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루의 밤 시루 시리즈
권서영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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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서점에서 어린이책 서가를 구경하다 <시루와 커다란 케이크>라는 책을 발견했다. 서점에서 나온 후에도 계속 그 책이 생각나서 책 정보를 검색하니 2019년에 출간된 <시루의 밤>이라는 시루 시리즈 첫 책이 있었다. 곧바로 <시루의 밤>과 <시루와 커다란 케이크>를 모두 구입했고, 이 책들은 나의 최애 그림책이 되었다. 시루 '시리즈'인데 왜 아직 두 권뿐일까. 어서 후속편이 나왔으면 좋겠고 캐릭터 상품도 나왔으면 좋겠다(시루 인형 원해요!!). 


주인공 시루는 하얗고 작은 떡 반죽이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디저트가 되고 싶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달콤한 시럽이나 크림도 없고 화려한 초콜릿 조각도 없어서 매일 가게에서 쫓겨나기 일쑤다. <시루의 밤>은 그런 시루가 꾸는 꿈을 그린다. 언제나처럼 가게에서 쫓겨나 다리 밑 자기만의 공간으로 간 시루는 밤하늘의 파티에 초대된다. 밤하늘의 달과 별처럼 시루를 구별 없이 환대해 주고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존재가 시루에게도 있었으면. 귀엽고 사랑스러운 책이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늘 마음이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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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빙하 같지만 그래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 소설가가 책상에서 하는 일
한은형 지음 / 이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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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은형의 독서 에세이집이다. '인물 수집'이 취미라고 말하는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그동안 읽은 다양한 외국 소설 속 인상적인 여성 캐릭터들을 소개한다. 언급되는 소설은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제인 오스틴 <엠마>, 이언 매큐언 <속죄>,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등 근현대의 세계 명작들이다. 


신기한 건, 저자가 소개하는 작품들을 대부분 읽었고 저자가 거론하는 여성 캐릭터들을 대부분 알고 있는데도, 저자의 시선을 통해 작품을 다시 읽고 인물들을 다시 바라보니 전혀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가령 <위대한 개츠비>에 이렇게 매력적인 여성들이 등장했던가. 그동안 <위대한 개츠비>를 여러 번 읽고 영화로도 봤지만, 개츠비와 닉에게만 주목했지 데이지와 베이커에 대해서는 한 번도 주목한 적이 없다(데이지는 워낙 중요한 인물이라서 이름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지만 베이커는 존재조차 잊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남성 캐릭터들만 보느라 중요성을 축소해서 인식하거나 존재조차 잊어버린 여성 캐릭터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을까. 스탕달 <적과 흑>, 귀스타브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등도 읽을 때는 평범한(지루한) 연애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저자의 시선으로 다시 보니 문제적 인물이 등장하는 전복적인 작품으로 여겨진다. 이 책을 가이드북 삼아 이 책에 나온 작품들을 하나씩 읽으며 고전 명작들을 섭렵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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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니? 세기말 키드 1999
이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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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어른들이 '유행은 돌고 돈다'라는 말을 하면 정말 그럴까 싶었는데, 요즘 십 대들을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짧은 상의와 펑퍼짐한 바지, 허리까지 길게 늘인 배낭과 색색의 키링, 스티커 사진과 흡사한 인생네컷, 다이어리 꾸미기 등 많은 것이 내가 그들의 나이였던 시절에 유행했던 것이라서 깜짝 깜짝 놀라게 된다. (속설에 의하면 유행은 20년 주기로 돈다는데 내 나이가 3X이니 그럴 만도... ㅠㅠ)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한 건 요즘 내가 '뉴진스'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며(사람들이 뉴진스 보면 S.E.S, SPEED, 스파이스 걸즈 생각난다고 하는데, 그 세 그룹 다 좋아했던 사람이 바로 나...), 뉴진스를 보면서 세기말(& 21세기 초) 감성에 대해 생각하다 책장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바로 이다 님의 <기억나니? 세기말 키드 1999>. 


이 책에는 1982년생인 저자가 누구를 좋아하고 무엇에 열광하며 어린이, 청소년 시절을 보냈는지가 자세히 나온다. 종이인형, 문방구, 미미와 쥬쥬, 만화 대여점, 슬램덩크, 짱, 서태지와 아이들, H.O.T., 젝스키스, 스티커 사진, 육공 다이어리, 분신사바 등등 저자와 비슷한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그와 관련된 추억을 하나 이상 떠올릴 수 있는 키워드들이 잔뜩 나온다. 개인적으로 '사랑의 빵' 저금통과 '따조'가 나오는 대목에서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놀랐다(작가님 이걸 기억하시다니...!).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젝키 덕질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자보다 어리지만 내가 다닌 학교에서도 젝키 팬은 소수파였고 단지 젝키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H.O.T. 팬들에게 불링을 당했던(야만의 시대...) 기억이 있어서 이런 문화는 전국 공통이었나 싶었다(참고로 전 신화팬...). 그때는 학교 주변에 문방구가 몇 개씩 있었고, 문방구에서 연예인 사진을 팔기도 했다(초상권 개념이 없던 시절...). 문방구에서 팔던 것 중에 '미스터 케이(MR.K)라는 잡지도 있었는데 기억하실지... 


