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최윤필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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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에 주목하는 이유.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없어. 별은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형, 듣고 있어? 형이 그랬지? 저 혼자 빛나는 별이 없다며. 와서 좀 비춰주라."
 
 
   --- 영화『라디오 스타』 중에서...
 
 
    자신이 주인공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엑스트라임을 깨닫는 순간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다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스타,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까지, 다들 누군가의 관심을 받기를 원하며 열심히 살지만, 때로는 한 번도 빛을 받지 못하고, 다른 이를 비추기 마련이다.
 
  색이 바래,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왕년의 스타와 매니저와의 우정을 그린 영화 『라디오 스타』를 인상 깊게 보았다. 다른 이는 외면하는, 한물간 스타를 늘 스타로 대접하는 매니저의 모습도 기억에 남지만, '바깥'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다방 레지가 라디오를 통해, 엄마에게 했던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엄마, 비오네. 기억나? 나 집 나올 때도 비 왔는데…. 엄마, 그거 알아? 나 엄마 미워서 집 나온 거 아니거든. 그 때는 내가 엄마 미워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집 나와서 생각해보니까 세상 사람들은 다 밉고 엄마만 안 밉더라. 그래서 내가 미웠어. 나 내가 너무 미워가지고… 막 살았다…. 나 미쳤나봐…. 엄마, 보고 싶어…."
 
  책을 읽으며 내내, 라디오스타가 생각났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없고, 모두 저마다의 슬픔과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스타나 정치인들의 이야기는 TV나 뉴스 등 다양한 매체의 이야기를 통해, 계속 재생산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잊혀져가거나 주목받지 못하는, 주류가 되지 못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품절녀, 완판녀, 연봉, 프로는 돈으로 말합니다 등 인간의 품격보다는 자본의 논리가 우선시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현대사회를 살고 있다. '1등 만을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유행어가 어색하지 않은 시대, 누군가의 말보다 몸짓, 표정에 이끌리는, 누군가의 말 사이에 담긴 호흡과 침묵의 질감, 차마 말하지 못하거나, 어색하게 마무리 한 다른 층위의 진실을 미쁘게 생각하는 작가의 말에서 그의 품성이 느껴진다.
 
 
#  당신이 미처 보지 못한, 26가지 이야기.
 
 
  주류의 시선에 벗어난 자리에서, 여전히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26가지 이야기가 책에 담겨있다. 대상은 사람에 국한하지 않고, 이제 더 이상 경마장에서 뛰지 못하는 퇴역마, 이메일과 다양한 수단에 의해 잊혀져가는 우표와 절판되는 책과 막걸리 등 동물과 사물까지, 그가 바라보는 시선의 폭은 넓고 깊다.
 
  인터뷰를 읽으며, 감사하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돈이라는 가치로 따지면, 쉽게 하지 못할 일들이 바깥이라는 공간에서는 기적처럼 지금 숨 쉬는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진행되고 있어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적자의 위기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 허리우드 극장이 좀 더 오래 버텨주기를, 마을영화를 만들며 다니는 떠돌이 영화감독 신지승씨의 발걸음이 지속되기를, 캄차카반도로 불곰을 찍으러 떠나는 최기순 다큐감독의 영상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기를 두 손을 모아 기원했다.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은, 26개의 공간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스쳐가며 쉽게 주목받지 못하지만, 각자 살아가며 간직한 뜨거운 철학이 작가의 따스한 필체에 스며들어 포근하게 전해진다. 풍족하게 인생을 즐기며 사는 이들은 없었지만, 각자 독특한 무늬를 새기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이, 살아가며 놓쳐가는 많은 부분들을 다시 고민하게 했다.
 
