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재구성 - 정치이념으로 본 도덕경 노자 강의 시리즈 1
안성재 지음 / 어문학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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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덕경을 다시 보다

한 시대를 결정지을 지도자를 뽑는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불과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선거에 후보자들은 너나없이 자신만이 이 나라의 총체적 난국을 헤쳐 갈 적임자임을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현명한 유권자의 눈에는 두 사람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나며 어떤 지도자를 선택할지는 그 두 사람이 보여주는 차이에 의해 결정되어질 것이다. 누구를 선택해 미래 한국사회의 변화된 다른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이제 국민의 몫이다.

 

현대사회는 개인이 아무리 다른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정치는 사람들의 삶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때론 그 삶을 억압하는 도구로 전락하기도 한다. 하여 눈 밝은 선각자들은 이 장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내 놓았다. 그 중에서도 동양사상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공자와 맹자의 논어와 맹자가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들어 공자와 맹자의 사상보다는 앞 시대를 살았던 노자의 사상인 도덕경에 주목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보인다. 노자의 부각,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안성재의 노자에 관한 두 권의 책을 통해 노자사상의 핵심이 현대사회의 정치와 사람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아보자. 먼저 정치이념으로 본 도덕경이라는 ‘노자의 재구성’은 도덕경을 해석해 놓은 기존의 책이 가지는 한계를 바로잡고 도덕경 본래의 뜻을 직역하여 근 근본 사상에 접근해 보고자 저자가 전문을 재해석한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한자 하나하나를 다시 살피고 노자가 살았던 시대를 반영하는 다른 여타의 저작물을 적극적으로 참고하여 도덕경을 다시 해석한 것이라고 한다. 학문을 하는 학자의 입장에 서서 한 연구의 성과물이고 여타 분명한 자기 시각을 드러낸 해석이기에 다른 학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가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는 책이다.

 

‘노자의 재구성’은 그렇기에 일반인이 이를 통해 도덕경을 읽어가는 데에는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 원문과 번역 그리고 해설로 이뤄진 이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수없이 많은 부분에서 뒤편에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어 그 뒤편을 찾아보고 다시 앞으로 돌아와 내용의 이해와 흐름을 쫒아가기에는 버거움이 느껴지는 부분이 그것이다. 학자로써 학문하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고스란히 담아놓은 것으로 이해하면 될 듯싶다.

 

저자의 노자 연구에 대한 후속 작인 ‘노자, 정치를 깨우다’는 그런 면에서 일반 독자들이 도덕경의 내용에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 두 권의 책 발간 목적이 따로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노자, 정치를 깨우다’는 저자가 도덕경을 이해하는 시각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밝히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대동의 정치는 백성의 뜻을 지도자의 뜻으로 삼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지도자의 지침서’로써 도덕경을 바라보고 있다. 즉, 노자가 살았던 당시 상황이 태평성대가 아니었고 춘추전국시대 전기에 해당하기에 그 혼란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노자 나름대로의 소견을 밝힌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 도덕경의 해석에서도 지도자가 백성들과 더불어 어떤 내용과 방법으로 정치를 실천해야 백성과 더불어 나라를 굳건히 세우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노자, 정치를 깨우다’는 지도자가 어떤 가치관과 자세로 백성을 다스리면 나라가 평화롭고 오랫동안 행복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시각을 중심으로 본문을 해석하고 이를 해설하고 있다. 바로 “노자의 ‘도’는 ‘형이상학적 개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가 아니라, ‘대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통치이념이다.”라고 밝힌다.

 

저자 안성재의 ‘노자의 재구성’와 ‘노자, 정치를 깨우다’두 권 모두 원문을 번역하고 저자의 시각이 들어간 해설이 있으며 사마천의 사기나 상서, 예기, 십팔사략 등 각종 문헌을 참고자료로 제시하여 그 내용의 이해를 더 풍부하게 돕고 있다. 한자에 익숙하지 못하고 또한 춘추전국시대의 상황을 이해하기에도 벅찬 일반인이 노자의 도덕경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노자의 재구성’ 보다 짜임새가 훨씬 간결하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보다 쉬운 ‘노자, 정치를 깨우다’가 더 용이하다고 볼 수 있다.

