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시간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박슬라 옮김 / 오픈하우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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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어둡다. 어두운 하늘을 향해 을씨년스럽게 솟은 아파트의 흰색 외벽이 자연에 순응하지 못하는 인간의 외고집을 대변하는 듯하다. 자연에 저항하는 게 삶이라면 죽음은 그 반대일 것이라는 손쉬운 가정이 주말 오후의 하늘에 화두처럼 매달린다. 매번 반복하는 상실과 그리움의 일기 면면에 나는 '실수'라고 불리는 어떤 사건들을 간식 메뉴처럼 기록한다. 나에게 활력을 주고,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건 어쩌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흘러가는 틀에 박힌 일상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실수'의 기록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성당의 잡무를 담당하는 사무장님과 점심 식사를 같이 했다. 입맛이 없었던 나는 여러 가지 채소에 양념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빈 공깃밥에 된장찌개를 곁들여 먹는 된장찌개백반을 시켜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두어 젓가락 깨작거리다 반나마 남기겠거니 생각했는데 담백하게 끓인 된장찌개가 없던 입맛을 살아나게 했던 것이다. 다행이었다. 점심을 먹고 성당에 다시 들러 후식 삼아 믹스 커피까지 한 잔 하고서야 헤어졌다. 집으로 향하던 길, 차 안에서 신호 대기를 하고 있는데 앞차의 주변을 맴도는 노란 나비 한 마리를 보았다. 신비스러운 풍경이었다.


리 차일드의 소설 <61시간>을 마저 읽었다. 잭 리처 시리즈 중 한 권인 이 책은 사건이 발생한 시점에서 61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시간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퇴역 군인으로 딱히 할 일도 없이 미국 전역을 떠돌아다니는 주인공 잭 리처는 교회의 단체관광객이 탄 버스에 몸을 싣는다. 승객 대부분이 노인이었던 그 버스는 사우스다코타의 볼턴 인근에서 사고로 발이 묶인다. 리처와 승객들은 경찰의 도움으로 마을에 묵게 되지만 마약 밀매업자들이 날뛰는 마을에는 오래전에 폐기된 석조 건물을 둘러싸고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게다가 마약 거래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인 재닛 숄터 여사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가족도 없이 혼자 살고 있는 노부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잭 리처는 그 지역의 경찰들과 함께 사건에 휘말린다.


“난 댁이 왜 우리 집에 와 있는지 알아요. 왜 집 안 구석구석을 둘러보는지도 알고. 교도소에서 사이렌이 울릴 경우에 날 보호해주려는 거겠지요. 그래서 이 집 구조를 알아두려는 거고요. 난 그런 리처 씨에게 감사해하고 있답니다. 비록 그쪽의 심리적 강박증 때문에 충분할 정도로 오래 머무르진 않을 것 같지만 말이에요. 재판은 한 달 후에나 열린답니다.”  (p.186~p.187)


마약 거래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증인인 재닛 숄터 여사를 보호하는 한편 잭 리처는 마을 인근에 있는 공군 폐기 건물의 용도와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자신이 근무했던 헌병대 수사팀으로부터 군 기록물을 검토하여 알려줄 것을 부탁하는 한편 폭주족들이 점거하고 있는 석조 건물을 위험을 무릅쓴 채 단신으로 탐사를 감행하기도 한다. 석조 건물의 지하에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쓰고 남은 항공유와 참전 병사들에게 제공했던 다량의 마약 그리고 약간의 보석류가 보관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비밀을 알게 된 마약 밀매업자 플라토는 마약을 자신의 수중에 넣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는데...


“네브래스카 주, 12킬로미터 상공. 플라토의 세 번째 줄 뒤 좌석 4A에서,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전화기 한 대가 단단한 허벅지 근육에 조용하면서도 격렬하게 요동쳤다. 여섯 명의 ‘일회용’ 멕시코인 가운데 다섯 번째 사내가 전화기를 꺼내 액정을 확인했다. 그는 옆자리 4B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여섯 번째 사나이는 오늘 다섯 번째 사나이와 같은 트럭에 동행했었다. 두 남자는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열지는 않았다. 미소를 짓지도 않았다. 그러기에는 너무 긴장해 있었다. 문자메시지의 내용은 단 한마디였다. 해치워.”  (p.465)


