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보지 못한 숲 오늘의 젊은 작가 1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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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진심>, <환한 숨>, <완벽한 생애>, <빛의 호위> 등을 읽고 조해진 작가의 작품 세계에 큰 관심이 생겼다. 이참에 조해진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어 보려고 인터넷 서점에서 예전 작품 목록을 훑다가, 민음사를 대표하는 한국 문학 시리즈 중 하나인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제1권이 조해진 작가의 작품인 걸 알게 되었다. 제목은 <아무도 보지 못한 숲>. 2013년 조해진 작가는 어떤 소설을 썼을까.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은 숲으로 연결된 세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현수'는 여섯 살 때 엄마와 헤어지고 친척 집에 맡겨졌다가, 보상금에 눈이 먼 친척이 가스폭발 사고의 사망자로 그를 신고하는 바람에 신원이 말소된 상태로 조폭에게 맡겨져 살아왔다. 폭력으로 얼룩진 그의 삶에서 유일한 낙은 같은 건물에 사는 M의 집에 몰래 들어가 휴지나 치약 같은 물건을 채우는 것이다. 


빌딩 로비의 안내원으로 일하는 '미수'는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몰래 들어와 부족한 물건을 채워놓는 사람이 아마도 예전 남자친구 '윤'일 거라고 짐작한다. 미수와 같은 빌딩에서 보안 요원으로 일하는 '윤'은 나름 괜찮은 대학을 나왔는데도 정규직은커녕 일용직을 전전하다 겨우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예전 여자친구인 미수를 아직도 좋아하지만, 자기 한 몸도 건사하기 힘든 상황이라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판타지 소설을 연상케 하는 장치도 있고 폭력에 대한 묘사도 있다는 점에서, 최근의 조해진 작가의 작품들과는 약간 결이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고독하고 쓸쓸한 삶을 살고 있는 존재들일지라도 실제로는 유형 또는 무형의 방식으로 이어져 있고 종국에는 연대와 화합이라는 단계로 나아가는 이야기라는 점은 조해진 작가의 작품답다. 


인물들이 각자의 '방'을 통해 연결된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방이라면 <완벽한 생애>와 <단순한 진심>에서도 중요한 장치로 등장하고, <빛의 호위>, <환한 숨>에 실린 단편에도 주요 배경으로 나온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의 방은, 방의 주인이 방을 비울 때에만 몰래 들어갈 수 있는 방이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누군가와 사적인 공간에서 오붓하게 있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누추한 자신의 방으로 선뜻 초대할 수 없고, 실례일까 봐 남의 방에 초대해달라고 요청할 수 없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반영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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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은 왜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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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문학과지성사 버전으로 읽은 책을 2022년 복복서가 버전으로 다시 읽었다. 2005년에는 대학교 1학년 필수 교양 수업에서 필독 도서로 선정된 책이라 어쩔 수 없이, 의무감으로 읽었는데, 이번에는 오로지 흥미가 동해서 읽었다. 예전에는 '아랑 전설'의 변형 또는 재해석 정도로 이 책을 이해했는데, 그동안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포함해) 나름 많은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일종의 메타 픽션이고, 메타 픽션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학습하게 된 덕분이다. 


중심 소재인 '아랑 전설'은 '장화홍련전'이나 '구미호전'과 비슷한 주제,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이다. 전설의 특징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라는 것. 이 때문에 시대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고 '빈틈'이 생기기 마련인데, 저자는 이 빈틈을 자세히 들여다 봄으로써 훨씬 더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쓴다. 가령 어느 판본에는 억울하게 죽은 아랑이 나비가 되어 범인을 알렸다고 하고, 또 어느 판본에는 귀신이 되어 나타난 아랑이 물건으로 범인의 이름을 알렸다고 하는데, 대체 이 차이는 왜 어떻게 발생한 걸까. 이런 것들에 대한 작가의 추론과 해석이 흥미롭다. 


책의 맨 끝에 실린 '개정판을 내며'라는 글도 좋았다. 이 책은 2005년 문학과지성사, 2010년 문학동네, 2020년 복복서가 판으로 출간된 바 있다. 저자는 복복서가 판을 내면서 기존의 판본을 검토하던 중 문학과지성사 버전에는 있는 문단이 문학동네 버전에선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단순한 실수 혹은 사고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으나, 이 문단이 사라짐으로써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작품을 이해하고 있는 독자도 분명 있을 터. 이 사건조차도 한 편의 소설 같고, <아랑은 왜?>와 이어지는 메타 픽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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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바닐라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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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주연 드라마 <안나>의 원작이 정한아 작가의 소설 <친밀한 이방인>이라는 걸 알기 전에 이 책을 샀다. 제목만 봤을 때는 술처럼 유쾌하고 바닐라처럼 달콤한 분위기의 작품들이 실려있을 것 같았는데, 책 뒷면에 실린 추천사를 읽고 내 예상과 다른 책이겠다는 생각을 아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를 닮은 사람>의 정소현 작가가 추천사를 썼는데 유쾌하고 달콤한 분위기의 책일리가(ㅋㅋ). 한편으론 정소현 작가가 추천하는 책이니 믿고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읽어보니 정소현 작가의 작품들을 연상케 하는 면이 없지 않았다. 주로 여성이 가족 내에서 겪는 외적인 갈등과 내면의 고통을 그리는 점이 그렇다.


