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혐, 여자가 뭘 어쨌다고 - 김치녀에서 맘충까지 일상이 돼버린 여성 차별과 혐오를 고발한다
서민 지음 / 다시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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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러 달 전에 읽었고, 그 사이 몇 가지 버전의 리뷰를 쓰고 지웠다. 리뷰 중에는 이 책을 칭찬하는 리뷰도 있었고 비판하는 리뷰도 있었는데, 지금으로서는 칭찬하는 마음도 비판하는 마음도 희미하다. 다만 이것만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저자 서민이 남자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다. 


저자는 어느 날 강준만 교수가 쓴 계간 <인물과 사상>을 읽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얼마나 차별받고 있는지를 '처음으로' 인식했다. 그때까지 저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남성은 일을 하며 우리 사회를 이끌어간다. 여성은 집안일을 하며 남성이 일을 잘하도록 돕는 존재다. 직장에 다니는 여성이 가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결혼할 때까지 취미로 다니는 것이며, 그들의 목표는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 주요 직책을 죄다 차지하고 있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데 이게 다 여성차별의 결과일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읽고, 저자는 과거 일들을 떠올렸다. 누나가 태어났을 때 눈물을 흘렸던 할머니가 내가 태어났을 때는 만세를 불렀다는 이야기, 아들인 내게만 시켜준 과외, 나만 먹었던 초콜릿, 의대 220명 중 2등으로 졸업할 만큼 똑똑했던 여학생이 "여자는 뽑지 않겠다"는 교수들에게 빌다시피 해서 전공을 정한 일,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여자는 안 뽑는다"는 방침 때문에 모교를 떠나야 했던 동료 교수... (이상 책 240-1쪽 인용 및 참고) 


여기까지 인식한 것도 놀라운데,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성주의 책을 탐독하고 대학에 '여성과 의학'이란 강좌를 개설했다. 팟캐스트에 출연해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기도 하고, 이렇게 여혐 문화를 비판하는 책도 냈다. 메갈리아를 옹호하고 여혐 문화를 비판하는 책을 내고도 저자가 사회적으로 매장되지 않은 건 저자가 남성이고 대학교수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남성, 같은 대학교수이면서 여성 차별에 둔감하고, 심지어 이를 조장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걸 생각하면 저자는 용감하다.


다만 '탁현민을 위한 변명'이라는 글은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겉보기엔 멀쩡한 남자들도 속으로는 저질스러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걸 여자들이 모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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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사다리 - 불평등은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키스 페인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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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듣는 팟캐스트 <서늘한 마음썰>의 최근 에피소드 제목이 '돈에 얽힌 마음'이었다. 에피소드의 테마를 제공한 청취자 사연에 따르면, 어릴 때는 고만고만한 배경의 고만고만한 아이들끼리 어울려서 가난하다는 인식을 못했는데, 사회에 나와보니 출발선 자체가 다른 사람이 부지기수이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상대적 빈곤감을 느낀다고 했다. 나 역시 나이를 먹을수록 사연을 보낸 청취자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 


<부러진 사다리>를 쓴 미국의 심리학자 키스 페인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페인은 학창 시절 무상 급식 대상자였다. 페인은 자신이 무상 급식 대상자임을 인식한 순간부터 보는 풍경이 달라졌다고 고백한다. 모두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급식비를 내는 아이들이 더 잘 차려입은 것처럼 보였다. 머리 모양도 예쁘고 신발도 좋아 보였다. 말투도 무상 급식을 받는 아이들은 느리고 어설프고, 급식비를 내는 아이들은 뉴스 앵커 같았다. 


심리학자가 된 페인은 가난하다는 인식이 인간의 감정과 선택,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평등한 상태일 때보다 불평등한 상태일 때 불안감을 느끼고 난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비행기 내에서 난동이 발생하는 이유를 분석한 실험에서 일등석이 있는 항공편은 그렇지 않은 항공편보다 기내 난동이 발생할 확률이 4배 이상 높았다. 탑승이 비행기 앞쪽에서 이루어져서 이코노미석 승객들이 일등석 승객들 옆을 지나가야 하는 경우, 탑승이 비행기 뒤쪽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보다 기내 난동이 일어날 확률이 2배 이상 높았다. 


