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라이프 - 우리가 꿈꾸는 또 다른 삶
쓰지 신이치 지음, 김향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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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요즘, 친구들 사이에선 차를 팔아야겠다는 말을 심심찮게 듣게 된다.  물론 그 말을 실천으로 옮기는 친구는 거의 없지만 다들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과연 지금 시점에서 석유가 고갈되면 어떻게 될까?"  
모든 공장이 문을 닫고, 전기마저 끊긴 암흑세계에서 나는 살아날 수 있을까?
나는 농사 지을 줄도 모르고, 먹거리를 생산할 텃밭도 한 뙈기 없는데 무엇으로 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공포감이 밀려온다.  나와 내 가족의 생명과 안전을 나는 그 무엇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의존도는 얼마나 되는지...  단 한 번도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성공'이나 '부'로 대변되는 환상에 사로잡혀 오늘도 나는 내 삶을 즐길 여유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이규(李珪)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한국계 일본인이다.
코넬대학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메이지가쿠잉대학 국제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전 세계적으로 환경운동과 문화운동을 하는 한편, 환경공생형 비즈니스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는 영어에도 존재하지 않는 슬로 라이프(slow life)라는 말을 처음으로 세상에 퍼뜨린 인물이기도 하다.  저자는 경제, 문화, 환경, 정치, 먹거리 등 다양한 분야의 키워드를 주제로 자신의 생각과 학자들의 말을 인용하며 독자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그것은 강제적이거나 강압적이 아니며 어떠한 규칙도 제시하지 않는다.  이 새롭고 평화롭고 친환경적인 삶을 디자인해 나가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돈과 직결되지 않는 모든 것을 잡일, ,잡담, 잡생각, 잡지, 잡념, 잡음 등으로 표현하며, 그런 일들을 천시하거나 터부시하여 왔다.  오직 효율성과 '빨리빨리'라는 속도에 나 자신을 맞추고 끝없는 경쟁구조로 내몰았던 것이다.
상대가 자연이든 사람이든, 우리는 기다리고 기다리게 하는 일에 점점 더 서툴러지고 있다.  요컨대 함께 살아가는 일에 점점 더 서툴러지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왜냐하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기다리고 또 기다려주는 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우리는 지금 남을 사랑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기다림을 뺀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P.55)
더글러스 러미스가 주장하듯 경쟁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기본적인 정서는 공포심이다.  뒤쳐질지 모른다는 공포, 급기야는 낙오되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공포.  우리는 언제나 그 대열의 앞에 서야 하는데 그  줄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정황조차 없는 긴박함과 절박함을 갖추어야만,  사람들은 비로소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일주일 생활비가 10달러에서 30달러로 바뀌는 것을 진보라 여겨 왔던 이유는 이러한 공포를 이용한 개발의 논리가 대중을 세뇌시켰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인구는 점차 줄어 가는데 1년에 몇십 만 채의 아파트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현상을 보면서도 아파트값이 매년 오를 것이라는 환상과 함께 그 대열에 참여하지 못하면 낙오자로 전락할 것이라는 공포를 심어주는 것은 성장을 지향하는 기업과 국가의 얄팍한 눈속임이다.   아무런 까닭도 모른 채, 우리는 그들의 논리에 잘도 이끌려 단문형 냉장고를 양문형 냉장고로 바꾸고,  일반 세탁기를 드럼세탁기로 바꾸며 살아 왔다.  우리의 정원이자 텃밭인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수십만의 빈곤층이 생성돼도 GDP는 성장하고, 범죄와 질병이 증가해도 성장은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러한 성장 논리의 세뇌에서 벗어날 시점이 되지 않았을까?  경제학자 슈마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기술은 인간이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법칙과 원리로 발전해 간다.  반면 자연계는 성장과 발전을 '언제, 어디서 멈출 것인가'를 알고 있다.  자연계의 모든 것에는 킈,빠르기,힘의 한도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 일부인 인간도 자연계 안에서는 균형, 조화, 정화의 힘이 작동동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기술이라는 것은 크기,빠르기,힘을 스스로 제어하는 원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거기에는 균형, 조정, 정화의 힘이 작동하지 않는다. (P.123)
