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숲의 아이들
손보미 지음 / 안온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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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 작가의 소설 하면 <디어 랄프 로렌>이 떠오른다.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갈마드는 식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라서,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나중에는 적응하고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손보미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사라진 숲의 아이들>도 비슷한 구성을 지녔다. 처음에는 사회파 추리 소설이라고 해서 중심에 놓인 살인 사건이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주인공인 채유형과 진경언의 개인사를 설명하는 데 할애된 부분도 상당히 많다. 정통 사회파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채유형이라는 인물이 우연히 접하게 된 살인 사건을 통해 그동안 외면해온 문제들과 마주하고 끝내 화해하게 되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이야기는 채유형이 대학 후배의 소개로 한 인터넷 방송국의 PD가 되면서 시작된다. 유복한 가정의 외동딸로 부모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자랐지만, 취업에 있어서도 학업에 있어서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유형은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여태 숨기고 있는 양부모와, 고등학교 때 받은 익명의 우편물을 통해 알게 된 친부의 정체- 친부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이며 파월 노동자와 참전 군인의 밀린 월급 지급을 요구하는 시위에서 방화를 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다 -가 채유형으로 하여금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고 느낀다. 


그런 채유형이 새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현직 형사인 진경언을 만난다. 채유형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건은 10대 남학생이 동갑인 여학생과 2살 연상의 남자를 살해한 사건이다. 세간에선 이 사건을 문제아의 일탈 행동으로 보고 있지만, 채유형은 진경언과 함께 사건 기록을 살피고 관련 인물들을 만나면서 이 사건이 그런 단순한 사건이 아님을 직감한다. 이들 모두가 '을지로의 숲'이라는 장소를 알고 있고 이들의 배후에 한 남자가 있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두 사람이 협력하여 청소년 범죄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버디물이자 사회파 추리 소설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이 속하는 장르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는 이 소설의 전체를 설명했다고 하기 어렵다. 이 소설은 근간이 되는 살인 사건 외에도 채유형과 진경언 각자의 개인사를 중요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특히 채유형은 친부가 살인자이며, 그런 살인자에게조차 버림받은 자식이라는 사실 때문에 오랫동안 괴로움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그런 자신조차도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사람일 수 있고, 반대로 자신이 부러워한 사람이 남모를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 단계 성장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채유형과 진경언이 만난 '숲의 아이들'은 한 남자로부터 경제적, 정서적 지원을 받는 대가로 그의 살인 병기로서 행동했다. 이는 외화 벌이와 애국 행위라는 명목으로 이국에서 전쟁을 치러야 했던 수많은 군인(+노동자)들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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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 재욱, 재훈 (리커버 에디션)
정세랑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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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의 2014년작 <재인, 재욱, 재훈>은 '재'자 돌림 삼 남매가 우연히 작은 초능력을 가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소설이다. 대전의 연구 단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첫째 재인, 대기업에서 플랜트 짓는 일을 하는 둘째 재욱, 고등학생인 막내 재훈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인물들이다. 바람기 많은 아버지와 우유부단한 어머니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것도, (재인, 재욱의 경우) 어릴 때 공부를 잘해서 수재 소리도 들었지만 진학-취업 루트를 타면서 평범한 직장인이 된 것도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친숙한 모습이다. 


그런 세 남매가 어느 날 어떤 일을 계기로 작은 초능력을 가지게 된다. 재인은 손톱이 유난히 단단해지고, 재욱은 크고 작은 위험을 미리 감지할 수 있게 되고, 재훈은 엘리베이터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게 된다. 영화 속 슈퍼히어로가 가진 능력에 비하면 별것 아닌 능력이지만, 이들은 각자의 직업과 상황을 활용해 능력을 발휘,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적인 일을 해낸다. 일종의 군상극이라는 점에서 정세랑 작가의 대표작 <피프티 피플>이 떠올랐고, 평범한 소시민이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라는 점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이 연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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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밤하늘 에디션)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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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소재와 장르도 김영하 작가가 손을 대면 색다른 느낌이 든다. <아랑은 왜>는 역사추리소설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스토리텔링의 원리와 기법에 관해 이야기하는 듯 보였고,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연쇄살인범이 나오는 스릴러 소설처럼 보이지만 기억의 모호성과 불완전성에 대한 은유로도 읽혔다. 신작 <작별인사>도 예외는 아니다. 설정만 보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를 연상케 하는 SF 소설 같지만(실제로도 그렇지만), 막상 읽어보니 소재와 장르는 거들 뿐, 실제로는 (김영하 작가의 소설이 으레 그렇듯이) (온갖 시련과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에 관한 성찰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아버지,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쾌적한 환경에서 평화롭게 살아온 소년 철이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아버지와 같은 인간이 아닌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처음에 철이는 자신이 인간이 아닐 리가 없다며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에게 진실을 알리지 않은 아버지에게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자신이 아버지의 말을 좀 더 잘 들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자책하기도 하고, 이제 더는 예전과 같은 환경에서 살 수 없다는 사실에 우울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식의 감정과 상태 변화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애도의 5단계(부인, 분노, 협상, 우울, 수용)를 따르는 듯 보이고, 이는 역으로 철이가 (휴머노이드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인간다운지, 인간인지를 보여준다. 


