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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보수 가짜 보수 - 정치 혐오 시대, 보수의 품격을 다시 세우는 길
송희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1223/pimg_7796361642394405.jpg)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정치 용어의 뜻을 잘 모른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인 줄 아는 사람도 많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혼동하는 사람도 많다. 보수와 진보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보수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사용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애초에 한국에 진정한 의미의 보수주의자가 있기는 할까. 궁금하던 차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보수 언론의 주필을 지낸 송희영의 책 <진짜 보수 가짜 보수>를 읽게 되었다. 책에서 저자는 기득권 세력에서 혐오 세력으로 몰락한 대한민국 보수의 역사와 한계를 분석하고 개선해야 할 점을 지적한다.
보수주의는 프랑스에서 처음 탄생한 개념이다. 보수주의는 과거의 역사와 전통, 관행, 경험을 중시하는 태도를 일컫는다. 진보주의는 미래와 혁신, 도전, 창의를 중시한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일종의 태도이자 라이프스타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라도 진보 정당을 지지할 수 있고, 진보주의자라도 보수 정당을 지지할 수 있다. 정치적 관점에서 보수 정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지지하고, 진보 정당은 사회 민주주의와 복지 경제를 지지한다. 한국의 경우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 모두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지지한다. 보수 정당이라고 해서 복지 제도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한국에서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의 차이는 '코카 콜라'와 '펩시 콜라'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의 차이가 미미하다면 현재의 보수는 어쩌다 이렇게 몰락한 걸까. 저자는 한국에서 보수가 몰락한 것이 아니라 보수 세력이, 정확히는 2세대 보수 세력이 몰락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1세대 보수 세력은 IMF 외환 위기로 무너졌고, 2세대 보수 세력은 국정 농단 사태로 무너졌다. 저자는 2세대 보수 세력에 치명상을 입힌 '가짜 보수의 5적'으로 국정원, 검찰, 친박, 재벌, 관료를 든다. 저자는 한국의 보수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가짜 보수의 5적이 벌인 악행을 반성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들 5적 중에 가장 눈길이 가는 집단은 단연 검찰이다. 저자는 현재의 검찰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검찰은 기관 특성상 권력 핵심층의 비위나 불법 같은 약점을 자세히 알고 있다. 과거 검찰은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정권의 사냥개'로서 '정치 보복 대행업'을 수행하며 무한한 권력을 누렸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검찰 권력이 축소될 위기에 처하자 검찰이 정권을 향해 칼끝을 겨누고 있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검찰이 정권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이대로 가면 다음 대통령은 검찰이 지명할지 모른다. 그들은 누구든 후보 단계에서 걸러낼 수 있다." (97쪽)
그렇다면 앞으로 보수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저자는 '국가 보수주의'가 아닌 '국민 보수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보수주의는 원래 가족, 회사, 단체, 국가라는 공동체를 중시한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개념이다. 절대 나 혼자 배불리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뜻이 아니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해도 된다는 뜻도 아니다. 이제까지 보수주의자가 여성, 장애인, 이민자, 성소수자 등의 약자, 소수자를 분리하고 배척하면서 기득권을 얻었다면, 앞으로의 보수주의자는 약자, 소수자를 포용하고 그들과 공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저자의 조언을 귀 기울여 듣고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다.
저자는 보수를 자처하는 '입 보수', '글 보수, '생활 보수, '기독교 보수'가 수백만 명에 달해도 보수의 핵심에서 두뇌 기능을 할 만한 사람의 숫자는 많지 않음을 지적한다. 또 남의 돈으로 보수주의를 한다는 사람을 많아도 자기 돈으로 보수주의를 한다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도 꼬집는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보수 언론의 주필을 지낸 저자가 의외로 솔직하게 한국 보수의 실책을 인정하며 가차 없이 비판해서 놀라웠다. 현재 한국의 보수 세력이 이런 고민을 하면서 다양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