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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9년 5월
평점 :
함께 나이 드는 작가가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내게는 요시모토 바나나가 그렇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키친>을 읽었을 때, 내 나이 열네 살이었다. 자주 가는 서점 아저씨가 요즘 인기 있는 책이라며 <키친>을 권해줬다. 중학생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는 경쾌한 문장인 데다가, 소설 속 주인공이 소중한 사람을 잃은 후 음식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와닿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좋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후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읽었다.
<키친>을 읽은 해로부터 정확히 20년이 지났다. 마침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작이 나왔기에 반가워하며 읽었다. 소설의 무대는 '주주'라는 이름의 스테이크 하우스. 젊은 시절 70년대 미국 문화를 동경했던 부부가 '주주'를 시작했고,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금은 그 남편과 딸이 '주주'를 운영하고 있다. 소설의 화자는 바로 그 딸인 '미쓰코'다. 매일 가게에 나와 스테이크와 햄버그를 굽고, 밝은 얼굴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미쓰코지만, 사실 미쓰코에게는 여러 해가 지나도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있다. 자신에게 가게를 맡기고 세상을 떠난 엄마. 형제처럼 자랐고 한때는 연인이었고 현재는 믿음직한 동료인 신이치. 미쓰코는 엄마를 잃은 상실감과 신이치를 볼 때마다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어떻게든 정리해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픔과 음식을 통한 회복을 다뤘다는 점만 보면, <주주>는 <키친>과 많이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20년의 세월 동안 요시모토 바나나도 변했고 나도 변했다. 그동안 요시모토 바나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연달아 잃었고, 힘들게 가진 아이를 유산한 적도 있다. 나도 가까운 가족들을 병으로 잃었고, 작년에는 친한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일도 겪었다.
20년 전 <키친>을 처음 읽었을 때만 해도 죽음이 얼마나 잔혹한 일인지 몰랐다. 어제까지 살아 있던 사람이 영영 사라지는 일인 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해서, 아무리 슬프고 괴로워도 먹으면 먹게 되고 자면 잠들게 되는 일인 줄 몰랐다. 요시모토 바나나도 30여 년 전 <키친>을 썼을 때 죽음에 대해 잘 몰랐을 것이다. 알았다 해도, 훗날 부모님을 연달아 잃는 슬픔이나 뱃속의 아이를 잃는 고통을 미리 짐작해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주주>를 읽으면서 나는 젊은 날 막연히 짐작해 쓴, 상실의 고통과 회복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으로 알게 된 작가의 아픔을 보았다. 태어난 순간 죽음은 예정되고, 사랑이 시작되면 이별도 따라오지만, 살아있는 한 살아가고, 사랑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말해주는 작가의 단단함과 따뜻함을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한없는 충만함을 느끼는 나도. 함께 나이드는 작가가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