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과 결과의 경제학 - 넘치는 데이터 속에서 진짜 의미를 찾아내는 법
나카무로 마키코.쓰가와 유스케 지음, 윤지나 옮김 / 리더스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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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을 받으면 장수할 수 있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많이 보면 성적이 떨어진다? 명문 대학을 졸업하면 연봉이 높다? 하나라도 '예스(YES)'라고 답했다면 이 책 <원인과 결과의 경제학>을 읽어보길 권한다. 세 가지 통설 모두 경제학적 관점에서 틀렸다는 걸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 가지 통설 모두 상관관계는 있지만 인과관계는 없다. '인과관계'는 '두 개의 사실 중 한쪽이 원인이고 다른 한쪽이 결과'인 상태를 일컫는다. '상관관계'는 '두 사실이 서로 관계는 있지만,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있지 않은 것'을 이른다. 어떤 명제의 두 변수가 인과관계인지 상관관계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를 확인하면 된다. 첫째, '우연의 일치'는 아닌가. 둘째, '제3의 변수'는 없는가. 셋째, '역의 인과관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이 세 가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현실과 '반사실'을 비교해야 한다. 반사실이란 "만약에 00을 하지 않았더라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라는 식으로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사실을 가정하는 시나리오를 가리킨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의 앨런 크루거 교수는 표준점수가 높은 대학과 표준점수가 낮은 대학의 졸업생의 연봉을 비교하는 조사를 했다. 그 결과 표준점수가 높은 대학과 표준점수가 낮은 대학의 졸업생의 연봉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단, 이 결과는 소수자 집단인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빈곤 가정의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즉, 인종적 소수자나 빈곤층이 아니라면 표준점수가 높은 대학을 졸업하든 낮은 대학을 졸업하든 별 차이가 없지만, 인종적 소수자나 빈곤층은 표준점수가 높은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표준 점수가 낮은 대학을 졸업하는 것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 데 유리하다. 


저자는 이 밖에도 남성 의사가 여성 의사보다 뛰어나다, 어린이집을 늘리면 여성 취업률이 올라간다, 공부 잘하는 친구와 사귀면 성적이 오른다 등 많은 사람들이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믿고 있는 통설에 관한 통계적이고 과학적인 반박을 제시한다. 요즘처럼 데이터가 범람하는 시대에 가짜 뉴스에 현혹되지 않으면서 나에게 꼭 필요하고 유용한 정보만 선별해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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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위에 차려진 역사 한 숟갈 - 역사 속 한 끼 식사로 만나는 음식문화사의 모든 것
박현진 지음, 오현숙 그림 / 책들의정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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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의 기원과 역사를 설명한 책들이 다수 출간되었다. 대부분의 책이 역사나 문화인류학에 근거한 반면, 이 책 <밥상 위에 차려진 역사 한 숟갈>은 과학, 그중에서도 식품공학에 기반을 둔다. 저자 박현진은 고려대학교 생명공학원 및 식품공학과 교수이자 건강기능식품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 책은 저자가 2015년 겨울부터 조선일보에 연재한 칼럼 <아하! 이 음식> 중에서도 인기 있었던 글을 갈무리한 결과물이다. 


가을이 오고 찬 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청국장은 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만들어 먹기 시작했을까? 청국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중국 한나라 시대 때 메주의 초기적인 형태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콩을 재배하던 농경인이 여름철 장기 여행을 위해 삶은 콩을 말의 안장 안쪽에 넣어 두었는데 먹기 위해 꺼내보니 끈적거리는 청국장의 형태가 되어 있었고, 먹어보니 제법 먹을 만하지 않았을까 싶다. 청국장을 조리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청국장에 들어 있는 혈전 용해 요소는 끓는점에서 쉽게 파괴되므로 먼저 채소나 고기를 넣고 끓이다가 마지막에 청국장을 넣는 것이 좋다. 


서양 사람들만 와인을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도 야생의 산포도로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고려 시대 기록이 남아 있다. <양주방>에 의하면 고려 시대의 포도주는 포도즙과 찐 찹쌀, 소맥가루를 섞어 만들었다고 한다. 이는 쌀막걸리를 만들 때 포도즙을 혼합하여 만드는 방식으로 만든 쌀포도주와 유사하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쓴 <임원십육지>에도 포도주 만드는 법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 쌀포도주는 드라이한 맛의 서양 와인과 달리 당도가 높다. 


