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스타일 - 지적생활인의 공감 최재천 스타일 1
최재천 지음 / 명진출판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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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의 식탁>을 읽었을 때에도 느낀 것이지만, 최재천 선생님 책은 구성이 참 기발하고 재미있다. 이번 신간 <최재천 스타일>은 제목에 '스타일'이라는 말이 들어가서 그런지 시각적인 부분에 더욱 신경을 쓰신 것 같다. 우선 책 머리에 선생님이 사랑하는 것들을 나열하고, 'love', 'mentor', 'forest' 같은 아름답고 가슴 설레는 주제 아래 글을 묶은 것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각 챕터를 선생님 자택이 있는 연희동에서 재직 중이신 이화여대까지 가는 과정으로 연결하여 감각적인 그림과 함께 배치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아, 다시 봐도 책이 정말 예쁘다!)

 

파스칼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보면 상당히 놀라고 반가워한다. 왜냐하면 작가를 만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인간을 만나기 때문이다." (p.11)

이 책 <최재천 스타일>은 <통섭의 식탁>에 미처 담지 못한 추천서들에 대한 소개글과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과학 이론에 관한 얘기는 여전히 낯설고 어렵지만, 과학 철학과 과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 과학자들은 소위 '문과생'들이 보는 것과는 또 다른 관점과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점이 신기하고, 또 배워야 할 부분인 것 같다.

 

과학에 문외한인 내가 최재천 선생님 저서를 읽으면서 과학에 흥미를 가지게 되는 이유가 뭘까 곰곰 생각해보니 선생님 문체 덕분인 것 같다. 선생님 글은 간결하고 명료하지만, 사람 내음을 잃지 않는 점이 참 신기하고 본받고 싶다. 나는 글을 쓰다보면 주절주절 길어지는 일이 태반이고, 쓸데 없는 수식어도 너무 많이 써서 퇴고할 때마다 반성하기 일쑤인데... 과학은 잘 몰라도 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선생님 글이 좋아서 계속 저서를 찾아 읽고 있는 것 같다.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보면 작가를 만나는 줄 알았는데 인간을 만나서 놀랍고 반가워진다는 파스칼의 말처럼, 최재천 선생님의 글도 작가(또는 과학자)를 만나길 기대했다가 최재천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어 반가운 것 같다. 실제로 뵌 적은 없지만, 적어도 책을 통해 느낀 인상만으로 보면 열정적이고 즐거운 분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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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짓것! 한번 해보는 거야 -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출사표를 던진 20대 청년의 50개 직업 도전기
대니얼 세디키 지음, 서윤정 옮김 / 글담출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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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 일본, 프랑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전역을 괴롭히고 있는 사회문제다. 우리나라에 '88만원 세대'가 있다면 중국 상하이에는 '개미족'이 있다. 이들은 대학을 졸업한 20대 청년층으로, 취업난으로 인해 정규직을 얻지 못하고 파트타임 또는 인턴을 전전하느라 극히 적은 보수를 받으면서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 생활비를 아끼느라 작은 방에 남녀가 열 명, 스무 명씩 동거를 하는 일도 비일비재 하다고 한다. 일본도 비슷한 실정이다. 비싼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24시간 운영하는 PC방에서 장기 거주하다가 아예 주소지로 등록하는 청년들도 있을 정도다. 프랑스는 몇 년 전부터 이른바 '700유로 세대'로 불리는 청년 실업자, 비정규직자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미국에서는 아주 드물게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는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몇 주 전 저녁 무렵, 언제나처럼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고 있었다. 시계가 일곱시로 넘어가면 '철수는 오늘'이라는 짧은 코너가 나오는데, 거기서 마침 대학 졸업후 3년 동안 취업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으나 전부 낙방하고 미국 전역을 돌며 50개 직업을 체험한 청년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단하다 싶어 어떤 사람인지 인터넷에서 찾아보다가, 마침 그 사람이 직접 쓴 책이 우리나라에 출간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읽어보았다. 

  

제목도 당돌한 <까짓 것 해보는 거야!>. 이 책의 저자 대니얼 세디키는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경제학과 졸업후 3년 동안 금융권 취업을 위해 노력했다. 번듯한 대학, 취업 잘 된다는 학과를 졸업했지만 보낸 이력서만 2천 통, 면접만 40번 이상 응시했다가 떨어졌다. 무보수 또는 파트 타임 일자리를 전전하다보니 1달러 짜리 샌드위치로 연명하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쳤다. 처음 몇 번은 다음엔 잘 될 거라고 응원해주던 부모님과 가족들, 친구들도 점점 그를 '루저'로 보기 시작했다.