책에는 총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대부분의 작품이 저자와 같은 기혼 유자녀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는데, 각각의 상황이나 처지는 조금씩 다르다. 가령 <잉글리시 하운드 독>의 주인공은 남편과 아내, 두 아이들로 이루어진 이른바 '정상' 가족을 이루었지만 마음속에는 자신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과 경쟁 의식이 가득 차 있다. <기진의 마음>의 주인공은 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상태인데,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조차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고양이 자세를 해주세요>의 주인공은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결혼 생활을 지속하다 별안간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의 사연을 그린다. 


표제작 <술과 바닐라>는 드라마 작가인 '나'가 아이를 출산한 후 일과 육아를 양립하기 어려워지면서 나이가 자신의 엄마뻘인 베이비 시터를 고용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어릴 적 엄마에게 버림받은 '나'는 베이비시터 이모님을 친엄마보다 가까운 존재로 인식하며 의지하게 되는데, 예상치 못한 일로 이들의 관계가 파국을 맞게 되면서 벌어지는 갈등의 양상과 심정의 변화가 깊은 충격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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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농담
이슬아 지음 / 헤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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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예술가가 좋아하는 예술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 상상만 해도 즐겁고 흥분된다. <창작과 농담>이 바로 그런 책이다. 이 책은 작가 이슬아가 흠모하는 예술가 6인을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밴드 새소년의 황소윤, 유부녀 레즈비언 작가 김규진, 뮤지션 장기하, 배우 강말금, 영화감독 김초희, 밴드 혁오의 오혁 등 인터뷰이들의 면면도 다양하다. 


인터뷰이들이 모두 유명한 분들이라서 이미 아는 내용이 또 나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인터뷰어가 이슬아라서 알게 된 것 같은 내용이 많았다. 가령 황소윤과 이슬아 모두 대안학교를 나왔지만 학교에서 두 사람은 정반대 타입의 학생이었다는 사실이라든가(황소윤이 학교에서 이슬아를 만났다면 엄청 싫어했을 것 같다고 ㅋㅋㅋ), 강말금과 김초희, 이슬아 모두 일찍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했고 덕분에 경제적 독립은 빨리 이룬 편이지만 정신적 독립은 나중이었다는 것. 애초에 인간에게 완전한 정신적 독립이란 게 가능할까. 죽을 때까지 불가능하지 않을까... 


2019년에 출간된 이슬아의 또 다른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과의 차이점도 보인다. <깨끗한 존경>의 인터뷰이- 정혜윤, 김한민, 유진목, 김원영 -는 이슬아와 마찬가지로 주로 글로써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었던 데 반해, <창작과 농담>의 인터뷰이는 음악인도 있고 영화인도 있고 대기업 마케터(김규진)도 있다. 기존의 작업을 이어가되 새로운 시도를 더하거나 영역을 확장하는 식의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점도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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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활발발 - 담대하고 총명한 여자들이 협동과 경쟁과 연대의 시간을 쌓는 곳, 어딘글방
어딘(김현아) 지음 / 위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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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양다솔, 이길보라, 이다울, 하미나 등을 배출한 글방이 있다니. 대체 이들 모두를 길러낸 스승은 누구이고 특별한 교수법이 있는지 궁금해 읽게 된 책이다. 읽어보니 저자인 어딘글방의 스승 어딘의 책이지만, 어딘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어딘글방과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다. 어딘글방의 시작은 대안학교인 '하자센터'에 '창의적 글쓰기' 수업이었다. 이 수업에 참여한 청소년들이 수업이 끝난 후에도 지속적으로 모여서 함께 글을 쓰고 합평을 하고 토론을 했다. 


대체 어떤 식으로 수업을 하기에 TV나 영화, 게임 등 재미있는 것이 널려있는 시대에, 혈기왕성한 십 대 청소년들과 이십 대 청년들이 글을 쓴다고 매주 모였을까. 저자가 묘사한 글방의 풍경을 상상하니 과연 재미있어 보인다. 저자가 주제를 제시하면 학생들은 일주일 동안 한 편의 글을 완성해 가져온다. 이 때의 주제는 일상적인 것부터 성적 취향처럼 남들에게 밝히기 힘든 것까지 다양하다. 한 사람씩 글을 읽으면 다른 사람들은 최대한 솔직하고 정확하게 피드백을 해준다. 이때 좋은 피드백을 받으려면 열심히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재미없다는 말을 안 듣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독자를 웃기고 울리는 글을 쓰는 훈련을, 그들은 이때부터 해온 것이다. 


제자들이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된 작가였고 자신은 마중물을 부었을 뿐이라고 저자는 말하지만, 제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글방에 오기 전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있고 글쓰기를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런 그들이 보기에도 어딘은 글을 너무나 잘 쓰는 작가이고, 배울 것이 많은 스승이고, 닮고 싶은 어른이었다. 스승 어딘이 안내하는 대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제자들은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지식 이상의 역사와 사회, 철학과 사상, 예술과 문학을 학습했다. 이런 가르침과 이런 배움이 가능한 장이 21세기 대한민국에 있었다니 놀랍고, 학생들이 부럽다. 


저자에게 배운 제자들이 차례로 작가 데뷔를 하고 글방을 차렸다는 사실도 신기하다. 글방도 천편일률적인 형태가 아니라 각자의 성격이나 취향에 맞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도. 아마도 저자에게 글쓰기를 배우면서 알게 된 자신의 특장점과 한계 등을 반영한 선택이 아닐까. 진정한 자기 자신을 알게 된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글쓰기는 여전히 가치 있고 충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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