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 감각의 독서가 정혜윤의 황홀한 고전 읽기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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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은 세 번 태어납니다!
  
 
  제목을 되뇌어 읽다가, 유명한 CD 박웅현씨가 문안을 짰던 광고가 생각났다. 음악은 세 번 태어납니다! 라는 문구이다. 베토벤이 작곡을 했을 때 처음, 음악이 태어나고, 그 곡을 연주가가 연주했을 때, 음악은 두 번째로 태어나고, 마지막으로 스피커에서 소리가 재생되었을 때, 음악은 세 번째로 태어난다는 스피커에 관한 광고에 씌인 글귀이다. 작곡가의 손에서 연주가로, 그리고 재생기기로의 과정을 잘 포착한 광고기획자의 눈썰미가 돋보이는 광고이다.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의 제목은 보이는 현재와 다른 현재를 해석(과거), 미래를 꿈꾸는 새로운 세계를 진행시키는 일을 통해 인간은 조금 더 나아진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내가 좀 더 나아지기를 원한다면, 미래는 좀 다르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뭔가 읽고 써야 하고, 그 과정에 고전이 등장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이 감동받았던 글을 타인에게 소개할 때 글은 가장 큰 설득력을 지닌다. 저자 역시, 자신의 마음을 움직여, 독자들도 한 번 귀기울여 들어보았으면 하는 작품 15편을 골라, 책 속에 좋아하는 마음의 순간들을 사진의 한 장 처럼 찰칵 포착해서, 책을 읽기전의 자신과 책을 읽은 후의 자신, 그리고 변화된 시대를 바라보며 떠오르는 생각까지 글에 남긴다.
  
 
#  고전을 통해 시대의 풍경을 바라보다.
 
  고전을 열심히 읽다보면, 현대사회의 풍경도 함께 보이는 걸까. 오랜시간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작품에는 시대를 넘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거나, 고민하게 만드는 요소가 내재되어있음을 저자의 매끄러운 설명을 통해 확인했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며,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드러내기 보다는, 사람들이 떠받드는 세련된 거짓 모습을 구축하며, 사랑을 구했던 개츠비의 모습과 성공의 끝자락을 붙들기 위해 대학시절부터 취업 스펙을 맞추려는 모습이 겹쳐진다. 『보바리 부인』에서는 권태를 이기지 못한 채, 더 나쁜 선택을 계속해가는 모습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는 선과 악이 빚어내는 틈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이, 『1984』에서는 미국과 한국사회에서 전쟁의 위협이 만들어낸 자발적인 통제와 강압과 위협의 풍경이 보인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더 젊어지려, 동안의 모습, 젊음의 모습을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은 성형과  젊음의 욕망과 타인의 시선에 매여있는 현대에 더욱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고전이 퀘퀘먹은 옛날 책이 아닌, 지금 다시 읽어도 충분히 가치 있는 내용이라는 사실과 함께, 찰칵, 찰칵, 저자가 느꼈던 가장 감동받았던 순간들이 책에 가득하다. 줄거리소개와 함께, 저자가 책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고, 세상을 보는 시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듣다보면, 저자의 글에 소개된 것처럼 새벽 3시 매혹적인 이성의 달콤한 키스처럼, 고전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그냥 내용만 알고 있고, 아무도 읽지 않기에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이, 누군가의 따스한 눈빛과 손길을 통해, 다시 한 번 꺼내어 읽고 싶은 현재형의 책으로 변한다. 저자만의 특징인 길고 긴 인용과 릴레이 인용이 마음에 불쾌감을 주지 않는 이에게는 또 다른 책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저자는 자신의 언어로 새롭게 이야기한다고 믿는 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책이다.
 
 
#  하루에도 몇 번 씩...
  
 
  하루에도 몇 번 씩, 마음이 변한다. 흔들리는 갈대처럼, 변하던 생각이 누군가와 만남을 통해 단단한 생각으로 변한다. 고전은 자신의 마음에 하나의 보석을 새겨넣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예전에도 등장인물들이 고민했고, 지금도 여전히 문제를 지니고 있는 상황들을 고전이라는 장치를 통해, 재체험함으로써, 다음에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답을 미리 얻을 수 있다. 정답을 제시하지 않고, 놓쳐가는 마음의 풍경을 그린 작품들도 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이건 나와 맞지 않는 책이 있을 수도 있다 생각한다.
 
