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사랑 나쁜 사랑 3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폴리 4부작'으로 유명한 엘레나 페란테의 또 다른 시리즈 '나쁜 사랑 3부작' 중 하나다.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을 무척 좋아하지만 소설의 내용이 워낙 지독해서 정신적으로 감당할 여력이 있을 때만 읽는 편인데, '나쁜 사랑 3부작'은 제목도 그렇고 지독한 내용일 것 같은 느낌이 심하게 나서 읽기를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몇 달 전 <잃어버린 사랑>이 원작인 올리비아 콜먼 주연의 영화 <로스트 도터>를 보고 원작이 궁금해져서 읽게 되었다. 


소설의 내용은 영화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교문학 교수인 레다는 여름을 맞아 그리스의 해변으로 혼자서 휴가를 떠난다. 그곳에서 레다는 유난히 시끄러운 대가족을 마주치게 되고, 그중 어린 며느리로 보이는 니나라는 젊은 여인에게 눈길을 빼앗긴다. 니나에게는 어린 딸 엘레나가 있는데, 미아가 된 엘레나를 레다가 찾아주면서 니나 역시 레다에게 호감을 가진다. 하지만 니나는 미아가 된 동안 잃어버린 인형을 찾아달라고 보채는 엘레나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그 인형은 사실 레다가 가지고 있다... 


레다가 엘레나의 인형을 숨긴 이유를 영화에서도 소설에서도 정확히 밝히지는 않는다. 다만 일찍 결혼해 두 딸의 엄마가 되었고 그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독박 육아를 해야 했던 레다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통해 레다의 심정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두 딸의 엄마로 살기보다 자기 자신으로 살고 싶었던 여자는 죄인일까. 결국 두 딸의 곁으로 돌아왔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훌륭히 엄마 '역할'을 해냈지만 스스로 좋은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는 여자는 정말 모성애가 없는 사람일까. 어쩌면 자식에 대해 한없는 사랑을 주는 것이 모성애가 아니라, 그러지 못하는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모성애의 본질 또는 원형이 아닐까. 


영화를 먼저 보기도 했지만, 영화가 소설보다 레다의 기행이나 일탈을 더욱 길고 자세하게 묘사해서 훨씬 충격적이다(엘레나 페란테의 소설보다 더 지독한 영화를 만드는 메기 질렌할 당신은...!). 소설은 결말이 도입부와 연결되어 결말 이후의 상황을 추측할 수 있는 힌트를 남긴 반면, 영화는 그렇지 않은 점도 만든 이의 의도를 상상하게 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ora 2023-06-28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면서 너무 머리 아팠던 영화입니다
 
페퍼민트 창비청소년문학 112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온유 작가의 첫 번째 장편 소설 <유원>도 너무 좋았는데 두 번째 장편 소설 <페퍼민트>도 너무 좋았다. 세 번째 장편 소설 <경우 없는 세계>가 책장에 꽂혀 있는데, 읽고 있는 책이 많아서 당장은 못 읽지만 조만간 읽고 싶고, 읽게 될 날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페퍼민트>의 설정은 <유원>의 그것 못지 않게 지독하다. 주인공은 열아홉 살 고등학생 시안. 6년 전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는 엄마를 간병하느라 학교 생활도 제대로 못 한다. 그런 시안이 어느 날 우연히 해원의 오빠 해일과 마주친다. 6년 전까지 시안과 해일, 해원은 이웃 사이지만 친남매처럼 가깝게 지냈다. 그러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시안의 가족과 해원의 가족이 피해자-가해자 사이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고, 해원은 이름까지 바꾸며 과거를 지웠다. 


