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소설집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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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권여선 작가의 책들을 열심히 읽고 있다. 권여선 작가의 최신작 <각각의 계절>을 사놓고 나서야 권여선 작가의 이전 책들을 읽지 않았다는 게 떠올라서 최근에 나온 책부터 사들이는 중이다. <아직 멀었다는 말>은 <각각의 계절> 직전에 나온 여섯 번째 소설집으로,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모르는 영역>을 포함해 여덟 편이 실려 있다. 


여덟 편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친구>다. 혼자서 아들을 키우는 해옥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따리 장사를 하고, 밤에는 대형 음식점에서 고기를 굽는다. 해옥은 매일 쉴 틈 없이 일하면서도 새벽 기도와 아들 민수에 관한 일에는 소홀함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민수가 다니는 학교에서 연락이 오고 민수의 담임 교사는 민수가 학교에서 겪는 일에 대해 들려준다. 하지만 신을 믿고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해옥은 그 믿음과 사랑 때문에 도리어 진실을 외면하고 아들을 지옥에 내버려 두는 선택을 한다. 


저임금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소희의 고단한 삶을 그린 <손톱>과 어머니를 간병하는 기간제 교사의 불안을 그린 <너머>도 인상적이었다. 두 작품 모두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가 주인공인데, 이들은 일자리만 불안정한 것이 아니라 가족, 친구 등의 사회 관계망에서도 소외된(혹은 소외되기 직전인) 상태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가족으로부터 소외되거나 가족 자체가 분열되는 문제는 소원한 아버지-딸 사이를 그린 <모르는 영역>, 소통이 안 되는 사 남매의 모습을 그린 <송추의 가을>에도 등장한다. 


마지막에 실린 <전갱이의 맛>은 성대 낭종 수술 후 원치 않게 '묵언 수행'을 하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처음에 그는 말을 안 하고 생활하는 것이 불편하기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말을 안 하고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좋은 점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궁극적으로 그는 말이란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소통하기 위해서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소통이라는 목적만 달성한다면 무엇이든 말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말을 문학이나 소설로 바꾸어도 통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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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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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비평가, 저널리스트, 에세이스트 비비언 고닉의 에세이집이다. 저자가 뉴욕에 사는 싱글 여성이고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논한다는 점에서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이 책은 섹스보다는 '시티'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대학생 때 <섹스 앤 더 시티>를 정말 열심히 봤는데, 그 때 그것 말고 비비언 고닉 같은 작가들의 책을 읽었다면 내 인생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후회)이 든다. 


'시티'의 비중이 높은 편이지만, 남자 이야기가 없지는 않다. 저자는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했다. 1935년생인 저자는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랬듯 여자라면 반드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해야 하는 줄 알았고, 그것이 (여자) 인생 최대의 과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첫 번째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남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두 번째 결혼을 그만두면서 애초에 결혼이 자신과 안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그 후에도 여전히 괜찮은 남자를 만나고 싶고, 운명이라고 느낄 만큼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고, 어떤 여자들처럼 성공적으로 결혼 생활을 해보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못해서 괴로웠다. 그러다 1970년대에 우연인 듯 필연처럼 페미니즘을 만났고, 당시 뉴욕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페미니즘 운동가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이 그동안 숱한 연애와 두 번의 결혼에 만족하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에게 잘 맞는 남자를 찾기 전에 '나'부터 알아야 한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여자들이 나를 모르고 남자부터 찾는 오류를 범하는 일은 아주 흔했다. "대학에서 사귄 친구들은 문학소녀들이었다. 다들 자기 자신을 조지 엘리엇의 도러시아 브룩 아니면 헨리 제임스의 이자벨 아처와 동일시했다. 도러시아는 탁상공론가를 지적이라고 착각한 인물이었고, 이저벨은 음흉한 오스먼드를 교양 있는 남자로 본 인물이었다." (67쪽) 저자의 친구들이 좋은 남자를 분별하지 못한 것도 안타깝지만, 성별 이분법에 갇혀 문학소녀이면서도 스스로 문학가가 될 생각을 하지 못한 점도 답답하다. 