고전적인 경제학에서는 노동을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특정 가격에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한다. 그리하여 이런 관점에서 몇 가지 빤해 보이는 예측을 한다. 사람들은 더 적은 시간 동안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받을 때 더 만족할 것이라고. 하지만 클라크와 오즈월드가 소득과 만족도의 관계를 분석해봤더니, 이상하게도 소득 상위 20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이 하위 20퍼센트보다 만족도가 약간 낮았고, 근무 시간은 만족도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결과였다. (63쪽) 


저자는 불평등 자체도 문제이지만, 계속해서 자신을 남과 비교하고 불평등한 요인을 찾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악순환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연구에 따르면, 절대 소득이 낮은 사람보다 준거 집단과 비교한 소득, 즉 상대 소득이 낮은 사람이 빈곤감을 더 많이 느끼고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 클라크와 오즈월드의 연구에 의하면, 돈을 많이 번다고 삶의 만족도도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다리를 올라갈수록 사회적 비교도 변한다. "가난뱅이는 백만장자를 질투하지 않는다. 더 잘 나가는 다른 가난뱅이를 질투한다." 


불평등이 미치는 악영향은 업무 성취도와 임금 만족도에도 해당된다. 연구에 따르면, 조직 내 위계질서가 명확할수록 직원들이 승진하고 싶어서 일을 더 열심히 할 것이라는 믿음과 달리, 조직 내 위계질서가 명확할수록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업무 성취도도 낮았다. 임금에 격차가 있으면 직원들의 근로 의욕이 높아질 거라는 예상과 달리, 임금 격차로 인한 동기 부여 효과보다 분노 유발 효과가 더 컸다. 


시장 경제에서는 경쟁의 결과로 어느 정도의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으며, 이런 시스템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중략) 소득 불평등이 심할수록 오히려 신분 상승의 기회는 줄어든다. 이런 관계를 '개츠비 곡선'이라고 한다. 약간 다른 관점에서 보면, 불평등이 심한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경제적 미래는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부모의 재산에 따라 결정된다는 의미가 된다. (248쪽) 


저자는 시장 경제에서 불평등을 완전히 없애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 대신 심리학을 이용해 불평등한 상황에서 덜 불행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에 따라) 비교를 하되, 상향 비교와 하향 비교를 제때에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다. 자기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과 스스로를 비교하는 상향 비교는 학력을 높이거나 전문 분야에서 확실한 지위를 다지고 싶을 때 활용하면 좋다. 단, 마이클 조던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 열등감만 느낄 수 있다. 


자기보다 열악한 상황에 있는 사람과 스스로를 비교하는 하향 비교는 자신감이 없거나 주눅이 들 때 활용하면 좋다. 이때 비교 대상은 남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이다. "현재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을 비교하면 상향 비교와 하향 비교를 동시에 할 수 있어서 좋다. 하향 비교의 이점("적어도 이제 그 얼빠진 십 대는 아니잖아!")를 취하면서, 자신의 인생이 상승 궤도를 타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된다("세상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또 하나의 팁은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이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와 동기를 써보세요"라고 했을 때 돈이나 명예라고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행동의 장점은 타인의 시선을 덜 신경 쓰게 되고(남과 비교를 덜 하게 되고), 순간적인 쾌락보다 미래의 보상을 중시하게 되고, 그로 인해 장기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흔한 조언이지만 결국 이뿐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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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는 문제 - 교양 있는 남자들의 우아한 여성 혐오의 역사
재키 플레밍 지음, 노지양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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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기능 중 하나는 사람들이 일부러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진실을 폭로하고 풍자하는 것이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재키 플레밍의 <여자라는 문제>는 만화가 지닌 폭로하고 풍자하는 기능에 충실한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남성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로 치환되고, 여성의 역사가 축소되고 삭제되고 은폐되는 과정을 고도의 유머로 소개한다.





아주 오래전, 그 시절에는 여자란 존재하지 않았다네.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여자들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던 이유지. 

그 시절에는 남자만 있었고 상당수가 천재였어. 



저자는 '왜 역사 책에는 여자가 등장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으로부터 이야기를 펼친다. 옛날 옛적에는 여자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여자는 남자보다 두뇌가 작나? 여자는 남자보다 신체 능력이 떨어지나? 그렇지 않고서야 역사 책에 죄다 남자만 나오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고 저자는 능청스럽게 말한다. 


물론 역사 책에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남성들이 여성의 성취와 업적을 실제보다 줄이고 지우고 없앤 결과이지, 남성들이 말하는 대로 여성이 타고나기를 무식하고 게으르고 덜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남성들은 자신들의 어머니와 아내와 애인과 딸을 모욕하고 있는 것이다(더불어 그런 덜떨어진 자들의 아들이자 남편이자 애인이자 아버지인 자기 자신도).