6년 만에 다시 만난 시안과 해일, 해원은 예전처럼 잘 지내는 듯 보인다. 특히 동갑내기인 시안과 해원은 여느 평범한 여자 고등학생들처럼 학업 스트레스를 토로하고 남자친구의 험담을 하며 언제 떨어져 있었냐는 듯이 과거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시안은 자신의 어머니가 6년째 식물인간 상태이며, 자신은 어머니를 돌보느라 대학 입시는커녕 학교 생활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털어놓지 못한다. 아니, 그럴 수가 없다. 유일한 친구인 해원마저 자신의 곁을 떠나면, 앞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삶이 더욱 어두워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중심 인물이 어떤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점에서 <페퍼민트>가 <유원>과 유사한데, <유원>은 피해자와 (가해자와는 화해하지 않고) 가해자 측 이해관계자와 화해하는 반면, <페퍼민트>는 피해자가 가해자는 물론이고 가해자 측 이해관계자와도 화해하는 데 실패한다는 점이 다르다. 정확히는 화해가 아니라 '용서'하는 일이 피해자의 과제일 텐데, 아무래도 피해자가 미성년자이고 간병이 워낙 힘든 일인 데다가 현재진행형이라서 용서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간병의 힘듦과 어려움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시안의 가족은 원래 풍족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도 않은 중산층 가정이었는데, 엄마가 쓰러진 후로 간병 때문에 아빠는 직장을 잃고 시안은 학업을 거의 포기하고 집은 더 이상 집의 기능을 못 하게 되었다. 시안과 시안의 아빠를 돕는 사람은 전문 간병인 최선희 선생님이 유일한데, 이분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참 좋았다. 간병인은 병자뿐 아니라 병자의 가족과 친구, 지인들도 돌보는 귀중한 직업임을 알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긴 방 마르틴 베크 시리즈 8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르틴 베크 시리즈 너무 재밌다. 초반에는 루즈하게 느껴지는 면이 없지 않았는데 시리즈가 거듭될 수록 재미있어서 10권까지 다 읽으면 1권부터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10권 얼른 나왔으면!). 8권은 어쩌다 보니 9권을 먼저 읽고 나서 읽게 되었는데, 추리 소설에서는 단골로 나오지만 범죄 소설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 '밀실 살인 미스터리'가 등장해 신선했다. 심지어 밀실 살인 사건과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은행 강도 사건과 맞물려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마지막에 이르러 두 사건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드러날 때 독자로서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상당했다. 


이야기는 15개월 만에 업무에 복귀한 마르틴 베크에게 콜베리가 미제 사건을 맡기면서 시작된다. 창문도 문도 잠겨 있는 밀실에서 총에 맞고 죽은 남자의 시체가 몇 달만에 발견된 사건인데, 이 사건을 아는 사람 중 아무도 범인을 특정하지 못한 상태다. 심지어 남자를 살해한 흉기인 총조차 방 안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최초 발견자인 경찰 둘을 의심했지만, 이들의 알리바이는 명확하다. 사건에 대해 여러 차례 분석한 마르틴 베크는 초동수사에 문제가 있었음을 확인하고 자체 수사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레나와 처음으로 만나는데, 전쟁 같은 삶을 살아온 마르틴 베크가 명랑하고 온화한 레나에게 물들어가는 과정이 - 마르틴 베크 시리즈답지 않게 - 로맨틱하다) 


한편 마르틴 베크를 제외한 특수수사대 사람들은 스웨덴 전역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는 연쇄 은행 강도 사건을 수사 중이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은 한낮에 스톡홀름 시내에 있는 한 은행에 젊은 여자가 들어와 은행 직원들을 위협하고 거액의 돈을 갈취한 일이다. 은행 직원들을 비롯한 다수의 목격자들이 있지만 이들의 진술은 일치하지 않는다. 요즘 같으면 CCTV도 많고 스마트폰 카메라도 있어서 수사하기가 한결 수월했을 텐데 1970년대가 배경이라서 목격자 진술에만 의지해 수사를 해야 하는 점이 안타까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빌리 서머스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편집자K(문학동네 강윤정 편집자)님의 유튜브에서 추천받아 구입한 책이다. 청부 살인업자가 은퇴 직전 마지막 일을 수행하기 위해 신분을 위장하면서 선택한 직업이 '소설가'라는 점에 호기심이 동했다. 읽어보니 스티븐 킹 소설답게 전개가 흥미진진하고 등장 인물들도 매력적이다. 청부 살인이라는 소재 자체는 무섭지만,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지향하는 메시지는 휴먼 드라마에 가깝다. 


빌리 서머스는 사격이 특기인 마흔네 살의 청부살인업자다. 빌리는 엄청난 액수의 보수를 받는 대가로 살인죄로 수감되어 있고 조만간 재판을 받을 예정인 남자를 살해해달라는 의뢰를 받아들인다. 이 건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법원 근처에 있는 마을에 잠복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빌리는 소설가로 위장하고 평범한 사람인 척하면서 집과 작업실이 있는 빌딩을 오가는 한편, 조용히 남들 모르게 살인을 준비한다. 