  좋은 사회는 어제보다 오늘, 좀 더 다양한 삶을 선택한 사람이 사회의 틀에 구애받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사회라 생각한다. 역사가 흘러오면서,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여성의 인권, 장애인의 인권, 소수자의 인권이 백년 전, 이백년 전 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내 머리가 꿈꾸는 세상과 비교하면 아직도 수천 년 뒤쳐진 시대에 사는 느낌이지만, 모두가 함께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머리를 맞댄다면, 급격한 변화로 인한 충격을 얻지 않고서도, 충분히 어제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한 문제제기로 토론해 볼 가치가 있는 책들이 고전이라 생각한다.
 
  '사랑'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취향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상이기에 그럴 수 있다 생각한다. 수많은 고전 중에 저자의 선택을 받은 고전들은 한 번 쯤 읽어볼 만한 이야기거리가 하나 이상은 각각 존재했다. 읽지 않은 고전도 있었다. 저자의 책 소개는 잡히면 빠져나오기 힘든 거미줄과 닮았다. 먼저 말을 걸어준 저자에 이어, 다른 고전들을 내 방식대로 말을 걸어보고 싶어졌다. 자신만의 고전읽기가 끊이지 않는다면, 고전은 영원히 우리 사회에 숨쉴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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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스무살 철학 - 혼돈과 불안의 길목을 지나는 20대를 위한 철학 카운슬링
김보일 지음 / 예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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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살, 뜨거운 열정과 욕망이 가득찬 시기.
 
 
  스무살의 나는 조금만 열심히 움직이면 세상이 다 내 것이라 생각했던, 자신만만함이 가득한 시기였다. 내가 좋으면,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거라는, 순진한 생각이 가득했고, 내 욕망에 충실했으며, 다른 관계보다 나의 입장에 대해 더 많이 신경쓰고, 행동했던 시기였다. 철이 없다는 말은, 깊이 헤아리지 못한다는 말과 겹친다. 신중히 생각하고, 이것저것 고민하며, 차분히 기다리고, 깊이 이해하는 일, 열정과 욕망,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으로 몸부림치는 청춘과 어울리지 않는다. 몸도 뜨겁고, 본능에도 충실한 스무살에게는 거침없이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질주본능이 어울린다. 무엇보다 스무살에게는 이성의 힘이 가득한, 철학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저자는 나를 설득할 수 있는 이성적 질서를 철학이라 정의한다. 내 열정에 물꼬를 터 주어 내 열정이 잘 흘러갈 수 있도록 길을 내 주는 것을 철학이라 생각한다 이야기한다. 스무살의 청년이 철학을 통해, 나와 타인의 다름을 겸험히 인정하고 공존의 원칙을 모색하는 삶에 눈뜨게 될거라 외친다. 철학이란 말만 들어도, 따분하고 지루하고, 외면하기 십상인 그들을 철학의 세계로 이끌기 위해, 저자는 존재, 불안, 선택과 운명, 고독과 놀이와 친구, 욕망과 행복, 성공, 사랑까지 7가지 키워드로 스무살에 고민하는 주제들을 이야기한다.
 
 
#    혼돈과 불안의 길목을 지나는 20대를 위한 철학 카운슬링
 
 
  88만원 세대와 인턴과 비정규직의 터널을 지나야 하는 혼란스럽고, 불안의 길을 걷는 20대를 위해 저자는 멈출 줄 아는 지혜를 이야기한다.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싶은 욕망과 다양한 자극에 취약한 세대를 위해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먼저 세상을 살았던 철학자들의 글과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딱딱하게 생각되는 철학을 지금 살아가는 20대들이 충분히 고민하는데 보탬이 되는 이야기로 바꾼다. 불안과 스트레스가 동물들의 위협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사항이라는 사실과 남극 탐험이라는 위험한 길의 위험성을 알지만, 낙천성으로 어렵고 힘든 여건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낸 남극탐험가 섀클턴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20대를 살아가는 귀엽고, 소중한 후배들이 한 번 고민해 보았으면 하는 이야기이다.
 
