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꽃

나무가 가득 빛나는 순백의 아름다움

題李花 제이화

汝與我同姓 여여아동성

逢春發好花 봉춘발호화

吾顔不似舊 오안불사구

反得鬂霜多 반득빈상다

자두꽃을 읊다

너는 나와 같은 성씨

봄을 만나 좋은 꽃 피웠네.

내 얼굴은 예와 달라

귀밑에 서리만 가득하구나.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권14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열두 번째로 등장하는 이규보(李奎報, 1168-1247)의 시 '題李花 제이화'다.

자두는 '진한 보라색, 복숭아 닮은 열매'라는 뜻의 '자도 紫桃'에서 왔다고 한다. 다른 말로는 '오얏'이라 불렀다.

"삼국사기"에 복숭아와 함께 백제 온조왕 3년(15)에 처음 등장한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무다. 대한제국의 문양이 바로 이 오얏꽃에서 왔다.

‘이하부정관 李下不整冠’이란 말이 있다. 자두나무 밑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말이다. 의심받을 만한 행동은 아예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질 만큼 자두나무는 흔하게 만날 수 있었던 나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내 뜰이 생기자 가장 먼저 심었던 나무가 이 자두나무다. 다른 나무와 달리 아주 빨리 자란다. 키와 품을 열심히 키우기만 하더니 열매를 맺지 않아서 잘라버릴까도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올해도 열매를 맺지 않으면 베어버린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해 첫 열매가 무성하게도 열려서 그말을 들었나 싶어 둥치를 가만히 다독여 주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내 뜰에서 가장 넓은 품을 자랑하듯 매년 풍성한 열매로 여름 입맛을 돋구어주는 기특한 나무다. 올해도 가지마다 열매를 가득 달고 볕의 온기와 바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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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꽃
갓 태어난 병아리의 봄빛을 담았네

野行 야행
水驛蒼茫落日時 수역창망락일시
漁村酒店遠依依 어촌주점원의의
辛夷花發長堤路 신이화발장제로
驢背歸來雨滿衣 려배귀래우만의

들길을 가며
물가의 역참에 창망히 해가 지는데
어촌 주막집이 멀리 흐릿하네.
개나리꽃 활짝 핀 긴 제방 길을
나귀 타고 돌아오노라니 비가 옷에 가득하네.
-이산해. "아계유고" 권1 '기성록'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아홉 번째로 등장하는 이산해(李山海, 1539~1609)의 시 '野行'야행이다.

이산해가 유배 중이던 경상도 평해의 황보촌에서 개나리가 활짝 핀 제방을 따라 빗속에 나귀 타고 돌아오면서 지은 시다.

개나리는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꽂쟁이들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노랑색으로 피는 꽃은 다 개나리로 퉁치자고 할 정도로 친숙한 꽃이다.

그런데 없다. 아무리 찾아도 개나리를 찍은 사진이 달랑 하나 뿐이다. 흔하게 볼 수 있어 친근하고 봄을 대표하는 꽃인데 사진으로 담지 않았나 보다. 내 뜰에도있는데 말이다. 하여 첫번째 사진을 제외하고는 꽃친구 평상과 송인혁 님의 도움을 받았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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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꽃

부질없는 세상 못내 가련하여라

庭際有櫻桃花盛開 정제유앵도화성개

未三日還落有感 미삼일환락유감

花事無三日 화사무삼일

人生少白年 인생소백년

盛衰同一理 성쇠동일리

浮世更堪憐 부세경감련

정원에 활짝 핀 앵두꽃이

사흘 만에 졌기에 감회가 있어

꽃 소식은 사흘도 가지 못하고

인생사는 백 년도 되지 못하는구나

성쇠의 이치는 다 같은 법

부질없는 세상 못내 가련하여라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열 번째로 등장하는 이수광(1563~1628)의 시 '庭際有櫻桃花盛開 未三日還落有感'이다.

특별히 내세울 것 없어서일까. 무수히 많은 꽃을 피우고 꽃 만큼 열매도 많이 열린다. 익어 떨어질 때까지 미쳐 다 따먹지 못할 정도다. 이수광은 이런 앵두나무에서 주목한 것이 짧은 개화 기간으로 꽃이 지는 감회를 읊었다.

우선, 앵두하면 "앵두나무 우물가에~"로 시작하는 노래를 떠올린다. 지금이야 우물도 없으니 우물가를 서성이는 동네 처녀도 찾을 수 없다. 그렇더라도 앵두나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에 앵두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세종과 문종 사이에 앵두와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효성이 지극한 문종이 앵두를 좋아한 세종을 위해 앵두나무를 심어 앵두가 익으면 따다 바쳤다. 그후 궁궐에 앵두나무를 많이 심었다는 것이다.

지금 사는 곳에 터전을 마련하고 처음으로 심었던 나무들 중 하나가 앵두나무다. 다른 나무에 비해 가장 먼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두어해 눈과 입을 즐겁게 하더니 그 다음해에 죽어버렸다. 지금은 새로 심은 나무가 잘 자라고 있다.

