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 감시, 조종, 거짓에 맞서 싸운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영웅들
매슈 대니얼스 지음, 최이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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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유튜브로 스탠드업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Trevor Noah)의 영상을 즐겨본다. 트레버 노아는 198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 슬하에서 태어났다. 트레버 노아가 태어났을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가 실시되고 있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백인과 흑인을 철저히 분리하는 정책으로, 백인과 흑인이 같은 직장에 다니는 것도 금지되고 같은 버스에 타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다. 그런 시대에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의 피가 섞인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은 그 자체로 범죄였다.


1991년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되기 전까지 트레버 노아는 집 밖에 나갈 수 없었다. 밖에 나갔다가 백인 경찰의 눈에 띄면 그의 아버지는 벌금형, 그의 어머니는 징역형을 받고, 그 자신은 고아원에 보내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트레버 노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스탠드업 코미디로 구성해 유튜브에 올렸다. 영상이 퍼지면서 나를 비롯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슬픈 역사와 아파르트헤이트가 빚은 참상의 단면을 알게 되었다. 트레버 노아처럼 최신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알리고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촉구하는 사람이 여기 또 있다.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을 쓴 미국의 인권 운동가 매슈 대니얼스이다.


매슈 대니얼스는 미국 뉴욕의 스패니시 할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뉴욕 하면 떠오르는 화려하고 부유한 이미지와 달리, 대니얼스가 성장한 스페니시 할렘 지역은 범죄가 빈번하고 빈곤한 사람이 흔했다. 대니얼스 또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가 퇴근길에 괴한으로부터 공격을 당해 큰 부상을 입고 숨지는 비극을 겪었다. 대니얼스 자신이 괴한에게 공격을 받고 돈이나 물건을 빼앗긴 적도 많다.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대니얼스는 자신처럼 범죄나 재난 같은 불의의 사고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이 더는 생겨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대니얼스는 현재 디지털 미디어로 보편적 인권을 증진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인권 네트워크(HRN)'을 설립해 활동 중이다.


이 책에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폭력과 차별에 대항하고 인권 신장에 기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이 기여한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미디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제 해결을 위해 기존 미디어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다.


첫 번째 방식에는 케냐 부정 선거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케냐의 사회사업가들이 만든 정보 공유 플랫폼 '우샤히디', 미국의 비영리단체 익스체인지 이니셔티브가 아동 성매매를 알선하는 광고가 붙은 호텔 방의 사진을 올리면 바로 수사기관에 접수되도록 만든 '트래픽캠' 앱, 아일랜드의 비영리 사회적 기업 푸드 클라우드가 음식이 남는 기업과 음식이 부족한 지역의 자선단체 및 커뮤니티 그룹이 연결되도록 만든 '푸드 클라우드' 앱, 이슬람교를 믿는 차드의 여성들이 남성의 허락을 받거나 남성과 대면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상업 활동과 금융 거래를 하도록 만든 밀리컴 모바일 금융 서비스 등이 포함된다.


첫 번째 방식을 택한 이들은 대체로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낼 인력과 자본을 갖춘 기업 또는 사회단체다. 비영리단체가 경제적 이익 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낸 사례도 흥미롭지만, 밀리컴 모바일 금융 서비스처럼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경제적 이익을 얻으면서 동시에 이슬람 국가 내 여성 인권 향상에 기여하는 서비스를 만들어낸 사례가 특히 인상적이다. 이익 추구와 사회 공헌을 동시에 추구하기는 어렵다고 믿는 기업들이 이러한 사례를 눈여겨 보고 귀감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두 번째 방식에는 인도의 기업가 카티크 나랄라세티가 10억 명이 넘는 페이스북 가입자의 혈액형을 활용해 만든 세계 최대 규모의 페이스북 혈액은행을 만든 것, 미국의 아홉 살 소녀 레이철 벡위트가 마실 물이 부족해 고생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동영상을 비메오(vimeo)에 업로드하고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모금활동을 벌인 것, 사우디아라비아의 마날 알 샤리프가 여성에게 운전을 허용하지 않는 정부 방침에 항의하는 뜻으로 자신의 운전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것, 이란의 열여덟 살 소녀 마에데 호자브리가 히잡을 쓰지 않고 춤추는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호자브리를 지지하는 해시태그 운동을 촉발한 것 등이 포함된다.


