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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덫
장하준 지음 / 부키 / 2004년 8월
평점 :
# 계륵,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은 책을 만나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1950-1990년대 까지 산업화의 성공은 엘리트 관료와 정부주도의 개입정책의 승리다. 연 6퍼센트가 넘는 경제성장의 뒤에는 세계 최고의 노동시간과 착취적인 생활을 감내하면서 배부르게 살고 싶은, 이 땅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들의 공로가 숨어있어 마음이 아프다. 선진국이라 하기엔 많이 부족하고, 후진국이라 하기엔 가진게 많다. 정권교체도 되고 인권을 표방하는 정권이 유지하지만,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는 실패한 것이 사실이다.
비정규직 사태처럼 고용을 유연화한다고 해서 취직하기도 힘들고, 취직했다고 해서 언제까지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안심할 수 없다. 어제 서울 공무원 시험을 보기위해 5만명이 몰렸다는 뉴스를 보았다. 경기가 흔들리고 불안정할수록 사람들은 안정된 공무원을 찾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다시 산업화시대로 돌아가 경제발전의 대가로 비인권적인 생활을 누리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 가자니 경기가 풀릴 것 같지 않아 막막하고, 뒤로 돌아서자니 죽기보다 싫다. 인권과 노동자의 권익도 보호되면서, 경제도 발전할 수는 없는걸까? 캄캄한 동굴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했다.
# 영국과 미국의 자유주의의 모순과 다른 노선의 선진국의 발전원동력을 알게 된다.
WTO, FTA, 그리고 영국과 미국이 자유주의를 주장하며 무역하기를 요구하지만, 두 나라 역시 보호무역을 오래 해 온 나라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진국이 되기 전에 100년이 넘게 보호무역을 해오다, 산업화를 통해 선진국에 도약하자, 자신의 국익에 자유주의가 더 이롭다는 걸 알게 되자 자유주의로 노선을 바꾸었다는 사실과, 영국 역시 산업혁명 초기에 보호무역을 통해서 자국의 이익을 보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국과 미국을 제외한 나라에서는 국가의 개입에 의해서 산업이 발전하였고, 그 산업의 기반이 되는 것은 제조업이란 사실과 제조업이 살아야 이공계가 산다는 주장 또한 이공계생으로서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노조조직률이 세계최고인 핀란드와 국토의 대부분이 국유지인 싱가포르, 종신고용과 기업간 우호지분을 통해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일본과 은행중심의 금융제도와 노사공동결정원리, 엄격한 기능공 제도로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낸 독일까지, 꼭 시장개방이 아니더라도 자국의 산업과 흐름에 맞추어서 산업화에 성공한 많은 나라와 그 산업화 기반에 제조업이 중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건 하나의 충격이었다. 꼭 미국이 최고의 대안이 아닌데, 왜 미국을 따라하는 걸까? 알면서도 정치적 이해로 못하는 것일까? 아님 귀찮아서 자기 편의로 하는 것일까? 등등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제조업과 함께 선진국이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노,사, 또는 정부까지 대타협을 이루었다는 걸 알게되었다. 노동자와 자본자와의 사이가 멀어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비정규직법과 점점 커져가는 빈부격차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숙제라는 걸 알게 되었고, 재벌개혁만이 최고의 해법이 아니라는 걸 알게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반성하지 않고, 오만한 재벌의 형태를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기분은 순간을 즐겁게 해 주지만, 그 후에 고통이 크기에,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봐야 겠다고 다짐하였다.
# 좌파도 우파도 아닌 한국파의 괴로움에 동감하다.
자본의 국적이 없다는 말은 선진국의 신화라는 말과 함께,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3가지 기준을 알게 되었다. 하나. 자본가 편인가, 노동자 편인가 - 저자는 양쪽이 타협해야 한다며 중도파라고 했다. 두울. 정부의 시장개입을 지지하는가 - 저자는 개입할 부분이 있다며 좌파쪽에 가깝다고 했다. 세엣. 경제 체제의 변화를 급진적으로 할 것인가, 점진적으로 할 것인가 - 저자는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며 우파쪽에 가깝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단선적 이해는 '딱지 붙이기'에 급급하며, 시장주의의 평등과 민주주의의 평등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주주 경영이 급진적이긴 하지만, 돈 많은 투자자들을 배부르게 하고, 고령의 투자자들은 회사의 재투자보다 고배당을 추구하므로, 기업이 발전하기 보다, 장기적으로 쇠퇴할 가능성이 많다는 말에 공감한다. 공기업과 정부의 개입을 통해서, 국영기업을 서둘러 매각하지 않고 제 값을 찾아줄때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문제는 정치적 이해와 사람들의 시선은 그걸 원하지 않기도 한다는 점이다.
어렴풋하게, 경기가 발전하는 것은 우파의 주장이고, 좌파는 정치개혁을 주장한다고 생각했는데,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개혁주의자들의 주장이 우파에 가깝다는 것에 충격이였다. 정치가 너무나 안정되어, 대통령의 이름을 모르는 스위스의 뒤에는 강력한 제조업의 강국의 면모가 있기에 강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노사의 타협과 정치적 이해관계의 안정화, 실타래로 칭칭 감긴 줄을 풀어야 하는 것 같아 막막하다.
# 어려운 실타래,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어렵다고 포기하면, 점점 더 실이 꼬여갈 것이다. 기분에 못이겨 막 흐트려놓았다가 결국 끊어버리는 일을 하고 싶진 않다. 산업화의 장점을 인정하면 유신정권을 인정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유신정권의 산 업화 전략이 옳은 선택이였다는 것을 확인받아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산업화를 병행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던 것은 앞으로의 경제문제를 바라보려 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저자의 주장만이 최고의 해결책은 아니라고 저자 스스로 이야기 했다. 다른 책과 의견을 살펴보고 공부하다보면 어렵게 보이는 경제 역시 마음을 열어줄거라 믿는다. '개혁'의 등뒤에 숨은 '덫'을 보았다. 이제 어떻게 피해갈 것인지 고민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