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런하우스 - 너에게 말하기
김정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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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슈탈트 심리치료'라는 것이 있다. 게슈탈트 심리치료는 전통적인 심리치료와 달리 치료자와 내담자가 서로 동등한 자격으로 대화를 나누며, 내담자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내면의 갈등을 탐색하게 하고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미해결 과제를 완결하고 내면의 잠재력을 이끌어낸다. 게슈탈트 심리치료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 김정규가 쓴 <뉴런하우스>는 어려운 심리학 용어나 이론을 언급하지 않고도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과정과 기능, 효과 등을 알려주는 심리치료 소설이다. 





이야기는 베를린에서 심리치료 연구소를 운영해온 영민이 '뉴런하우스'에 입주하면서 시작된다. 뉴런하우스는 한 성공한 사업가가 그동안 자신이 사회에서 받은 혜택의 일부를 환원하는 의미로 싼값에 방을 제공하고 상담치료까지 해주는 일종의 셰어하우스다. 뉴런하우스에는 절대로 어기면 안 되는 두 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 매주 두 차례 열리는 집단 상담('창문 닦기 대화')에 참여할 것. 둘째, 절대 자살하지 말 것. 뉴런하우스에 입주한 사람은 영민을 포함해 모두 아홉 명이며, 연령도 직업도 성격도 제각각이다. 


창문 닦기 대화 첫날. 입주자들은 주뼛거릴 뿐 누구 하나 먼저 나서서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동안 살면서 힘들었던 일, 괴로웠던 일이 있으면 털어놓으라고 해도 다들 괜찮다고, 힘들지 않다고 말하며 자리를 떠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한 사람 한 사람씩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자 놀라운 이야기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그동안 별 탈 없이 잘 살아온 줄 알았던 이들에게는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거나 폭력을 당한 경험, 학교에서 성폭행을 당함 경험, 직장이나 사회에서 불편부당한 일을 겪은 경험 등 수많은 안 좋은 추억과 그로 인한 상처 또는 트라우마가 있었다. 





진정한 만남이 없는 관계에서 우리는 떠들썩한 흥분이나 북적거림, 그럴싸한 말의 잔치, 재치 있는 유머, 훈훈한 덕담과 도움이 되는 정보의 공유는 있겠으나 진정한 관심과 이해, 깊은 연결성을 경험할 수는 없다. 오히려 모두가 즐겁게 웃고 떠들며 어울리는 가운데 단절감과 외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영혼과 영혼이 연결된 깊은 교감이 결여된 표피적 만남에서 우리는 영혼의 휴식과 다시 태어남을 경험할 수 없다. (368쪽) 


이들은 자신이 아픈데도 아픈지 몰랐다. 남들 앞에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인 줄 알았다. 부모든 교사든 가까운 어른 중에 누구 하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친구나 연인과는 피상적인 말만 나눴을 뿐, 진정으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영혼과 영혼이 연결되는 대화를 해보지 않았다. 다행히 이들에게는 뉴런하우스와 뉴런하우스 가족들이 있다. 이들은 뉴런하우스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불행한 경험을 드러내고,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과거의 자신과 다시 만나고,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마침내 해결함으로써 새로운 자신을 만나고 핏줄보다 소중한 가족을 얻는다.


나에게는 속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반대로 나는 누구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일까. 속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지금 바로 곁에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곁에 없다면 심리치료나 뉴런하우스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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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이면에 눈뜨는 지식들 - 이코노미스트가 팩트체크한
톰 스탠디지 지음, 이시은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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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익스플레인 팀이 직접 팩트체크한 107가지 지식을 정리한 책이다. 목차를 쭉 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글 몇 편을 골라 읽었다. 첫 번째는 '레즈비언이 이성애자 여성보다 돈을 더 잘 버는 이유'다. 2015년 1월에 발표된 한 연구에 의하면 레즈비언은 이성애자 여성에 비해 평균 소득이 9퍼센트 더 많다. 