 

면접 때마다 면접관들은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자네는 경험이 부족해'. 그 말이 늘 대니얼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던 중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낯선 곳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다른 일자리를 찾고 새로운 문화를 겪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미국 전역 50개 주를 돌아다니며 각 주를 대표하는 직업을 체험해보는 것이다. 대니얼의 이야기를 듣고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 모두 반신반의하며 반대했지만, 그는 천천히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다. 각 주의 회사에 연락을 하고 숙소를 찾았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았지만, 어차피 벼랑 끝에 몰린 상황,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아니겠는가.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CNN, 폭스 채널 등 미국 주요 언론을 통해 소개되며 미국 전역의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

 

50개 직업을 체험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일손이 부족하며 환영하는 곳도 있었지만, 대개는 잠깐 일하다 떠날 그를 반기지 않았고, 낯선 곳에서 숙소를 구하는 일도 힘들었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수도 아주 적고, 어떤 곳은 아예 안 주기도 해서 여행 내내 돈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생각지 못한 복병도 있었다. 바로 여자친구 문제.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그를 응원한다며 웹페이지 운영까지 담당했던 여자친구는, 어느날 갑자기 이별을 통보했고, 여행 내내 대니얼의 마음을 괴롭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생물학적인 나이가 높아진다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정신적으로 자립하고, 직업을 가지고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대니얼은 처음엔 경제적으로만 독립을 못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정신적으로도 여자친구와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못한 '어른아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대니얼에게 이 여행은 진정한 '성인식', '통과의례'가 아니었나 싶다. 비록 이 여행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직업을 가지기로 결정했는지, 돈을 많을 벌었는지 같은 얘기는 나오지 않지만, 제 힘으로 먹고 살 수는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여자친구와의 관계에 의존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여러번 한국 언론이 그를 따라다니며 인터뷰를 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어떤 언론사가 취재했는지 찾아봤더니 2009년에 방영된 <SBS 스페셜> 중 한 편에 그의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다. 영상을 찾아서 봤는데 책을 읽고나서라서 그런지 괜히 더 반갑고 신기했다. 영화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했는데 개봉은 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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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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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신성가족>, <헌법의 풍경>에 이어 세번째로 김두식 교수님의 책을 읽었다. 김두식 교수님이 쓰신 책들은 '한 번 읽으면 멈출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쩌다보니 모 감자칩 광고 카피와 비슷한 말이 나왔다.) 이 책 역시 책을 든 순간부터 좀처럼 멈추기가 힘들었다. 다만 이 책이 앞에 읽은 두 권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앞에 읽은 두 권은 내용이 다소 심각하고 고발적이었던 반면, 이 책은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욕망'에 관한 저자의 내밀한 고백을 담은 책이라서 개인적이고, 읽기에도 훨씬 쉬웠다.

 

 

+

 

 

이 책에 등장하는 이슈들은 어찌보면 잡다하고 뜬금없다. 이제는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듯한, 그 유명한 '신정아 사건'과 영화 '색.계' 등 다소 자극적인 주제부터 저자의 가족과 어린 시절, 학창 시절에 관한 개인적인 추억, 그리고 이전 책에서도 주제로 삼았던 한국 기독교와 사법제도 같은 국가적, 사회적인 이슈까지 다양하게 등장한다.

 

그러나 책 전체를 보면 '색'과 '계'라는 두 개념의 대결 구도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색'과 '계'는 알다시피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던 양조위, 탕웨이 주연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말이다. '색'은 단어뜻 그대로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 감성, 야수성, 일탈 같은 것을 상징한다면, 이와 반대로 '계'는 규범, 이성, 절제 등을 상징한다. 이렇게 보면 한 예로 신정아는 전형적인 '색'에 속하는 인물이고, 신정아 사건은 '색'과 '계'가 충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저자는 법학자이자 기독교 신자로서 철저히 '계'에 속하는 인물이고, 그와 반대되는 형이라는 인물은 '색'에 속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책에서 나는 특히 저자의 가족과 어린 시절, 학창 시절에 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가족 중에서도 어머니와 형에 관한 언급이 많은 것으로 보아 저자는 이 두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러나 두 사람이 저자에게 영향을 준 방식은 정반대였다. 어머니는 고등학교 윤리 교사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언뜻 보기에 저자와 비슷한 성품을 가진, 철저히 '계'에 속하는 분이신 것 같다. 그러나 부와 권력을 탐하지 말라는 평소 가르침과 달리,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서 유일하게 사준 위인전이 부의 상징인 '강철왕 카네기'와 권력의 상징인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였다는 것...! (그런 점에서 역시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불구하고 우리 어머니는 위인전을 전집으로 사주셔서 다행이다. 적어도 내게 본받고 싶은 위인을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니...) 어린 저자의 눈에도 어머니의 마음이 참 모순적으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 기억이 몇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저자를 '색'과 '계'의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든 걸 보면.

