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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무감각한 사회의 공감 인류학
김관욱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10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1028/pimg_7796361642035860.jpg)
누가 아프다고 하면 이런 사람 꼭 있다. "자기만 아픈가. 나는 더 아파.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아프다는 사람을 앞에 두고 내가 더 아프다며 난데없이 '아픔 배틀'을 벌이는 사람의 심리는 뭘까. 가정의학과 의사이자 의료인류학자인 김관욱의 책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을 읽고 짐작건대, 한국 사회에서 아픔은 단순히 신체상의 질병이나 질환, 혹은 고통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권력의 문제, 힘의 문제, 도덕과 윤리의 문제로 쓰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서 이런 불상사가 벌어지는 것 같다.
저자가 공부하는 의료인류학은 몸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읽는 학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랑의 매'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고 있는 가정 내 아동 학대,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과 학살 등의 문제를 비롯해 장애인 특수학교, 미투 운동, 가습기 살균제, 삼성전자 산업재해 노동자 등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큰 이슈로 다루어진 문제들을 언급하며 몸과 사회의 관계를 분석한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문제들은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사회와 정부와 공공기관과 대기업에게 면죄부를 주고 피해자의 비명에는 귀 막은 대가라고 봐도 다르지 않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제4장 노동의 아픔'이다. 이 장에서 저자는 2017년 전주의 한 특성화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여학생이 5개월간 한 콜센터의 해지 방지 부서에서 현장 실습을 하다가 "아빠, 나 아직 콜 수 못 채웠어."라는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저수지에 몸을 던져 숨진 사건을 사례로 든다. 저자가 이 사례를 영국의 한 대학에서 열린 포럼에서 소개했을 때, 영국인들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그 학생은 그렇게 힘든데도 왜 콜센터를 그만두지 않았죠?" 사건을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그 학생은 죽기 전에 가족과 친구들에게 수차례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때마다 가족과 친구들은 이렇게 타일렀다. "어려워도 참고 이겨내야 한다." "다른 직장 가면 다른 게 있느냐."
이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에선 학교든 직장이든 사업이든 결혼이든 뭐든 간에 그만두거나 포기하는 것을 실패라고 여기고 재도전하거나 새로운 길을 찾을 기회를 주지 않는다. 고통을 가하는 집단이나 상황에서 문제를 찾지 않고,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는 개인에게 책임을 돌린다. 다른 예로, 한국에서 가장 흔한 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두통과 안구 건조, 어깨 결림, 불면증 혹은 수면 장애, 우울 경험, 불안 장애 등 역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에게 과도한 업무량을 부과하고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다. 저자는 박카스 같은 피로 회복제가 1963년부터 오늘날까지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은, '한국 사회에 옳지 못한 통증, 탈정치화된 통증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구체적 증거'라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지난여름 세상을 떠난 친구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험 회사에 다니던 친구는 과도한 업무량과 실적 압박으로 인해 우울증과 수면 장애를 앓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친구는 수차례 가족들과 상의했다고 한다. 회사 다니기 싫다고. 그만두고 싶다고. 그때마다 친구의 부모님은 무조건 참으라고, 나약한 소리 하지 말라고 타일렀다고 한다. 그때 누구라도 친구에게 참지 말라고, 그만둬도 괜찮다고 말 한마디 해줬으면 친구는 죽지 않았을까. 왜 나는 친구에게 그 짧은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을까. 만약 친구를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고, 우리 더는 아프지 말자고 말하고 꼭 끌어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