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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한정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2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824/pimg_7796361643530670.jpg)
<줄리아나 도쿄> 이후 두 번째로 읽은 한정현 작가의 소설인데, 주제면 주제, 구성이면 구성, 문체면 문체 모두 마음에 쏙 들었다. 한정현 작가의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도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도 매우 좋다(<마고>도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오래오래 나의 최애 작가가 될 듯한 느낌적인 느낌...!
이야기는 두 명의 여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한 명은 사고로 과거의 기억을 잃고 현재는 일본에서 계약직 연구자로 일하고 있는 윤설영이고, 다른 한 명은 서울 강남에서 성형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구연정이다. 사는 곳도 직업도 전혀 다른 두 여성을 만나게 하는 건, 설영의 사라진 친구 '셜록'이다. 과거에 쓴 논문으로 한국에서 임용 기회가 생긴 설영은 자신과 함께 논문을 쓴 친구 셜록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설영은 셜록이 사라진 이유가 그의 성별과 성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고, 이는 설영의 연구 주제인 국가폭력, 젠더 폭력, 혐오 범죄 등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한편 연정은 서울 강남의 한복판에서 성형외과 의사로 일하며 많은 돈을 벌고 있지만, 내심 자신이 하는 일이 여성, 특히 외모를 장사 수단으로 활용하는 성매매 여성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다는 사실에 죄의식 내지는 환멸을 느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설영으로부터 몇 년 전 고객이었던 셜록에 대해 알려달라는 연락을 받고, 설영을 만나 '왓슨들'이라는 SNS 계정을 만들어 소통하면서 과거에는 자신도 성형외과 의사가 아닌 의학사 연구자의 길을 걸으려 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랬다면, 셜록과 비슷한 문제로 고통받았던 딸과의 관계가 더 나았을까 하는 생각도...
제목의 마릴린 먼로는 소설의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전달한다. 마릴린 먼로가 누구인가. 아름다운 외모로 수많은 남자들로부터 숭배 받은 영화 배우인 동시에 단지 외모가 예쁘다는 이유로 (멍청할 것이다, 남자 관계가 복잡할 것이다 등등의 조롱과 함께) 평가절하된 성적 심벌이다. 이런 식으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동경하면서도 혐오하는 모순을 작금의 성형 열풍, 여성 혐오, 성소수자 문제 등등과 연결한, 보기 드문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