 

반면 형은 여러 면에서 저자와 정반대의 인간형이다. 전형적인 모범생인 저자와 달리, 형은 어린 시절부터 사고뭉치였고, 커서는 공부도 잘 하면서 놀기도 잘 하는,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부류의 인간으로 거듭났다. 글 한 편을 쓸 때도 여러 사람의 입장에서 읽어보고 문제가 없게끔 고치느라 화제가 된 적도 없었다는 저자와 달리, 형은 언제나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솔직하게 글을 쓰고, 그 글 때문에 논란이 된 적도 여러번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형이 있었기에, 웬만해서는 '계'의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저자의 억압된 '색'이 형을 통해 대신 분출되기도 했고, 이제는 '형을 따라 나도 한번' 이라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이러한 '색'과 '계'에 관한 이야기들을 통해 저자가 궁극적으로 주장하고 싶은 말은 '색', 즉 욕망이라는 것에 좀 더 솔직해지자는 것이다. 물론 자기 욕망에 너무 충실해서 주변 사람은 물론이요,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치면 안 되겠지만, 그런 수준이 아닌 한 아주 개인적인 욕망에 대해서는 솔직해져도 괜찮지 않겠냐는 것이다. 성공하고 싶은 욕망,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 인정받고 싶은 욕망,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또 너무나도 당연한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욕망이 없다는 듯 짐짓 아닌 척, 초연한 척, 엄숙한 척 할 때 욕망과 현실, 색과 계 사이에 충돌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사실 나도 저자처럼 '색'보다는 '계'에 가까운 인간이다. 욕망보다는 이성과 규범을 더 중시하며 살았고, 이 때문에 놓친 것도 있고, 후회 되는 일도 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고, 하루 아침에 '계'로 살던 인간이 갑자기 '색'으로 살 수도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내게 그런 '색'의 욕망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 받아들이는 것 정도는 괜찮은 것 같다.

 

 

+

 

 

이제까지 책을 비롯하여 작품이라는 것은 작가가 일정 기간 열심히 노력하여 작업한 결과, 즉 최종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좀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을 보여주는 매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김두식의 이전 작품이 결과물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번 책은 인간적으로나 작가적으로나 저자 김두식의 캐릭터가 앞으로 점점 변화해 갈 것이라는 예고편 같은 느낌이었다.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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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짓것! 한번 해보는 거야 -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출사표를 던진 20대 청년의 50개 직업 도전기
대니얼 세디키 지음, 서윤정 옮김 / 글담출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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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이 책 내용이 소개되었길래 읽어보았습니다. 제목대로 까짓것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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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 - 디지털 세계를 벗어나 진짜 인생을 찾은 한 가족의 유쾌한 고백록
수잔 모샤트 지음, 안진환.박아람 옮김 / 민음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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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다마고치'라는 휴대용 게임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저 게임 속의 동물을 키우는,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단순한 내용이었다. 게다가 게임기는 지우개만한 크기에, 화면도 흑백의 모노톤이라서 지금 유행하는 총천연색의 게임들에 비하면 품질이 조악하기 그지 없었는데도 당시 아이들은 열광했다. 수업 시간에 다마고치를 하다가 선생님에게 혼나거나 빼앗기는 아이들도 많았고, 누가 더 오래 동물을 키우는지, 심지어는 누가 더 게임기를 많이 가지는지 경쟁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 때 나는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한테는 다마고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마음에 '아, 나도 다마고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아이들하고 같이 놀 수 있을텐데...' 라고 생각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집안 형편상 아주 어렸을 때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은 고사하고 생일 선물도 받아본 적 없는데, 아무 날도 아니고,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 다마고치를, 부모님이 사주실 리가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체념했고, 친구의 다마고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채웠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몇 개월이나 지났을까. 그새 아이들 사이의 유행이 바뀌어 아무도 다마고치를 가지고 놀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높은 학년의 언니들을 따라 공기놀이를 하거나, 고무줄을 하는 것이 유행을 했다. 몇 백원만 있으면 문방구에서 누구나 살 수 있는 공기. 집에서 틈틈이 연습하면 금세 실력이 느는 공기. 나는 금방 공기 놀이를 잘 하게 되었고, 다시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알았다. 모든 유행에는 처음과 끝이 있다는 것을. 그러니 유행한다고 다 따를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 된다는 것을 말이다.