빌리가 소설가로 위장하고 동네 주민들과 어울리며 살인을 준비하는 부분도 재미있고 이 자체로 충분히 한 편의 소설이 될 만한데, 놀랍게도 이는 소설 전체의 3분의 1 정도 밖에 안 된다. 나머지 3분의 2는 의뢰받은 일이 잘 안 풀려서 도망자 신세가 된 빌리가 은둔 중인 집 앞에서 남자 셋한테 성폭행을 당하고 길거리에 버려진 여학생 앨리스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빌리의 정체를 아는 앨리스가 경찰에 신고하면 모든 게 끝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리는 앨리스를 구하고 앨리스도 신고하지 않는다. 


오히려 빌리와 앨리스는 때로는 부녀처럼, 때로는 남매처럼, 때로는 연인처럼 서로를 보살피면서 서로에게 가장 힘든 시간을 가장 뜻깊게 보낸다. 빌리 서머스가 소설가인 척하면서 쓰기 시작한 자전적인 소설도 두 사람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평생 혼자였으므로 소설을 써도 읽어줄 이 하나 없을 거라고 믿었던 빌리에게 나타난 최초이자 최후의 독자 앨리스. 빌리의 엄청난 삶을 목격한 최후의 증인으로서 앨리스 또한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는 결말까지 완벽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양귀자의 <모순>은 워낙 유명해서 제목은 알고 있었지만 읽어보진 못했다(1998년 출간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그러다 최근에 '편집자K(문학동네 강윤정 편집자)' 님의 유튜브 채널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독자들의 인생 소설 1위로 이 책이 선정되어 바로 구입해 읽어보았다. 책을 받자마자 한 번 읽고, 다시 한 번 더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느낌이 사뭇 달랐다. 첫인상은 주인공 안진진의 남편감 찾기 같았다면, 두 번째 인상은 고도의 돌려까기 같다고 느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스물다섯 살 휴학생인 안진진은 현재 두 명의 남자와 썸을 타는 중이다. 김장우는 예술가 성향의 대책 없는 사람이지만 성적으로 끌리고, 나영규는 모범생 타입의 매사를 계획해서 실행하는 사람이지만 성적인 끌림은 없다. 진진이 두 남자 중 하나를 고르지 못하고 갈등하는 이유 중 하나는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결혼을 계기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엄마와 이모다. 진진의 엄마는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 폭력에 시달리며 살았고, 진진의 이모는 경제력이 있는 남자와 결혼해 유복한 삶을 살았다. 


이 소설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모순'이다. 일단 주인공 진진부터가 모순 덩어리다. 진진은 식구들을 부양하기는커녕 폭력만 휘두른 아버지를 좋아하고, 아버지 몫까지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를 미워한다. 1998년이면 그렇게 옛날도 아닌데 스물다섯 살이 결혼 적령기라고 믿으며 스스로 직업을 찾고 인생을 살아갈 궁리를 하지 않고 적당한 남편감을 골라서 결혼할 생각을 하는 것도 인물의 한계(미숙함, 어리석음)를 보여준다. 


모순의 절정은 결말이다. (스포 있음!!) 진진은 그토록 동경했던 이모로부터 '나는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행복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고도 이모의 뒤를 따르는 선택을 한다. (김장우에게 끌리는) 스스로의 감정을 배신하고, 자신을 아끼는 사람의 만류를 뿌리치면서 내린 선택이 과연 최선일 수 있을까. 오독일지도 모르지만, 미숙하고 어리석고 불합리한 판단을 합리화하는 주인공을 작가가 돌려까는 내용으로 읽혀서 나는 마음에 들었다. 작가의 다른 책도 읽고 싶다. 



이 소설에는 (벌써 25년 전인) 1998년도의 풍경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스마트폰 대신 전화로 데이트 약속을 정했던 연인들, 블루투스 스피커 대신 카세트 테이프로 차 안에서 음악을 들었던 사람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없어서 영화를 보려면 종로나 충무로에 가야 했고 반드시 매표소에서 줄 서서 예매를 해야 했던 사람들, 이 해에 크게 히트한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 날>,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 등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무척 반가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