 
  "우리 말 믿거나 말거나야. 나쁜 소리 하면 좀 조심하고, 좋은 소리 하면 정성 쓰면서 힘내서 더 열심히 살고. 그럼 되는 거지. 너무 미치지도 말고, 헐뜯지도 말란 말이야." - 무교 천하대신 할머니
 
   "자비나 박애랑 달리 유교의 사랑은 '친친애인 親親愛人'이거든.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하고 그 사랑을 남에게 넓혀가자는 거지. 그게 현실적이고 솔직한 거 아닌가? 어떻게 내 혈육이랑 남을 똑같이 사랑해? 먼저 내 혈육을 사랑하고 그 간절한 마음을 이웃으로 넓히니까 더 큰 사랑이라고 볼 수도 있지." - 유교 최근덕 성균관장
 
 
  유교에 의해 많이 핍박받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무교와 일제시대를 거쳐, 서양학문의 유입과 함께 서서히 저물어가는 유교를 보면, 주류와 바깥은 언제나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사람들의 의식변화에 의해, 자리를 옮겨가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마음이 속상하거나, 소외당한 느낌에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읽으면 힘이 나는 인터뷰집이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 자리에서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잊히고 사그라지는 사물과 대상들이 '괜찮다' 고 응원을 한다. 더듬더듬 질문을 하고, 깊게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을 작가와 인터뷰 대상과의 소통의 과정을 가슴 속 도화지에 그려본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남보다 주목받지 않고, 남보다 더 많이 가지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외침이 가슴에 스며든다.
 
   방 안을 둘러보았다. 한 때 열렬히 애용했지만, 눈에 띄지 않는, 바깥으로 밀려난 물건들이 이제는 눈에 보인다. 하나 씩 바라보며, 예전에 뜨겁게 불타올랐던 열정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지금 중심을 열망하지 않는 사람들과 '바깥'을 함께 읽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책이다. 아니, 중심을 열망하고, 사랑받고,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이가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바깥이 있기에, 중심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그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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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혼비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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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을 때,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세상 일이 늘 마음과 같지 않다. 원하지 않더라도, 뭔가에 끌린 것처럼 일을 저지른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중요한 건, 사건이 아니라, 사건 이후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이다. 스케이드 보드의 한 획을 그은 토니 호크의 자서전을 읽은 후, 그의 포스터를 방에 붙여놓고 대화하는 샘은 스케이드 보드를 좋아하는 열 여섯 소년이다. 남친과 헤어진 모델을 지망하는 예쁘장한 여자친구  앨리시아와 한 번의 사건을 겪은 그는, 아이의 예비아빠가 된다. 게다가 열 여섯 차이나는 엄마는 아이를 가져, 같은 나이에 동생과 아들을 만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샘은 모든 상황이 두렵고 도망가고 싶을 뿐이다. 과거에서 미래로, 뛰어넘는 상황에 처한 그는 과거를 바꿀 기회를 얻기도 하고,  미래의 모습을 미리 발견하기도 한다. 시간을 넘나들며, 조금씩 성장해간다.


#  덜 자란 남자가 성장하기까지...
 
   좌충우돌, 책임감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풋풋한 어린 아이가 임신이라는 사건에 부딪쳐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소설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스케이트 밖에 모르는 어린아이가, 어떻게 조금씩 성장해 가는지, 커다란 사건이나, 큰 변화를 주지 않고, 과거와 미래라는 시점을 이동하는 것으로 통해,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다.
 
  경험하지 못한 일을 직면하게 되면,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다. 시간이 지난 후 과거를 돌아보면, 다 할 수 있는 일이라 여유롭게 생각하게 된다. 기저귀를 갈고, 여자친구님의 부모님의 원망, 여자친구의 푸념, 남편 역할까지, 아직 어리기에 학교도 다녀야 하는데, 다 힘들어 보이고, 어려워 보인다. 결국 샘은 힘들다는 현실을 인정하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을 정도로 성숙해진다.
 

#  할 일도 많고, 싸울 일도 많지만 나는 해낼 수 있다.
 
 
  영국의  '청소년 임신'에 관한 상황을 알 수 있는 소설이다. 하룻밤의 실수로 애를 갖는 사람이 적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견디기 힘든 상황 때문에, 청소년 임신의 80퍼센트는 아기는 아빠와 연락이 끊긴다고 한다. 직업을 갖기도 어렵고, 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청소년 임신의 현실과, 아빠가 되는 과정으로 더 성숙해지는 샘의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는 소설이다.
 
  『오빠가 돌아왔다』와 『고령화 가족』등 전통적인 가정상이 아닌, 가정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사회에서 무난하다 생각하는 나이대에 취업하고, 아이를 갖고, 아빠가 되지 않는 길을 선택을 했다해도, 자신의 결과를 인정하고,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이의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선택을 하는 이들에게 관대하지 못한 내재된 사회의 틀도 함께 엿보게 된다.
 
