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
임이랑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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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다 히카루가 "왜 사람들은 누군가와 헤어질 때 아픔을 느낄까?"라는 질문에 대해 "원래 아픔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존재가 진통제가 되어주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는 에피소드를 좋아한다.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다. 인생은 기본적으로 괴롭고 아프고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지속하는 건, 잠시라도 그 고통을 잊게 해주는 누구 또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그것이 책이었고 책이고 앞으로도 책이겠지... 


뜬금없이 그 에피소드를 떠올린 건, 주말 동안 임이랑 작가님의 신간 <불안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를 읽었기 때문이다. 첫 글에서 저자는 살면서 두 번 극단적인 선택을 할 뻔했던 경험을 고백한다. 첫 번째는 사춘기 시절의 치기 어린 생각에서였지만, 두 번째는 진심이었다. 내내 울기만 하느라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을 보내고 심리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좋은 상담 선생님을 만나서 속마음을 털어놓고, 이해하고 이해받으며 다시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상태를 회복했다. 


저자가 본격적으로 식물을 키우고 글을 쓰기 시작해 현재의 식물이랑, 임이랑 작가가 된 것은 이후의 일이다. 지금도 저자는 종종 불안을 느낀다. 하지만 예전처럼 불안 때문에 더 불안해지는 일은 없다. 저자는 불안을 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아이는 원하는 것이 충족되면 순하고 고분고분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없이 사나워지고 때로는 나를 위협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더욱 사납고 위협적인 태도로 맞서기보다 다정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달래주는 것이 낫다. 


사는 게 괴롭고 아프고 힘들 때는 그런 감정, 그런 생각을 잊게 해주는 일들을 한다. 저자는 주로 집에서 키우는 식물들의 잎을 닦아주거나 분갈이를 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다. 그걸로 안 되면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관심 있는 화가의 전시회를 보러 가거나,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나라로 떠난다. 두 번째 책이 출간되었을 때는 조금 무리해서 고급 호텔을 예약했다. '진통제' 치고는 비쌌지만 효과는 대단했겠지? 언젠가 나도 해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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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 2022-09-06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나만의 케렌시아로 떠나요 멀리는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 잘 읽었습니다!
 
소녀 연예인 이보나
한정현 지음 / 민음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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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봤을 때는 어린 나이에 데뷔한 여자 연예인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한정현 작가의 전작 <줄리아나 도쿄>만을 읽은 상태에서 제목을 봤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막상 읽어보니 짐작한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었는데, 이번에는 한정현 작가의 최근작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를 읽은 후라서 놀랍지는 않았다. 소재와 내용 면에서 연결되는 점이 많아서, 오히려 반가웠고 읽기도 편했다. 


책에는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인물이 여러 단편에 등장하기 때문에 연작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잘 보면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인물인 경우도 종종 있다. 각 단편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공간적 배경은 한국과 일본(도쿄부터 오키나와까지)을 넘나든다. 작가는 여성, 성소수자, 트랜스젠더, 이민자, 혼혈아, 재일(자이니치) 등 사회에서 다수자와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인물들의 문제를 주로 그릴 뿐 아니라, 이들이 어떤 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상상하여 보여준다. 


가령 표제작 <소녀 연예인 이보나>의 '주희'는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유학한 엘리트이지만 실은 이름난 만신(무당)의 아들로, 자신도 아버지(어머니)처럼 남성의 몸을 가졌지만 여자로 살기를 꿈꾼다. 주희는 조선으로 돌아가는 귀국선에서 우연히 해녀 출신의 '이 씨'를 만나는데, 둘은 타고난 성별을 불편하게 느끼고 다른 성별로 살기를 꿈꾼다는 점에서 동지 의식을 가지게 된다.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의 '안나'는 일제 강점기에 당시 여성으로는 드물게 간호원이라는 전문직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갖은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그런 안나가 남장을 한 여성 '경준(경아)'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한정현 작가는 당사자 혹은 관련자들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습적으로 외면받거나 무시되어온 문제들을 과감히 다룬다. 단순히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료들과 그에 기반한 연구 논문들을 바탕으로 소설의 소재를 찾고 이를 완성된 이야기로 구성하여 보여준다는 점이 인상적이고 매력적이다.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이지만,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한정현 작가의 작품을 읽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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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내가 싫었습니다 - 자기혐오를 벗어나는 7개의 스위치 자기만의 방
오카 에리 지음, 다키나미 유카리 그림, 황국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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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오카 에리는 일본의 명문대 게이오기주쿠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웹 개발 유닛을 창업했으며, 출판사 편집자, 월간지 기자 등의 직업을 거쳤다.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학력과 경력을 갖추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행복하지 않았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취재를 위해 오랫동안 피해 지역에 머물렀던 일을 계기로 점점 감정 컨트롤이 어려워졌다. 2013년 3월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이후 다시 양극성장애를 진단받았다. 이어진 퇴사와 이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결국 그는 쓰레기장 같은 집에 하루 종일 처박혀 있는 히키코모리 신세가 되었다. 


