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사유의 시선 - 우리가 꿈꾸는 시대를 위한 철학의 힘
최진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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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까지 철학 수입국으로 살았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이자 건명원의 초대 원장인 최진석의 책<탁월한 사유의 시선>의 서문에 나오는 문장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현재의 수준에 머무는 까닭으로 고유한 철학의 부재를 든다. '보통 수준의 생각'은 우리끼리 잘하며 살아왔지만, '높은 수준의 생각'은 수입해서 살았다. '보통 수준의 생각'으로는 세계를 선도할 수 없기에 '높은 수준의 생각'이 필요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단연 높은 수준의 생각이고, 이는 철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철학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걸까? 저자에 따르면 '철학을 한다는 것은 결국 가장 높은 차원의 생각 혹은 사유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즉, 사물이나 사건을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고 한층 높은 차원에서 보는 것이다. '철학 수입국'인 한국은 외국 철학자들이 생각해낸 결과를 수용하고 그것에 종속될 뿐, 스스로 생각하는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철학 교육 또한 철학 지식을 주입하는 것에 그치고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고 사유하는 훈련을 하도록 나아가지 못했다. 그 결과 한국에는 고유한 철학이 없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공자, 맹자를 잘 아는 철학자는 많아도, 자신만의 철학으로 세계에 이름을 떨친 철학자는 없다. 


우리가 흔히 아는 철학자들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닮기 위해서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시선으로 자기처럼 산 사람들입니다. 노자도 공자도 칸트도 헤겔도 모두 '자기처럼' 산 사람들일 뿐입니다. (중략) 그런데 배우는 사람들은 칸트를 배우면 칸트처럼, 노자를 좋아하면 노자처럼, 공자를 좋아하면 공자처럼 살아보려고 합니다. (93~94쪽) 


철학은 또한 누구처럼 살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다. <장자>를 읽고 감명을 받았으면 장자처럼 살아볼 생각을 할 게 아니라 장자가 사용했던 높이의 시선을 지금 자신의 시대에 적용하는 노력을 할 일이다. 그러니 철학은 자기부정이고 자기파괴다. 기존의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다르게 생각해야 하니 말이다. 그러한 시선을 체득하기가 결코 쉽지 않겠지만, 한 번 체득하면 어지러운 세계의 흐름을 포착하는 능력을 획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진리를 갈망하고 진리라고 믿는 것을 의심하는 모순된 노력이 필요하다. 머나먼 길이겠지만 '철학 수입국'의 오명을 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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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지식의 시작 1 -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 휴식을 위한 지식여행 1
허진모 지음 / 미래문화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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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내가 역사를 배운 스승들은 학교가 아닌 책 속에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어머니가 사준 위인전 속에서, 중학교 때는 남자아이들과 돌려본 삼국지 만화 속에서, 고등학교 때는 도서관에서 빌린 시오노 나나미의 소설 속에서, 대학교 때는 동아리방 책장에 꽂혀 있던 <아리랑>, <태백산맥> 같은 책 속에서 역사를 배웠다. 최근에는 한홍구 선생과 故 남경태 선생, 심용환 작가의 책을 읽으며 부족한 역사 지식을 메우고 있다. 


이제 그 명단에 허진모가 추가될 듯하다. 허진모는 인기 팟캐스트 '휴식을 위한 지식 -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에 나오는 (자칭) 취미 사학자다. 학력이 석사에 그쳐 진행자 장웅으로부터 핀잔을 듣기 일쑤지만(별명은 허석사), 어린 시절 서당을 다니며 한자를 익히고 대학시절에는 역사에 심취해 라틴어와 일본어를 공부하고 중국과 그리스로마사 원전을 탐구한 만큼 내공이 탄탄하다. 역사 외에 전쟁, 종교, 미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 조예가 깊다. 


허진모의 <모든 지식의 시작 1>은 팟캐스트 방송분 중 문명사와 세계사 부분을 담고 있다. 방송 내용 중에서 농담과 수다는 빼고 구체적인 설명을 더하고 또 더한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은 인류 역사의 시작인 4대 문명에서 출발해 동서양의 문명의 뿌리가 된 한나라와 로마시대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세계사 책 대부분이 서양사 위주인 데 반해 이 책은 동서양의 역사를 균형 있게 다룬다. 주요 대목마다 당시 한반도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짚어주는 점도 돋보인다. 