막걸리에는 건강 증진 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단백질과 식이섬유, 당질은 물론, 다량의 효모와 유산균이 함유되어 있고, 막걸리를 빚는 전통 누룩에는 급성 및 만성 위궤양 억제, 혈소판 응집에 의한 혈전 감소, 혈중 콜레스테롤 저하, 염증 매개체 생성 억제, 암세포 전이 억제 등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피부의 주름을 제거하고 피부를 희게 하는 효과도 있다(아 막걸리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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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왜 빵빵 할까? 질문하는 사회 5
조지욱 지음, 김혜령 그림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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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정말 살아있을까? 간척을 하면 영해는 넓어질까? 남극 대륙의 주인은 누구일까? 궁금하다면 이 책 <유럽은 왜 빵빵 할까?>를 읽어보길 권한다. 저자 조지욱은 부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국 지리와 세계 지리를 가르치고 있다. 이 책은 지리학의 주요 이슈와 최근 이슈를 중심으로 땅, 기후, 재해, 갈등, 한국, 세계라는 6개의 주제를 알차고 흥미롭게 풀어낸다. 


이 책은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쓰였지만 성인 독자도 모를 법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2018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인 평창은 과거에도 고원이었을까? 지리학을 배우면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다. 평창은 현재 태백산맥의 중앙에 위치하며 평균 고도 700미터의 고원 지대다. 하지만 고생대 때는 바닷속이었고 중생대 때는 높고 험한 산지였다가 중생대 말에 평야가 되었고 신생대에 들어서 동해가 생기면서 지금과 같은 고원이 되었다고 추정된다. 평창이 고생대 때 바다였다는 증거는 그 주변 지역에 많이 있는 시멘트 공장이다. 시멘트의 원료는 석회암이고, 석회암은 고생대 때 만들어진 암석이다. 


프랑스 하면 바게트, 독일 하면 브레첼, 영국 하면 잉글리시 머핀, 덴마크 하면 데니시 페이스트리다. 이들 북서 유럽의 나라들은 왜 전부 빵을 주식으로 삼았을까? 지리학을 배우면 이 질문에도 쉽게 답할 수 있다. 북서 유럽은 대부분 중위도에 속하며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에 있고, 편서풍의 영향을 받는다. 편서풍은 온도가 높지 않아 서늘하고 건조해도 잘 자라는 밀을 재배하기에 적합하다. 밀은 그냥 먹으면 까칠하고 텁텁하니 빵이나 면으로 만들어 먹었다. 이 밖에도 재해, 갈등과 분쟁, 한국, 세계와 관련된 문제들에 관한 지리학적 답변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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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는 여성 - 페미니즘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스베냐 플라스푈러 지음, 장혜경 옮김 / 나무생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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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페이지에 불과한, 책이라기보다 책자에 가까워 보이는 이 책은 보기보다 큰 주제와 논의를 담고 있다. 저자 스베냐 플라스푈러는 1975년 독일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철학 잡지>의 편집장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여성 문제에 관심이 있었고, 20대 중반에는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을 읽고 크게 심취했다. <젠더 트러블>에서 주디스 버틀러는 '흔히들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이성애적인 성 정체성을 고착화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추종하고 있는 "이성애 매트릭스"를 비판하며, 그 정체성을 부수자고 말했다. 