 

<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을 읽으면서 그 때 생각이 났다. 저자 수잔 모샤트는 세 자녀의 어머니다. 세 자녀는 모두 10대 청소년인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트위터, 페이스북 업데이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유튜브 영상 보고, 게임 하는 것이 낙이다. 밤낮없이 '로그인' 된 생활을 하느라 심신이 많이 지쳐있는 아이들을 보며 수잔은 결심했다. 앞으로 6개월 동안 모든 전기제품으로부터 '로그아웃'하여 아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찾아주기로 말이다.

 

문명의 혜택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한다는 점에서 <월든>과 전에 읽은 <노 임팩트 맨>이 떠올랐다. 실제로 저자는 <월든>에 깊은 영향을 받아 이런 모험을 감행한 것이라 밝혔고, 책에서 여러 번 언급하기도 했다. <노 임팩트 맨>과는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노 임팩트 맨>은 환경을 보호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반면, 이 책은 디지털 세계을 벗어나 진짜 인생을 찾는 것이 목적이라는 점이 다르다. 아무래도 저자가 뉴욕대에서 미디어 생태학을 전공한 언론인이고, 세 자녀의 어머니로서 아이들을 걱정하는 마음, 즉 '모성'이 발휘된 것이 두 책의 목적과 느낌의 다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세 아이는 이 6개월을 통해 아주 귀중한 경험을 했다. 처음엔 (당연히!) 어머니의 계획에 반대했다. 휴대폰이 없으면 사람들과 연락하기 불편할 뿐더러, 트위터, 페이스북을 못하면 친구들과 멀어질 것이고, 게임도 못하고 유튜브 동영상도 안 보면 화제에서 밀려나고, 최신 전자기기가 없다는 것은 곧 유행에서 뒤떨어진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막상 전자기기 없이 지내보니 걱정했던 것만큼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멀리했던 책과 가까워지고, 공부에 재미를 붙였고, 잊고 있던 뮤지션의 꿈, 저널리스트의 꿈도 살아났다. 온라인 상의 '트친', '페친' 대신 취미와 꿈을 공유할 수 있는 진짜 '친구'가 생겼고, 가족들과의 추억도 많이 쌓았다. 그리고 6개월이 끝나갈 즈음에 깨닫게 되었다. 트위터가, 페이스북이, 게임이, 아이폰이 유행한다고 다 따를 것이 아니라, (내가 초등학교 때 다마고치를 통해 알게 된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 된다는 것을, 그게 인생에 있어서는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내용도 좋지만, 글도 재밌고, 한 가족이 복작복작 부딪치며 사는 얘기라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다. 청소년 권장도서라고 하는데 어른들이 보기에도 좋다. 아니, 어른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디지털 중독, 게임 중독이라고 하는데 어른들도 못지 않다. (중년인 우리 아버지도 스마트폰 없이는 베란다에도 못 나가신다.) 디지털 기기 덕분에 생활이 훨씬 편해진 것은 맞지만, 어디까지나 그것들은 수단이고, 기계에 불과하다. 그거 없이도 재미있게 놀고, 사람들과 연결할 수 있는 수단은 옛날에 도 있지 않았는가. 하루에도 몇 시간씩 모니터 스크린, 스마트폰 스크린 들여다볼 시간은 있지만 단 몇 분 내 가족, 내 친구, 심지어는 내 얼굴조차 들여볼 시간은 없는 것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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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The Winter of Our Disconnect)
    from 취미로 책 읽기 2014-06-04 19:08 
    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 - 수잔 모샤트 지음, 안진환.박아람 옮김/민음인매력적이고 탐나고 배아픈 책이다. 6개월 만에 서평을 쓰게 만들 만큼.출판사 책 소개에 나와있듯 이 책은 저자가 아이들에게 집을 '스크린 금지 구역'으로 선포한 6개월 간의 과정을 담고 있다. 그 실험도 독특하지만 그 과정을 담는 저자의 필체는 매우 사랑스럽다. 칙릿의 주인공처럼 발랄하고 (필자처럼) 괄호를 좋아하고, 이야기거리가 무궁무진하지만 너무 멀리 나가지 않는다....
 
 
우연아닌우현 2014-06-04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들도 아이들 못지 않은 중독이라는 점, 저도 격하게 공감합니다. 우리 가족, 내 친구 들여다 보는 시간이 줄어든 것 같아요. 글 걸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