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보와 앤 - 아무도 오지 않는 도서관의 두 로봇 보름달문고 89
어윤정 지음, 해마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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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에게 도서관은 천국과도 같았다. 그 때도 나는 지금처럼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서 조용히 책 읽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집보다 책이 많고 집에 없는 책이 많은 도서관은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편안한 장소였다. 갑자기 도서관을 떠올린 건, 얼마 전에 읽은 제2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리보와 앤>의 배경이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의 안내 로봇 리보와 이야기 로봇 앤은 어느 날 안내 방송이 나온 후 사람들이 전부 밖으로 나가고 사라져버린 도서관에 덩그러니 남는다. 리보와 앤은 이튿 날도, 그 다음 날도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갑자기 도서관을 떠난 이유. 그것은 '플루비아'라는 바이러스의 전파 때문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리보와 앤은 로봇으로서 담당해온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이 상황이 난처할 뿐이다. 


난처한 건 리보와 앤뿐만이 아니다. 바이러스가 전파되기 전까지 도서관을 이용했던 사람들, 그중에서도 도서관을 집, 학교 다음으로 즐겨 찾았던 도현이와 같은 아이들에게는 이 상황이 더없이 갑갑하고 답답하다. 어른이라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대신 직접 사 읽거나 전자책을 읽는 방법도 있지만, 어린이는 그러기가 힘들다. 어른이라면 도서관 말고 다른 장소에서 친구를 만날 수도 있지만, 도현이처럼 도서관에 있는 로봇 리보가 친구인 경우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아이답게 스마트 기기를 잘 다루는 도현은 도서관에 가지 않아도 리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덕분에 리보와 앤은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이 도서관에 올 수 없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그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고, 그들은 결코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란 걸 알게 된다. 그러나 만나고 싶은 사람과 직접 만나는 기쁨에는 비할 수 없으므로, 계속해서 사람들이 도서관에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리보와 앤. 과연 그들은 다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팬데믹 기간 동안 휴교, 또래 아이들과의 만남 불가 등의 이유로 어린이, 청소년들이 겪은 정신적 피해가 어른들이 겪은 피해의 2배 이상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도서관 이용에 있어서도 어른들보다 어린이들이 더 큰 상실감을 느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들과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던 어른들의 마음까지 위로해 주는 다정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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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을 털어라! : 역사편 편의점을 털어라!
이재은 지음, 박은애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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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동네의 편의점은 초등학교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서, 어쩌다 하교 시간에 들르면 편의점 내부가 초등학생들로 꽉 차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내가 어릴 때는 학교 근처는 물론이고 동네에도 편의점이 없었기 때문에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때는 편의점 대신 슈퍼나 문방구에 들렀으니, 장소만 달라졌을 뿐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 같기도 하다. 


갑자기 편의점 이야기를 꺼낸 건, 제목에 '편의점'이 들어가는 책, <편의점을 털어라! 역사 편>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쓴 이재은 작가는 요즘 어린이들이 집, 학교, 학원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들르는 곳이 편의점이라는 데 착안해 이 책을 구상했다고 한다. 책을 읽어보니 과연 편의점을 무대로 펼쳐지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고, 공부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지식까지 얻을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편의점 덕후인 '나'는 어느 날 학교 근처에 새로 생긴 HS 편의점에 들어간다. 역사 덕후이기도 한 사덕훈 점장이 운영하는 이 편의점은, 필요한 상품을 주문한 후 점장이 내는 퀴즈를 맞히면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다. 필요한 게 없으면 들어올 수 없고, 일단 주문하면 점장이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괴상한 규칙이 있는 곳이지만 어쩐지 '나'는 자꾸만 HS 편의점에 가게 되고, HS 편의점에서 컵라면, 피자, 사탕, 커피, 우유, 빵, 아이스크림, 탄산음료, 초콜릿 등을 먹으며 각각의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도 듣고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도 한다. 


편의점에서 파는 음식 이야기가 어떻게 역사 공부로 이어지는지 궁금한 독자를 위해 예를 들어볼까. 편의점 인기 상품 중 하나인 라면은 원래 중국에서 '납면'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해 일본으로 건너가 우리가 아는 라면이 되었다. 중국의 납면이 일본으로 건너간 계기가 된 사건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며, 최초의 컵라면을 개발한 인물은 안도 모모후쿠다. 어린이는 물론 어른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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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걷으면 빛
성해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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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나 평론가가 추천하는 책을 읽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 책은 조해진 작가님이 추천하셔서 읽게 되었는데 기대한 것보다 훨씬 좋아서 깜짝 놀랐고(한국에는 좋은 작가들이 정말 많다),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부러워서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은, 이 책이 성해나 작가의 첫 소설집이라서 신간이 나오지 않는 한 더 이상 읽을거리가 없다는 것. 작가님 부디 더 많이 써주세요. 열심히 사 읽겠습니다(신간 알리미 신청했어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난 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었다. 머리로는 약자, 소수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마음으로도 장애를 가진 조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츠네오. 하지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조차 힘겨운데 장애를 가진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살 생각을 하니 상상만으로도 큰 부담이 되어서 이별을 택한다. 나는 이 영화를 봤을 때 이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이란 남이 총 맞은 것보다 내가 모기 물린 게 더 아프고 괴로운 존재니까. 