 

정치는 지도자의 몫만이 아니다. 지도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함은 있지만 이를 선택하고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민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그 첫 번째 의무가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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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쉬운 사진 - 사진전문기자가 알려주는 ‘보여주고 싶은’ 사진 찍기
유창우 지음 / 위즈덤스타일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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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내키는 장면을 그 순간에

한 장의 사진은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전해 준다. 가록사진이나 전쟁사진 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젊은 부부에게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모의 사랑스런 마음이 담긴 사진은 그 아이가 성장하며 가족 간의 다양한 이야기 거리를 제공해 주기도 하며, 헤어진 연인과의 사진 또한 그렇다. 또한 풍경을 담은 사진은 단지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것뿐 만아니라 자신이 보았던 지난날의 시간과 공간을 떠올리게 하며 나무나 꽃, 새 등을 담은 사진 역시 그만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눈을 사로잡는다.

 

주변의 변화에 관심을 가진 나에게 사진은 대상을 보며 느꼈던 그 순간의 감정을 기억하기 위해 수시로 사진을 찍게 된다. 그런 나에게는 길모퉁이에 존재조차 희미하게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 밤하늘의 달, 등불과 같은 것이 주 대상이 된다. 하지만 나에겐 요즘 그 흔한 디지털카메라가 조차 없다. 늘 휴대하는 전화기가 카메라를 대신하고 있어 아쉬울 때가 많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속에 그려지는 대상을 담을 수 있다. 그럴 수 있는 것은 대상을 바라보고 사진에 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를 놓치지 않고 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런 나의 사진을 보며 주변 사람들은 값비싼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하곤 하지만 내가 내 놓은 전화기 속의 앨범을 보며 어떻게 이렇게 찍을 수 있는가 하며 의아해 하곤 한다. 하지만, 사진을 공부한 적도 없고 값비싼 카메라도 없고 그렇다보니 당연히 카메라의 고급기능을 습득할 기회고 없었다. 그저 대상을 유심히 살피고 그 시간동안 마음을 사로잡는 그 무엇을 담는 것이 전부다.

 

유창우의 ‘내겐 너무 쉬운 사진’은 바로 그렇게 사진을 찍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문사 사진기자로 수많은 장면과 대상을 담아왔던 노하우를 살려 쉽게 그것도 기억에 남을 만한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노하우를 밝혀 놓고 있다. 초보자가 비싼 카메라를 구입하고 조작법을 다 익히기도 전에 열정이 식어버려 서랍 속에 묵혀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눈이 번쩍할 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다고 무슨 특별한 기술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가 놓치고 있는 아주 당연한 이야기들만 하고 있어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를 정도다. 그렇다고 만만하게 볼 내용이 아니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기본적인 이야기가 어쩜 사진의 본질이기 때문이리라.

 

저자는 ‘내겐 너무 쉬운 사진’은 좋은 사진, 아름다운 사진의 조건을 쉽게 하면서도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인물, 풍경, 정물 등의 사진을 찍기 위해 때론 기다리고, 때론 부지런해야하며, 적절한 때를 살펴 다가온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을 제시하며 설명하고 있어 더 쉽게 다가온다. 또한 장소에 따라 자연의 빛과 인위적인 조명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방법도 알려주고 있다. 또한 계절의 특징을 담은 사진을 찍기 위해 필요한 것과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일출사진이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담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필수적인 조건도 말해준다.

 

‘사람들은 커피잔을 찍으면서 잠시 어디엔가 걸터앉아 음료를 마시면서 한 박자 쉬어가는, 짧지만 달콤한 휴식의 기억하고 싶어 하는구나’이 대목은 커피잔을 찍고 블로그에 올리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저자가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는 것을 밝히는 글이다. 아마 사람들이 찍는 다양한 사진 모두가 이런 마음이 아닐까싶다. 쉼, 추억, 공감, 소통의 소재로 사진이 활용되며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일반인도 쉽게 자신의 마음이 담긴 장면을 찍을 수 있게 된 것도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멀리 덜어져 공부하고 있는 아이가 집에 오거나 문득 그 아이가 보고 싶을 때 사진첩을 꺼내 펼친다. 태어날 때부터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긴 사진첩은 곧 아이와 나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그리움이고 공감이며 소통이 되는 것이다. 이런 소중한 사진이 그저 그런 사진이라면 감동을 느끼는 부분이 감소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사진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더 강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기에 이 책에서 전하고자하는 이야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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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사이 내린 눈이 햇살에 녹아 내린다. 눈 앞에 펼쳐진 설경이 하도 아까워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마음은 그래도 포근하기만 하다. 이곳 연화리로 이사한 후 두번째 겨울이지만 첫번 겨울은 여유없이 지나다 보니 계절이 주는 정취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 듯 싶어 올해 들어선 주변 정취에 눈길을 자주 주게된다.