요즘 아이들의 교육을 보면서 무서움을 느낄 때가 있다.  전에는 한 분야만 잘해도 그럭저럭 밥벌이는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학습 분야가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능력이나 한계를 초과하는 범위로 확대되었다는 느낌마저 지울 수 없다.  성장의 논리로 따진다면 인간은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오직 자신의 능력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어쩌면 협동과 조화를 상실한 현대사회의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세계의 시간 틀은 둘로 나뉜다.  첫째는 지구와 생물의 생태적인 시간의 틀, 거기에는 지구의 역사와 함께 발맞추어 온 생물 진화의 원대하고도 유장한 시간의 흐름, 개개 생명의 삶과 죽음의 사이클 등이 포함된다.  둘째는 산업이나 상업 등의 경제적 시간의 틀이다.  비즈니스는 속도를 다투고 변화를 좋아한다.  거기에는 가속화의 끊임없는 변화, 무한한 성장이 철칙이다.  이에 반하는 자는 그에 따른 제재를 받게 된다.  이것이 현대 세계의 지배적인 시간의 틀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P.199)
'녹색 성장'이라는 슬로건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자연 환경과 생태계의 보호나 개선을 의미하는 '녹색'과 경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성장은'절대 같이 어울릴 수 없는 상반된 개념이다.  여기에는 그럴 듯하게 포장된 속임수만 존재한다.  결국 녹색이냐 성장이냐는 선택의 문제이지 공생이나 조화의 문제는 될 수 없는 것이다.
가끔 사람들은 불가능한 것조차 광고라는 프랑켄머쉰에 들어갔다 나오면 가능한 것으로 인식하곤 한다.  우리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며 기다림 속에는 길게 이어지는 다양한 상념, 근원적인 어떤 것으로의 지향, 그 궁극적인 소실점에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와 마주하게 된다.
이 필연적인 상념의 터널을 통과하는 행위, 그 자체가 바로 '삶'이다.  우리는 지금도 기다림의 긴 터널을 '설레임'과  동반하여 천천히 걸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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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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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의 예술 수업은 이발소에서 시작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내게는 그랬다.
먹고 살 것이 급했던 나의 어린 시절에 예술이란 그저 희망 없는 사람들의 끄적임이나 흥얼거림 정도로 인식되었고,  예술가란 백수의 고상한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에서 예술 수업은 교과 밖의 과외 수업으로 변질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한 달에 한 번 머리를 깎으러 들렀던 이발소에는 밀레의 '만종'이나 푸쉬킨의 시 '삶이 그대릉 속일지라도'가 걸려있었고, 오래된 전축에서는 트로트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예술가는 오직 밀레, 푸쉬킨, 이미자 세 명 뿐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그리고 어른이 된 이후에도 그림은 그저 새로 산 아파트의 벽면을 장식하는 사치품이나 시간이 지나면 은행 이자보다 더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투자 대상 쯤으로 여겼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한때 주식이나 부동산에 더이상 매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미래의 투자처는 그림 밖에 없다는 생각에 잘 알지도 못하는 그림릉 구경하러 화랑이나 전시회를 뻔질나게 드나들었었다,  그림을 보는 안목이 중요하다는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 언질을 성경처럼 가슴에 품고는 그 안목을 어찌 높일까 고민했었다.  어린애 같은 발품을 오래도 팔고 나니 지치기도 했고, 원하던 안목도 높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자연스레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대학시절 방배동의 지하차고를 빌려 미대 친구들로부터 데생을 배웠던 경험이 내 미술 공부의 전부였던 나는 그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그림과 화가에 대한 나의 편견도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펼친 순간 미술 이론 시간에 그 이름만 듣고 배웠던 반 고흐의 치열한 삶과 예술혼을 경외심과 감동으로 읽어나갔다.