이 책에는 츠네오와 조제를 떠올리게 만드는 관계들이 여럿 나온다. 이 책의 '츠네오'들은 청각장애인 할머니를 둔 애인, 레즈비언인 노년의 여성, 몽골에서 온 먼 친척, 농민과 청년이 어우러지는 공동체를 꿈꾸는 삼촌, 위안부 피해자인 집주인 할머니, 공장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에 앞장서는 언니 등 다양한 얼굴을 한 '조제'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헌신에 감동한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에 그들의 편에 서지 않고 등을 돌리거나 침묵하는데, 이는 남을 걱정하기에는 우선 자기 자신의 삶이 버거워서다. 모기 물린 자리가 가려운데 총까지 맞을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츠네오들은 각자의 조제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 자신의 비겁한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하지 않고, 끊임없이 반성하고 속죄하면서 산다. 대표적인 예가 자전소설로도 읽히는 <김일성이 죽던 해>이다. 글쓰기가 저항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언니. 그 언니의 이야기를 작가인 딸에게 들려주는 엄마. 그러한 엄마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작가. 이런 식으로 전달되고 전파되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세상에는 조제도 없고 츠네오도 없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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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 워크숍 오늘의 젊은 작가 36
박지영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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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란 무엇일까. 추천사를 쓴 정이현 작가님의 표현대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고독사를 의미하는 정확한 용어는 '무연고 사망'일 것이다. 무연고 사망이 아니더라도, 그러니까 천수를 누린 노인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료적으로 적절한 케어를 받으며 편안한 상태로 죽음을 맞는다 해도, 죽음은 오로지 혼자서 맞게 되고 겪게 되는 일이라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 고독사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사실상 고독사 예정자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박지영 작가의 <고독사 워크숍>은 어느 날 우연히 '고독사 워크숍'에 초대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고독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집이다. 초대된 사람들의 공통점은 일상이 무료하거나 장래가 불안하거나 불행한 일을 겪었거나 주변에 의지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곧 죽어도 아쉽지 않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초대장을 받고 고독사를 각오한 이들은 초대장에 인쇄된 QR코드를 통해 접속한 웹페이지에 각자가 얼마나 고독한지를 인증하는 영상을 찍어서 업로드하는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나만이 고독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는 깨달음과 아무리 고독해도 계속해서 살아가야겠다는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 


워크숍 참가자들이 자신이 얼마나 고독한지를 인증하기 위해 하는 일들(도서관의 책들에 그어진 밑줄을 포스트잇에 옮겨 적기, 매일 조금씩 더 긴 의자를 뛰어넘기, 사라진 아이스크림 맛의 부활을 요청하는 메일 쓰기 등)이 처음 볼 때는 엉뚱해 보이기도 하고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 하는 일들(필사하기, 운동하기, 메일 쓰기)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니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평소에 하는 일들이 고독사 워크숍 참가자들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는 것. 그리고 모든 죽음이 필연적으로 고독사라는 것.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이미 삶이라는 이름의 고독사 워크숍에 참가한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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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은 노래한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7
도리스 레싱 지음, 이태동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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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임신, 출산, 양육으로 인해 여자의 인생이 무너지는 이야기를 웬만하면 읽지 않는 편인데(읽으면 화만 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게 된 이 책은(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첫 장을 펼쳤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끝까지 다 읽어버림) 여러모로 생각할 점이 많았다. 


주인공 메리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나약한 어머니 슬하에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난했기 때문에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하고 일찍 취업을 했으나, 메리로서는 빨리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힘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좋았다. 그렇게 삼십 대가 되도록 일하는 여성으로서 주체적으로 즐겁게 살았던 메리.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이 자신에 대해 '저 나이 먹도록 결혼도 안 하고 제정신이냐'라는 투로 험담을 하는 걸 엿듣고 성급히 결혼을 결심한다. 


문제는 메리의 남편 리처드가 메리와 성향이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시골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메리는 도시 생활을 동경했고, 가난을 혐오했으며, 남들 눈을 많이 의식하고 성취 지향적이었다. 반면 리처드는 도시 생활을 혐오했고, 다소 가난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이들의 성향 차이는 점점 더 큰 문제를 야기하고, 결국 이들의 결혼 생활은 메리의 죽음이라는 비참한 결말을 맺게 된다. (소설 초반에 나오므로 스포일러 아님) 


애초에 메리가 이 남자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메리가 (고작 친구들의 말 때문에 결혼이라는 중대사를 결정할 만큼) 귀가 얇고 (시골에서 가난하게 사는 게 싫어서 도시로 왔으면서 시골에서 가난하게 사는 남자와 결혼할 만큼) 생각이 짧은 사람이라서 어떤 사람과 결혼해도 불행해졌을 것 같기도 하다. (가장 큰 문제는 남이야 결혼을 하든 말든 상관할 일이 아닌데 입방아를 찧어댄 친구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데 이 소설에서 메리의 불행한 결혼 생활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건, (아무리 가난해도) 농장주의 아내인 백인 여성인 메리가 농장에 고용된 흑인 하인들과 겪는 갈등이다. 같은 백인이지만, 리처드는 경제적 필요에 의해 자신이 직접 고용한 흑인 하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반면, 메리는 흑인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도 보지 않고 심지어 그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기까지 한다. 여성이라면 응당 어떠해야 한다는 편견(미소지니)의 희생자(피해자)인 메리가 인종 갈등의 가해자가 되는 지점이 이 소설의 백미다. 


나아가 이 소설은 메리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가난한 백인 가정(+여기에 속한 여성, 흑인들까지)의 몰락을 그림으로써, 여성 혐오와 인종 혐오, 가난 혐오 등의 온갖 혐오들을 통해 종국에는 성별과 인종, 부의 위계 서열 최상단에 위치해 있는 부유한 백인 남성들이 손쉽게 잠재적 경쟁자들을 배제하거나 탈락시키고 자본과 명예를 차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마도 이것이 1950년에 발표된 이 소설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읽히고 회자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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