작가님 말씀대로 이 시절에는 지금과 달리 이미지가 귀해서 잡지 한 장, 만화책 한 장이 그렇게 소중했다. 대여점에서 만화책 빌리면 중요한 장면을 누가 잘라서 못 본 적도 많았고, 잡지 사서 예쁜 사진이나 화보는 따로 갈무리 해두었다가 좋아하는 친구에게 편지를 쓸 때 활용하기도 했다. 책에 스포트 리플레이(최창민!)가 나와서 검색해 봤는데 당시 화제가 되었던 일본인 모델이 지금의 하야미 모코미치구나... 비슷한 시기에 기무라 타쿠야 리바이스 광고도 화제가 되지 않았던가?ㅎㅎ 유행이 돌아올 때마다 추억도 돌아온다고 생각하니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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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멀쩡하던 행거가 무너졌다
이혜림 지음 / 라곰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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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 지 올해로 십 년 정도 되었지만,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머리로는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의 방처럼 100개 이하의 물건으로 사는 삶을 그리지만, 지금 내 방에는 책만 100권, 의류만 100벌(속옷, 양말, 모자, 가방 등등 포함)이 넘는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의 저자 곤도 마리에의 말대로 '설레는 것만 빼고 다 버렸'지만, 인생은 계속되고 설레는 것이 너무 많아... ㅠㅠ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이혜림의 <어느 날 멀쩡하던 행거가 무너졌다>. 맥시멀리스트였던 저자는 어느 날 멀쩡하던 행거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 지나치게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필요 없는 물건, 더 이상 설레지 않는 물건 등등을 열심히 버렸고, 그 결과 사사키 후미오처럼 방을 거의 텅 빈 상태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시피 한 방에서 저자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사용하면 편한 물건이 없으니 불편했고, 단조로운 디자인의 무채색 의상만 입으니 지겨웠다. 


극단적 채우기와 극단적 비우기를 모두 경험하면서, 저자는 '무엇을 비울까'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까'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비우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채우기 위해서이다. 저자는 불편한 것, 원치 않는 것, 낭비되는 것을 열심히 버렸고, 덕분에 얻은 공간을 새로운 물건으로 채우는 대신 남편과 세계 여행을 떠났다. 7리터 배낭을 매고 여행하면서 사는 데 필요한 것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은 저자는,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최소한의 물건만 소유하며 원하는 것은 모두 해보는 삶을 살고 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며 저자에게 생긴 변화는 소유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전의 저자는 무엇이든 시작하면 끝을 보고, 완벽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지금의 저자는 극단이 아닌 자신의 몸과 마음이 모두 편한 균형 상태를 추구한다. 완벽한 미니멀리스트가 되려고 애쓰기보다는 적당히 비우고 적당히 채우며 살아간다. 불필요한 소비와 소유의 원인이 되는 불필요한 관계, 욕망, 집착, 불안 등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미니멀 라이프의 본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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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고양이 서꽁치 문지아이들 170
이경혜 지음, 이은경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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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검은 고양이 섬이라는 뜻의 흑묘도. 다섯 남매 고양이 중 맏이로 태어난 꽁치는 어느 날 엄마로부터 엄청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엄마의 집안은 대대로 한 세대에 한 마리씩 글을 읽을 줄 아는 고양이가 나오는데, 엄마 대에서는 글을 읽을 줄 아는 고양이가 엄마였고, 엄마의 자식 대에서는 꽁치가 바로 그 고양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꽁치는 그 날 이후로 글 읽는 재미에 푹 빠진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간판이나 포스터 등에 적힌 글을 읽다가, 나중에는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신이 책을 읽을 줄 아는 고양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들키면 큰일이 날 게 분명하다. 책을 읽고 싶은 욕망과 책 읽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던 꽁치는 결국 고향을 떠나 더 많은 책이 있는(그러나 자신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곳으로 떠난다. 


고향을 떠난 꽁치는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책을 읽지 않고 고향에 계속 있었어도 충분히 행복했을 수도 있지만, 책을 읽지 않고 고향에 계속 있었다면 바로 그 장소, 바로 그 인연, 바로 그 경험을 하지는 못했을 터. 책으로 달라진 인생, 아니 묘생을 알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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