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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이 들려주는 것들 -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마크 네포 지음, 박윤정 옮김 / 흐름출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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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소리에 주목할 때 고요함은 빛난다

지난 늦여름 한통의 전화는 조용한 생활에 파문을 불러왔다. 시골에 계신 아버님이 안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전화로 그것도 아주 짧은 통화였기에 한동안 몸도 마음도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보내고 난 후에야 비로소 정신이 돌아오며 어찌해야 하는지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며칠이 지난 후 병원에서 만난 아버님의 모습은 평화로웠다. 아니 그렇게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입원을 하고 다양한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도 그리고 항암제 투여와 방사선치료를 받는 과정에서도 그 평온함은 유지되었고 가족들이 더 안달하는 모습이 나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병이 호전되고 다음 치료 방법을 선택하기 위해 기다리는 지금도 아버님은 여전히 평화롭다.

 

그분의 속내가 궁금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스스로 발병한 사실에 대해 어떤 느낌인지? 그렇지만 물어볼 수 없다. 의연해 하는 그 모습에 조그마한 파문이라도 일으킨다면 어쩌지 하는 아들의 좁은 마음에서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한 것은 그 고요하고 의연하며 평온한 얼굴이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것이다. 암이라는 병이 조그마한 것도 아니고 그것도 연세가 드신 아버님이 받아들이시는 모양세가 삶과 죽음은 이미 초월한 어떤 무엇이 있는 것 같아 그 힘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이 더하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대 사회는 자신의 조건과 처지를 상대방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한다. 우는 아이 젖 물린다는 것처럼 몸과 마음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때론 과장하여 외칠 때 자신의 것을 지킬 수 있고 또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보니 요란하게 떠드는 사람들이 많다. 좀처럼 침묵하거나 조용한 시간이 없어 보인다. 그런 사람들 속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몸비 궁금하다. 많은 선각자들은 고요함이 주는 다양한 이로움을 알려주고 있다. 여기에서 고요함이란 자신의 본래 모습에 그리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우리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런 고요함이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지만 짧은 순간도 참지 못하고 떠들고 외치기에 급급한 세상살이를 돌아보게 된다.

 

현대인의 이런 생활에 가볍지 않으면서도 조용하게 파고드는 힘을 느끼게 하는 책이 있다. 바로 흐름출판에서 발간한 마크 네포의 ‘고요함이 들려주는 것들’이다. 두 번의 암 투병을 치르면서 얻은 삶에 대한 깨달음을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멈춤, 삶의 속도, 관계, 용기, 진정한 나, 소통, 받아들임, 포용, 깨어 있음, 깨달음, 성장, 되짚어봄’으로 구성된 이야기의 중심엔 결국 ‘나 자신’이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며 이웃과 사회 속에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조용한 음성이 담겨 있어 보인다.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된 이 책은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년 365일 하루에 한 두 페이지씩 읽어가며 자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우리고 나와 이웃 사람 관계를 재조명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구성에 얽매어 읽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어느 페이지를 펼치든 그곳에서 만나는 이야기의 중심은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것들을 하나 둘씩 설명해 주고 있기에 순서가 필요 없다는 말이다.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주인공인 스스로가 가장 빛날 수 있는 때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우리는 고요함의 유지에 있을 것이다. 하여, 고요함은 침묵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무거운 외침으로 다가서는 것이다.

 

암 투병중인 아버님에 대한 궁금함이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일생을 고요함 속에서 살아온 당신이기에 요란함을 불러올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해서도 의연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동서양의 고전이나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과 적절하게 배합하여 따뜻하고 은은한 향기가 피어나는 글들이 오랫동안 시끄러운 세상에서 살아온 우리들에게 고요함이 주는 맛의 깊이를 전해주기에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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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고요한 노을이…
보리스 바실리예프 지음, 김준수 옮김 / 마마미소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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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쟁 같은 현실에 비추어

