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해부 - 나치 전범들의 심리분석
조엘 딤스데일 지음, 박경선 옮김 / 에이도스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악의 해부>는 미국의 정신의학자 조엘 딤스데일이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기록을 분석해 재구성한 내용을 담고 있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범을 처벌하기 위해 열린 국제 군사재판이다. 재판의 피고는 당시 생존해 있던 최고위 나치 인사 23명이었고, 이 중에는 로베르트 레이, 헤르만 괴링, 율리우스 스트라이허, 루돌프 헤스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재판의 원고인 연합군 측은 정신과 의사 더글라스 켈리와 심리학자 구스타브 길버트를 파견해 나치 인사를 면담하고 심리검사를 실시해 궁극적으로 악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하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계획은 실패했다. 피고인 나치 인사들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자신의 생사가 걸린(정확히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을 언도받을 것이 분명한) 재판을 받는 중인 관계로 정신 상태가 극도로 불안했다. 원고인 연합군 측에서 파견한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는 모종의 이유로 의견 차이를 드러내며 끝내 불화했다. 당시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공감 능력을 상실하고 아무 생각 없이 명령에 복종하는 인물이었다고 분석했지만, 다른 나치 인사들은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 원고 측에서 보낸 정신과 의사를 자기 편으로 포섭한 자도 있었고, 나치의 두뇌로 불리며 적극적으로 악행에 가담한 자도 있었다. 


사람들은 악이 한 가지 색깔이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드러난 것은 악의 기저에 있는 여러 행동과 장애의 '스펙트럼'이었다. (288쪽) 


악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시행된 계획은 아이러니하게도 악의 본질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끝났다. 하지만 수확이 전혀 없진 않았다. 한나 아렌트가 설명한 대로 아무 생각 없이 명령에 복종했을 뿐인 악인도 있었지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악인도 분명 있었다. 목적을 달성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인간이라도 철저히 부수고 짓밟아서라도 치우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악인도 있었다. 


악인 중에는 전율이나 가학적 쾌감을 좇아서 타자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걸리적거렸기" 때문에 괴롭히는 사이코패스도 있었다. 사이코패스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고 책임감 또한 느끼지 않기 때문에 타자를 괴롭혀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이들에게 "진실은 대체 가능한 것이고 기만이 곧 규범이다." "희생자는 사이코패스가 가는 길에 걸리적거리거나 사이코패스가 원하는 무엇인가 - 돈이나 섹스 -를 가지고 있는 존재일 뿐이다." 


결국 알 수 있는 것은 악이 한 가지 색깔이 아니라는 것뿐. 악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이 책을 읽었기에 결론이 다소 허무하지만 읽은 보람이 전혀 없진 않다. 무엇보다 한나 아렌트의 책을 읽으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악은 평범함 속에도 있지만 비범함 속에도 있다는 것. 자기주장이 강하고 성취욕이 높은 사람의 이면에 악이 잠재할 수도 있다는 것. 한국 사회에서 높은 자리 차지하고 떵떵거리며 살던 사람들의 추악한 맨얼굴을 보는 시대에 살다보니 예사롭지 않게 여겨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전이 있는 동아시아사 - 색안경을 벗고 보는 일본, 중국, 타이완, 홍콩 이야기 반전이 있는 역사 시리즈
권재원 지음 / 다른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반전이 있는 동아시아사>는 중학교 사회 교사인 저자가 한국과 가까운 동아시아 국가들 - 일본, 중국, 타이완, 홍콩 -에 대한 오해를 풀고 이들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간략하게 설명하는 책이다. 일본인은 비좁은 섬나라에 살아서 편협하다, 중국에는 중국어가 없다, 타이완은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순응했다, 홍콩은 짝퉁의 천국이다 등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편견 섞인 주장에 대해 쉽게 해명한다. 


