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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정호승.안도현.장석남.하응백 지음 / 공감의기쁨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시는 내 삶을 사랑하는 일이다
한 때, 시인이 부러웠다. 그들이 발표하는 시가 부러운 것이 아니라 동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시인들의 눈으로 본 세상이 나와는 분명 달리 느껴지는 것 때문이었다. 같은 하늘아래 같은 시간을 살아가면서도 시인들은 딴 세상을 사는 사람처럼 느껴게 만드는 그들의 가슴이 참으로 부러웠던 것이다. 시인들의 가슴 속에 무엇이 있어 거친 세상이 순하게, 벅찬 일상이 달콤하게, 버거운 삶이지만 그래도 살아볼 용기를 낼 수 있게 하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그 사이 한 편 두 편 읽어가던 시를 흉내 내며 끄적거려 보기도 했지만 이내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제와 돌아보면 어쩜 당연한 일이었다. 시인만큼 치열한 생각을 아니 그만큼의 알찬 삶을 살아가지 못한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한다.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시인 안도현의 ‘고래를 기다리며’중 일부다. 2013년 새해를 맞이하는 늦은 밤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라는 책을 읽으며 접한 시다. 이 대목에 와서 마음이 멈춘다.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마다 각자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분명하지만 분명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는 말에 몇몇 사람들은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지천명’의 시간에 접한 한 남자가 지난 삶을 돌아보며 어쩜 이리도 자신의 마음 상태를 표현하는 말로 이 말 이외에는 다른 말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짧지 않은 겨울밤이 더디기만 하다.
정호승, 안도현, 장석남, 하응백 이 네 명의 시인들의 시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라는 산문집은 시인들이 어떻게 시인이 되었는지,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아니 시를 가슴에 담고 살아온 시인들의 삶에서 시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들은 타고난 시인이 아니며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라며 그저‘시인은 시가 좋아서 시인이 된 것이라고. 어릴 때, 성장기에, 방황하는 청춘의 어느 때 어떤 시가 좋아서 그 시를 사랑하다 외우고, 그 시를 흉내 내다 습작하게 되고, 그러다가 시인이 된 것’이러고 한다. 하지만 시인이 부러웠던 사람에게 이 말은 쉽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치열하게 삶을 살았는지, 얼마나 아파하며 세상을 보듬었는지 그리하여 가슴에 넘치고 넘치는 세상과 삶에 대한 사랑이 시로 나온 것임을 알고 난 후 시는 그냥 낱말의 나열이 아님을 안다.
여기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속내를 털어 놓는 시인들은 시를 사랑해 주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시를 완전히 이해해야 시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라고.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불꽃처럼 사랑하듯 시도 우연히 다가오는 것이라고. 굉음을 내며 몰려올 때도 있고,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다가올 때도 있으며, 때론 둔중한 아픔으로, 때론 스치는 바람처럼 찾아오는 것’이라며 시를 우연의 선물로 이해해 주길 수줍게 말하고 있다.
정호승, 안도현, 장석남, 하응백 이 네 명의 시인들이 선배나 동료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자신의 시 창작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시인이 타고난 것이 아니듯 시 역시 특별한 무엇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일상에서의 삶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결실이 적절한 낱말로 나타난 것, 이것이 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은 버거운 일상이라도 그런 삶의 주인공인 우리 모두 시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다양한 감정이 길을 잃고 방황할 때, 시는 바로 그때,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고 따스하며 오늘을 다독이고 내일을 살아갈 용기로 다가설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 매개자가 시인이기에 시인은 버거운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벗임을 알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