  철학과 고독은 떨어질 수 없는 요소이다. TV와 컴퓨터와 핸드폰 없이 한 달을 살아보라고 한다면 지루한 권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저자는 인터넷과 관계, 이어짐에서 자유롭지 못한 지금 세대들을 위해 행복은 가지고 있는 소유의 양을 욕망의 양으로 나눈 것이라는 행복 공식을 언급한다. 자신 스스로 구매했지만, 그 충동을 비난을 면하기 위해 지름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세대들을 위해, 남들에게 멋져 보이지 않아도 자신 스스로 정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작은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 반듯하고 윤리적인 내용들이 가득하다고 할까. 청소년을 교화의 대상으로 보는 선생님의 시각이 문체에 가득 스며있었다. 왠지 어두운 길목을 걷는 어린양을 인도하는 따스한 손길이 너무 가득했다. 스무살이면 혼란의 시기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이다. 스스로 선택하도록 길을 열어주기 보다, 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싶은 저자의 마음이 가슴에 그대로 전해졌다.
 
 
#  한 번 실패한다고, 세상 끝나는 거 아니다.
 
 
  저자의 친절하고 잘 정리된 글을 읽다보니, 스무 살의 청춘에게 전하고 싶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최고의 선택보다는 지금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메시지에 이어, 설사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인생이 전부 끝난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스무살에는 성공에 대한 열망, 성취에 대한 노력도 강하지만, 한 번 실패를 겪다보면, 거기에 헤어나오지 못하고, 계속 정체되는 무기력에 쉽게 빠지기도 한다. 일본 사회는 격차 사회라고 해서, 한 번 잘못되면 다시 위로 올라서기가 쉽지 않지만, 한국은 듬성 듬성 벌어진 틈이 많아, 몇 번 실패한다고 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재수를 한 번 했다거나, 사랑에 실패했다거나, 취직이 쉽게 되지 않는다거나, 자신의 꿈을 빨리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하더라도, 괜찮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한 길이라면, 그 길이 내 예상과 다를 때는 그때 그때 수정하면서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 늘 모든 일에 성공하기를 바라는 건, 완벽주의를 꿈꾸지만 결국 아무것도 못하는 실패의 삶을 사는 지름길이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청춘는 실패의 경험도 값진 시기라는 사실을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한 책인데, 저자의 풍부한 독서량을 확인하게 되었다. 책 속에 소개되는 읽어볼만 한 책과 시와 글귀들이 많다. 쉽게 만들어진 책이 아니다. 꿈꿀 여유가 보이지 않는 20대에게도,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는 30대에게도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놀이에는 친구가 있기 마련이고, 책은 혼자인 내가, 시간과 공간에서 자유로운 저자의 흔적과 이야기하는 놀이이다. 저자의 글에 반기도 들어보고, 공감도 하다보면, 지금의 힘겨움을 이겨낼 작은 힌트 하나는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20대를 위해 고민해서 책을 펴낸 저자가 있는 것만으로도, 지금 20대에게는 하나의 축복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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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9단
양순자 지음 / 명진출판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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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책에는 만남의 때가 있다.
 
 
  책에도 인연의 끈이 있는 것일까. 오래 전에 도서관에서 책을 보았을 땐, 그저 그런 에세이로 느껴져 시큰둥했었다. 최근에 헌책방 나들이에서 만났을 때는 진흙 속에서 연꽃을 만난 기분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의 관심도가 달라지듯이, 이제는 어르신의 지혜의 말씀을 귀기울여 들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제시하는 공식은 당신이 팔짱끼고 있어도 모두 다 해결해주는 마술 같은 게 아니야. 당신이 직접 몸과 마음을 움직여야 해. 대신 공식을 모를 때보다 훨씬 더 쉽고 간편하게 실타래처럼 꼬인 인생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약속할 수 있어. 나한테 통한 공식이니까 당신한테도 통할 거란 말이지. 당신이나 나나 여린 마음으로 작은 행복을 꿈꾸며 사는 사람들이니까.
 
 
#   가장 힘겨운 삶을 살았던 이가 들려주는 위로.
 
 
  여자 혼자의 몸으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1940년생인,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이에게는 편견과 몰이해의 사회적 시선도 이겨내야한다. 유서를 쓰면서 마음에 걸려 있는 짐을 하나씩 지워내고, 이별을 하되, 충분히 숙고하고 이별을 경험했던, 가장 힘겨운 삶을 살았던 이가 들려주는 삶의 지혜이기에, 더욱 값지고 빛이 난다.
 
  무조건 내 편을 들어줄 것 같은, 할머니가 들려주는 따스한 말씀이 가득하다. 거기에 솔직함과 직접 삶의 현장에서 경험한 일화들이 인생공식의 내용을 탄탄하게 지지한다. 봉사를 하면서도 그 사람이 당장 바뀔거라고 기대하지 말라는 말씀은, 30년 이상 사형수와 상담했던 경험이 있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다. 살아가면서 실행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쉽게 잊고, 그렇게 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볍게 무시해 버리는 행동들을 바꾸면 내 인생을 쉽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놀라웠다.
 