  아빠가 되기 전, 많은 남자들은 주인공 샘과 처지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현명하게 하루 하루를 선택하기 보다, 우연이 만들어진 결과에 이끌려 산다고 할까. 하지만, 아빠가 되는 순간의 책임감을 지고 살기에, 가장이 대단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이를 굶길 수 없을테니까, 책임감을 느끼는 순간, 아이는 아빠가, 어른이 된다.
 
  가벼운 소재가 아닌 소설을 웃으며 읽을 수 있는 건, 닉 혼비의 문체 덕분이라 생각한다. 툭 다 힘들다고 외치며 다가오는 글을 읽다보면, 세상의 많은 힘겨운 일들은 발생해서 힘든 게 아니라, 힘들다고 생각을 미리 했기에, 힘들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렵지 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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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들 플라워
김선우 지음 / 예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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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 친화적인 외국인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촛불집회.
  
 
  2008년 '광우병' 수입 소고기 수입에 관한 논란으로 서울의 시청 광장에 촛불이 올라왔다. 시위를 원천적으로 막는 법률때문에 시작된 촛불문화제는 6월 21일 추가협상 타결까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한동안 사회의 이슈였다. 뜨겁게 타올랐던 촛불이 '삽시간에' 사라져 버린 현상에 대해 좌파와 우파 사이에서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고, 한 번 꺼진 촛불은 현재까지 다시 타오르지 않았다. 촛불 시위의 현장에 있었던 시인은 '촛불'을 소재로 하여 이야기를 만들었고, 2년 전 물대포와 명박산성, 폭력, 불안, 투쟁, 배후론 등 다양한 목소리가 담겨있던 촛불에 참여했던 사건을 돌아보게 한다.
 
 
#  '촛불'의 풍경을 되돌아보다.
  
 
   캐나다에서 자연친화적인 오지에서 어머니와 할머니, 아버지 역할을 무리없이 해내는 동성애자 조안 아줌마와 함께 자란 지오는 15살 성년이 되자, 한국을 여행하기로 결정한다. 7살 때 기억을 잠시 잃었던 지오는 그때 자신의 기억을 떠올려서 자서전을 썼고, 조안 아줌마는 책으로 만들어준다. 꿈속에서 자신과 반대쪽인, 오른쪽 엉덩이에 점이 있는 남자아이가 나타난 꿈을 꾼 지오는 그 아이를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오기로 한다. 지오는 카우치 서퍼로 희영과 인연을 맺게 된다. 희영은 사과라는 유기견으로 인연을 맺게 된 아마추어 영화감독 연우와 거침없이 말하는 강남녀 수아와 함께 지오와 파티를 한다. 연우와 희영과 수아는 촛불을 들고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고, 지오는 반쪽 아이를 찾기 위해 예쁜 인형과 카드를 만들어 촛불 광장에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찾는다.

 

  지오는 같은 또래의 학생들인 촛불 문화제에 참여하면서 민기, 태연 등과 친해지게 된다. 거리에 나왔던 광분하던 소를 껴안고 웅얼거리다, 할머니 숙자씨는 쓰러지게 되고, 연우와 지오는 할머니를 구급차로 운반하는데 돕는다. 언론과 경찰에서는 할머니를 남파된 고정간첩의 의혹이 있다는 방송을 하고, 민기의 아버지는 지오의 일기장의 한 페이지를 첩보로 몰아 숙자를 간첩으로 제보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배후가 누구인지 밝혀라', 촛불 시민과 물대포와 폭력 등 촛불 현장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소설의 이야기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캐나다 오지의 자연친화적인 환경과 여성의 기운이 가득한 편견없는 15세 소녀의 눈에 비친 모습을 통해, 한국이 얼마나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어긋나 있는지, 촛불문화제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의견과 생각들을 이야기를 읽으며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다.
 
 
#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경험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된다. 마음의 역사에.>
 
  2008년 뜨겁게 타올랐던 촛불의 풍경은 누군가에게는 지우고 싶은 기억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촛불과 촛불을 이어, 혼자가 아니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따스한 추억일 것이다. 하나의 경험은 경험에 그치지 않고, 마음의 역사에 남아, 다음에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을 때, 자신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칠거라 생각한다.
 