겪어보지 못한 상황을 현실로 느낄 때가 있다. 영화와 같은 사람의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하여 마치 실제같이 보이도록 한 영상물에 의해 나 자신이 바로 그곳 그 장면 속에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그런 경험 말이다. 세상은 넓고 경험하지 못하는 일 또한 부지기수다. 하여 직접적인 체험은 한정되고 다양한 매체나 책, 자료 등에 기대에 우리는 직접 겪지 못한 일을 보고 느끼며 생각하게 된다. 이런 것들 중에 전쟁도 포함된다. 물론 우리 곁에는 아직도 직접 전쟁을 치루거나 전쟁이라는 환경에 노출되어 살았던 사람들이 많다. 우리의 근현대사도 이런 전쟁과 무관하지 않고 그 중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전쟁은 무슨 의미로 남았을까? 가장 소중하다고 할 사람 목숨이 한낮 파리 목숨 보다 못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지만 보고 듣고 체험했을 그 모든 상황이 어쩜 한밤의 꿈같지는 않았을까?

 

‘여기에 고요한 노을이’에서 벌어지는 전쟁 상황이 꼭 그렇게 한밤의 꿈처럼 느껴진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러시아의 전선에서 벌어진 전투상황을 그려 놓은 이 소설은 전쟁이 남긴 상처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는 여지를 가득 안겨주고 있다.

 

러시아 서북부의 농촌 마을이 있는 제171대피역, 그곳에 들어선 고사기관포 기지에 여군 고사기관포 사수 2개 분대 병력이 배치된다. 백전노장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피역 경비대장 특무상사를 중심으로 이제 갖 군대이 입대한 여자병사들이 어울리지 않은 군대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직은 젊고 씩씩하기만 한 여자병사들이 전투라는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지 특무상사의 고민은 늘어만 가지만 그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피역 가까이에 아이와 엄마가 있어 밤마다 군대에서 획득한 생활용품을 가져다주고 새벽에야 돌아오는 한 병사가 독일군 병사를 발견하면서부터 앞으로 펼쳐질 전투상황이 어떨지 궁금하다. 특무상사와 다섯 명의 여자병사로 구성된 정찰조는 독일군의 행방을 찾기 위해 대피역을 나서지만 그들이 과연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두 개의 호수로 둘러쌓인 지역에 대한 특무상사의 노련한 작전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여자병사들에게 하나 둘 전투 상황에 대한 이해를 시키면서 진행되는 독일군과의 전투는 거대한 전쟁의 현장이 아니라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지엽적인 전투로 볼 수 있다. 열 여섯 명의 독일군은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특무상사를 비롯한 여자병사들은 소총에 권총이 전부다. 이들이 숲속에서 벌이는 전투에서 여자병사들은 하나 둘씩 죽어간다. 전우를 잃은 특무상사의 독일군에 증오는 날로 커지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그저 하나씩 독일군을 죽어갈 뿐...

 

하나 둘씩 죽어가는 여자병사들의 최후에 대한 의미는 무엇일까? 목숨을 버리면서 지켜야 할 조국 러시아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소설은 중간 중간 여자병사들의 과거를 펼쳐놓고 있다. 그들이 어ㄸ너 환경에서 자랐고 무엇을 꿈꿨으며 바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그런 삶에서 전쟁이라는 환경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는 악마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우리주변에는 전쟁 상황에 대한 묘사를 실감나게 그려가는 것들이 많다. 전쟁영화, 전쟁소설에다 이제는 게임까지 전쟁이라는 환경을 만들어 상상 속에서 죽이고 죽는 환경을 맞이하게 만들고 있다. 극단으로 치닫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느끼게 될까? 흔히들 전쟁은 피도 눈물도 없는 극단적 환경에 노출된 인간의 본성에 집중한다. 그 본성은 어쩌면 살고자 하는 욕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여자라고 특별히 더 극한 상황이 전재되는 것은 아니듯 모든 사람들에게 전쟁은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게 만든다.