  지혜로워지려 하지 말고, 미련한 짓부터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보자는 말, 누군가를 도울 때는 물 한 바가지 퍼주는 심정으로 돕자는 말, '나는 귀한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을 바꿔보자는 이야기 등 귀기울여 들을 내용이 많았다.
 
 
  #  당신의 인생공식은 무엇입니까?
  
  
   힘들고 만만치 않은 인생살이를 조금이나마 살 만하게 해주고 싶어 할머니는 인생공식을 들고 나왔다고 한다. 불평하고 원망한다고 인생살이는 절대 좋아지지 않는다며, 어떻게 하면 인생이 살 만해질까를 생각하며 노력해보자 이야기한다. 한 번 듣고 버리지 말고, 가까이 두고, 자주 들춰보길 권한다. 65년 인생을 녹여내서 만든 공식이라며, 사는 데 도움이 되면 됐지 해는 절대 안될거라 자신있게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독자 스스로의 인생 공식을 만들어 보길 권한다. 누구에게나 삶을 살아가며 자신만의 공식이 있다 생각한다. 누군가는 힘든 상황을 겪을 때, 눈을 찡긋 감으며 지나칠 것이고, 누군가는 마음의 힘을 일으켜 절대 물러서지 않을 테고, 누군가는 주변에 힘을 구해 함께 이겨낼거라 생각한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공식을 공유하다보면, 힘들고 팍팍하고 냉정한 세상도 조금은 더 나아질거란 생각을 했다.
 
  힘들 때, 할머니의 인생공식을 잊어버리지 않고, 찾아 읽는 일을 내 삶의 인생공식의 하나로 만들어 두기로 결심했다. 혼자서 모든 걸 다 이겨내기에는 마음이 그리 강하지 않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것을 비워내는 마음과, 다른 사람의 기쁜 일을 즐겁게 축하해주고, 기쁘게 하는 일을 많이 하려는 마음씨를 본받고 싶다. 꿈을 계속 그리다보면 그 꿈에 닮아간다는 말처럼, 본받을 만한 이의 글을 자꾸 읽다보면, 내 마음속에도 그의 기운이 조금은 스며들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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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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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나은 삶이 보이지 않는다. 밑바닥 인생이다.
 
 
  마흔 여덟, 20억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를 망친 오감독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팔고, 팔순 고령인 어머니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52살에 전과 오범의 변태성욕자, 인간망종인 별명이 오함마인 형 오한모가 살고 있다. 치열한 영역 다툼 끝에 엄마와 함께 살게 된 오감독에게 갑자기 못보던 열 여섯 소녀가 나타난다. 술집에서 돈을 버는 여동생 미연은, 남편 몰래 바람피다 걸려서 이혼당하고, 할머니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거기에 싸가지 없는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오는 거침없는 영혼, 열여섯 민경도 집으로 들어왔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방 구석에 평균 나이 48세의 다섯식구가 모여서 밑바닥의 삶을 살아간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가족들에게 볕들 날이 올까?
 
 
#  살아 숨쉬는 캐릭터들의 좌충우돌 사건들 속에 풍덩 빠지다.
 
 
   - 와, 씨발. 졸라 웃겨.
 
   - 그럼 너는 내가 네 삼촌이라는 거 아니?
 
   - 아저씨, 내 이름 알아요?
 
   - 조카 이름도 모르는 삼촌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더 미래가 나아보이지 않는 고령의 삼남매에게도 여러가지 일들이 얽히면서 묘하게 일이 풀려간다. 상식적인 사람의 눈에는 그리 나아보이지 않는 삶이지만, '막장' 드라마라 불리는 출생의 비밀과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가 폭로되어도, 왠지 이 캐릭터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넘치는 구라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흥미로운 이야기로 바꿨다고 할까. 캐릭터의 힘이 살아 숨쉬는 작품이다.
 