두 번째 방식을 택한 이들은 대체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만한 인력이나 자본을 갖추지 못한 개인이다. 이 중에 여성, 어린이 같은 비주류, 소수자가 많은 것이 눈에 띈다. 기득권을 가진 주류,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정부와 기성 언론이라면, 기득권을 가지지 못한 비주류, 소수자의 목소리까지 담아내는 것이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다. 이들은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해 전 세계 규모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문제, 당장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 정부의 탄압을 받는 문제, 기성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문제에 관해 직접 발언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놀라운 전파력을 이용해 단기간에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지지자를 결집하고, 자국 언론의 주목을 이끌어내고, 자국 정부의 방침을 바꿨다. 새로운 미디어의 영향력이 확대될수록 뉴미디어를 이용해 변화를 만들어낸 사례가 점점 많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저자는 북한의 인권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책에는 2016년 탈북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 대사관 공사의 사례가 자세히 나온다. 태영호 전 공사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에게는 인권과 자유, 독재와 탄압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다. 그러니 북한 주민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유세계의 기본적인 개념들부터 깨닫게 해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미국과 캐나다 소재의 북한 인권 단체에서는 '자유를 위한 플래시 드라이브'라는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사용하지 않는 USB를 기증하면 북한 주민들에게 북한 밖의 생활을 알려주는 정보를 담아서 드론이나 열기구, 물병 등을 통해 전달한다는 아이디어다.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운동 그리고 그 둘을 제대로 표현하고 실현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인간의 사회적, 경제적 잠재력을 발휘하게 한다. 그러므로 디지털 인권 운동은 모든 사람의 과업이라고 할 수 있다." (293쪽)


이제까지 디지털 미디어가 힘없는 사람들이 언론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해왔는데, 이 책을 통해 실제로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뤄낸 사람들의 사례를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문제는 폭력과 차별, 혐오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사람들 또한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힘을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미디어라는 간단하고 효과적인 '무기'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결국 개인의 판단과 선택에 달려 있다는 저자의 충고가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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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중용이 필요한 시간 - 기울지도 치우치지도 않는 인생을 만나다 내 인생의 사서四書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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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기 전에는 이거 배워라, 저렇게 살아라 같은 말을 많이 듣지만, 막상 어른이 되고 나면 앞으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침을 받기가 어렵다. 그래서 고민인 어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동양 고전을 삶에 적용하는 <내 인생의 사서> 시리즈를 집필 중인 동양철학자 신정근의 신간 <오십, 중용이 필요한 시간>이다.


50대는 어떤 나이일까. 저자의 경험에 따르면 50대는 몸이 바뀌는 나이다. 40대까지는 팔팔하게 일하고 운동하고 여행을 다니던 사람도 50대를 경계로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병치레를 하는 경우가 많다. 몸이 바뀌니 일에 임하는 자세도 예전 같지 않고 운동이나 여행 같은 취미도 예전만큼 못하게 된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은 버겁지만, 그렇다고 일을 그만두고 쉬기에는 아까운 나이다. 다시 말해 50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50대는 이것도 저것도 두루두루 해낼 수 있는 나이라는 뜻이 아닐까.


이런 50대의 처지에 딱 들어맞는 동양 고전이 <중용>이다. <중용>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쓰였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쓰인 책답게 극단적인 의견 대립과 그치지 않는 갈등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며 바른길을 찾는 법을 주로 다룬다. 저자는 책에서 <중용>의 내용을 모두 60가지로 나누어 원문의 내용을 간략히 풀이하고 현대인의 일상에 적용 가능한 예화를 소개한다. 어려운 한자어는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최신 시사 뉴스도 빈번히 등장해 동양 고전에 문외한인 사람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도'에 대한 설명이다. 대체 도란 무엇일까. 저자는 '사람이 꼭 지켜야 할 가치', '사람이 실현해야 할 이상'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집을 장만하기 위해 퇴근 후 대리기사로 일한다면 그 사람의 도는 집을 장만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살을 빼기 위해 열심히 운동한다면 그 사람의 도는 살을 빼는 것이다. 넓게 보면 이러한 세속적인 욕망도 도의 범주에 속할 수 있지만, 유교에서는 사랑과 연대의 인, 도리와 정의의 의, 문화와 예절의 예, 시비 판단과 지혜의 지, 즉 인의예지를 도라고 규정한다.