장 자크 루소는 소녀들의 기를 어린 나이에 꺾어놓아야만 

남자를 기쁘게 해주기 위한 자신의 본분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네. 

그는 자신의 자녀들을 일찌감치 고아원으로 보내버렸는데, 

이 역시 어릴 때 기를 꺾어놓기 위해서였지. 



저자는 17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활약한 당대의 과학자, 사상가, 예술가, 비평가(물론 전부 남성이다)들의 '여혐 발언'을 소개한다. 뛰어난 성취와 업적으로 당대에 영웅으로 칭송받았을 뿐 아니라 인류 역사에도 천재로 이름을 올린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떤 발언을 했는지를 보고 있자니 기가 차다 못해 코웃음마저 나왔다. 


얼마 전 트위터에서 애국지사들이 생전에 어떤 여혐 발언을 했는지에 관한 트윗을 읽었다. 해당 트윗에 따르면, 안중근은 '계집애들이 나한테 공손하지 않으면 욕을 퍼붓거나 팼다'라고 자서전에 썼고, 김구는 '아내가 몸을 팔아서라도 맛있는 음식을 들여줬으면 좋겠다'라고 했고, 이봉창은 중국인 여자를 성매매했다고 했다. 

(출처 : https://twitter.com/nora1020/status/952745663845908480)


애국지사들의 여혐 발언에 대해 우리는 무작정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저들처럼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도 남성과 여성을 차별하는 생각을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을 만큼, 성차별의 역사는 뿌리 깊고 이를 바로잡으려면 그만큼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교양인 입네 하는 남자들이 지닌 여성 혐오의 역사를 고발한 목적도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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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즐거움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new 시리즈 3
The School Of Life 지음, 이수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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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직히 말해서 두부를 좋아한다. 맥주와 두부, 토마토와 풋콩과 가다랭이 말린 것만 있으면 여름의 저녁은 극락이다." 구운 두부와 어묵국만 있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고 말한 이 사람은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이다. 사소해 보여도, 사소해 보이기에 더욱 큰 기쁨을 안겨주는 것들을 가리켜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 줄여서 '소확행(小確幸)'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지론에 공감하는 독자라면 알랭 드 보통이 설립한 인생학교에서 발간한 이 책 <소소한 즐거움>에도 크게 공감할 것이다. 이 책은 현대인들이 '큰 기쁨'만 좇으려 하고 따뜻한 물로 목욕하기, 갓 구운 빵 한 조각, 친한 친구와 나누는 대화, 한밤의 깊은 단잠 같은 '소소한 즐거움'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조를 비판하며,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야말로 단조로운 생활에 생동감을 부여하며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을 지속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고 설명한다. 


생선 가게에 누워 있는 녀석들은 영 낯설고 생경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끝 모를 무한의 공간을 유영하는 가스와 암석 파편들로 이루어진 이 우주 속에서, 녀석들과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에 잠시 동거하고 있는 사촌 지간이나 매한가지다. 우주의 전체 역사를 놓고 볼 때 상대적으로 최근에 해당하는 시기에 우리 모두의 조상이 등장했다. 그러니까 그 조상의 자손들이 문어나 도미도 되고, 또는 서서히 진화하여 변호사와 심리치료사, 그래픽 디자이너도 된 것이다. (30쪽) 


"이미 바로 우리 곁에 있는 평범한 것과 의미 있는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미래만 보며 달려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소소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태도는 언뜻 현상 유지에 만족하고 패배를 변호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이 책에 따르면 소소한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내면의 빈곤함을 드러낸다. 내면이 풍족하고 여유로운 사람은 멍 때리는 시간에도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고, 집 앞 생선가게에서도 우주의 역사와 생명의 신비를 떠올린다. 