그림이란 게 뭐냐? 어떻게 해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그건 우리가 느끼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서 있는, 보이지 않는 철벽을 뚫는 것과 같다.  아무리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는  그 벽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인내심을 갖고 삽질을 해서 그 벽 밑을 파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럴 때 규칙이 없다면, 그런 힘든 일을 어떻게 흔들림 없이 계속해 나갈 수 있겠니? 예술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P.93)
이 책은 고흐가 28살의 늦은 나이에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면서 그에게 경제적 지원과 작품의 판매를 대행했던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37년의 짧은 생애 동안 지독한 고독과 가난에 시달렸던 고흐는 그가 그림 그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1872년 8월부터 1890년 7월 29일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는 668통이나 되고, 879점의 그림을 남겼다.
진정한 화가는 양심의 인도를 받는다.  화가의 영혼과 지성이 붓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붓이 그의 영혼과 지성을 위해 존재한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캔버스가 그를 두려워한다. (P.134)
칼뱅파 목사이셨던 고흐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했던 맏아들에 대한 불신과 종교적 신념의 차이로 그를 멀리했으며, 그로 인해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한편으로는 죄책감과 무력감에 시달렸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지원했던 테오를 위해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림에 열중했으며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유화나 수채화 보다는 데생에 매달리기도 했고 끼니를 거르기도 했다.  그러는 도중 문학을 공부하겠다는 여동생 윌에게 그는 이렇게 충고하고 있다.
너무 기를 쓰고 공부하지는 말아라.  공부는 독창성을 죽일 뿐이다.  네 자신을 즐겨라! 부족하게 즐기는 것보다는 지나치게 즐기는 쪽이 낫다.  그리고 예술이나 사랑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마라.  그건 주로 기질의 문제라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P.156)
정형화된 비례나 그림의 형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모든 감정과 느낌을 한 장의 그림에 담으려 노력했던 고흐는 그 시대 화가들에게 이단아요, 반항아였을 것이다.  그에 더하여 사촌 여동생과의 사랑에 실패한 후 거리의 창녀 시엔과의 짧은 사랑, 그리고 고독.  고갱과의 동거와 간질 발작으로 결별.  그리고 정신병원과 요양원 생활.  그리고 자살.  
색채를 통해 서 무언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서로 보완해 주는 두 가지 색을 결합하여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 그 색을 혼합하거나 대조를 이루어서 마음의 신비로운 떨림을 표현하는 일, 얼굴을 어두운 배경에 대비되는 밝은 톤의 광채로 빛나게 해서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일, 별을 그려서 희망을 표현하는 일, 석양을 통해 어떤 사람의 열정을 표현하는 일, 이런 건 결코 눈속임이라 할 수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걸 표현하는 것이니까.(P.208)
실로 예술이란 평온한 대지를 바라보며 가파른 벼랑의 중간 쯤에 놓인 아슬아슬한 외줄을 타고 노는 일이 아닌가.  더구나 진보적 예술가에게는 동시대에서 맛볼 수 있는 열광이나 영광도 기대하지 못한다.
진보란 그런 게 아니겠는가.
마부 없는 마차가 경사진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는 것.  우리는 그때 짐짝처럼 실려 눈을 감은 채 그 위태로운 순간을 견디는 것.  그 순간이 끝났을 때 우리가 도착한 새로운 곳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어느 위대한 예술가나 선각자가 우리를 대신해 그 마부석에 앉아 고독과 위험을 감내하며 우리를 안전하게 인도했음을 깨닫게 되는 것.
나는 그 위대한 예술가의 영혼 스케치를 가슴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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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드혼 농장 이야기
핀드혼 공동체 지음, 조하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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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지 이틀이나 지났는데 리뷰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나는 몹시 당혹스럽다.
리뷰보다 이 책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다.