몇 가지만 소개해볼까. 일본 하면 비좁은 섬나라라는 인식이 있는데, 일본 혼슈 넓이가 한반도 넓이와 비슷하고 홋카이도 넓이가 남한 넓이와 맞먹는다. 중국인 하면 '만만디'라는 말이 있듯이 성격이 느긋하고 여유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사람마다 성격 다르고 지방마다 또 다르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이 있는 화베이 지방 사람들은 대체로 씩씩하고 자존심이 세다. 상하이가 있는 화둥 지방 사람들은 깍듯하고 신중하다. 홍콩이 있는 중난 지방 사람들은 씀씀이가 크고 과감하다. 


타이완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 식민지 시절을 거친 경험이 있다. 당시 타이완 사람들은 조선 사람들과 달리 강력하게 저항하지 않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타이완 사람들 역시 일제에 완강하게 저항했고, 일제가 타이완을 무력으로 완전히 제압하는 데는 무려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심지어 일제는 영국의 식민 통치 기술을 모방해 한족과 원주민을 차별하는 정책을 펼쳤다. 한족에게는 적극적인 동화정책, 유화정책을 실시하고 원주민에게는 가혹한 통치를 하며 분열을 꾀했다. 


홍콩 하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제작된 홍콩 느와르 영화의 영향으로 유흥과 환락의 도시, 범죄와 폭력의 도시라는 인상이 있는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현재는 일본, 한국보다 강력범죄 발생 건수가 낮은 치안 강국이며, 한때 폭력배의 소굴이었던 지역에는 수풀이 울창한 공원이 들어서 있다. 홍콩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등산이라는 사실도 새롭다. 홍콩 하면 섬 이미지가 강한데, 실제로는 도시의 70퍼센트가 녹지대이며 강원도 못지않은 등산 코스가 많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학자의 생각법 - 과학자는 생각의 벽을 어떻게 넘어서는가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지음, 권오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학자의 생각법>은 베스트셀러 <생각의 탄생>의 저자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이 썼다. 최근에 나온 책인 줄 알았는데 이 책이 1989년에 나왔고, 그로부터 10년 후인 1999년에 <생각의 탄생>이 나왔다. <과학자의 생각법>에서 저자가 제기한 문제가 <생각의 탄생>에서 확장되고 정리됨을 감안할 때, <과학자의 생각법>을 읽고 나서 <생각의 탄생>을 읽는 것이 순서상 맞겠다. 


내가 봤던 어떤 연구에 따르면, 박사 후 연구원부터 정교수까지를 포함한 영국 화학자의 90%가 실험을 하거나 논문을 쓰는 데 들이는 시간이 10% 이하라는 거야. 대부분의 시간은 연구비를 따내거나 행정 업무를 보거나 수업을 하거나 여행하는 데 보낸다면서. 이건 내 추측인데, 결과적으로 평범한 화학자가 실험실에서 시연이나 하며 얼마 안 되는 학생들을 가르칠 뿐이라면, 100년 전처럼 오늘날에도 다섯 명의 화학자만이 대부분의 연구를 이끌어 간다고 봐. (97쪽) 


저자는 과학자이지만(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생리학과 교수) 과학만큼이나 과학 사회학에 관심이 많다. 과학 사회학이란 과학자들 사이에서 동료 집단이 가하는 압력과 집단행동이 과학적 사고를 형성하는 데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저자는 과학자 역시 다른 전문가 집단과 마찬가지로 집단적 사고에 취약하며 인기와 유행에 휩쓸리며, 많은 과학자들이 명석한 두뇌와 기발한 창의성을 가지고도 관료제의 폐단에 짓눌려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저자가 가장 아쉬워하는 건 위대한 과학적 발견에 대한 연구와 학습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반면,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지기까지 과학자가 어떤 식으로 고민하고 탐구했는지에 관한 연구와 학습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쉽게 말해 과학계 내부에서조차 '물고기'에 대해서만 가르치고 '물고기 잡는 법'은 가르치지 않는 현실이다. 저자는 이러한 폐단을 극복하고자 과학자들이 남긴 노트, 서신, 자서전, 회고록 등을 분석해 위대한 발견에 이른 과학자들이 어떻게 문제를 인식하고 새로움을 발견했는지 알아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픽션의 형식으로 이 책에 담았다. 