중고등학교 교과서 수준의 쉬운 역사를 추구하지만 교과서에 없는 지식도 나온다. 세계 최초의 성문 법전으로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이 20세기 중반 우르 왕조 남무 왕의 법전이 발견되면서 지위가 위태로워졌다는 것, 베트남을 월남이라고 부르는 것은 중국의 춘추시대를 주름잡은 춘추오패 중 하나인 월나라의 남쪽이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환관이 되면 왕의 최측근이 되는 길이 열리기 때문에 명나라 때는 환관 모집에 수만 명이 지원하기도 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역사를 이해하고 습득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인물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역사란 사람의 나열이고 사람이 저지른 사건의 나열이다. (365쪽) 


책의 후반부에는 '인물로 쉽게 알아보는 역사 지식'이라는 제목의 부록이 실려 있다. 저자에게 역사란 사람이 만들어 낸 사건의 총합이다. 고로 역사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알면 역사를 공부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한니발의 생애를 알면 포에니 전쟁을 알게 되고, 진시황의 생애를 알면 춘추전국시대의 마지막을 알게 된다(어려서 위인전을 열심히 읽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앞으로 계속 팟캐스트와 책을 통해 허진모 선생의 역사 지식을 공유 받고 싶은데 과연 가능할지. 얼마 전 허진모 선생의 진짜 이름이 정경훈이고, 그가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 프로듀서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팟캐스트 참여 여부가 불투명해져 그의 가르침을 받는 학인으로서 안타깝고 답답하다. 부디 팟캐스트가 계속되고 <모든 지식의 시작> 2권, 3권... N권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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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4-17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 드디어 책을 내셨군요! 한동안 재미있게 듣다가 최근에 잘 못들었는데, 책이 많이 알려지고 많이 팔렸으면 좋겠어요 ^^
마지막 세줄의 내용은 저도 지금 chika님 덕분에 알게 되었네요.

키치 2017-04-17 19:18   좋아요 0 | URL
저는 뉴스공장 pd님이 허석사 님이라는 걸 알고 뒤늦게 전문세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방송 내용이 좋아서 책도 구입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책이 많이 알려지고 많이 팔렸으면 좋겠습니다 ^^
아 그리고 제 이름은 ‘키치‘ 랍니다 ㅎㅎ

hnine 2017-04-17 20:21   좋아요 0 | URL
아니, 이런 실수를....키치님, 용서하세요 ㅠㅠ

키치 2017-04-17 20:46   좋아요 0 | URL
괜찮습니다 ^^ 썰렁한 서재에 발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D
 
알고리즘 행성 여행자들을 위한 안내서 - 쇼핑부터 인공지능까지, 우리 삶을 움직이는 알고리즘에 관한 모든 것
제바스티안 슈틸러 지음, 김세나 옮김, 김택근 감수 / 와이즈베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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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네." 프란츠 카프카의 말이다. 이 말을 받들어 나는 평소 관심 없는 주제에 관한 책도 읽으려고 노력한다. 내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저자의 주장에 백 퍼센트 동감하지 않아도, 내가 가진 지식이 얼마나 협소하고 세상에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독서 체험이다.


독일의 응용수학자 제바스티안 슈틸러가 쓴 <알고리즘 행성 여행자들을 위한 안내서>를 읽으며 나는 도끼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도끼가 머리를 강타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알고리즘의 정의조차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내가 알고리즘의 의미와 기능, 한계를 설명하는 이 책을 수월하게 읽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다행히 이 책은 나처럼 알고리즘에 문외한이고 문과 감성이 넘치는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사례와 문학적인 수사가 넘친다. 알고리즘이라는 이름의 행성을 일주일 동안 여행하는 방식을 취한 것만 봐도 그렇다.


알고리즘을 컴퓨터 언어와 동일한 의미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컴퓨터 성능이 향상되면서 알고리즘 또한 전에 비해 급속히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알고리즘은 컴퓨터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존재했고 컴퓨터 언어 이상의 사고 체계를 포함한다. 저자에 따르면 알고리즘은 '당신이 뭔가를 깊이 생각할 때 그걸 어떻게 깊이 생각할 것인가 하는 방법'을 뜻한다. 복잡해 보이는 현상에서 일정한 규칙을 발견하고자 하는 과학적 사고방식이 알고리즘의 바탕을 이룬다.