저자는 이에 크게 공감했고, 자신의 이성애 성향에 의문을 품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해체주의적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성을 부정함으로써 여성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걸 인식했다. 사회가 '남성성'과 '여성성'을 구분하고 '남성성'을 '여성성'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를 부정할 수는 없으며("페니스를 가진 인간은 질과 음핵의 오르가슴이 어떤 것이며, 생리와 임신, 출산과 수유가 어떤 기분인지 절대 알 수 없다."), 여성주의 또한 결국에는 여성의 신체, 즉 여성의 몸을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오늘날 전 세계에 퍼지고 있는 미투 운동이 여성의 몸을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종래의 남성 중심적인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비판한다. 물론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고 성폭행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큰 잘못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저항의 방식이 '#NoMeansNo', '#YesMeansYes' 같은 해시태그를 다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여성은 여성 자신이 원하는 바를 보다 똑똑하고 분명하게 말해야 하며, 남성들이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것을 그저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된다. 완벽하게 공감하지는 않지만 일리 있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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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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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역사를 배웠지만 '역사의 역사'에 관해 생각해본 적은 드물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한국과 외국의 역사 서술을 비교, 대조해본 적은 더더욱 없다. 누군가가 떠먹여주는 역사를 그저 삼키는 데 급급했다. 내가 뭘 삼키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 책은 일종의 '서평집'이다.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사마천, 이븐 할둔, 랑케, 마르크스,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 에드워드 H. 카, 슈펭글러, 토인비, 헌팅턴, 제러드 다이아몬드, 유발 하라리 등 동서고금의 주요 역사가들이 남긴 저작을 저자가 직접 읽고 생각한 바를 적었다. 대한민국에서 학교 교육을 충실히 받은 사람이라면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을 알 것이다. 서양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동양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사마천을 알 것이고, 역사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랑케, 카, 토인비, 정치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헌팅턴, 슈펭글러 등이 익숙할 것이다. 책 좀 읽는다 하는 사람이라면 다이아몬드와 하라리가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이들의 사상을 각각 따로 정리한 책은 많지만, 한 권의 책으로 연표를 만들고 좌표를 그린 경우는 이 책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이 중에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가장 낯선 이름은 단연 이븐 할둔(1332~1406)일 것이다. 이븐 할둔은 문명을 환경의 산물로 간주하고 세계를 일곱 기후대로 나누어 환경과 문명의 관계를 살피면서 인류사를 썼다. 그의 책 <역사서설>은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보다도 앞서 '인류사' 또는 '빅 히스토리(big history)'를 다룬 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역사서설>은 7세기에 탄생한 이슬람 문명과 아랍 사회의 현황 및 특징을 기록한 책으로도 가치가 상당한데, 안타깝게도 지식의 전파를 제한하는 이슬람 세계의 관습으로 인해 19세기 들어서야 외부에 알려지고 번역, 출판되었다.


역사를 배우기도 벅찬데 '역사의 역사'까지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의 답은 이렇다. "사실은 과거의 것이고 역사가는 현재에 산다. 과거의 사실 가운데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을 선택하는 기준과 그 사실들을 일정한 관계로 맺어 주는 해석의 관점은 역사가를 둘러싼 현재의 환경, 역사가의 경험, 역사가의 이념과 개인적 기질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다." 먼 미래의 후손이 한국 현대사에 관한 글을 쓴다면 그 내용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변수는 어느 신문이냐는 것이다. 예컨대 <조선일보>인가 <한겨레>인가에 따라 박정희 대통령은 '위대한 영도자'가 되거나 '방탕한 독재자'가 된다. (231쪽 인용) 


'역사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나아가 인간과 인류를 이해하는 것이다. "14세기 이슬람 문명과 중국 문명은 만나지 않았다. (중략) 그런데도 두 문명의 지식인들은 국가 권력의 존재 의미, 군주와 백성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서 거의 동일한 윤리적 규범을 만들어냈다." (113쪽), "민족주의자든 아나키스트든 마르크스주의자든, 식민지 시대 지식인들이 쓴 역사를 읽으면 가슴이 아리다. 그들이 살았던 사회적 환경과 오늘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같지 않은데도 이러는 이유가 무엇일까." (213쪽) 지리와 기후도 다르고, 정치 체제와 경제 수준도 다른 나라들이 비슷한 사회 관습과 윤리 규범을 공유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으로 볼 수 있다. 타고난 시공간이 다르고 정치 성향이 다른데도 역사가가 서술한 역사를 읽으면 그들의 심정에 공감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것 또한 인류의 생래적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자는 후기에 이 책을 가리켜 '잠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인증 사진을 찍는 패키지여행과 비슷하다'라고 썼다. 패키지여행도 가이드의 실력과 내공에 따라 여행의 질이 천차만별인데, 이 책은 가이드가 좋아서 그런지 패키지여행이라도 웬만한 자유여행보다 알차고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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