어제부터 흐렸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었다. 푸른 하늘에 대비되는 하얀 아파트 외벽은 인간 의지의 표상인 양 높고 굳건해 보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요.’라고 말했던 재닛 숄터. ‘중요한 건 어떻게 가느냐지요.’라고 응수했던 잭 리처. 인간은 자신의 욕심을 에너지 삼아 한평생을 살고, 그 에너지가 소진될 때 비로소 자신도 역시 자연의 일부였음을 깨닫게 된다. 리 차일드의 소설 <61시간>의 결말은 끝나지 않았다. 인간의 욕망이 대를 이어 계속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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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읽고 쓰고 배우는 법
고미숙 지음 / 작은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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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평론가 고미숙 작가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 생각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기서 글을 잘 쓴다는 의미는 문학적으로 뛰어나다는 뜻이다. 물론 고미숙 작가 역시 강연과 글쓰기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전업 작가인지라 아마추어 작가의 글쓰기와는 차원이 다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많은 전업 작가 중에서 고미숙 작가의 글이 단연 뛰어나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많은 독자들이 그녀의 글에 열광하고, 나 역시 이따금 생각날 적마다 책을 꺼내 읽는 까닭은 그녀의 생각이 깊고 바르며,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글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글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프로 작가와 아마추어 작가를 가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십수 년째 블로그를 유지하면서 글쓰기와 낙서를 끄적이고 있는 나로서도 고미숙 작가의 그와 같은 능력이 어찌나 부럽고 시샘이 나던지 때로는 그녀의 글에 탄성을 내뱉곤 한다. 글쓰기를 취미로 하는 대부분의 아마추어 작가라면 공감할 것이다. 이러이러한 내용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시작한 글도 나중에 자신이 쓴 글을 읽어볼라치면 자신의 처음 생각과는 백팔십 도 달라진 결과물에 본인도 깜짝 놀라곤 했던 수많은 경험들. 자신의 생각을 오롯이 글로 풀어쓸 수 있는 능력은 아무나 갖는 게 아니구나, 하고 내뱉었던 좌절의 언어들.


“책을 읽는다는 건 내용과 서사, 정보와 교훈을 얻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진짜 핵심은 책의 '리듬과 강밀도'를 체득하는 일이다. 스마트폰이 퍼뜨리는 '빠름의 교리'를 거스를 수 있는, 청춘의 열정에 긴 호흡을 불어넣을 수 있는 대안으로 장편고전을 읽는 것만 한 게 없다! 아, 한 가지 더. 『임꺽정』에도 '판소리계 소설'에 못지않게 도처에서 질펀한 입말들과 가슴 뛰는 에로스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 '진맛'을 누릴 수 있다면, 스마트폰의 현란한 스펙터클 같은 건 좀 시시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p.52)


<고전과 인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책의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작가는 이 책에서 사계절의 분류에 따라 책의 내용을 구성하고, 각각의 계절에 걸맞은 고전을 선정하여 자신의 생각과 함께 고전에 있는 자연의 이치를 설파하고 있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계절의 변화 역시 순환과 반복의 과정임을 고전을 통해 배워보자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에는 고전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지식인으로 출발했지만, 고전평론가가 된 이래 고전을 읽고 쓰는 것이 삶의 근간이자 현장이 되었다. 그것은 고전 안에 담긴 시공의 리듬을 익히고 터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문득 알게 되었다. 일 년이 봄여름가을겨울이라면 하루도 봄여름가을겨울이고, 마침내 인생도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사실을. 때에 맞게, 때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고전의 지혜라는 것을. 고전과 인생, 그리고 사계의 삼중주!”  (p.19)


서문에 이어 책의 본문에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 <임꺽정>, <걸리버 여행기>, <장자>,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구운몽>,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동의보감> 등 동서양의 고전이 고르게 등장한다. 그리고 5장에서 작가는 읽고 쓰는 것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게 피력한다. 고전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끝까지 읽지 않는 책'이라고 한다. 작가가 불러온 책의 제목만 보아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음직한 책들이다. 그러나 그중 몇 권이나 읽어보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을 망설일 듯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벽초 홍명희가 쓴 10권짜리 <임꺽정>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대학생이었던 당시에 피곤함도 잊은 채 밤을 새워 읽었던 <임꺽정>은 아름다운 우리말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고, 한자가 아닌 순수 우리말로 이렇게 장대한 소설을 쓸 수 있었던 홍명희라는 작가에 대한 깊은 경의였다. 그리고 역사는 우리의 피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현재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그래서인가, 오히려 집필기간 동안 더 건강해진다. 불필요한 일은 가능한 한 생략하고 먹고 자는 일에 충실하게 된다.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일도 가급적이면 피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의 소통도 훨씬 매끄럽게 된다. 그래서 알게 된 사실. 평소에 감정을 참 과잉으로 쓰면서 사는구나, 감정에 휩쓸리는 건 결국 시간과 정력이 남아돌아갈 때 하는 헛짓이로구나 하는, 글쓰기가 요가나 명상, 기도 못지않은 수행이 되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p.209)