그 이유에 대해 여러 가설이 제기되었다. 첫째, 레즈비언이 이성애자 여성보다 더 경쟁력 있고 업무에 헌신적일 것이라는 고용주의 선입견 때문에. 둘째, 레즈비언은 일반적으로 소득이 더 높은 남성 파트너가 없으므로 가계 소득을 늘리려면 더 열심히 일해야 하기 때문에. 셋째, 이성애자 커플의 경우 가사를 여성이 전부 또는 대부분 떠맡는 것과 달리 동성애자 커플은 이성애자 커플에 비해 더 공평하게 가사를 분담하기 때문에(최악은 이성애자 여성인가요)... 눈여겨볼 사항은 레즈비언의 소득이 이성애자 여성보다 높다 한들 이성애자 기혼 남성의 소득을 넘진 못한다는 것이다(남성에게 아내는 최고의 '동산'이라는 말이 있지요 아마). 


인상적이었던 글 두 번째는 '여성 스포츠가 인기 없는 이유'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프로 여성 스포츠가 동일 종목 남성 스포츠에 비해 인기가 없다. 그 이유는 뭘까.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스포츠의 인기는 결국 관중, 언론, 기업의 관심이 좌우한다. 여성 스포츠는 인기가 없다는 이유로 언론 노출이 줄고 기업 후원이 감소하고 선수층이 얇아지면 여성 스포츠의 인기가 점점 더 없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인터넷과 SNS는 언론 노출의 양적, 시간적 한계를 보완한다. 여자 피겨 스케이팅과 여자 컬링이 국민 스포츠 급의 인기를 모은 것은 선수들이 잘해서이기도 하지만 인터넷과 SNS의 공도 크다. 김연아는 은퇴했어도 김연아의 경기 장면은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몇 백만, 몇 천만 번 이상 재생되고 있다.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 전까지만 해도 여자 컬링에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경기가 시작되고 SNS에 여자 컬링 선수들의 경기 장면 일부가 사진, 움짤, 동영상 등으로 만들어져 올라오면서 전 국민 사이에 '영미 열풍'이 불었다. 다음번엔 어떤 여성 스포츠가 '인기 없다'는 편견에서 벗어날지는 결국 우리의 손에 달려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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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쉬게 하는 연습 - 오늘도 지나치게 애쓴 당신의 마음을 풀어주는
황미구 지음 / 앵글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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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쉬게 하는 연습>은 상담심리 및 심리치료 전문가인 황미구 원장이 1만 시간 이상의 실제 상담 경험과 수백 건의 상담수퍼비전을 통해 얻은 것들을 담은 책이다. 답답한 현실을 견디다 못해 상담실을 찾았던 사람들이 상담 후에도 꾸준히 자신을 돌보고 혼자서도 '셀프 카운슬링'할 수 있도록 대인관계와 스트레스, 내면에서 일어나는 전쟁 같은 상황을 처리하는 법을 자세히 알려준다. 





<나를 쉬게 하는 연습>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감정의 정체를 명확히 하는 연습을, 2장은 딱딱하게 굳은 마음의 근육을 풀어주는 방법을, 3장은 밸런스를 잃어버린 마음의 균형을 되찾는 법을, 4장은 나를 가두는 두려움을 정의하여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담고 있다. 마지막 5장은 행복한 결혼과 불행한 결혼에 대한 각 유형을 설명하면서 내 안에 숨겨진 관계의 공식을 설명한다. 