 

이곳 연화리 연꽃이 핀 듯 나즈막한 산들이 둘러싼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지명이 연화리다. 그렇다고 답답함을 주는 산중 마을은 아니고 탁 트인 시야까지 확보된 곳이다. 마을이름도 마음에 들고 주변 경치도 마음에 들어 점점 더 정이가는 곳이다.

 

집에서 나와 마을 뒷길을 통해 용주사라는 암자를 찾아가는 길이다. 용주사는 막결혼하고 신혼시절 처 이모님의 안내로 와본 곳이다. 아주 조그마한 암자이지만 독특한 지형과 암벽이 만들어 놓은 자연동굴까지 있어 특이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런 인연이 있었지만 이 곳에 이사한 후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눈 내린 이 겨울 그 눈이 아까워 길을 나선 김에 용주사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마을 뒷길을 따라 가다가 마을을 내려다 본다. 손 닿을만한 저곳에 내가 사는 곳이다. 멀리 관음사가 있는 산도 보이고 햇살이 전해주는 눈부심으로 나무 잔 가지에 쌓인 눈이 더 빛을 발한다. 아무도 지나간 적이 없는 눈길을 따라가다 보니 발자국이 보이는데 오다가 다시 돌아간 듯 끊겨있다. 등선이를 넘어서자 한 사람이 앞서 걷고 있다.

 

이 마을 사람으로 보이는데 아직 인사를 나누지 못했기에 서둘러 그 분 곁으로 다가 선다. 지난해 이사온 사람이라며 인사를 나누는데 산책 나선 길이냐며 환한 미소로 반겨준다. 용주사 찾아간다는 이야기에 눈 길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가는 사이 그 분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은근

한 마을 자랑이 담겨 있다. 매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이길을 걷는 다는 어르신은 내게 산책하기 좋은 길들을 이곳 저곳 알려주신다. 생각치도 못한 동행을 만나 따스한 마음이 전해진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용주사에 도착했고 어르신은 다시 길을 돌아 가셨다.
 
용주사는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에 소재한 조계종 송광사 말사라고 한다. 연화산 기슭에 자리한 곳이라는데 연화산이 얼마전에 올랐던 연산을 일컽는 말인지 확실하지 않다. 연산의 아랫동네에 해당되는 곳에 자리잡고 있음은 분명하다. 연산을 오를때도 느꼈지만 연산은 분명 바위산이다. 이곳 저곳 사람을 압도하는 바위들이 산재해 있다. 용주사는 엄청난 크기의 바위들이 주인처럼 버티고 있다. 바위밑에 약수가 흘러 나온다. 지난밤 추위에도 얼지 않고 달콤함을 전해주는 물이다. 약수가 나오는 바위 위에 고드름이 한창이다. 또한 바위틈에 앉은 부처의 모습이 앙증맞다.

 

 

바위와 바위 사이로 난 길을 올라 대웅전 앞에 섰다. 왕대가 숲을 이룬 이곳은 또다른 눈 정취를 전해준다. 눈 앞에 펼쳐진 설경은 마치 딴 세상에 온 듯 암자의 고즈넉함과 잘 어울린다. 겨울 정취의 맛을 한껏 전해주는 것으로 대나무에 쌓인 눈을 놓칠 수 없다. 이곳에서 보는 눈 쌓인 대나무도 절경을 이룬다.

 

  

 

