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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梅탐매'

무엇이 달라졌을까? 섬진강 소학정에 매화 피었다는 소식에도 마음이 느긋하였다. 예년같으면 한달음에 달려갔을 것인데도 올해는 짐짓 여유를 부렸다.

이른 길을 나서는 것은 활짝 핀 매화보다는 한두송이 피어나는 매화가 주는 무엇이 있기에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찬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가지 끝에 핀 갖 피어난 매화도 좋고, 눈 속에 묻혀 빼꼼히 얼굴 내미는 설중매의 모습도 좋지만, 새색시 볼 마냥 붉그스래 채 피지 못하고 홍조띤 얼굴에 담긴 수줍은 향기가 먼저다.

꿈틀거리는 가지 끝에 매달려 겨울을 건너는 운용매를 앞에 두고도 섣불리 다가서지 못하는 주춤거림이 수줍은 향기 만큼이나 고운 마음이다.

올해 두번째 만난 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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閑中自慶 한중자경

日日看山看不足 일일간산간부족

時時聽水聽無厭 시시청수청무염

自然耳目皆淸快 자연이목개청쾌

聲色中間好養恬 성색중간호양념

한가한 내게 축하한다

날마다 산을 보건마는

아무리 봐도 늘 부족하고

언제나 물소리를 듣건마는

아무리들어도 싫증나지 않는다

자연으로 향하면

귀와 눈은 다 맑고도 상쾌해

그소리와 그빛 사이에서

평온한 마음 가꾸어야지

​* 고려 후기 승려 충지(沖止, 1226~1292)의 시다. 세속을 떠난 이의 마음일까.

같은 자리를 맴도는 일상이지만 늘상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서는 자연에 둘러쌓인 곳에서 산다. 눈앞에 펼쳐진 순간들이 늘 새로운 것을 아는 이들만이 누리는 최고의 호사가 아닐까.

한가함, 어디서 무엇을 하든 누리는 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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蟾江春約 섬강춘약

南國佳期逐日還 남국가기축일환

有誰菅領好江山 유수관령호강산

五龍臺古碧蘿裏 오룡대고벽라이

孤鶩島遙殘照墾 고목도요잔조간

一字詩安吟點首 일자시안음점수

三杯神快笑開顔 삼배신쾌소개안

須臾歲月滄桑改 수유세월창상개

此世無多此會閒 배세무다차회한

섬진강의 봄 약속

남쪽의 좋은 약속 그날따라 들어오니

누가 있어 이 좋은 강산을 차지하느냐

오룡대는 오래되어 푸른덩굴 속에 있고

외로운 목도는 석양 사이에 있네

시 한 자 적어 읊으며 머리 끄덕이니

술 석 잔에 상쾌해져 온 얼굴에 웃음이라

잠깐 만에 세월은 상전벽해로 변했으니

세상에 이런 한가한 모임 많지 않으리

*안희제(安熙濟, 1885~1943)의 시다. 경남 의령 출신으로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하였다.

해가 바뀌면 어김없이 찾는 곳이다. 섬진강 따라 깊숙히 들어온 바다의 온기가 매화를 깨워 이른 꽃을 피우는 곳이다. 한해를 맞이하는 의식을 행하는 마음으로 혼자라도 좋고 벗이 있으면 동행하고 원근의 벗들이 찾아오면 무리지어서라도 빼놓지 않는다.

꽃놀이 여정의 시작을 매화로 하는 특별한 이유를 열거하자면 열손가락도 부족하지만 굳이 물을 까닭이 필요할까. 굳은 약속이라도 한듯 때가 되면 궁금하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날을 정하게 된다. 올해는 진주에 사는 벗하고 둘이 찾았다.

蟾江春約 섬강춘약

함께하지 못한 벗들에게 소학정 매화 향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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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라진 국도 15호선 어느 삼거리 카페에서 공짜 아이스크림을 달게 먹었다. 애를 써보지만 도무지 커피에 익숙해지지 못하는 마음을 알고 건네는 주인장의 마음이다.

어느 퇴근길, 숲에서 얻어온 은방울꽂 향기를 무심히 건넨 것이 이렇게 두고두고 전해진다고 믿는다. 그 카페 아저씨의 마음이 벽에 꽃으로 피었다.

난 그저 꽃이 전하는 말을 대신 전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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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日獨坐有感 원일독자유감

萬古貞元遞始終 만고정원체시종

前瞻後顧儘無窮 전첨후고진무궁

人生荏苒成今昔 인생임염성금석

道體沖瀜沒隙空 도체충융몰극공

凡聖一心思則得 범성일심사칙득

助忘交病勿爲功 조망교병물위공

晴窓旭日娟娟淨 청창욱일연연정

點檢靈源髣髴同 점검영원방불동

설날 홀로 앉아 생각에 잠기다

만고토록 봄과 겨울 시작과 끝이 되어

앞을 보고 뒤를 봐도 무궁하게 이어지네.

우리 인생 세월 따라 고금 사람 되어가나

도(道)의 본체 충만하여 빈틈이 전혀 없네.

범인과 성인은 한마음이라 생각하면 얻지만

조장과 망각은 병이 되어 효과 보지 못하네.

맑은 창에 해가 솟아 아름답고 깨끗하니

내 마음 점검하여 해와 같이 되게 하리.

​*조선사람 정경세(鄭經世, 1563~1633)의 시다.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이며 호는 우복(愚伏), 일묵(一默)이다.

새해라지만 어제와 다르지 않기에 여전히 오늘에 주목한다. 그 오늘은 어제와 내일을 구분하는 경계이기도 하지만 둘 다를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하여, 끝과 시작이 따로 있지는 않다. 새해라고 계획을 따로 세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눈 쌓인 저 너머에 봄이 오고 있을 것이다.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은 제 속도로 어김없이 올 봄이다. 섬진강에 매화 피었다니 봄이 어디쯤일지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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