판타지 소설인 듯도 하고, 신화나 전설인 듯도 하고, 신비주의 철학서인 듯도 하고, 유기농법을 다룬 농업서인 듯도 하고, 공동체를 다룬 사회과학서인 듯도 하다.
나는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번 책을 잡으면 다 읽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고집스런 나의 성격 탓에 어찌어찌 다 읽기는 했지만 책의 내용을 곰곰 되새겨 봐도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물질계에서만 살아온 내가 이 책에서 말하는 ’데바’나 ’자연령’, ’엘리멘탈’, ’폰’, ’판’과 같은 낯선 용어와 그 영혼계로부터 받은 메세지를 날짜별로 기록한 글을 읽으며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어느 정신병자의 황당한 이야기로 치부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것이다.  이 책에 대한 <라이브러리 저널>의 서평을 인용해 보자.
"이 책에서 핀드혼 공동체의 설립자들과 그 멤버들은 수년 동안 자신들이 여러 자연령들과 접촉하게 된 경위와, 그 자연령들의 메시지를 통해 어떻게 채소, 과일, 꽃 등의 재배에 기적적인 결과를 얻게 되었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웃어 넘길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각자의 자유이다.  아무튼 이 책은 놀랍고도 매우 다름다운 책이다."

1962년 11월의 어느 눈 내리던 날, 큰 호텔의 지배인이었던 피터는 캐러밴 트레일러(이동식 주택)를 몰고 스코틀랜드의 척박하고 황량한 땅 핀드혼으로 갔다. ’저렇게 황량한 곳에서, 또 저렇게 작은 캐러밴 속에서 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야’라고 생각했던 피터는 그날부터 그곳에 정착하여 그 작은 캐러밴 속에서 여섯 명(피터, 아일린, 도로시, 아들 삼형제)이 7년 동안 살며 농장을 일구었다.
삶을 통해 아주 힘든 영적인 훈련을 받아 온 아내 아일린과 피터, 그리고 도로시는 모든 것을 신(내면의 안내자)께 맡기고 그들이 핀드혼에서 해나갈 일이 세상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그 인도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도로시와 아일린은 ’데바’와 소통한 것을 기록하고 피터는 그 기록에 따라 농장을 꾸려나간다. 
자갈과 모래로 이루어진 스코틀랜드의 척박한 땅에서 이탄과 잡초를 걷어내고, 말의 배설물과 짚단을 모아 퇴비를 만들고, 해안가에서 해초들을 따오고, 벌채장에서 나무재를 모으는 등 땅을 기름지게 하기 위하여 온갖 궂은 일을 다하였다.  이렇게 일군 땅에 채소와 버섯과 각종 허브와 과일나무를 심기까지 그리고 에상치 못한 풍성한 수확을 거두기까지 원예 분야에 문외한이었던 피터는 오직 데바와 자연령에 의지하여 그들의 지시와 안내에 따랐음을 기록하고 있다.  농장이 확대되고 핀드혼의 생산물이 타지역에 비해 월등한 품질임을  인정받게 되자 핀드혼 공동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점차 방문객도 증가했다. 
그렇게 핀드혼 사람들은 식물을 재배하면서 배운 것을 그들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데 적용하게 되었다.  
자신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던 핀드혼 농장의 초창기에 신의 인도에 따라  정신없이 농장을 가꾸는데 매달렸던 그들은 신의 분명한 계획과 의도가 자신들에게 내재했었다고 회고한다.   농장이 확대되면서 물리학과 화학을 연구하던 록이 합류하고, 영적이고 비교(秘敎)적인 주제를 다루는 강사이자 교육가로 활동하던 데이비드가 참여했다.