그랬던 저자가 2015년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계기로 자신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동일본 대지진 취재 당시 만났던 '대장'이라는 인물로, 그는 저자의 상태를 듣더니 "아주 병 걸린 사람들이 하는 건 다 하네."라며 쓴소리를 했다. 그 말을 들은 저자는 병에 걸려서 병에 걸린 사람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병에 걸린 사람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병에 걸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의 특징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잘 웃는다, 피부에 윤기가 흐른다, 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몸을 잘 씻고 청결함을 유지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등등... 


책에는 저자가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 위해 실천한 7단계의 노력이 나온다. 청소를 한다, 옷차림을 바꾼다, 말버릇을 바꾼다, 과거를 좋은 기억으로 바꾼다, 웃는 연습을 한다, 근력 운동을 한다, 누군가를 도와준다 등이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강압적이고 엄격한 훈육을 받은 결과, 머릿속에 항상 자신을 지적하고 훈계하는 '경찰관'이 들어앉아 있는 기분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에 맞서 저자는 자신의 행동을 변호하고 성취를 칭찬하는 '변호사'를 상상하는 훈련을 하는데, 이것이 무기력과 우울증 극복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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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 영화와 요리가 만드는 연결의 순간들
이은선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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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남이 해준 음식을 그저 먹기만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먹고 싶은 음식을 직접 만들어봐야 흡족하고 나아가 그 음식을 남에게 먹일 때 비로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를 쓴 이은선 작가는 후자다. 그의 본업은 영화 전문기자인데, 영화에 음식이 나오면 전보다 더 집중하게 되고, 그 음식이 먹고 싶어지면 어떻게든 먹어야 직성이 풀리고, 집에서 직접 그 음식을 만들어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초대해 대접하기도 한다고. (이런 사람이 가까운 지인이면 너무 좋겠다 ㅎㅎ) 


책에는 저자가 사랑하는 음식에 관한 영화, 영화 속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줄리 앤 줄리아>, <바베트의 만찬>, <리틀 포레스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다> 등 음식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영화들은 물론이고, <무뢰한>, <봄날은 간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등 음식에 관한 영화는 아니지만 음식이 영화 속 인물들의 관계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소재로 쓰인 작품들을 다수 소개한다. 


프리랜서로서 팬데믹 시기를 보내며 경험한 정신적인 불안과 위기, 신입 기자 시절 인터뷰를 하면서 겪은 어려움, 고인이 된 친구 박지선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낸 글도 있다. 이 책을 통해 좋은 영화, 맛있는 음식, 그리고 마음이 따뜻한, 좋아하는 대상에 정성을 다하는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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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기 좋은 날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9
오한기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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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사람들끼리 친해지는 걸까, 친한 사람들끼리 닮아가는 걸까. 오한기 작가의 소설 <산책하기 좋은 날>(이하 <산책>)을 읽다가 정지돈 작가의 산문집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이하 <당신>)이 떠올라서 든 생각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오한기 작가와 정지돈 작가는 친하다. 서로의 신작이 나오면 홍보 행사도 같이 하고, 사적으로도 자주 만나서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신다고. 그래서일까. <산책>은 소설이고 <당신>은 산문이라는 것이 다를 뿐, 두 책은 한 남자가 서울 시내 이곳저곳을 산책하면서 생각한 것들을 담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아마 두 작가 모두 산책을 좋아하거나 산책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산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영화사 기획자이자 소설가인 '오한기'는 팬데믹의 여파로 재택근무를 하게 된다. 전화로만 연락 가능한 팀장은 여름을 대비해 공포영화를 기획하라고 하지만 오한기는 영 내키지 않는다. 결국 오한기는 집과 작업실로 이용하는 카페 주변을 산책하기 시작한다. 목적 없이 시작한 산책은 중랑구에서 광진구, 강남구, 송파구 등으로 범위가 확장되고, 이 과정에서 오한기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고 가는 사유에 빠진다. 급기야 '나'를 찾기 위해 '나'가 과거에 살았던 집으로 찾아가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런을 만나고 그의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작중 화자의 이름과 직업(소설가)이 작가와 같아서, 처음에는 이 작품이 소설인지 산문인지 알쏭달쏭했다. 크리스토퍼 놀런이 등장하는 대목부터 소설이라고 확신했고(설마 실제일까?) 수많은 영화 감독 중에 왜 하필 크리스토퍼 놀런을 택했는지가 궁금했는데, 다행히 작품 해설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당신>에 오한기 작가가 언급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책>에도 정지돈 작가가 언급되며, 심지어 그 에피소드는 인상이 퍽 강렬하다. 과연 정지돈 작가가 근무하는 서점에 있는 오한기 작가의 책에 '오한기 XXX'라고 쓴 자는 누구일까. 다음 작품에선 이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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