이 책에는 52챕터에 걸쳐 그런 소소한 즐거움이 소개되어 있다. 생선 가게에서 세상의 신비를 재인식하는 법, 작은 섬에 머무르며 도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날리는 법, 밤하늘의 별과 데이트하며 우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 등 일상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고 즐기는 구체적인 방법이 나와 있어 유용하다. 홀딱 반하기, 옷을 입고서 하는 사랑 게임, 키스, 사랑하는 사람의 손목 바라보기 등 로맨틱한 즐거움도 빠뜨리지 않았다.. 1년이 52주이니 한 주에 하나씩 책에 나온 소소한 즐거움을 실천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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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1-01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7년에 키치님 덕분에 무민 원화전도 알게 되었고 즐거운 시간 가졌습니다. 감사드리며 2018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관계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new 시리즈 4
The School Of Life 지음, 구미화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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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백여 년 전에 비하면 먹고사는 형편이 월등히 나아졌음에도 하루하루가 고달프고 인생이 막막한 이유는 무엇일까? 알랭 드 보통이 설립한 인생학교에선 현대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다양한 문제의 원인으로 자기 이해, 연민, 의사소통의 결핍을 든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인생학교는 문화를 통해 감성지능을 계발하기 위한 다채로운 방안을 모색한다. 인생학교의 신간 <관계>는 현대인들이 겪는 다양한 문제 중에서도 이성 간의 사랑에 관한 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이 책에 따르면 현대인들이 사랑을 하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에 부딪히고 좌절하는 까닭은 '낭만주의 애정관'과 관련이 깊다. "낭만주의자들에게 사랑은 본질적으로 '발견'을 뜻한다. 우리가 별생각 없이 러브스토리라고 부르는 것도 사실 태반은 러브스토리의 '시작'이다. 사랑에서 정말로 투지 넘치는 도전은 어떻게 오랫동안 사랑을 지속하느냐와 관계가 있다." 


18세기 중반 유럽에서 낭만주의가 출현하기 전까지 인류는 '남자 집안에서 하는 곡물 사업이 번창하고 있어서' 혹은 '여자의 아버지가 그 지역의 치안판사라서' 등의 이유로 남녀 간의 결합을 결정했다. 이들에게 결혼은 경제적 또는 법적 계약에 지나지 않았고, 섹스는 후손을 만들기 위한 행위에 불과했다. 낭만주의가 출현한 이후 인류는 내면과 외면이 굉장히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야 하며, 첫눈에 서로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껴야 연애로 발전할 수 있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결혼은 연애의 완성이며, 성적, 정서적인 애정이 없는 결혼은 곧 불행한 결혼이다. 


하지만 대체로 그렇듯이 이상과 현실은 일치하기 어렵고, 이 때문에 사람들은 낭만주의 애정관이라는 이상과 실제 연애 또는 결혼 생활 사이에서 갖은 어려움을 겪는다. 방금 전까지 뜨겁게 사랑을 나누고도 치약을 끝부터 짜지 않고 중간부터 짰느니, 일을 본 다음 변기 뚜껑을 내렸느니 안 내렸느니 하는 문제로 토라지고 다투는 것은 서로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다 큰 어른 두 사람이 한 집에서 살아감에 있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선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 낭만주의 애정관에서 벗어나 심리학적으로 성숙한 애정관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충고한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인위적인 노력을 수시로 해야 한다. 직감으로는 자신이 가야 할 정확한 방향을 알 수 없다." 낭만주의 애정관이 만든 이상적인 연애, 이상적인 결혼 생활에 서로를 맞추려고 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좋은 남녀관계란 우선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핬다. 


낭만주의 애정관을 극복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면 - 이미 사귀고 있는 애인 또는 배우자가 있다면 - 상대의 단점이나 약점 때문에 절망에 빠질 때마다 '장점의 약점'이라는 개념을 떠올리는 것이 좋다. 미국 작가 헨리 제임스가 제시한 이 개념은 간단히 말해 한 사람의 좋은 점과 짜증 나는 점이 교묘하게 연결되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애인 또는 배우자를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사람으로 여긴다면 한때 당신은 그를 책임감 있고 믿음직한 사람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애인 또는 배우자가 잔소리가 많고 간섭이 지나치다고 여겨진다면 한때 당신은 그런 그를 배려심 넘치고 자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책은 또한 낭만주의 애정관이 강조하는 '백년해로'라는 신화로부터 벗어나라고 충고한다. "두 사람이 서로를 소유하는 것이 아님을 알면 매일같이 서로에게 존중받기 위해 극도로 조심한다. 상대방이 언제든 떠날 수 있음을 알면 불안감만 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 어린 고마움을 가지도록 끊임없이 자극한다." 불행하지만 덜 외로운 결혼 생활이 외롭지만 행복한 독신 생활보다 낫다는 믿음도 낭만주의 애정관이 낳은 해악이다. 사람이 다 같은 생김새가 아니듯 사랑도 다 같은 형태일 수 없다. 나에게 잘 맞는 사랑의 형태가 누구에게나 잘 맞는 사랑의 형태일 순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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