   간첩으로 몰아 기사를 썼던 이지훈과 죽은 할머니의 친구였던 고물상 시인 할아버지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탐심. 그거 문제 맞지요. 촛불들이 날마다 증오를 퍼붓는 지금 대통령 누가 만들었습니까. 그 사람들이 모두 투표권자들이에요. 자기 눈은 못 보고 왜 남의 눈만 쳐다보면서 손가락질 합니까? 평범한 촛불 시민들이라구요? 그 사람들 속에 죄다 괴물이 한 마리씩 들어앉아 있는 겁니다. ...... 자기 사는 동네 뉴타운 만들어주겠다고 하면 덕 보는 열에 아홉은 다시 지금 대통령 찍을 겁니다. 당장 눈앞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사람한테 표 주는 거지요. 정의니, 분배니, 민주니, 이상이니, 입으로 아무리 떠들어도 아무도 안 보는 투표소 안에선 괴물이 다시 고개를 쳐드는 거라구요."
  
  "참으로 그렇소. 그러니 저마다 자기 마음부터 잘 살펴야지비. 내 마음이 실은 내 적이라오."  

  "이 보오. 기자양반.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오."
 
  "첫째. 반성 없이 그냥 넘어갈 수 있소. 둘째.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해 볼 수 있소. 보수 신문이든 진보 신문이든 자기갱신이 필요한 거 아임메.  ... 진보도 보수도 서로에게 선생이 될 수 있씀둥. 참여정부 시절엔 광우병 위험하다고 사사건건 비판하다가 지금 정부 출범하자마자 미국산 쇠고기 절대 안전하다고 돌변해서리 정권의 나팔수 노릇 자처하는 거이 제대로 된 언론이라고 말할 수 있게씀둥? ... 국민이 달라지고 있는데 맨날 오십 년 전 빨갱이 타령을 해서야 쓰게씀둥. 그러러면 보수 신문에서 일 하는 기자들부터 변해야 함메. 신문사 사주가 변하지 않으면 기자들이 변해서 사주를 변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게씀둥. 사주의 입맛에 길들여지는 게 아니라 말입지. 신문사 다니는 당신들, 다들 많이 배운 똑똑한 사람들 아임메? 지식인들 아임메?"
 
  "그리고 마지막 방법이 입지비. 가장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 가장 어렵겠지비.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거. 잘못된 증거였다고 인정하는 거. 조작된 거라고 인정하는 거. 거기서부터 새로 출발하는 거. 그걸 뭐라더라, 기렇디, 양심선언이라 하던데 말입지." 

 

  정권은 누군가의 쿠테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모두에게 촛불처럼 작은 힘이 있다. 촛불을 잇고 이어, 큰 횃불을 만들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일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하나의 사건은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선택의 큰 밑거름이 된다. 방향을 정하지 못하면, 겉보이는 모습에 끌려 그대로 휘말리고 만다. 보수던지, 진보던지 자신의 방향을 정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할까. 잘되면 내가 잘 선택해서이고, 못되면, 남의 탓이라는 생각을 버리기만 하더라도 다음 선거부터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일이 시작될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A만 아니면 돼라는 거부권의 행사가 아닌, 내가 꿈꾸는 세상에 가장 가까운 이를 선택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헛된 공약을 이야기하거나, 특정 계층만을 위한 정책을 내세우는 이는 최소한 멀리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달콤한 언어가 부담스럽지 않게 풀어내는 시인의 섬세함이 잘 녹아있는 소설이다. 잘 짜여진 플롯을 읽다보면, 다음 세상을 자연스레 꿈꾸게 된다. 그 많던 촛불을 든 이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자신을 불사르며 빛을 밝혔던 순간을 후회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잘 견디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밝혀지듯이, 시간이 지나면, 어두운 밤도 지나가고 따스한 햇살이 비출거라 믿는다. 마음 속에 촛불은 끄지 않고, 꼭 간직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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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 문학과지성 시인선 373
이병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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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마음에 무늬를 새기다.
 