저자는 생물학자, 역사학자, 화학자, 과학사학자 등 가상의 인물 여섯 명이 과학적 창의성의 핵심에 놓인 다양한 쟁점을 논하는 토론회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야기 속에 루이 파스퇴르, 알렉산더 플레밍, 클로드 베르톨레, 야코부스 반트 호프 등 다양한 과학자들의 삶과 그들의 생각법이 녹아 있는데, 학창 시절 내내 '과학 포기자'로 지낸 문과생인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저자가 쉽게 쓰려고 노력했는데도 쉽게 읽지 못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많은 연구는 창의적인 과학자와 기술자는 어렸을 때부터 폭넓은 지적 호기심을 드러냈고, 성인이 되어서도 미술, 음악,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보고했다. (중략) 그들은 미술, 음악, 문학, 정치, 사회적 문제에도 과학 못지않게 참여했다. 그들은 몸과 마음 모두에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과학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인간 지식을 더 넓게 통합하는 일에도 힘을 보탰다. (542쪽)

 

저자가 다섯 장(章)에 걸쳐 자세하게 풀어낸 이야기의 결론을 요약하면, 뛰어난 과학자가 되기 위해 습득해야 할 지식과 기술은 과학 분야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자 하면 육체 활동과는 거리가 멀고, 지적이며, 두꺼운 안경을 쓰고, 책에 둘러싸여서 보통 사람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뛰어난 성취를 과학자 대부분은 이러한 고정관념에 들어맞지 않는다. 


코페르니쿠스는 그림을 그리고 시를 번역했다. 갈릴레오는 10대 시절에 미술가가 되려고 했고, 일생 동안 시를 썼다. 뉴턴 역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다. 케플러는 음악가이자 작곡가였고, 파스퇴르는 재능 있는 화가였다. 뛰어난 과학자와 발명가 중에서 예술가적 성향을 가진 이들의 목록은 이 책에만 열두 페이지에 이른다. "장차 위대한 연구자를 기르려면 과학적 훈련뿐 아니라 인간 존재를 형성하는 교육, 기술, 철학, 윤리, 논리, 취미, 열정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저자의 주장은 예술가적 성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술 외에도 교육, 기술, 철학, 논리 및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일수록 뛰어난 과학자와 발명가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어려서부터 학과 공부에만 매진하고 전인 교육을 받지 못하는 한국의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이다. 아울러 일찍부터 학생들을 문과와 이과로 나누고 전공 공부만을 강조하는 한국의 교육 당국도 이 조언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안 그러면 나 같은 '과포자'가 양산된다). 


저자의 주장은 과학에만 통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안고 있는 문제의식과 연구 방법은 문학이나 수학, 역사, 예술 등 다른 학문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다. <과학자의 생각법>의 뒤를 이어 <문학가의 생각법>, <수학자의 생각법>, <역사가의 생각법>, <예술가의 생각법> 등 후속 시리즈가 나오면 어떨까. 저자가 여러 학문 분야에 적용 가능한 생각법을 담은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을 쓰기는 했지만, 각각의 분야에서 현실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구체적으로 기술한 책이 나온다면 읽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전에서 길어 올린 한식 이야기 식사 食史
황광해 지음 / 하빌리스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인의 음식 '한식'은 대체 언제 어떻게 만들어져 지금까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일까? 맛 칼럼니스트 황광해가 쓴 책 <고전에서 길어 올린 한식 이야기 식사 食史>에 그 자세한 이야기가 나와 있다. 


이 책에는 밥과 국수를 포함한 주식을 비롯해 신선로, 전골, 불고기, 만두, 설렁탕 등 고기 요리, 회, 굴, 전복, 청어, 복어 등을 이용한 생선 요리, 과채 요리, 향신료, 술, 간식 등의 역사는 물론, 한식을 둘러싼 다양한 역사적 일화와 비화(秘話)가 담겨 있다. 연세대학교 사학과, 경향신문사 기자 출신의 저자가 철저한 고증과 치밀한 조사를 통해 밝힌 내용이니 믿고 읽어봐도 좋겠다. 