 
#  더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아.
 
 
  우울하고 찌질해 보이는 삶들이 놀란만큼의 해피엔딩도 그렇다고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며 사라져가는 슬픈 결말이 아닌 점이 좋았다. 밑바닥의 삶, 더 나아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세 남매와 어머니 곁에는 그다지 멋져 보이지 않는 삶도 인정하고, 함께 있음을 기뻐해주는 사람이 있어, 그들의 삶은 그 전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큰 돈을 벌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추앙 받을 수 있는 멋진 직장이나 명예를 얻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또 하루를 살면서 충분히 만족하며 지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까. 양극화 시대가 점점 심해질수록, 고령화와 사회적 약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길은 어둡고, 힘겹고, 빛이 보이지 않는 길이 놓일거라 생각한다. 어둠의 끝에서도 자신을 이해해주는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면, 그 삶의 여정이 우울하고 비참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스한 봄날, 예쁘게 만발하는 꽃들을 보며,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봄이다. 소설이 풀어내는 대상들을 생각하면 어둡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 외면하고 싶어진다.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 한국사회가 얼마나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좋은 책은 누군가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책이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그 기준에 만족하다고 확정하지 못하지만,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밝지 않은 곳에 머무는 이들이 따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하게 해 준 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는 소설이라 생각한다. 진흙 속에 피어나는 연꽃같은 책이라고 할까. 진흙탕에 빠지는 일이 감내할 수 있는 독자의 삶의 폭을 넓혀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로 독자를 즐겁게 해 줄까? 다음 책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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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의 해학 - 사찰의 구석구석
권중서 글.사진 / 불광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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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공기가 있는 산을 오르다 보면, 자연스레 사찰과 만나게 된다.

 

 

  군대에 가기 전까지, 산에 오르는 일을 좋아했다. 맑은 공기도 마시고, 나무와 풀, 꽃 등을 보다보면, 인간관계에서 마주쳤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된다. 산을 오르다 보면, 사찰을 만나게 된다. 노을이 질 때면 들려오는 범종소리는 마음을 맑게 하고, 대웅전이나 여러 건물에 보이는 양식들은 수천년을 지내온 역사의 숨결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일주문과 천왕문에 있는 사천왕의 이름이 무엇인지, 왜 그곳에 있는지, 산에 왜 물고기 문양이 있는지 등등, 소소한 사항들은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책을 읽으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냥 무심코 지나쳤던, 달, 차, 석등, 명부전, 장승, 사천왕, 가루라, 물고기, 원숭이, 용 등 사찰에 존재하는 많은 대상들에 각각 의미가 있음을 배웠다. 무엇보다 불교미술의 해학이라는 제목처럼, 그 대상물들이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장엄함이나 경건함이 아닌, 서민들이 보고 웃을 수 있는 친근감과 해학이 스며있어 좋았다. 지옥을 관장하고, 부처님을 보호하는 야차와 거친 동물들이 무섭지 않는 민화에서 보이는 선한 곡선처럼, 친근감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확인했다.

 

 

#  친근한 설명이 돋보이는 책.

 

  종교에 관한 책은 문외한에게는 다가서기 어려운 거리감이 있다. 산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일까. 산속을 오르다 만나게 되는 사찰에는 잠시 머물러 둘러보고 가는 일이 마음에 무겁지 않다. 왠지 모를 친근감이 있다고 할까. 불교의 교리에 관한 이야기보다, 흥미를 끄는 동물과 사찰 주변의 대상들을 옛 이야기와 불교에 나오는 설화 위주로 설명한 점이 인상적이다. 불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겠지만, 불교에 인연이 없는 이라도, 사찰에 놓여있는 대상들에 의미가 스며있음을 배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불교와 사찰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게 된다고 할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든 믿지 않든 차별없이 오직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고 자비로 행복을 주신다. 신이라는 권위를 내세워 중생의 생명을 위협하는 그러한 어리석은 짓을 무명이라 하여 경계하셨다. - 20p

 

  전등사에 얽힌 이야기에 서린 오해를 알 수 있었던 점도 인상적이었다. 도편수가 복수하기 위해서 여인의 모습을 조각해서 불당의 지붕을 떠받히게 했다는 이야기보다 부처님이 전생에 500마리의 원숭이의 목숨을 구했던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원숭이가 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해학의 양상이 달라진다"는 저자의 말은, 대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로보느냐가 중요하다는 메세지로 들렸다.

 

  스님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하는 사찰의 곳곳에 얽힌 이야기를 친절하게 풀어낸 책이다. 건강을 위해 산을 오르던지, 관광을 하기 위해 사찰을 들릴지 모르지만, 사찰로 떠나게 될 때 함께 동행하면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불자에게는 더 깊은 불교에 대한 이해를, 사찰과 불교양식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이에게는 우리 문화에 숨겨진 해학적인 면을 배울 수 있는 계기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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