표와 점점 희미해지는 영수증까지 동원해가며 설명하는 저자의 열정에 비하면 별것 아니다. 과학 머리도 없는데 수업도 제대로 안 들은 날 탓해야지. 


종이의 어떤 면 때문에, 우리는 그냥 있었으면 비밀이 됐을 말을 표현하게 되는 걸까. 보통 혼자 있는 순간에 편지를 쓰게 되고, 그때 종이는 감각적인 사랑에 스스로를 내어준다. 쓰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감동적이고 흘러넘치며 번창하는 하나의 행위다. 사랑스러운 방백이나 가벼운 묘사, 그리고 키보드라는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는 개인성이 한데 모인 것이다. 잉크는 정직함과 표현력을 갈망하는 일종의 피가 돼 종이에 부어지고, 생각이 흘러가도록 허락한다. (p.90)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여러 물질 이야기 중에서도 종이에 관한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웠다. 종이는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노트, 수첩, 문서, 책, 포스터, 벽지, 화장지, 우유팩, 휴지, 영수증, 종이 티백, 종이 필터 등등 다양하다. 그만큼 베어지는 나무의 양도 어마어마하다. 전 세계적으로 화장실에서 사용하기 위해 베어져 가공되는 나무의 수는 매일 2만 7천 그루에 달한다('화장지'만이다. 그것도 '매일'이다!). 나무를 지키고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종이 사용을 줄이고 디지털 기술 활용을 늘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종이가 너무 매력적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떤 메시지를 위해서라면, 종이는 다른 모든 매체보다 우위에 있다'. 연애편지,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 좋아하는 영화의 티켓, 동경하는 작가의 책, 어렸을 때 쓴 일기, 여행에서 산 엽서와 책갈피 등등 아끼고 사랑하는 것들은 종이라는 매체를 거칠 때 더 귀하고 애틋하다. 그걸 위해서라면 나무 한 그루 더 베고 깨끗한 산소가 덜 공급된다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나에게 종이가 그렇듯, 누군가에겐 철이, 누군가에겐 유리가, 누군가에겐 플라스틱이 무엇보다 특별하고 생각만 해도 애틋한 물질이겠지. 그들의 '사소한'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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