이 책의 매력 포인트 하나는 한국인이 즐겨 먹는 음식의 역사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냉면은 음식 자체가 차가운 데다가 지금으로 치면 북한 지역에서 즐겨 먹었던 음식이라서 궁중에서는 먹지 않았을 것 같은데, 조선 후기의 문신 이유원이 쓴 <임하필기>를 보면 순조가 열한 살 때 궁궐 밖에서 냉면을 사 오라고 시켜서 밤참으로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요즘으로 치면 '냉면 테이크아웃'을 한 셈이다. 


요즘은 두부가 콩나물과 함께 서민들이 저렴한 값에 즐겨먹는 식재료로 자리 잡았지만, 조선시대에는 두부를 넣어 끓인 '연포탕'이 최고급 요리로 사랑받을 정도로 두부의 위상이 훨씬 높았다. 두부가 저렴한 식재료가 된 건 산업화 이후 두부가 공장에서 대량생산되었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두부 고유의 맛과 풍미가 사라지고 두부의 참맛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나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매력 포인트 또 하나는 음식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천 년 넘게 육식을 금하다가 메이지 유신 이후 비로소 육식이 허용된 사실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지만, 조선 시대에도 육식이 금지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기서 육(肉)은 소고기를 일컫는데, 소를 밀도살하다가 걸리면 왕족이 평민으로 신분이 강등될 만큼 엄한 벌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성종 때 왕실 종친이 소를 밀도살하다가 걸려서 평민으로 전락한 사례가 있다. 


사극에 자주 나오는 '주막'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주막은 국가에 영업신고를 한 '주점'과 달리 영업신고를 하지 않은 사설 술집을 일컫는다. 영업신고를 하지 않았으니 세금도 내지 않았고, 처음엔 술만 팔았지만 점차 음식도 팔고 숙박업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주막은 조선 초기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고, 조선 후기 정조 때 신해통공으로 금난전권이 폐지되고 시전 독점 구조가 무너지면서 생겨났다. 국사 시간에 배운 신해통공, 금난전권이란 용어를 얼마 만에 다시 보는지. 음식으로 우리 역사를 배우니 재미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 - 저수지를 찾아라
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촛불이 꺼졌다. 선거가 끝났다. 대통령이 바뀌었다. 내각이 교체됐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을까. 지난 금요일,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은 '고작'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당한 대통령을 배출한 새누리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아직도' 야1당이다. 행정부 수반만 바뀌었을 뿐이다. 사법부와 입법부에서 지난 정권의 입김은 여전하다. 대기업과 언론은 말할 것도 없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끝나기 전까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를 읽는 내내 든 생각이다. 이 책은 시사IN 주진우 기자가 지난 10년 동인 MB의 비자금을 좇은 기록을 정리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일찍이 BBK와 내곡동 사저 특종을 터뜨려 MB에게 두 개의 특검을 '선물한' 바 있다. BBK와 내곡동 사저는 MB가 서울특별시장, 대한민국 대통령을 거치며 '해 드신' 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저자는 MB의 비자금이 일본, 홍콩, 싱가포르, 미국, 캐나다, 스위스, 독일, 케이맨제도 등 전 세계 곳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이를 열심히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번 허탕치고 실패도 했지만,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짐작이 든다. 언제쯤 다 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음, 그건 MB의 양 팔목에 빛나는 은팔찌가 채워지면?


이명박을 쫓는 건 위험한 일이다. 

