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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5월
평점 :
제목이 <도쿄타워>인 일본 소설이 둘 있다. 하나는 중년 여성이 스무 살 연하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린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작가이자 칼럼니스트,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작사 작곡가, 방송인, 배우 등으로 활약하는 릴리 프랭키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공교롭게도 두 소설 모두 큰 인기에 힘입어 영화화 또는 드라마화되었고,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이번에 내가 읽은 <도쿄타워>는 후자다(전자는 고등학교 때 읽었다. 그때 내가 오카다 준이치를 많이 좋아했다... ). 2005년에 발표되어 230만 부 이상 팔리고, 서점인들의 열렬한 지지에 힘입어 제3회 서점대상까지 수상한 이 작품을 왜 이제야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알겠다. <도쿄타워>가 왜 출간 당시 수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는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베스트셀러인지 직접 읽어보니 잘 알겠다.
이야기는 릴리 프랭키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 청년기로 이어진다. 릴리 프랭키의 본명은 나카가와 마사야. 1963년 후쿠오카에서 태어났다. 변변한 직업이 없는 아버지 때문에 '엄니(저자는 어머니를 '엄니'라고 부른다)'는 일찍부터 온갖 일을 전전했다. 행실이 좋지 않고, 이따금 술을 마시면 가족들에게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던 아버지는 얼마 후 집을 나갔고, 그때부터 몇 년에 한 번씩 큰일이 있을 때만 가족들을 찾았다.
결코 유복한 환경이 아닌데도 저자는 나름 즐겁고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집이 없어서 친가와 외가를 전전하는 생활도 나쁘지 않았고, 탄광촌의 아이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기억은 지금 떠올리면 흐뭇하기만 하다. 없는 살림에도 하나뿐인 아들의 부탁이라면 엄니는 뭐든 들어줬다. 아들이 음악을 좋아하면 외출할 때마다 레코드판을 사다 주고, 아들이 미술학교에 보내달라고 하면 군말 없이 보내줬다. 입학이나 취업 같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같이 살지 않는 아버지까지 나타나 아들을 챙겼다. 저자가 아버지를 원망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이 소설의 백미는, 언제까지나 엄니 품 안의 자식일 줄 알았던 저자가 어느새 어른이 되고 철이 들면서 엄니를 한 여자로, 한 인간으로 보기 시작하는 대목이다. 기모노 장사를 하는 집에서 비교적 유복하게 자란 엄니는, 당시로서는 늦은 서른한 살에 네 살 어린 남자와 결혼했다. 당시 의사인 남자친구도 있었는데 변변한 직업이 없는 남자를 택했다. 그 후 인생이 크게 꼬였다. 남편은 돈을 못 벌고 집에도 안 들어왔다. 하나뿐인 아들을 혼자서 길러야 했다. 아직 삼십 대니 다른 남자를 택할 수도 있었다. 아들을 친가에 맡기고 새 삶을 시작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엄니는 그러지 않았다.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아들을 지켰다.
"어머니란 욕심 없는 것입니다. / 내 자식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 내 자식이 큰 부자가 되는 것보다 / 하루하루 건강하게 지내주기만을 /진심으로 바라고 기원합니다. / 아무리 값비싼 선물보다 / 내 자식의 다정한 말 한마디에 / 넘칠 만큼 행복해집니다. / 어머니란 / 실로 욕심 없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어머니를 울리는 것은 / 이 세상에서 가장 몹쓸 일입니다." (495~6쪽)
방송이나 영화, 잡지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릴리 프랭키의 모습에만 익숙했기에, 이토록 서글픈 사연을 간직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새삼 놀랐다. 릴리 프랭키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는 건, 역시 하늘에서 그를 지켜주는 엄니 덕분일까. 언제 다시 도쿄에서 도쿄타워를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이 소설이 준 가슴 벅찬 감동을 떠올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