각 장에는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거나 공감할 만한 일반인들의 사례가 나와 있다. 각각의 사례에는 잠시 멈춰서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나를 쉬게 하는 10분'이라는 연습이 제시된다. 일반인 사례와 저자의 설명, 해결책이 알기 쉽게 잘 정리되어 있고 문장이 다정해서 읽기만 해도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데 전혀 행복하지 않아요', '동료들이 자기 대학시절 이야기를 하면 대화에 잘 끼지 못하겠어요', '주변 사람들 평가에 예민해서 매일이 너무 힘듭니다', '엄마는 늘 오빠한테만 신경을 썼어요', '최근 들어 화를 조절할 수가 없어요'... 저자는 이러한 사례를 소개하며 인물들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이들이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지, 감정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지 분석한다.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데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샐러리맨의 경우, 그가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현재 상황이 실제로 불안해서가 아니라 그의 마음이 정상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진화론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부정적 편향을 띠며, 아무리 행복한 상황에서도 사고나 죽음 같은 부정적 사건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경계하고 주의하는 습성을 가진다. 현재 상황에 불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위험하고, 오히려 삶에 '부적응'하고 있다는 뜻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 예민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회사 동료들이 죄다 명문대 출신이고 자기만 비(非) 명문대 출신이라서 열등감을 느끼는 샐러리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럴 때는 '난 비(非) 명문대를 나와서 다른 사람들이 무시할 거야'라는 생각 대신 '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존중해주길 바라'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의 진짜 감정이 '열등감'이나 '질투'가 아니라 '존중받길 바라는 욕망'임을 깨달았다면 존중받을 만한 성과나 실적을 남기도록 노력한다. 질투나 열등감이 느껴질 때마다 그 목록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다. '재산, 인정, 외모, 능력, 관계' 등에서 내가 느끼는 질투가 주로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게 되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욕망하는지도 알 수 있다. 





지금은 인생의 쉼표라고 생각하고 '지금 괴로운 것'이 정말 그럴 가치가 있는지 한걸음 떨어져 생각해보세요. 초조함도, 걱정도, 두려움도 우선 접어두세요. 중요한 건, 쉬었다 다시 일어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용기입니다. (107쪽) 


책에는 또한 지금 내 마음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멘탈 체크하기'와 바쁜 일상 속에서 제멋대로 굴러가는 마음의 방향을 변화시킬 수 있는 '22일간의 휴(休) 프로젝트 워크북'이 실려 있다. 제목 그대로 22일간 매일 하나씩 과제를 실천하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기 자신을 슬프게 하고 괴롭게 만들고 긴장시키고 고통 주는 것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음이 불안하고 잠깐 어디 가서 푹 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을 때, 이 책에 실린 사례 한두 꼭지씩 읽으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숨통이 트일 것 같다. 어린 시절에 겪은 트라우마 때문에, 사회에서 겪는 치열한 경쟁 때문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덫처럼 마음을 옭아매는 관계 때문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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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시선 - 우리 산문 다시 읽고 새로 쓰다
송혁기 지음 / 와이즈베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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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빠른 비트의 유행가를 즐겨 들었는데, 요즘은 클래식이나 재즈 외의 음악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옷이 멋져 보였는데, 이제는 무채색의 단정한 차림이 좋다. 글도 마찬가지다. 어깨에 잔뜩 힘주고 쓴 글보다는 몸에 힘 빼고 자연스럽게 쓴 것 같은 글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고전의 시선>에는 바로 그런 글이 담겨 있다.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1,000년 넘게 쌓인 우리의 한문 산문 가운데 24편을 엄선해 현대인들의 눈높이에 맞는 평설과 함께 이 책에 담았다. 한문 산문이라고 해서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는, 타당하지만 고리타분한 가르침이 주로 담겨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다. 여유를 즐기며 사는 즐거움, 아름다움을 보는 법, 이미지에 속지 않는 태도 등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중시하는 현대인들에게 꼭 맞는 성현의 가르침을 주로 담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조선 전기 문인 성간이 쓴 <용부전(慵夫傳)>이라는 글이다. 어느 마을에 씻지도 않고 매일 멍청히 앉아만 있는 게으름뱅이(慵夫)가 있었다. 하루는 부지런쟁이가 나타나 이 게으름뱅이의 버릇을 고쳐보려고 했는데 무슨 수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부지런쟁이는 작전을 바꾸어 맛난 술과 멋진 음악을 준비해 게으름뱅이를 초대했다. 그러자 게으름뱅이가 부리나케 달려와 그때부터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부지런하게 살았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부지런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요, 게으르게 살라는 건 더더욱 아니다. 아무리 게으른 사람도 자기 자신을 움직이게 만드는 즐거움을 찾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부지런하게 살라는 것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가슴이 설레는 일을 하라고 했던 故 스티브 잡스의 조언이 생각난다. 