록은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시작하면 되는지 '판'에게 물었고 대답은 이렇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세요.  '언젠가 신념이 충분히 강해진다면 당신들도 이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목적만을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일어날 것이다.'  그들에게 또 이렇게 말하세요.  '내가 그랬던 것처럼 10년 동안 시골의 비교적 고립된 장소에 살라'라고.  자연령들과 통신하는 것은 할 일 없을 때 심심풀이로 하는 게임이 아닙니다.  나는 내 백성들에 대한 인간들의 경멸적이고 오만한 태도를 익히 보아 왔습니다.  그러한 인간들의 태도는 우리들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보다도 더 나쁜 행위입니다.  그런 인간들로부터 일찌감치 떠나도록 하세요.  그리고 진실로 내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고 우리를 진정으로 만나보기 원하는 진실한 사람들과 만나도록 하세요."(P.214)
핀드혼의 원예가들은 에일린을 통한 신의 목소리에 의해 인도받고, 도로시를 통해 데바들과 이야기를 하고, 록을 통해 자연령들과, 데이비드를 통해 다른 차원의 실재들과 접촉하였다.
그러나 1974년 이후 록은 이 세상을 떠났고, 데이비드는 미국으로 돌아갔으며 원예 전문가 프레드 바턴이 새로 참여함으로써 자연령에 의존하던 초기 핀드혼 농장은 이제 인간의 창조 능력과 자연의 생명력에 의해 새로운 조화의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환경문제의 해결방안에 있어 균형 잡힌 환경의 유지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의 영적인 관계 즉 ’의식’이라는 측면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이 책은 우리에게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자연은 이용하고 착취해야 할 상품이나 지배해야 할 대상은 결코 아닌 것이다.  이 책에서는 자연의 모든 측면을 조정해 나가고 있는 정령이나 지성을 지닌 영적 존재, 자연의 신들을 미개한 문화에서 나오는 신화나 전설로 여기던 우리에게 이 신화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숙한 나는 여전히 초월적인 실재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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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기쁨
아베 피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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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무 뿌리로 실내 장식재를 만들어 본 적이 있었다.
먼저 잘생긴 나무 뿌리를 고르는 것이 문제인데,  분재나 화분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익히 알고 있는 것이지만 심근성의 수종은 땅 속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려 그 뿌리를 캐기도 어렵지만 모양도 단순하여 장식재로는 적합하지 않다.  반면에 천근성 수종은 그 뿌리가 얕고 세근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어 장식재로는 그만이다.  이러한 천근성(淺根性) 수종 중에 대표적인 것이 철쭉이다.  철쭉은 대체로 10cm 이내의 땅에 뿌리를 내리고 그 모양새도 마치 비구상의 미술작품처럼 아름답다.  지금은 산의 나무를 채취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지천으로 깔린 철쭉 한두 뿌리를 캐는 것은 아이들 놀이 쯤으로 취급되던 시절이었다.
땅에서 캔 철쭉의 뿌리를 흙을 털어 잘 말리고 다듬어 코팅을 입히면 그보다 멋진 예술품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장식품이 되곤 했었다.
사람의 마음도 이런 것이 아닐까?  어쩌면 마음 뿐 아니라 우리네 삶 전체가 이와 닮지 않았을까?
이것저것 잡다한 것까지 욕심을 부리면 그 뿌리도 얕고 가뭄에 쉬이 말라죽지만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면 그 뿌리도 깊고 어떠한 시련에도 잘 견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법정 스님이나 피에르 신부님처럼.
이 책은 제목처럼 오직 복음서에 의지하여 단순한 삶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피에르 신부님의 소신과 일화를 담은 글이다.  1912년에 프랑스 리옹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나 19세에 모든 유산을 포기하고 카푸친 수도회에 들어가 평생을 집 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함으로써 ’살아있는 성자’로 불리웠던 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항독 레지스탕스 투사였으며, 전쟁 후에는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엠마우스’라는 빈민구호 공동체를 만들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하다 2007년 94세로 험난한 삶을 마치신 분.  