"나고 자라고 죽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라는 존재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까를 고민했다. 선이가 죽고 혼자 남겨졌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달마처럼 순수한 의식으로 영생하게 될까? 나의 마음은 점점 반대로 기울었다. 내가 하나의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에는 끝이 있어야 할 것이다." (286쪽)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인 '노화'와 '죽음'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된 휴머노이드 철이는, 오히려 자신이 인간처럼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노화와 죽음을 갈망한다. 늙음보다는 젊음을, 죽음보다는 삶을 택할 대부분의 인간들과는 다른 생각이라서 신선했고, 타고난 조건이나 정해진 경로와는 다른 선택을 희구한다는 점에서 이 또한 지극히 인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고난 조건대로 살고 정해진 경로만을 걷는 것은 인간 아닌 로봇의 일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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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개의 힘 1~2 - 전2권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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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각본을 집필한 김은희 작가가 한 방송에서 '인생 책'으로 소개했다고 해서 구입한 책이다. 구입하고 보니 1,2권으로 되어 있는 데다가 주요 인물 및 단체 목록이 인쇄된 종이가 따로 제공되어서 완독하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릴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그렇지 않았다.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의 캐릭터가 강렬하고 매력적이며, 이야기 전개가 빠르고 예측을 불허해서 예상보다 훨씬 빨리 읽었다(과연 김은희 작가님이 추천하실 만하다). 


소설은 미국 법무부 마약 수사 전담반 요원인 아트 켈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샌디에이고의 난민촌에서 자란 아트는 어려서부터 마약 중독자들이 어떤 식으로 자기 삶을 망치고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지를 똑똑히 봐왔다. 그래서 아트는 CIA를 거쳐서 마약 수사 전담반에 들어갔을 때 더 이상 미국 땅에서 마약이 거래되는 일은 없게 할 거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업무를 시작하고 보니 현실은 그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알고 보니 미국의 정치인들은 중남미 공산화를 견제한다는 명목으로 마약 조직들의 뒤를 봐주고 있었고, 그들이 보기에 아트는 현실을 전혀 모르고 날뛰는 하룻강아지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 놓인 아트가 어떤 식으로 마약 단속반에서 자신의 야망을 이뤄가는지를 그리는 한편, 멕시코의 마약 조직 보스 아단, 뉴욕 출신의 킬러 칼란, 고급 매춘부 노라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각각의 서사도 재미있지만, 각자 다른 출신과 배경을 지닌 인물들이 교차되는 장면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역사에서 정치와 마약, 마피아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것이 중남미의 역사 및 정치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드라마로 매끄럽게 풀어낸 솜씨가 훌륭하다.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된다면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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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모네이드 할머니
현이랑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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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추리 소설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가 창조한 탐정 '미스 마플(제인 마플)'은 평범한 할머니의 모습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으면서 사건 현장을 조사하고 용의자들을 심문하며 범인을 찾아낸다. 현이랑 작가의 소설 <레모네이드 할머니>의 주인공도 바로 그런 할머니 탐정이다. 소설의 배경은 거액의 돈을 낸 노인들만 입소할 수 있는 최고급 치매 노인 요양병원이다. 주인공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요양병원의 땅 주인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괴팍한 성격의 초기 치매 환자다. 


'모든 일이 매끄럽게 처리되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이곳에서 어느 날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상주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노인인 이곳에서 갓 태어난 아기의 시체가 비닐에 싸여 버려진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병원 측은 병원의 이미지가 훼손될 것을 염려해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는데, 우연히 그 현장을 목격한 레모네이드 할머니가 범인 찾기에 나선다. 때마침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는 엄마를 보러 온 여섯 살 소년 '꼬마'가 할머니의 범인 찾기에 합세한다. 과연 할머니와 꼬마는 무사히 범인을 찾아낼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초기 치매 환자인 할머니와 어린 소년이 콤비를 이루어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 소설인 한편, 비단 요양병원뿐 아니라 한국 사회 곳곳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고발, 폭로하는 성격의 사회 소설이기도 하다. 같은 노인이라도 돈이 있어야 대접받고, 돈 있으면 돈만 믿고 사람들한테 갑질하고, 갑질 당해도 돈 때문에 항의 한 번 못하고, 항의하면 직장에서 쫓겨나고, 겉으로는 착한 척 깨끗한 척하는 사람이 뒤로는 아랫사람들에게 갑질하고 범죄와도 연결되어 있는 모습까지 한국 사회를 완벽하게 재현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서 오랫동안 뒷맛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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