나를 모르고 사는 일은 평생의 장애가 된다. 저자는 안데르센의 동화 <공주와 완두콩>에서 "공주가 그동안 찾아다닌 건 왕자가 아니라 완두콩이었다."라고 말한다. "스무 겹 매트리스 밑에 깔린 완두콩의 존재를 느끼는 순간, 바로 그때가 정의를 내리는 순간이다. 지금껏 이 길을 걸어온 이유, 거기서 확인하게 된 사실 -불경스런 불만이 삶을 끝없이 가로막으리라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여정의 의미임을."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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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아
로런 그로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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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다가 포기했던 책인데 최근에 로런 그로프의 <매트릭스>를 읽고 로런 그로프의 이전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어져서 다시 읽었다. 근데 예전에 읽다가 포기했던 책 맞아?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동안 나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걸까...) 이거 다음에 <운명과 분노> 읽을 건데(이 책도 읽다가 포기했었음) 이 책도 좋기를. 


<아르카디아>는 1970년대 미국의 히피 대안 공동체가 배경이다. 히피인 부모 슬하에서 태어난 소년 비트는 자신의 가족이 속한 공동체인 아르카디아 이외의 삶을 모른다. 아르카디아 사람들은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함께 자며, 채식을 하고 애완 동물을 금지한다. 이런 생활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지만 비트는 대체로 만족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공동체에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고 결국 비트가 어른이 되기 전에 공동체가 무너지고 만다. 


소설의 후반부는 공동체를 떠나 뉴욕에 살면서 도시 문명에 적응하는 비트의 이야기가 나온다. 비트는 뉴욕에서 사진 작가로 일하고, 첫사랑과 결혼해 딸 하나를 얻는다. 하지만 사진은 그의 인생의 전부가 되지 못하고, 첫사랑은 그의 곁을 떠난다. 노쇠와 실연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현재의 삶이 버거워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가능하지 않다. 비트는 어머니의 간병을 위해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아르카디아로 돌아가는데, 그곳엔 예전에 함께 살았던 사람들은 없지만 그를 품어주었던 자연은 여전히 있다. 


비트가 아르카디아로 돌아갈 즈음, 전 세계적으로 SARI라는 전염병이 유행해 수많은 사람들이 감염되고 심하게는 목숨을 잃는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 이 소설을 읽었다면 작가의 상상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은데,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에 이 소설을 읽으니 작가가 대단한 예언자처럼 느껴진다(실제로는 2002-3년에 유행한 SARS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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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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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고 로런 그로프의 소설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로런 그로프는 <운명과 분노>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작가인데, <운명과 분노>도 그렇고 <아르카디아>도 그렇고 출간되었을 때 읽고는 별 매력을 못 느꼈다. 그런데 이번에 <매트릭스>를 읽고 앞으로 계속 읽어볼 만한 작가라는 판단이 들었고, <아르카디아>를 다시 읽고 판단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래서 한 번 읽고 재미없었던 책을 못 버린다...) 


내 생각에 로런 그로프는 지금은 없지만 과거에는 있었던 어떤 폐쇄된 공동체를 재현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작가인 것 같다. <아르카디아>에서 1970년대 미국의 히피 대안 공동체를 재현했다면, <매트릭스>에서는 12세기 영국의 수녀원을 재현했다. <아르카디아>의 공동체와 <매트릭스>의 공동체에는 모두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가 있지만, <아르카디아>의 지도자는 카리스마만 있고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력, 추진력이 부재해 실패한 반면, <매트릭스>의 지도자는 모든 걸 갖췄고 거의 매번 성공한다. 심지어 <아르카디아>의 지도자와 달리, 여성이다. 


그런 점에서 <매트릭스>는 한 공동체의 이야기인 동시에 한 여성 지도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인공 마리 드 프랑스는 왕가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체구가 크고 얼굴이 예쁘지 않아서 왕족이나 귀족의 신부로 보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어 열일곱 살 때 잉글랜드의 가난한 수도원으로 보내졌다. (당시의 여느 여자들처럼)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소원이었던 마리는 수녀로 살기를 거부했지만, 얼마 안 가 체념하고 현실에 적응하는 데 힘쓴다. (나중에 마리가 평범한 여자로 살고 싶어 했던 과거의 자신을 비웃는 장면이 나온다) 


수십 년이 지나 수녀원장이 된 마리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수녀원 전체를 개혁한다. 초기에는 반발했던 수녀들도 마리가 실시한 각종 사업을 통해 식량이 늘고 금고가 차고 생활이 풍족해지자 마리를 인정하고 따르기 시작한다. 마리는 수녀원이 여자들만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이기 때문에 가난하고 무력할 거라는 편견을 깨끗이 불식시킨다. 마리의 지도 하에 수녀원의 수녀들은 자력으로 엄청난 부를 쌓고, 마을에서 남자들이 쳐들어올 때에도 훌륭하게 방어한다. 