나는 인간의 마음이 상처입은 독수리와 같다고 여긴다.  그림자와 빛으로 짜여져, 영웅적인 행동과 지독히도 비겁한 행동 둘 다를 할 수 있는 게 인간의 마음이요, 광대한 지평을 갈망하지만 끊임없이 온갖 장애물에, 대개의 경우 내면적인 장애물에 부딪히는 게 바로 인간의 마음인 것이다. (P.38)
상황이 예외적일 경우에는 법 중의 법에 도움을 청할 줄 알아야 한다며 이 ’법 중의 법’이란 인간의 생명을 구하길 요구하며,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길 요구하는 법이라고 주장하시며 정치적이거나 권위적인 교회와 편협한 정부에 맞서고자 하셨던 분.  신부님은 가톨릭 사제로서 여성 사제를 허용하고 남성 사제의 결혼을 허락하라는 주장 등을 펼쳐 보수적인 바티칸으로부터 눈총을 받기도 하였고, 199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정부 정책이 노숙자들에게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거부하였고, 2001년 수상자로 다시 선정되자 받아들였었다.
참으로 역설적이지만 인류의 빈곤, 실업, 부패, 그리고 인종차별주의로 우리를 위협하는 악에 맞서 가차없는 전쟁을 이끌어나가는 것이야말로 굳건한 평화를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부르짖어야 한다.  그 누구도 그것과 무관할 수 없다.  그렇잖은 자는 공범자이다.  굶주린 아이들을 볼 때, 잠잘 곳 없는 가족들을 볼 때, 많은 젊은이들이 적당한 일자리를 찾을 희망이 없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모두 분개해야만 한다.  이 같은 분노와 그 분노가 불러일으키는 자발적 행동들이 없다면 사회적 평화를 위한 어떤 희망이 남아있겠는가?(P.184)
모든 불의와 부조리에는 전쟁과 같은 대결을, 그리고 우리의 동참을 부르짖었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한없는 배려와 이해를 요구하셨던 신부님.  그분의 용기와 강직함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의 힘이 아니었을까?
고통받는 자들에게 충고를 하려 들지 않도록 주의하자.  그들에게 멋진 설교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신앙에 대한 설교일지라도 말이다.  다만 애정어리고 걱정어린 몸짓으로 조용히 기도함으로써, 그 고통에 함께함으로써 우리가 곁에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그런 조심성, 그런 신중함을 갖도록 하자.  자비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경험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다.(P.213 - 214)
남미로 향하는 배가 난파되어 죽을 고비를 맞게 되었을 때 신부님은 ’한평생 자신의 손으로 가난한 자들의 손을 잡고자 애썼을 때, 비로소 죽음의 순간 자신의 다른 쪽 손에서 하느님의 손을 느낄 수 있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다는 신부님의 회고는 납덩이처럼 나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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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 22년간의 도보여행, 17년간의 침묵여행
존 프란시스 지음, 안진이 옮김 / 살림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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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존 프란시스 박사와 459쪽에 달하는  기나긴 순례를 마치고 방금 나의 현실로 되돌아왔다.
1971년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일어난 기름유출 사고를 목격한 후 기름으로 움직이는 모든 동력운송수단을 포기한 존 프란시스.  그의 결심은 그가 어렸을 때 고향 마을의 도로에서 자동차에 깔려 죽은 개똥지빠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미국 동부 해안에서 자라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의 인버네스에 정착한 스물 일곱 살의 흑인 청년 존 프란시스가 마주한 또 다른 죽음.  그의 친구이자 마을의 부보안관이었던 제리 태너의 보트 전복 사고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이 바로 그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한계상황에서 자신의 결심이 굳어지나 보다.  그렇게 그는 비주류의 인생을 선택했다.
도보생활로의 전환은 대학을 중퇴한 평범한 흑인 청년의 모든 현실적 삶과 맞바꾸는 일이었다.  전위음악 그룹 매니저였던 그에게 내려진 해고 통보,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 흑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 그리고 가족들의 걱정.