 

‘여기에 고요한 노을이’는 다소 심심한 전쟁 소설이라는 느낌이다. 격한 감정 몰입도 없고 극한 상황도 이해될만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여자라고 해서 남다른 상황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 듯하다. 현실에서 극단적인 상황을 수없이 겪은 것이 이 소설을 심심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만들지는 않은 건지 오늘 내가 살아가는 현실을 돌아본다. 어쩌면 이 사람을 사람으로 존재할 수 없게 만드는 이 현실이 더 전쟁 같은 상황은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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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생각, 산수로 만나다 - 2013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아름답다! 우리 옛 그림 2
고연희 지음 / 다섯수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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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볼수록 더

그림하면 떠오르는 것이 우선 서양그림이다. 이러한 선입감을 갖게 된 것은 공교육이 중심이 되는 학교교육에서 출발한다. 이는 그림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 결과를 낳았다. 그러한 혼돈의 시간을 거쳐 나이 들어가면서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에 기대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면서부터 우리 옛 선조들이 남긴 글이며 그림들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나 둘 드려다 본 선조들의 글과 그림이 이젠 익숙해져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데 위안과 희망을 찾아보는 중요한 매개로 되어졌다. 우리 선조들의 옛 글을 보는 것은 한자에 익숙하지 못한 현대인들에게 다소 어려운 일이 되지만 우리 옛 그림은 그렇지 않다. 보면 알 수 있고 느끼게 되며 보면 볼수록 더 보고 싶은 자연스러움이 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한때 그림 읽어주는 책들이 발간되었다. 주로 서양그림에 대한 것들이 많지만 그중에는 우리 옛 그림을 중심으로 인간의 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하는 저자들이 등장하고 이제 우리 옛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저자들이 있다. 오주석, 손철주, 이주헌, 손태호, 고연희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시각을 통해 재해석된 우리 옛 그림은 그림 속에 담긴 선조들의 삶의 희노애락이 현대인들의 메마른 감정에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연희의 ‘선비의 생각, 산수로 만나다’는 ‘아름답다! 우리 옛 그림’시리즈로 발간되는 첫 번째 책 ‘선비의 향기, 그림으로 만나다 : 화훼영모, 사군자화’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아름답다! 우리 옛 그림’시리즈는 한국화를 주제별로 다루는 것으로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우리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고 우리 문화에 대한 안목과 자부심을 키우고자 기획된 책이다. ‘선비의 생각, 산수로 만나다’는 저자 고연희가 조선 시대 산수화 62점을 선정하고 그림을 해석하는 키워드로 선비의 가치관과 삶에 대해 알기 쉽도록 알려주고 있다. 조선시대 선비가 추구했던 삶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그것을 반영한 그림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하나 하나 찾아간다. 산, 들, 계곡, 물, 바위 같은 자연을 그리긴 하지만 그 속에 선비들의 삶과 긴밀하게 관련을 가진 것으로 바꾼다.

 

안견의 ‘몽유도원도’, 이인상의 ‘송하관폭도’, 전기의 ‘계산포무도’, 정선의 ‘박연폭포도’와 ‘인왕제색도’, 김시의 ‘동자견려도’,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김정희의 ‘세한도’,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등의 작품을 선비들의 가치관의 변화를 중심으로 1장 ‘상상의 시간을 그리다’, 2장 ‘체험의 공간을 그리다’, 3장 ‘시정과 만남을 그리다’, 4장 ‘탈속과 축원을 그리다’로 묶었다. 일반 책에 비해 커진 판형이 그림을 보는 시각을 확대시켜주고 있다. 그만큼 그림을 보는 맛이 다르다. 또한 저자의 해박한 그림에 대한 지식이 우리 그림에 한발 더 다가서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저자의 전작 ‘꽃과 새 선비의 마음’(보림, 2004)의 연장선으로 이 책을 본다면 다소 새로워진 저자의 시각과 그림에 대한 이해의 폭의 변화를 살필 수도 있다. 이 책은 그림을 통해 그림과 선비들의 삶을 함께 들여다 볼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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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은 적막하다고들 한다.