 
  일상을 살다보면, 끊임없이 일에 치여, 마음에 점 하나 찍을 여유가 없어진다. 반복되는 일 속에 감정이 들어설 공간은 없다. 며칠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서로 얼굴을 붉히고, 그러다 내가 왜 이러나 싶어 우울해지는 일이 반복해지다 보면, 한동안 하늘을 쳐다 볼 여유 없이, 그냥 일에 치여, 시간에 쫓겨 하루하루 살았음을 깨닫는다. 개그프로에 웃고, 드라마에 대신 마음을 맡긴 채 지나버리는 일상에 빠지다 보면, 하루에 마음에 무늬를 새길 기회는 사라진다.
 
  시집을 읽는 이유는 마음에 시인의 목소리를 따라읽다보면 생기는 무늬를, 가슴에 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달콤한 연애시에서는 사랑의 감정세포가 만들어낸 하트의 무늬가 자리잡는다. 세상의 부조리를 외치는 시에서는 날이 바짝 선 대나무 무늬가 만들어진다. 아픔을 감싸안으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시에서는 동그라미 하나가 마음에 들이찬다.
 
  오랜만에 시집을 읽었다. 시인의 목소리에 마음을 빈 도화지로 만들어 시인이 외치는 글 하나하나에 떠오르는 느낌을 마음의 붓으로 그림을 그려본다. 
 

     .....

    배를 채우는 일은
 
    뜻밖의 밑줄들을 지우는 일이겠습니다만
 
 
   식사를 마칠 때까지
  
    여자도 나도 반찬 그릇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밑줄」, 28-29p
 
 
  역전 식당에 사람들은 붐비고, 자리에 앉은 나는 모르는 여자와 합석을 하게 된다. 서먹서먹 앉아 있는데, 종업업은 동행인 줄 알고 반찬을 한 벌만 가져다 준다. 낯선 이와 함께 하는 첫 순간이 얼마나 서먹하고 어려운지, 짧은 단어와 글은 영상보다 더 많은 그림을 보여주고, 생각에 잠기게 한다.
 
 
#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으므로
 
 
  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
 
 
  ...
 
 
  찬란이 아니면 다 그만이다
 
  죽음 앞에서 모든 목숨은
 
  찬란의 끝에서 걸쇠를 건져 올려 마음에 걸 것이니
 
 
  지금껏으로도 많이 살았다 싶은 것은 찬란을 배웠기 때문
 
  그러고도 겨우 일 년을 조금 넘게 살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다 찬란이다

 
   
「찬란」, 34-35p
 
 
  아름다운 장면 위주로 사진을 많이 찍는다. 예쁜 꽃이 활짝 피었을 때, 야경의 불빛이 아름다울 때, 사랑하는 연인이 함께 있을 때 등 다시 보았을 때,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순간 위주로 사진을 찍게 된다. 순간의 한 장면에 주목하지 않고, 꽃이 피기 전에 겪었을 겨울의 공간에서 봄의 따스한 기운으로 흙을 뚫고 나오는 순간에 주목하는 시인의 시선이 좋았다. 살아가는 일 자체가 찬란이고,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많은 사건들을 찬란의 시선으로 보는 시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세상을 바라봤던 시선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좋은 시는 시인이 혼자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남긴 시가 독자의 마음에 들어와 하나의 꽃으로 피어났을 때 완성된다 생각한다. 좋은 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시로 읽고 싶은, 자꾸 읽고 싶어지고, 다시 생각하고, 찾게되는 시가 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 생각한다.
 
  처음 읽었을 때는, 마음 속에 가득차 있던 스트레스와 우울의 감정이 사라졌고, 두 번 째 만났을 때는 시인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되었다. 세 번째 읽게 되니, 시인이 그려내는 그림과 내가 느낀 감상을 함께 생각해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시집을 읽고 나니, 창밖의 풍경이 궁금해졌다. 오랜만에 바라본 창밖의 풍경에는 물러나는 겨울의 기운과 조금씩 다가오는 봄의 기운이 함께 공존해 있다. 그냥 지나쳤던 꽃들과 나무들도, 마주치지 않지만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왠지 남이 아니라 느껴졌다. 지인이 생각나 문자를 보내고,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었다. 2주동안 삶의 방향이 변했던 지인의 앞날을 응원하고, 그동안 달라졌던 내 마음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인과 나누었던 일방적인 대화가 즐거웠기에, 일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사랑의 온기를 나누는 일탈을 경험하게 되었다 생각한다. 왜 나이가 들수록, 시를 피하게 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시가 우리에게 필요한지 『찬란』을 읽으며 다시 생각해 보았다. 『끌림』이라는 산문집에 끌려, 만나게 된 시집이다. 산문도 좋지만, 시인의 시도 그에 못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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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를 부르는 그림 Culture & Art 1
안현신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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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ss,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키스, 포옹, 사랑 등은 둘이 함께 하여야 그 빛이 난다. 생활방식도, 삶의 가치도 다른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입술을 통해, 둘이 아닌 하나가 되는 일, 키스는 매혹적이고 달콤하다.
 