그렇게 시작된 그의 도보 여행은 22년간 지속되었고 그 중 17년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나는 가끔 내가 장난삼아 녹음한 나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 낯설음에 놀라곤 한다.   내가 말을 하는 매 순간 나는 전달하려는 내 의견만 생각할 뿐 나의 목소리나 행동은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만큼 낯설고 생경하다.  그리고 과연 내가 말을 배운 이후로 '말'이라는 의사소통 수단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나는 말을 함으로써 편리하고 유용한 면이 있긴 하지만 욕설이라든가 논쟁에 휘말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구어(口語)의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말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안 듣는 것과 욕설이나 논쟁 등 부정적으로 쓰이는 말의 쓰임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행 중에 만난 한 사람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발생 반복! 그거야.  내 생각에 자네는 걸어다니고 말을 안 하면서 '발생 반복'을 하고 있는 거야.  그게 뭔지 아나?  그러니까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가서 인간의 모든 발달 과정을 다시 거쳐 우리의 현 상태에 도달하는 걸세.  자네는 뭔가를 배우려고 되돌아갔을 거고.  재현은 좋은 선생이지.  사실 우리는 모두 이런저런 방식으로 '발생 반복'을 한다네.  특히 태어나기 전에 말이야.'(P.135)
존 프란시스의 목표는 항해와 도보로 세계를 일주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공부의 일환이자 그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고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의 표현이었다.  그는 그렇게 태평양 북서부를 거쳐 시에라 산맥과 로키 산맥을 횡단했으며, 태평양 연안에서 대서양 연안으로 미국 땅을 도보로 가로질렀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여행하면서도 남오리건 주립대학에서 과학 학사과정을 그리고 몬태나 대학에서 환경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결국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토지자원 분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몸짓언어와 수화를 배우고 그가 여행 중에 늘 함께 했던 밴죠를 연주하면서 그는 다른 사람과 교류하였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싶어 안달하는 우리도 이루지 못한 박사 과정을 통과했던 것이다.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처음에는 논쟁을 피하려는 의도로, 다음에는 의사소통 방식을 실험해 보자는 생각으로 말을 않고 지낸 것이 어느덧 깊은 의미가 담긴 행위로 발전했다.  나는 고요함의 언저리에 도달했고, 침묵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영성과 교감과 명상이라는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P.173)
기름투성이 해변에 앉아 이런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한 평범했던 청년은 각종 언론에 등장하는 유명인사가 되었고, UNEP(유엔환경계획)의 세계 풀뿌리 공동체를 담당하는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UNEP의 홍보와 환경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였으며, 비영리 환경교육기구 '플래닛워크'의 설립자이자 대표로서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순례와 변화에 관하여 강연을 하고 '플래닛라인스'를 홍보하고 있다.  기름유출의 끔찍한 현장을 목격하고 그러한 재앙을 막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소시민이 기름유출 관련 법령을 작성하고 평가하는 일을 해달라고 정부로부터 요청을 받아 해안 경비대에서 근무하기 까지의 과정은 책을 읽는 독자 개개인에 잠재된 그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길을 걸을 때 우리는 자신과 대면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우리가 편을 갈라 싸울 필요가 없고, 국가의 적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과 말다툼을 벌일 필요도 없음을 깨닫는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 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 좁은 행성에서 이 귀중한 순간을 평화롭게 살아갈 기회가 아직 열려 있다.  걷기만 한다면 가능한 일이다.(P.435)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 그 신념이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어야 하고, 그것이 굳어져 실천으로 옮겨지기 까지의 과정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 아닐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인간과 다른 모든 생명체로 확장되고, 돌처럼 굳어진 확고한 신념을 갖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 아이들의 내재된 가능성을 현실에 드러내게 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존 프란시스는 자신의 체험으로 입증하였다.  외부의 시련을 통하여 내면은 더욱 강해지고, 밖으로만 향하는 나의 말을 안으로 갈무리 할 때 우리는 삶의 기쁨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의 잠재력을 십분 발휘하게 되는 것이리라.  그러한 방식이 인간을 창조한 신의 뜻임을 나는 겸허히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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