암자에서 내려오는 길은 혼자다. 햇살에 눈이 녹는 것이 안타까워 나섰던 길이지만 다시 눈이 내려 눈 앞을 가로 막고 있다. 산길의 호젓함을 방해하는 고속도로 소음을 피해 서둘러 길을 재촉한다. 겨울산 그것도 눈이 소복하게 쌓여 정취를 더해주는 이 맛이 참 좋다. 다음 기회에 어르신이 알려준 길을 걸어서 이곳을 다시 찾아 보고 싶다. 그때는 봄의 새싹이 반겨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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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 장자(莊子)를 만나는 기쁨
김태관 지음 / 홍익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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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힐링’이 대세다. 힐링(healing)은 몸이나 마음의 치유를 일컽는 말이다. 이 말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에 와서 주목받게 되는 이유가 뭘까? 사회 전반적으로 치유되어야 할 무엇이 그렇게 많아서 힐링이라는 이 단어를 화두로 삼아야 할까? 선각자들이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그토록 세심한 배려를 하면서 밝혀온 사상이나 이념도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본성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났건만 우리들은 여전히 행복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그렇기에 몸과 마음이 아프며 이 아픔을 치유하자는 것을 화두로 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2500여 년 전을 살았던 ‘장자’의 사상이 현대에 들어 주목받는 것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보인다. 무엇이든 치열하게 살아야하는 것이 정답인 세상에서 그로부터 자유로워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장자의 이야기와 맥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태관의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는 바로 그 장자의 사상을 치열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숨 가픈 일상에서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맹자와 동시대 사람으로 추정되는 장자의 사상은 인위를 멀리하고 무위로 살아야 한다는 것과 시간을 초월하는 정신적 자유 그리고 일상의 틀을 깰 수 있는 유연한 사고로 대표된다고 본다. 장자는 공자나 맹자의 엄격한 유교사상이 대세를 이룬 시대에서도 끊임없이 자유를 추구하고 생기를 불어넣는 사상가였다. 노자에 이어 그의 사상을 한 발 더 나아가 더 적극적인 무(無)를 실천하는 뛰어난 학자이기도 했다. 이러한 장자의 사상도 장자가 살았던 시대의 한계를 바탕으로 탄생한 것이리라. 장자가 살았던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의 공통점이 바로 장자가 주목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보이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는 장자의 핵심사상을 도/깨어라, 무위/놓아라, 지락/즐겨라는 3부로 엮고 있다. 저자는 촌철살인의 장자의 가르침을 우리가 알기 쉽게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풀어놓고 있다. 장자가 이야기하는 유난히 많은 비유를 통해 숨은 뜻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이를 현대 사회의 생활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삶의 지혜로 연결시켜간다.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쓸어도 먼지는 꼼짝 않고,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물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네’본문에 인용된 고려시대 이제현의 글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장자의 주장과 같은 맥을 찾아 내 독자들에게 장자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처럼 저자의 이야기 풀어가는 방식이 어느 한 분야에 구애됨이 없이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비유가 많아 알송달송하게 느껴지는 장자의 이야기를 텔레비젼, 스포츠, 그림, 소설 등에 등장하는 이야기와 비교설명하고 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태어나자마자 한 길로 직진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현대에 장자가 살았다면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일상에서 오는 모든 부담을 떨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장자 역시 쉽지 않은 삶을 살았으리라 짐작해 본다. 윌든이 세상을 떠나 숲 속에서 살았던 것 역시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범부들이 일상에서 장자의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이 역시 자신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조그마한 것부터 실천하는 것이 답이 아닐까 싶다. 세상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삶에서 조금씩 비우고, 멈추며, 내려놓아 자유를 찾아가는 것 말이다. 그래야 정해진 길에서 잠깐 벗어나 길을 잃어보고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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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 세상이다.

나무도, 산도, 들판도, 사람사는 마을도 온통 눈을 머리에 이고 있다. 본격적인 겨울을 맞이하는 사람들 마음에 솜 이불이라도 덮어 주려고 하는 것일까? 밤 사이 소리없이 내린 눈은 그렇게 사람 마음을 다독이고 있다. 파아란 하늘과 대비되는 눈쌓이 풍경이 더 없이 평화롭다.

 

      
   

잎을 떨구고 찬바람에 떨고 있던 앙상하던 가지에도, 사람들 추운날을 이기고 살아갈 양식을 길러주던 논에도 눈은 공평하게 내린다. 사람 역시 자연의 어느것과도 다름없는 일부임을 다시 실감한다.

 

지난 해 이사하고 두번째 맞이하는  시골집에도 겨울 자연이 주는 넉넉한 마음이 내려 앉았다. 여기 저기서 얻어온 꽃들로 가득했던 화단에 꽃나무들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주인없는 마당을 지나간 발자국의 주인은 또 누구일까? 좀처럼 사귀기 힘든 이 마을 모든 집이 자기의 보금자리처럼 돌아다니는 고양이의 흔적일까? 깊게 파인 자욱에서 밤사이 내린 눈의 양을 짐작하게 한다. 집 주인도 살그머니 내 영역임을 표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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