알고리즘은 도서관 정리나 옷장 정리 같은 일상적인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책장에 책을 정리하는 방법만 해도 책을 전부 책장 앞바닥에 놓고 첫 번째 책부터 하나씩 채우는 방법, 책을 전부 책장에 꽂은 다음 제일 뒤쪽에 있는 책부터 옆에 있는 책과 비교해 순서를 바꿔 꽂는 방법, 알파벳 순서대로 꽂는 방법, 크기대로 꽂는 방법, 듀이 십진분류법에 따라 꽂는 방법 등 다양하다. 옷장 역시 상의와 하의가 각각 5벌씩 있다고 하면 총 25개의 조합이 가능하고, 여기에 신발, 양말이 각각 2개씩 있다고 하면 100개의 조합이 나온다. '오늘 뭐 입지?'라는 질문에 대해 쉽게 답을 떠올리기 힘든 것은 당연하다.


다빈치에게는 자연 탐구와 예술이 똑같았다. ... 그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필사본과 코덱스를 샅샅이 살펴보면, 이 세계를 바라보는 그만의 매력적인 방식을 알 수 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무언가 정적인 것을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생성된 바로 그 원리를 이해하고 싶어 했다. 그 원리를 이해하면, 그림도 가장 잘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281쪽)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알고리즘이라는 용어를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알고리즘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나무 하나를 그릴 때에도 눈에 보이는 나무를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 그리기를 하나의 '문제'로 설정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았다. 나무가 어떻게 가지를 뻗고, 하나의 가지가 굵기가 서로 다른 가지로 나뉘는지 그 원리를 이해하고 캔버스 위에 드러내고자 했다.


알고리즘은 길이 없는 지도 위에 길을 만드는 것과 같다. 무언가를 어떻게 고민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은 지금처럼 미래가 불투명하고 불안정한 시대에 반드시 몸에 익혀야 할 자세다. 저자는 '무언가를 어떻게 숙고해야 하는지를 숙고해보는 것은 자기 사고가 배양되는 과정, 즉 성숙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인간 대신 사고하는 것에 점점 익숙해지는 요즘 같은 시대에 이 책을 만나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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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수학공부법 - 스스로 답을 찾는 힘
조 볼러 지음, 송명진.박종하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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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수학을 아는 채로 태어나지 않고, 수학을 배울 능력이 부족한 채로 태어나는 사람도 없다." 스탠퍼드 대학교 수학교육학과 교수이자 온라인 학습 사이트 유큐브드(www.youcubed.org)의 공동 설립자인 저자 조 볼러는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수학 두뇌' 또는 '수학적 재능'과 같은 것은 없다고 단언한다. 


문제는 '마인드세트'이다. 어떤 마인드세트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학습 태도는 물론 학습 결과 또한 달라진다. 성장 마인드세트를 가진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면 점점 더 똑똑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반면 고정 마인드세트를 가진 사람들은 어떤 일이나 사물에 대해 어느 정도는 배울 수 있지만 자신의 기본적인 지적 수준을 바꿀 수는 없다고 믿는다. 수학은 하나의 '재능'이며, 그러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따로 있다는 믿음, 즉 고정 마인드세트를 가진 사람은 수학에 실패하고 낮은 성적을 거둘 수밖에 없다. 


블랙 캡의 운전기사에 지원하는 사람은 런던 중앙부에서 반경 25마일(약 40km) 내에 있는 2만 5천 개의 거리명과 2만 개의 랜드마크를 모두 외워야 하는데, 대략 2년에서 4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중략) 연구진은 훈련 기간이 끝날 무렵 운전기사의 두뇌 속 해마 부분이 현저히 커진 것을 발견했다. 해마는 학습과 기억, 특히 공간 기억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역이다. 

다른 연구에서는 블랙 캡 운전기사와 런던 버스 운전기사의 두뇌 성장을 비교했다. 버스 운전기사는 단순히 버스 노선 하나만 익히면 되기 때문에 블랙 캡 운전기사와 같은 두뇌 성장을 찾아볼 수 없었다. (22~3쪽) 


재능이나 적성보다 훈련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다른 연구를 통해서도 밝혀졌다. 런던의 블랙 택시, 즉 블랙 캡 시험 연구가 대표적이다. 2000년대 초반, 과학자들은 블랙 캡 운전기사들의 두뇌가 런던 버스 운전기사의 두뇌에 비해 월등히 성장한 것을 발견했다. 블랙 캡 운전기사가 되려면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으로 유명한 '지식(knowledge)'이라고 불리는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블랙 캡 운전기사들의 두뇌가 놀라울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성장 마인드세트를 형성하고 복잡한 훈련도 감당할 수 있는 끈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습관을 유념하는 것이 좋다. 뉴욕 타임스의 필진 피터 심스에 의하면, 성공하는 사람들은 틀리더라도 불편하게 느끼지 않는다. 엉뚱해 보이는 아이디어를 실행해 본다. 색다른 경험에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 아이디어를 판단하지 않고 즐긴다. 고정관념에 저항하려는 의지가 있다. 어려움을 뚫고 헤쳐 나간다. 