앵두나무를 심은 이유는 앵두 익을 무렵 누군가 찾아오면 나눠 먹어도 좋을 것인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맞춰 찾는 이가 있다면 앵두나무로 이끌어 붉디붉은 앵두를 한 움큼 따서 입안에 넣고 새콤달콤한 맛을 즐기곤 한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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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반화
그윽한 향 좋은데 물들이는 쓰임 더욱 좋구나

山礬 산반
功卽山礬狀玉蘂 공즉산반장옥예
佳名不一亦何妨 가명불일역하방
春深芬馥遍山野 춘심분복편산야
又爾宣稱七里香 우이선칭칠리향

野有幽花世莫聞 야유유화세막문
叢榛苞櫟與爲羣 총진포력여위군
染家只解充礬用 염가지해충반용
玉蘂芸香誰更分 옥예운향수갱분

쓰임은 산반이요 모습은 꽃술이니
예쁜 이름 하나가 아닌들 무슨 상관이랴
깊은 봄 온 산과 들에 향기 퍼지니
칠리향이라 불러도 마땅하네

들판의 그윽한 꽃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
개암나무 상수리나무와 무리를 이루네
염색하는 사람이 명반으로 사용할 뿐
옥 같은 꽃술과 짙은 향기 누가 구분하랴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여덟 번째로 등장하는 김창업(金昌業, 11658~1721)의 시 '山礬 산반'이다.

우선, 산반이라는 생소한 이름은 어디서 온 것일까? 礬반 자는 명반 반자로 매염자로 쓰이는 백반, 명반을 뜻한다.

노린재나무란 이름은 황회목(黃灰木)에서 유래되었다. 식물성 물감을 천연섬유에 물들이려면 매염제(媒染劑)가 반드시 필요한데 노린재나무는 전통 염색의 매염제로 널리 쓰인 황회를 만들던 나무다. 여기에서 산반이란 이름으로 불렀고 이명으로 노린재나무라고 했다.

봄이 끝자락으로 이를무렵 숲에 들어가며 흰꽃이 뭉쳐서 피는 나무를 볼 수 있다. 가는 꽃잎에 유난히 긴 꽃술이 무수히 나와 있는 모습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은근한 향기도 빼놓치 않고 눈맞춤 하는 이유 중 하나다.

5월 중순이면 높은 산에 피는 꽃을 보기위해 어김없이 지리산 노고단으로 향한다. 길을 올라 한숨 쉬는 곳이 무넹기 폭포가 있는 곳이다. 높은 곳에서 듣는 물소리는 특별한 기분을 전하기에 지나치지 않지만 그것보다는 폭포가 시작되는 바위 틈에 노린재나무가 하늘거리며 향기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 노린재나무는 녹색 잎에 떨어진 하얀 꽃송이 하나가 주는 떨림으로 기억되어 있다. 이 꽃 피는 철이면 일부러 찾아서 보는 장면 중 하나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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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꽃

천향을 사랑하여 저녁 바람 앞에 섰네

題錦城女史芸香畵蘭 제금성여사운향화난

畵人難畵恨 화인난화한

畵蘭難畵香 화란난화향

畵香兼畵恨 화향겸화한

應斷畵時腸 응단화시장

금성여사의 난향난초 그림을 두고 짓다

사람은 그려도 한을 그리기 어렵고

난은 그려도 향기는 그리기 어렵지.

향기를 그리며 한까지 그렸으니

응당 그림 그릴 때 애가 끊어졌으리.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일곱 번째로 등장하는 신위(申緯;1769-1845)의 시 '題錦城女史芸香畵蘭 제금성여사운향화난'이다.

꽃을 보러 나선 길에 종종 꽃놀이 나온 이들을 만난다. 일면식도 없지만 꽃이 좋아 같은 날 같은 길에서 만났다는 것 만으로 친근감이 있다. 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하지만 대부분 꽃에 대한 정보교환이 주다.

어느날 먼길을 왔다는 이가 눈여겨 보며 신기해하는 꽃이 있었다. 자신이 사는 곳에선 이렇게 여러개체의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기 힘들다며 남도에 사는 이들을 부러워 했다. 남쪽에선 흔해서 꽃쟁이들 사이에서 덜 주목 받는 꽃이 바로 이 '춘란'이고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다.

춘난은 '보춘화'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다. 봄을 알리는 난초라는 의미다. 동양에서 선비들이 자주 그렸던 사군자에 등장하는 난초가 이 춘난으로 생각된다. 이 춘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투', '복륜', '소심' 등 상당히 복잡한 구성이다. 문외한의 눈에는 그것이 그것 같지만 난초가 가진 멋드러진 풍모는 이해가 된다.

난초 그림으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마음속 난과 종이 위의 난이 둘이 아니다"라는 '불이선란'은 "난초를 그리지 않은 그림"이라는 뜻의 '부작난도'라고도 한다."

옛사람들이야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경지의 속내를 그림으로 그렸다지만 그저 꽃이 좋아 꽃놀이를 일삼는 이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다. 내 마음에 들어오는 모습 그대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나만의 난향을 담는다. 그 둘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면 오만일까.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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