부지런함이야말로 자원이 부족하고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나라가 내세울 수 있는 미덕이라고 여기는 분들이 여전히 많다.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경제구조와 주력산업이 많이 변화된 오늘, 여전히 부지런함은 그 자체로 추구해야 할 지상의 가치일까? (36쪽) 





고려 시대 문인 이제현은 자연이 아닌 도심 주변 민가 즐비한 연못가에 '운금루'라는 누각을 짓고 <운금루기(雲錦樓記)>라는 글을 남겼다. 그는 아름다움이 어디 먼 곳이 아니라 우리네 일상 속에 있다고 보았다. 짐을 머리에 이고 걷는 사람, 말 탄 사람, 걷는 사람, 어르신을 보고 달려가 절하는 사람. 이들을 보고도 아름답다 여기지 않는 건 이들이 아름답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 마음에 어둠이 껴 있기 때문이다. 


가볼 만한 멋진 풍경이 외지고 먼 곳에만 있지는 않다. 왕이 도읍지로 삼은 곳,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고 해서 그런 풍경이 없으란 법은 없다. 그러나 형산이나 여산, 동정호나 소상강 같은 절경이 반걸음만 내디디면 눈에 들어오는 곳에 있다 하더라도, 조정에서 명예를 다투는 사람이나 시장에서 이익을 따지는 자들은 그런 풍경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22쪽)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글을 읽으니 내 마음도 따라서 잔잔해지고 깊어졌다. 옛글은 전부 고리타분한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신선하고 파격적인 글도 제법 많다. 바쁘게 살지 말고 여유를 가져라. 아름다움을 먼 곳에서 찾지 말고 일상 속에서 찾아라. 이런 글이 있는 줄 알았다면 진작부터 옛글에 관심을 가졌을 텐데(학교 다닐 때 고전문학 시간이 즐거웠을 텐데). 옛글을 다시 읽는 기쁨, 새로 쓰는 즐거움을 이 책을 통해 만끽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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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칼이 될 때 -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홍성수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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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칼이 될 때>는 법과 인권을 중점적으로 연구해온 법학자 홍성수가 쓴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혐오 표현의 '혐오'라는 말은 단순히 싫거나 꺼리는 감정을 뜻하지 않는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말도 있듯이, 가해자는 그저 기호나 취향을 알리기 위해 쓴 혐오 표현일지라도, 피해자, 특히 생애 전체에 걸쳐 사회 전 영역에서 각종 무지와 오해, 차별과 편견에 시달린 사회적 약자는 그 혐오 표현 때문에 존재를 부정당한 느낌이 들고 사회나 집단으로부터 배제되는 듯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혐오 표현의 피해자로 주로 언급되는 집단은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다문화 가정 출신 등인데, 시야를 넓히면 전라도 등 특정 지역 출신에 대한 혐오 표현, 흑형이나 짱깨, 쪽바리 같은 외국인 혐오 표현 등도 범주에 들어온다. '조선 놈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 등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만든 혐오 표현도 있다. 이 말을 듣고 속에서 열불이 나지 않는 한국인은 없겠지만(있나?), 한국인 중에도 흑인은 더럽다, 중국인은 시끄럽다, 일본인은 전부 나쁘다 같은 혐오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이 꽤 많다. 내가 듣기 싫은 말은 남한테도 안 하는 게 기본 매너다. 


이 책은 법학자인 저자가 법의 차원으로 각종 혐오 표현의 의미를 분석하고, 각각의 정도와 위험성을 분류하고, 전 사회에 걸쳐 이런 혐오 표현을 쓰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안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비롯해 맘충, 노키즈존, 퀴어 문화축제, 메갈리아 문제 등 시의성 있는 이슈에 대한 분석이 이어진다. 영화 <청년 경찰>, <범죄도시>가 야기한 혐오 문제도 언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양서라기보다는 학술서 같은 느낌이 강하지만, 저자의 논의 전개와 해결 방안은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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