어떤 사람이 투잡을 불사하며 집 장만을 하려는 이유가 가족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부모님을 잘 모시기 위한 거라면 이는 인의예지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저 물질적인 욕망을 채우고 싶고 남보다 잘 사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라면 인의예지에 해당하지 않는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나 이상은 도에 합당한가, 합당하지 않은가. 이를 찬찬히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살아간다면 이런저런 세파에 흔들리면서도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 거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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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으로 들어가 과학으로 나오기 - 사고 습관을 길러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
리용러 지음, 정우석 옮김 / 하이픈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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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수업을 잘 하는 교사나 강사는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술이 따로 있다는 내용의 글을 읽었는데, 이 책의 저자가 딱 그런 교사 혹은 강사인 것 같다. 이 책을 쓴 리용러는 중국의 명문인 베이징대학교에서 물리학과 경제학 학사학위를 받고 칭화대학교에서 전자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런민대학교 부속고등학교에서 물리 교사로 재직 중이며, 오랫동안 많은 제자들을 중국의 명문대에 입학시켰다.


이 책은 수많은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수학과 과학 과목의 내용 일부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설명한다. 각 장의 제목부터 재미있다. '세계 최초의 공부 깡패'는 누구일까. 저자 생각에는 기원전 500년 경 고대 그리스에 살았던 피타고라스야말로 '공부 깡패'라는 수식어가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피타고라스와 그의 학파는 수학 외에도 다양한 학문을 연구했으며,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비롯한 여러 수학 이론을 정리했다. 지금이야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론이지만, 수의 개념조차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았던 시절에 이런 이론을 발견하고 정리했다는 건 사실 무척 신기한 일이다.


어른들도 잘 모르는 과학 상식을 알려주기도 한다. 라디오 방송의 'FM'과 'AM'이 무슨 의미인지 설명할 수 있는 어른이 몇이나 될까. 이 책을 읽었다면 앞으로 이렇게 설명하면 된다. 방송은 입력된 저주파 신호를 고주파 신호로 변조한 후 안테나에서 각종 방식을 거쳐 수신기로 발사하는 방식으로 송출된다. 이때 저주파 신호에 따라 고주파 신호의 '주파수'를 변화시키면 '주파수 변조' 혹은 'FM(Frequency Modulation)'이라고 부른다. 반면 저주파 신호에 따라 고주파 신호의 '진폭'을 변화시키면 '진폭 변조' 혹은 'AM(Amplitude Modulation)'이라고 부른다.


생활 속에서 찾은 과학 이야기도 나온다. 비가 오는데 우산이나 비를 피할 곳이 없을 때 빗속을 걷는 게 비를 덜 맞을까, 뛰는 게 비를 덜 맞을까. 책에 따르면 몇 가지 조건을 가정할 경우 빨리 달릴수록 비를 덜 맞는다. 이제는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스마트폰에는 터치스크린 기능이 있다. 대체 이건 어떤 원리일까. 시중에서 사용하는 터치스크린은 대부분 축전기식 터치스크린이다. 도체인 손가락이 터치스크린에 닿으면 도체가 형성한 축전기가 전기막과 결합해 전기장을 바꾼다. 센서와 칩을 통해 전기장과 전류의 변화를 분석하면 손가락이 닿은 위치를 감지할 수 있다.


이 밖에도 하늘은 왜 파란지, 별은 왜 흑백으로 보이는지, 전자레인지는 어떻게 음식을 가열하는지, 휴대폰이 어떻게 위치를 측정하는지 등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수알못, 과알못인 나에게는 다소 어려운 내용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수학과 과학에 대한 흥미를 가지기에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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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의 거짓말 - 여성은 정말 한 달에 한 번 바보가 되는가
로빈 스타인 델루카 지음, 황금진 옮김, 정희진 해제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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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평등에 찬성하는 사람 중에도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는 존재하며, 이로 인한 차별은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미국의 심리학 박사 로빈 스타인 델루카의 책 <호르몬의 거짓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여성의 부정적인 감정을 전부 호르몬 탓으로 돌려버리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관행인지를 지적하며 이러한 행태를 근절하자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PMS(월경전증후군)이다. 많은 여성들이 생리할 때가 되면 짜증, 두통, 흉통, 복부 팽만감, 스트레스 및 긴장, 피로, 우울감, 요통, 부종 등 다양한 신체적, 정서적 증상들을 겪는다. 저자가 이러한 증상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러한 증상들을 호르몬 때문에 생기는 질병 내지는 정신 질환처럼 다루는 것이다. 임신, 출산이 질병이 아닌 것처럼 생리도 질병이 아니다. 생리 전 또는 생리 중에 신체적, 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면 호르몬 탓으로 돌리고 생리통 약을 먹을 게 아니라 병원에 가서 근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사와 약사는 생리 전 또는 생리 중의 여성이 겪는 증상들을 생리전 증후군 또는 생리통으로 일축하고 심각하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저자는 이러한 관행이 이어지는 이유 중 하나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약회사는 건강한 여성에게 매일 약을 먹어야 한다는 확신을 심어줌으로써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둔다. 매일 복용해야 하는 호르몬을 처방하면 여성 건강을 모니터 해야 한다며 자주 내원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들도 금전적 이익을 챙길 수 있다. 심리학자도 해당 환자에게 정식 진단을 내리면 치료에 대해서 보험 급여를 받는다. 또 남편에게는 부인의 분노를 농담으로 얼버무릴 수단이, 아내에게는 이렇게 살아선 안 될 것 같을 때 원망할 거리가 생긴다. 정치가들과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전통적 성 역할과 그에 따른 제약을 촉진할 동력이 생긴다." (30쪽)


