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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플라이트 ㅣ 오늘의 젊은 작가 20
박민정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722/pimg_7796361643493862.jpg)
결말을 알고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독자로서는 다소 맥 빠지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일부러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모종의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혹은 독자가 아는 결말이 진짜 결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기대의 소산이거나.
박민정의 소설 <미스 플라이트>가 그렇다. 이 소설은 5년 차 승무원 유나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부고를 들은 유나의 아버지 정근은, 추리소설에서 형사나 탐정이 범인을 찾는 자세로, 딸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는다. 이 과정에서 유나의 전 남자친구, 대학 동기 등의 입을 통해 유나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드러난다. 공군 대령의 외동딸로 태어나 부대 근처의 관사를 전전하며 살았고, 교대에 진학했지만 임용고시를 포기하고 항공사 승무원이 되었고, 유부남인 부기장과 불륜 관계라는 추문에 휩싸여 유명을 달리했다는.
하지만 이는 표면에 드러난 유나의 이력일 뿐, 유나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진실이라고는 할 수 없다. 유나의 아버지는 남들 눈에는 번듯한 군인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도 전라도 출신이면서 전라도 출신을 혐오하고, 부하들은 물론이고 아내와 딸에게도 손찌검을 서슴지 않았던 사람이다. 유나는 교사가 되려고 보니 학교가 군대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교사의 길을 포기하고 항공사 승무원이 되었지만 항공사도 조직 문화가 갑갑하고 각종 비리와 불합리가 만연하기는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어릴 때 잘 따랐던 운전병 아저씨를 회사에서 만나 가깝게 지냈는데, 이 일이 유나의 발목을 잡았다.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유나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 있느라 의식하지 못했는데, 소설을 다 읽고 결국 유나가 죽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덧없고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왜 늘 이렇게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은 죽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잘 사는 걸까. 한편으로는 유나의 '죽음'이 신체적, 물리적 의미의 사망이 아니라 구시대와의 절연, 구습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유나의 아버지처럼 '생'존, '생'계를 핑계로 부정, 불합리에 눈 감느니 차라리 생을 포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랄까. (그러나 그 의지를 표현하는 길이 죽음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 여성의 죽음에 관한 소설인데, 남성들이 주로 말을 하고(아버지, 전 남자친구, 대학 동기, 운전병 아저씨 등) 여성들은 말을 거의 하지 않거나(어머니) 말을 아예 못하는 상태이거나(운전병 아저씨의 아내) 연락이 안 되는 상황(승무원 동료)이라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어떤 의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