  인생에 기쁨이 있는 크기만큼, 슬픔의 자리가 들어차듯이, 키스 역시, 아름다운 풍경의 순간도 있지만, 배신과 불안, 두려움의 순간을 드러내기도 한다. 23편의 예술가가 그린 키스의 장면이 담긴 명화를 보며, 처음 느낀 생각은 무지개처럼, 키스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 다른, 다양한 상황에서 일어난 키스 장면이었다. 그림에는 화가의 생각이 배어있고, 화가는 그 시대의 삶의 양식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 작품을 통해, 시대와 화가의 삶을 읽다. 

    
  키스를 하는 두 남녀 뒤에서 그들을 짝사랑하는 한 사람이 있다. 키스를 하는 커플에게는 키스의 순간이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이겠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이에게는 가질 수 없는 고통을 확인해야 하는 아픔의 시간이 된다. 동시대를 살아가더라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가슴에 스미는 감정이 달라진다.
 
  열렬히 사랑에 흠뻑 빠져있던 샤갈의 그림에서는 사랑에 빠져있는 이의 따스한 열정이 느껴졌고, 어두운 방안, 얼굴의 윤곽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흠뻑 빠진 뭉크의 그림에서는 두려움의 마음이 가득찼다. 저자는 그림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함께, 화가가 살았던 시대와 화가의 살아가던 시대의 풍경도 함께 알려준다. 유년시절에 사랑했던 사람들을 잃어야 했던 아픔을 가진 뭉크의 삶에서, 그의 그림의 어두운 느낌의 이유가 이해되었고, 샤갈의 삶의 결을 통해, 그가 갈망했던 마음이 전해졌다. 
      
 
# 가상의 작업일지를 통해  화가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조각부터 회화까지, 르네상스부터 현대미술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다. 각 챕터의 마지막에는 화가의 마음을 대신 짐작해서 저자가 쓴 가상의 작업일지가 6편이 담겨있다.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이 아닌, 편지와 새로운 방식을 통해, 예술작품과의 교류를 시도한 저자의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가상의 작업일지를 통해,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삶의 방식을 짐작할 수 있었고, 저자가 화가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를 확인하였으며, 추신으로 남긴 키스마크 뒤의 이야기를 통해, 밝혀지지 않는 사실과 논쟁적인 부분에 대한 정보도 얻었다.
 
  보통 화가들이 활약했던 시대나 한 명의 화가나 유행하는 화풍을 통해 서양예술을 접해왔는데, 키스라는 독특한 문화적 주제를 통해서도 이야기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이 놀라웠다. 키스라는 행위가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로맨스와 에로스, 사랑 사이에서 이뤄지는 행위이기에, 사랑에 빠지거나, 사랑이 식어갈 때 인간이 담는 그 마음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해 볼 수 있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사탕키스처럼 달콤한 장면말고도, 시작하려는 마음이나, 질투에 자신을 무너뜨린 키스, 두려움의 키스 등 다양한 감정들을 예술가들이 그려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내 마음속에 숨어있는 감정에 화가가 표현하려는 감정이 숨어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수 있었다.
 
  종교가 사람들을 매혹시키지 못하는 현실에서, 인간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종교는 사랑이라 생각한다. 사랑에 빠진다면,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키스라는 작품처럼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어떤 사랑을 하고 있으며, 어떤 사랑을 꿈꾸는지, 다양하게 소개된 작품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따스하게 아이품을 안아주는 메리 카사트의 키스를 통해 어머니의 사랑을 다시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사랑을 듬뿍 받았던 시절을, 일상을 살다보면 쉽게 잊고살게 된다. 아이였을 때, 나를 감싸안아주는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을 떠올려 봤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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