여성 역시 생리전증후군으로 얻는 이득이 있다는 지적이 흥미롭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사회에서 분노를 표현하거나 싸움을 걸기가 쉽지 않다. 분노를 표현하거나 싸움을 하는 건 '여자 답지 못한' 행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리 때가 되면 생리를 핑계로 분노를 표출하거나 싸움을 걸 수 있다. 만약 여성들이 평소에 더욱 자주 분노를 표출하고 짜증을 내고 싸움을 하면서 산다면 생리 때가 되었다고 특별히 감정이 격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밖에도 임신, 출산, 완경 등 여성의 생식을 질병으로 환원하는 사회에 철퇴를 내리치는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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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3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어의 사연들 - 내가 모르는 단어는 내가 모르는 세계다
백우진 지음 / 웨일북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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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밀다'라고 할 때의 '때'는 영어로 어떻게 말할까. 국방색은 언제부터 카키색을 뜻하는 말로 쓰였을까. 윷놀이의 '도개걸윷모'의 '도'가 뜻하는 동물은 무엇일까. 20여 년 동안 활자 매체에서 기사를 썼고 요즘은 글쓰기 강사로 일하는 작가 백우진의 책 <단어의 사연들>에 그 답이 나온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말 단어의 사연들을 하나씩 하나씩 재미나게 소개한다. "외국어를 모르는 자는 모국어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남긴 말이다. 실제로 외국어를 배우다 보면 외국어에는 없고 모국어에는 없는 표현, 반대로 모국어에는 없고 외국어에만 있는 표현을 알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때'다. 영미권 사람들에게는 때를 미는 문화가 없다. 그러니 때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 군복의 색을 뜻하는 국방색이라는 말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사용되었다. 나라마다 국방색이 있지만, 국방색은 나라마다 다르다. 적도에 가까울수록 청색이 진하고 적도에서 멀수록 갈색이 진하다.


'아재개그'라고도 불리는 말장난은 사실 인류가 언어를 구사한 이래 꾸준히 해온 언어 관습이다. 심지어 성경에도 말장난이 나온다. 마태복음 16장에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라는 말씀이 나온다. 목사님이 이 구절에서 영감을 얻으셨는지, 교회 이름이 '반석 교회'인 경우도 엄청 많다. 그런데 사실 이 문장은 말장난이다. 베드로(Peter)는 바위를 뜻하는 그리스어 'petros'에서 나온 말이다. petros에서 생겨난 다른 단어로는 'petroleum', 석유가 있다. 다시 말해, 베드로가 원래 바위라는 뜻이니 바위 위에 교회를 짓는다는 말이다.


'도개걸윷모'에서 '도'가 뜻하는 동물은 바로 돼지다. 돼지의 옛 이름은 '돝(돋)'이다. 돼지가 도토리를 잘 먹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슴도치의 '도치'도 돼지의 옛 이름 중 하나다. 돌고래를 한자어로는 '해돈', '해저'라고 한다. '바다돼지', '물돼지'라는 뜻이다. 버스(bus)는 옴니버스(omnibus)에서 앞을 떼 만든 단어다. 자동차가 올라가는 경사면이 가파를 때 '고바위가 심하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일본어 '고바이'를 오용한 것이다.


'오줌을 눈다', '똥을 눈다'라는 말과 '오줌을 싸다', '똥을 싸다'라는 말은 어떻게 다를까. '누다'는 배설물을 몸 밖으로 내보낸다는 뜻이고 '싸다'는 배설물을 참지 못하고 내놓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오줌싸개'라는 말은 있어도 '오줌누개'라는 말은 없다. 이 밖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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