감옥 문 앞까지 끌려가기도 했다. 감옥에 가는 것은 나쁜 일이지만 아주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죽음의 그림자를 밟는 순간도 있었다. 죽는 순간은 더 나쁜 일이지만 최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간 선배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돌아가신 선배들도 적지 않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은 그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지 않은가? 나는 선배들에 비해 훨씬 편하고 좋은 조건에서 싸우고 있지 않은가? 진짜 최악은 불의에 저항하지 않고, 악행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6쪽)


저자의 MB 추격기는 시사IN 기사를 비롯해 저자의 이전 책들과 라디오, 팟캐스트를 통해 여러 번 알려진 바 있다. 이 책 내용 중에도 알려진 것이 적지 않다. 얼마 전에는 이 책 내용의 일부가 팟캐스트로 제작되기도 했다. (http://www.podbbang.com/ch/9938?e=2236534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첫 번째는 전두환이다. 이 책은 '이명박 추격기'라는 제목이 붙었는데도 상당한 분량이 전두환의 부정부패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만큼 한국의 권력자들이 벌인 부정부패가 고질적이고 심각하며, 아직 뿌리뽑지 못한 폐단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는 인간이, 배드민턴 한 번 치러 갈 때마다 1백 명에서 2백 명의 밥값을 계산한다. 전두환의 사저를 지키는 의경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전두환이 조의금으로 1천만 원을 냈다. 자기 밑에서 일한 장관이 죽었을 때는 조의금으로 1억 원을 냈다고 한다. 그가 이렇게 돈을 뿌리고 다닐 수 있는 건 대통령 재임 시절 기업 회장이나 CEO로부터 수많은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를 한 번 만날 때마다 5백억 원이 들었다니, 조의금 1천만 원은 우스운 돈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두 번째는 당연히 MB다. 전두환은 받아챙긴 돈을 쓰기라도 하지, MB는 쓰지도 않는다. MB가 '살 집만 남긴 채' 전 재산을 기부해 설립한 청계재단이 2016년 장학 사업에 쓴 돈은 고작 2억 6,680만 원. 가수 이승환이 한 해 기부하는 액수보다 적다. MB가 돈을 '해 드시는' 패턴은 따로 있다. 1단계. 회사를 하나 만들거나 인수한다. 2단계. 회사가 돈벼락을 맞고 그 돈이 돌고 또 돈다. 그러면서 돈이 사라지고 회사가 사라진다. 3단계. 국가기관이나 은행은 그 돈을 찾지 않는다. BBK도, 농협의 캐나다 노스욕 사기 대출 사건도, MB와 관련된 사건은 죄다 그런 식이다. 애먼 사람들만 피해를 보거나 심하게는 죽는다(저자에 따르면 503 주변에 의문의 죽음이 많지만 MB 주변도 만만치 않다고).


지난 8년간 우리나라에서 조세회피처로 나간 돈이 190조인데 그중 홍콩을 제외하고는 케이맨이 제일 많다. (중략) 역외투자의 거점이라고 하는데 왜 돈이 꼭 케이맨에 들러야 하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우리 교민은 10명도 안 될 텐데... 교민이 있기는 할까? 2007년부터 한국과 케이맨의 직접교역액은 급상승한다. 매년 2배 이상 성장. 이명박 재임기하고 정확하게 일치한다. 우연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석연치 않다. (242쪽)


MB 비자금 문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반인이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BBK도 그렇고, 내곡동 사저 문제도 그렇고, 금융 문제, 부동산 문제라서 그런지 아무리 들어도 이해하기가 어렵다(그에 비하면 503-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막장 드라마 같아서 이해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물론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이 있지만). 이 책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여러 개 있었는데 영화로 보면 쉬우려나(주진우 기자의 이명박 추격기는 <저수지>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되어 오는 9월 상영될 예정이다).





이 책에는 취재원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권력자와 가깝고 권력자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죄다 입 닫고 조용히 살기를 바라는 줄 알았는데, 저자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 중에도 진실을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고 세상이 바뀌길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부디 주진우 기자가 취재하는 영역에 관해 뭐라도 알고 있는 분들은 제보해주시길. 권력과 가깝지 않은 저는 책이라도 사서 읽고 몇 권 더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