이러한 습관은 수학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습득할 수 있다. 저자는 딸이 수학 문제를 풀다가 틀렸을 때 야단치지 않고 "문제의 답을 틀렸을 때 네 뇌가 자라는 거야. 네가 정답을 맞혔을 때는 뇌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자라지 않는 거야."라는 말로 성장 마인드세트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외려 아이가 학교 수험이나 시험에서 모든 문제를 맞혔을 때는 "참 안됐구나. 그건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뜻이니까."라고 답하며, 100점을 맞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정답을 맞혀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넘어서도록 가르치라고 조언한다. 


사람들에게 수학이 생활 속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물어보면, 보통은 주택 담보대출 상환액이나 물건의 할인가 계산을 생각한다. 하지만 수학적 사고는 그 이상의 것이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하루 스케줄에 몇 건의 회의와 업무를 넣을지, 지구가 들어갈 공간이나 차를 돌릴 공간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행사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SNS로 메시지를 보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것인지를 생각하는 방법의 핵심이 수학에 있다. (71쪽) 


계산을 빨리하는 사람, 정답을 금방 찾는 사람이 수학을 잘한다는 편견도 바로잡아야 한다. 계산이 느리고 정답을 바로 찾지 못해도 색다른 사고방식을 하고 수학으로 뭔가 재미있는 일을 계속해 나가는 사람이야말로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다. 로랑 슈바르츠는 학창 시절 학급에서 가장 느린 학생이었고 오랫동안 스스로를 멍청하다고 생각했지만, 11학년 말에 민첩성과 지성 사이에는 명확한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마침내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았다. 


저자는 맞거나 틀리거나 둘 중 하나의 답만을 요구하며 수학을 편협하고 빈약하게 가르치고 있는 교육현장이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를 만드는 주범이지만, 수포자를 줄이고 진정한 수학적 사고를 가르칠 수 있는 공간으로 역시 교육현장을 든다. 여학생과 유색인종 학생들이 '선천적으로' 수학을 잘 못한다는 생각도 오류임을 밝힌다. 이 책에는 또한 교육현장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활용할 수 있는 수업 방식과 예시 문제가 담겨 있다. 학창시절 이 책을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책을 만날 학생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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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격 -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 일상인문학 3
페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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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기 팟캐스트 <휴식을 위한 지식 -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의 '허석사' 허진모가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PD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좋은 쪽으로) 크게 놀랐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저자 파스칼 메르시어가 독일의 철학자 피터 비에리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독자들이 받은 충격은 어느 정도였을까. 


피터 비에리에게 2014년 트락타투스상을 선사한 <삶의 격>은 <자기 결정>과 함게 '삶과 존엄' 시리즈로 묶인다. 즉, 저자가 말하는 '삶의 격'이란 다른 말로 '존엄'인 셈이다. 저자는 존엄이란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특정한 방법이라고 정의한다. 개인의 존엄은 하나의 요소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며, 크게 독립성, 만남, 사적 은밀함, 진정성, 자아 존중, 도덕적 진실성, 사물의 경중에 대한 인식,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태도 등을 통해 형성되고 드러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생각하는 존엄과 남이 생각하는 존엄이 일치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저자는 직접 보고 경험한 '난쟁이 멀리 던지기 대회'를 예로 든다. 말 그대로 누가 가장 멀리 난쟁이를 던지는지 겨루는 시합으로, 저자는 이를 보고 '당연히' 난쟁이를 불쌍히 여기고 그를 구하러 나섰다. 그런데 외려 난쟁이는 일 년 동안 이 날만을 기다려 왔다며, 이 날이 자기로서는 큰 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 방해하지 말라고 그를 물리쳤다. 저자는 이 경험을 통해 인간의 존엄은 결코 하나의 가치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함부로 남의 삶을 평가하거나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에게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행위를 포함한다. (310쪽)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해, 급기야는 자신의 존엄을 해치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 된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인생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이해하는 것과 인정하는 것을 뜻하며, 그 대상에는 물론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 실패한 나, 부족한 나, 부끄러운 나, 숨기고 싶은 나를 이해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산다 한들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나의 실패, 나의 부족함, 나의 단점, 나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이해받고 비난마저 수용할 용기를 낼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런 '격'이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되물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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