고미숙 작가는 여전히 글을 잘 쓰지 못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글을 읽고, 열광하며, 감탄한다. 작가의 웅숭깊은 생각이 고스란히 글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숨은 의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과 글이 일치한다는 것은 자연을 닮아간다는 뜻이다. 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에 표리여일(表裏如一)의 아름다운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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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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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야 할 실체'는 우리의 인식 저변에 당위와 의무를 제공한다. 그러한 당위와 의무는 사실 시간의 연속성상에서 익숙함과 무관심을 낳기도 하고, 본능에 가까운 인간의 호기심으로부터 한 발 멀어지도록 우리를 부추기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 충실하다는 것은 한 번뿐인 이 삶에서 더 많은 도전과 경험을 통해 더욱더 많은 깨달음을 얻고, 이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떠한 변화와 흔들림에도 현혹되지 않는 간헐적인 충만함으로 채워가는 것이리라.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여러 물리학자들이 설명했듯이 시간은 선적인 것이 아니라 순환적인 것임을 기억하자. 우리의 삶은 하나의 선 위에 찍힌 점이 아니다. 이 선은 전례가 없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질서의 일시적 탐욕에 의해 전달되고 있다. 우리는 선 위의 점이 아니라, 원의 중심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p.109)


우리나라의 최대 명절이라는 추석. 평소에 자주 못 보던 가족들을 만나 지난 추억을 회상하며 맛있는 음식도 나눠 먹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지만 명절은 오히려 그들과의 단절을 확인하는 씁쓸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오랜만이라는 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누군가의 산적한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을 다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처한 저간의 사정을 들려주기에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 까닭에 우리들 각자는 듣는 이도 없는 각자의 지난 일들을 허공에 쏟아내고는 서둘러 돌아서는 게 명절의 또 다른 풍경이리라.


"역사에 대한 어떤 감각, 과거와 미래를 잇는 그 감각은 완전히 말살되었거나 있더라도 주변화되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일종의 역사적 외로움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프랑스어에는 길거리에서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S.D.F Sans Domicile Fixe('일정한 주거지가 없는'이라는 뜻--옮긴이)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는 역사적 S.D.F가 될지도 모른다는 끊임없는 압박 아래 살고 잇다. 죽은 자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를 받아들이는 인정된 의식이 이제 더 이상 없다. 매일매일의 삶은 있지만 그걸 둘러싸고 있는 건 공백이고, 그 공백 안에서 수백만 명의 우리는 오늘 홀로 있다. 그리고 그런 고독은 죽음을 벗 삼을 수도 있다."  (p.61)


미술비평가이자 소설가로서, 사진이론가이자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사회비평가이자 인문학자로서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에게 일상의 단면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 줬던 존 버거. 만년에 이른 그가 11편의 짧고 긴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바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는 책의 모든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의 깊은 사색으로부터 하나하나의 문장에 이른 지난한 과정들을 되짚어보았다. 그러나 그가 기록한 모든 문장에는 내가 풀 수 없는 함의가 마치 암호처럼 감추어져 있고, 안타깝게도 나는 그의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코드북을 갖고 있지 않았다.


"우리의 삶이 이야기대로 펼쳐진다는 것을 알고 나면, 우리는 다른 이야기를 쓰게 될까. 내 생각엔 아니다. 하지만 당시 배 위에서 나는 이야기꾼으로서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었다. 내가 정하는 대로 가는 거였다."  (p.50)

"우리를 둘러싼 원에는 석기시대 이후로 선조들이 우리들을 위해 남겨 둔 증언들이 있고, 꼭 우리를 향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텍스트들이 있다. 자연과 우주의 텍스트. 그 텍스트들이 대칭적인 것과 혼란스러운 것이 공존할 수 있음을, 가혹한 운명을 극복하는 기발한 방법들이 있음을, 욕망의 대상이 언제나 약속의 대상보다 더 큰 확신을 주는 것임을 확인시켜 준다."  (p.110)