이 말은 맞을까? 이곳 연화리로 이사한 후 두번째 가을을 맞았다. 서재에서  산이 손에 잡히듯 보이는데 그 산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깊어가는 가을 모처럼 시간을 내 산을 올랐다. 지난 여름 그 산 계곡에서 물놀이 하던 때를 떠올리며 산 속에 난 산림도로로 접어든다. 나무들이 잎사귀를 내어 준 가을산은 황량하다. 다람쥐 한마리 마중하지 않은 산길을 걷다보니 산 속의 이방인이 따로 없다. 간혹 만나게 되는 야생화들이 반갑다.

 

    

 

지난 여름 요란스러웠던 태풍의 상처들이 곳곳에 산재하다. 부러진 나무들 이웃나무들의 어께를 빌어 몸을 기대고 있지만 이미 생기를 잃어 버리고 말았다.이미 말라버린 나무들 어디에 오랫동안 산을 지켜온 시간이 들어 있을까? 몸체를 불려온 세월이 무색하게 넘어진 나무들이 삶의 무게를 짊어진 사람들의 처진 어께마냥 무겁다. 세월의 흔적으로 속조차 비워버린 나무는 이제 흙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나 보다. 아직 겨울산의 메마른 쓸쓸함이 깃들기 전이라 아직은 낙엽의 포근함이 있다. 며칠전 내린 비로인해 계곡의 물소리도 얼어붙을 눈 내리는 겨울을 준비하듯 힘이 없어 보인다.

 

곳곳에 산재한 바위들은 이 산이 돌산임을 말해주고 있다. 마치 고인돌처럼 보이는 저 바위는 무슨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까? 고임돌이 먼저 풍화되어 이미 한쪽을 사라지고 그 공간이 덩그렇게 비었다. 빈 공간에 불을 피웠던 사람의 흔적이 있다. 이 산을 찾은 사람들의 흔적을 담고 있다. 가끔 이름모를 산새들의 지저귐에 고개들어 바라보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다.

 

산을 오르는 길은 평탄하다. 나무잎들이 만들어준 양탄자 길을 따라 걷고 있자니 가을산은 오히려 부산스럽다. 한적한 길 나무잎 밟는 소리로 요란하다. 언듯 보이는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 같은데 가도가도 끝이 없다. 산림도로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어서도 한참을 오른다. 쌓인 낙엽에 길을 미끄럽고 이마에 땀이 맺힌다. 정상에 다가 갈수록 쓰러진 나무들이 많다. 차오르는 숨을 다독이며 올려다 본 서쪽 하늘에 태양이 나무에 걸려 눈 부시게 빛나고 있다.

 

연산 정상 부근에 사람들의 흔적이 요란하다. 산을 찾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다녀갔나 보다. 이 산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지 못하지만 백두대간에서 흘러 내린 호남 정맥의 어디쯤 해당되는 것인지 산을 다녀간 사람들의 이정표로 짐작해 본다. 이제서야 이 산이 연산이며 해발 505m에 달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산을 찾고 그 산을 통해 인생살이를 배워가는 산사람들이 이렇게 많을까? 이정표를 하나 둘 읽고 있자니 사연도 많고 그들이 온 지역도 생각보다 여려곳이다. 이름 없어 보이는 이런 시골의 뒷산이지만 이정표 만으로 본다면 유명한 산에 들어와 있는 착각 마저 일으킨다. 내가 걷는 이 길이 맞는지 혼란스러울 때 혼자 걷은 산길에서 만나는 이정표의 반가움을 세삼 느끼는 상행이다.

 

정상을 올라 근처를 찾아보니 정상의 표식이 있다. 나라에서 이렇게 산 정산에 표식을 만들어 두고 관리하는가 보다. 정상 바로 밑에 커다란 묘지가 있다. 제법 넓은 땅을 골라 잔디를 심고 부부를 안장했다. 그곳에서 바라본 옥과 쪽 풍경이다. 멀리 통명산도 보이고 그만그만한 산으로 둘러쌓인 옥과의 들판이 보인다.