그런 마리가 끝까지 싸워야 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수녀들 자신의 편견이다. 마을에 재해가 발생해 성당에서 신부를 파견할 수 없게 되자 수녀원장인 마리가 직접 미사와 고해성사를 집전하기로 한다. 그러자 수녀들 중 일부가 "여자가 미사를 집전하는 것은 사악한 일"이라며 거부한다. 마리는 미사를 떠나는 것보다 여자가 집전하는 미사를 받는 것을 더 큰 죄로 여기는 수녀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며, "동정녀 마리아는 여자로 태어났으나 자궁에서 태어난 인간 중에서 가장 귀중한 보석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236쪽)라고 말한다. 


로런 그로프는 12세기에 실존했던 여성 시인 마리 드 프랑스를 모델로 이 소설의 주인공 마리를 창조했다. 작가는 대학 시절에 마리 드 프랑스에 대해 알게 되어 그 후로 20년 이상 이 인물에 대해 상상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강자 중심의 역사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된 약자들의 이야기를 부활시키고 재현하는 점이 문학의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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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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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열심히 추억하며 사는 사람은 아닌데, 이따금 어린 시절의 어떤 장면들이 문득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그중에는 동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아름다운 추억도 있고, 밤중에 자다가 이불킥 할 만한 흑역사도 있고, 현재의 내가 왜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 설명해 주는 사건들도 있다. 


백수린 작가의 첫 장편 소설 <눈부신 안부>는 어른인 해미가 어린 시절의 일들을 떠올리면서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라면 알 수 있는 것들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퇴사 후 할 일이 없던 해미는 사진 전시회에서 우연히 대학 동창 우재를 만난다. 서로의 안부를 나누다가 대학 시절 해미가 이모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 걸 기억해 낸 우재 덕분에 해미는 오랜만에 어린 시절의 일들을 떠올린다. 


언니가 사고로 죽었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해미는 아빠와 헤어지기로 결심한 엄마를 따라서 독일로 갔다. 독일에는 오래 전 파독 간호사로서 독일에 갔고 현재는 의사로 일하며 성공적으로 독일에 자리를 잡은 엄마의 언니, 즉 이모가 살고 있었다. 해미는 낯선 독일어를 배우고 독일 생활에 적응하려 애쓰는 와중에도 틈틈이 언니 생각을 하며 언니를 그리워했다. 그런 해미를 애틋하게 여긴 이모와 이모 친구들, 이모 친구들의 자식들이 해미를 가족 이상으로 아껴줬다. 


해미는 특히 마리아 이모의 딸 '레나'와 선자 이모의 아들 '한수'와 가깝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자 이모에게 병이 찾아온다. 엄마를 끔찍이 여기는 한수가 해미와 레나에게 어떤 부탁을 해오는데, 그 부탁이란 게 엄마가 그동안 써온 일기를 몰래 읽고 엄마의 첫사랑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해미는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만, 친구의 부탁을 들어줘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열심히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는다. 


그로부터 20년 후. 현재의 해미는 그 시절의 일을 흑역사로 기억한다. 결과적으로 해미는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지 못했고,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했으며, 그 시절 영원한 우정을 약속했던 친구들과의 연락도 끊겼다(해미 쪽에서 연락을 끊었다). 그 시절 해미와 해미의 엄마, 동생을 살뜰히 보살펴줬던 이모와 소원해지고, 대학 시절 썸을 탔던 우재와 잘 안 되고 재회한 후에도 미적거리는 것은 그 시절 이후에 생긴 자기 혐오 때문인지 모른다. 


그랬던 해미에게 기적처럼 우재가 나타났고, 해미는 다시 한 번 선자 이모의 첫사랑 찾기에 도전한다. 이 과정에서 해미는 과거에 자신이 첫사랑 찾기에 실패했던 건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능력이 부족해서였다는 걸 깨닫고(너무 어리고 너무 몰랐다), 그런데도 뭐라도 한 것이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눈부신 안부'를 전하는 일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족하고 서툴러도, 결과적으로는 실패할지라도 뭐라도 해보기. 실행력, 적극성이 부족한 나에게 참 어렵지만 필요한 일이다. 오늘은 고마운 사람들에게 더운데 잘 지내느냐고 문자라도 보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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