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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人夜聽木鷄聲 석인야청목계성"

별편지

이 저녁 당신께 물방울 하나만큼의 고요를 드리기 위해

혼자서 진천 보탑사에 다녀왔습니다.

"돌사람이 밤에 나무닭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이 구절을 보려고요.

눈부신 햇볕이 내리는 뜨락에 누군가 돌사람 하나를 앉혀놓았더군요.

'금강경'에 나오는 이 구절의 뜻을 가만히 헤아리노라면,

춥고 그늘진 계곡 속 작은 돌맹이 하나가 아득히 먼 별을 향해 손을 내미는

그 간절함이 떠오르곤 합니다.

서구적인 신학의 문제가 무냐 전체냐를 전제로 한다면

돌사람이 귀 기울이는 나무닭의 울음소리야말로 고요의 경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리산 화엄사 사사자석탑에 갇힌 돌사람도

지금 여전히, 마주한 또 다른 돌사람을 향해

온몸을 내던지고 있겠지요.

우리 만날 날이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보이더라도

이 마음 하나 생겨나서 당신을 향했으니 행복했다, 싶습니다.

어느 광년이 지난 후에 당신은 이 편지를 읽고 살짝 미소지을까요.

이만 총총

*손종업의 산문집 "고요도 정치다'에 나오는 글이다. 쉬엄쉬엄 읽어가면서도 되돌아오길 반복하다가 아애 발목을 붙잡히고 말았다.

추위 속에서서도 계절을 봄으로 이끄는 생명, 변산바람꽃이 바위틈을 비집고 올라왔다. 멀리두고서 그리워하는 마음이 이와 닮았을까. '고요'의 경지를 엿보는 중이라고 하면 억지를 부리는 것일지라도 그 고요 속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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望月 망월

未圓常恨就圓遲 미원상한취원지

圓後如何易就虧 원후여하이취휴

三十夜中圓一夜 삼십야중원일야

百年心思摠如斯 백년심사총여사

달을 바라보며

둥글기 전에는 어여 둥굴기만 바라더니

둥근 뒤에는 어찌 그리 쉬이 기우는가

서른 밤 중에 둥글기는 단 하룻 밤인걸

평생에 마음 쓰는 일들 다 이와 같구나

*조선사람 구봉 송익필(宋翼弼, 1534~1599)의 시다.

달을 보는 것이 사람 사는 일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절정의 순간 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시간이 둥근달을 기다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룻밤이면 기우는 것을.

화양연화花樣年華를 바라는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정점은 만개한 때 만이 아니다. 역경 속에서 꽃을 준비하고 꽃을 피워 열매 맺고 지는 모든 순간이 다 화양연화라 보아야 한다. 생명이 어느 한순간만이 주목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긴 겨울이 만들어 낸 복수초가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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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는 몸보다 마음이 급하다지만

걸음을 끌고가는 것은 문턱을 넘는 발걸음일지도 모른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이끼에 맺힌 물방울이 봄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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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눈이라도 오려나 싶었는데 이내 구름이 걷히면서 햇살이 좋다. 한줌의 볕도 소중한 이때라 빛을 받아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소중하고 반갑다.

겨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을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이 이른 봄이다. 새순이 돋아나고 꽃눈에 생기가 도는 일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온기가 돈다. 겨울을 잘 건너온 모든 생명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닐까 한다.

미선나무의 꽃눈이 꾸물거리며 기지개를 켠다. 나도 따라 겨우내 여몄던 옷깃을 풀어 본다. 가슴을 열어 깊은 호흡이 필요한 때다.

비로소 아린芽鱗이 열리는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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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빛과 온기로 온다. 언땅이 몸을 녹여 틈을 내주면 어둠 속에서 세상을 꿈꾼 새싹들이 꿈들대며 고개를 내민다. 이를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햇살의 부드러운 온기다.

상사화相思花. 지난 가을날의 지독했던 그리움이 새로운 몸짓으로 내일을 연다. 이를 축복이라도 하듯이 안부를 묻는 햇살의 위로가 가득하다. 다시 찬란하게 피어날 그날을 향해 멈추지 못하는 길을 나선다.

매화 몇송이 피었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라지만 그 꽃이 피어야 봄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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