 

 

가까이 있는 것에 대해 소홀하게 대하는 우를 범하고 사는 것이 사람들이다. 그런고로 먼 곳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민망한 마음을 들킬 때가 많다. 내가 사는 곳,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보다 더 깊은 관심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밤하늘 달빛이 서재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존재를 더욱 드러내는 곳이서 손에 잡히듯 보이는 산이지만 눈으로만 담아두고 가까이 하지 못한 시간이 아쉽다. 오늘 산행을 시작으로 다시 찾을 수 있는 나 만의 쉼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두 시간이 넘는 산행이지만 깊은 가을 산이 주는 정취를 가슴 가득 안고 돌아와 이제 차가운 겨울을 맞이할 내 마음에 겨울산을 찾을 용기를 주듯 다가올 겨울이 춥지만을 않을 것이라고 다독인다. 눈이 쌓인 겨울 어느날 나는 그 산길을 다시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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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랑은 - 사랑에 관한 짧은 노래
황주리 지음 / 예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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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쉽냐

가을산은 적막하다. 나무가 내려놓은 잎사귀들이 만들어 낸 분위기가 그렇다. 사람이 짧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몇 번의 가을을 맞이할지 모르지만 살아가는 삶을 가을에 비유할 시기가 왔다.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버겁거나 문득 지나온 시간이 속절없이 떠올라 멍한 상태이거나 생각만으로도 애닮은 사람이 그리울 때 그때는 분명 가을산이 주는 그 분위가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에 관한 짧은 노래라는 황주리의 ‘그리고 사랑은’을 읽고 난 후 가을 산을 닮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소설로 그려진 이야기들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분명하다. 또 어떤 부분에서는 내 이야기다. 내 곁에 잠시 머물렀다가 이젠 기억속에서도 가물거리는 사람과 맺었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만,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이미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주된 흐름이어서 가을 산에서 느끼는 적막함으로 공감을 이룬다.

 

사랑에 관한 짧은 노래, 키위 새가 난다, 짜장면에 관한 명상, 빨간 입술, 그녀의 마지막 남자, 스틸라이프, 네 인생의 청문회, 그대와 함께 춤을, 나 하나의 사랑 등 총 아홉 개의 단편이 화가인 작가의 독특한 그림과 더불어 펼쳐지고 있다. 흔히 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모두를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짜장면에 관한 명상’은 호흡할 수 있는 공감형성이 어려운 이야기다. 자신의 정체성에 혼돈을 느끼는 사람, 마음에 장애를 지닌 사람, 태어나 자란 곳을 떠나 정착하지도 못하고 다시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지만 그 역시 마찬가지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의 한계일까?

 

이 이야기들은 사랑 이야기가 분명하지만 그 사랑 때문에 겪게 된 상처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랑의 상처는 삶의 상처와도 동일한 의미로 다가온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이다. 사랑해서 만나고 사랑이 아니라고 헤어지고 그리고 다시 기억나는 사람과의 시간이 만들어 준 상처를 안고 그 상처에 머물러 있다. 그것이 상처를 치유하는 일련의 몸부림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왜 우리는 늘 한 발자국 늦는 걸까? 여기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그렇게 한 발자국씩 늦게 자신의 사랑에 대해 고민한다. 지나간 사랑이 아니 떠났거나 떠나온 사람에 대해 과거에 행했던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 대해 늦은 반성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 소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현실이다. 그런 현실이 이와 같은 소설을 가능케 한 것이다. 소설에서는 그리워하거나 도망치거나 찾아 헤매는 것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으로 담담함이 있지만 현실은 그 모든 과정이 고통을 동반하기에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을 산의 적막함은 아직 겨울 산의 메마른 황량함은 아니다. 나무들이 내준 잎사귀를 이불삼아 겨울을 대비하는 시간이기에 사랑에 대한 이런 적막함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맞이하는 절망이 아니라면 혹 자신에게 올지도 모를 더 큰 상처를 방지하는 예방주사가 되길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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