긴 연휴라지만 하루로 가늠할 수 있는 시간들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시간 개념이 없기 때문에 시간의 속도를 더 빠르게 인지한다는 건 하나의 모순이다. 어쩌다 보니 또 하루가 흘렀다. '매일매일의 삶은 있지만 그걸 둘러싸고 있는 건 공백이고, 그 공백 안에서 수백만 명의 우리는 오늘 홀로 있다.'는 존 버거의 말이 암호처럼 내 머릿속을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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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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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 얼굴에 닿는 바람결에는 한여름의 더위가 쏙 빠진 채였다. 계절이 주는 들뜸과 가벼운 충동으로 인해 삶의 무게는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다. 바삭바삭 부서질 듯한 삶의 건조함을 달래는 데에는 사실 독서 만한 게 없는데 가을이 건네는 경쾌한 유혹은 물리치기 힘들다. 하여 독서의 계절 가을은 매년 말로만 그칠 뿐 진득하니 앉아 책을 읽는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기억하는 가을은 하나의 온전한 계절이라기보다 차창 밖으로 스치듯 지나쳤던 상상 속의 계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따금 하게 된다. 하나의 계절로 기억하기에는 너무나 짧았고, 온전한 계절을 만끽하기에는 우리의 여유가 너무나 부족했기에...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를 읽었다. 가을을 닮은 듯 얇고 가벼운 에세이집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몇 권 읽은 기억이 있지만 에세이는 처음이지 싶다. 에쿠니 가오리의 문체는 가볍고 경쾌하다. 그래서인지 이 계절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직장인인 남편과 프리랜서 작가인 에쿠니 가오리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담아낸 이 책은 세상 어떤 곳에서도 있음 직한 한 가정의 모습을 에쿠니 가오리의 경쾌한 문체로 포착하고 있다.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그런 이야기들이 작가의 밉지 않은 말투로 우리에게 전해지는 셈이다.


"결혼하고 두세 달 지나면 결혼 생활에서 밥이 얼마나 큰 관건인지 싫어도 깨닫게 된다. 회사에서 돌아오면 밥을 먹고 자는 그 일련의 행동에 군더더기 하나 없는 남편의 모습을 보다 보면 마음속에서 예의 진부한 의문 - 이 사람, 혹시 밥 때문에 나랑 결혼한 거 아니야 - 을 떨어내기가 어렵다."  (p.48)


우리는 사실 달달한 연애 감정을 더 길게 지속하고 싶어서 결혼을 결심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한낱 허튼 꿈에 지나지 않을 뿐, 우리는 결혼과 동시에 '생활'이라는 현실의 높은 벽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연애 과정에서는 보지 못했던 상대방의 습관과 장단점들을 목격하면서 발견의 기쁨보다는 오히려 살아갈 날들에 대한 아득한 절망과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도 잠시, 어떻게든 새로운 환경에 맞춰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게 내가 풀어야 할 결혼 생활의 가장 큰 숙제임을 깨다는 순간 새로운 전투력이 샘솟는 것이다.


"해마다 그만 갈게,라고 말하고 부모님과 여동생의 배웅을 받으며 콜택시에 올라탈 때면 나는 정말 절망적인 기분이 든다. 대체 왜 난 여기서 나가려는 것이지, 하고 생각한다. 결혼식 날 아침하고 똑같다. 하지만 택시가 아파트에 가까워지면, 돌아가고 싶어한 내 마음에 안도한다. 아아 아직은 괜찮다. 남편을 보고 싶어하니 다행이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p.89)


'결혼한 지 2년이 되어 가는 가을에서 3년이 되어 가는 가을까지 쓴 에세이를 모았다'는 이 책은 마치 몇십 년 결혼 생활을 이어 온 베테랑 주부의 이야기인 듯 지극히 평범하기도 하고, 어제 막 결혼을 한 새색시의 이야기인 듯 유난히 설레기도 한다. 결혼 생활이란 어쩌면 그와 같은 극과 극의 기복을 넘나드는 기적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유명 작가의 결혼 생활이라고 해서 우리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삶이라는 고단한 여정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사이. 나를 이해하는 가장 친밀한 이웃이자 동료인 그들이 다만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으로 불릴 뿐이다.


"지금까지는 남편과 같이 있다. 그것이 전부다. 그리고 같이 있는 동안은 함께하는 생활을 마음껏 맛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헤어질 때가 오면 조금은 울지도 모르겠지만.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한다면, 아마 더 울지도 모르겠다."  (p.151)


추석 전의 분주한 주말 오후. 사람들은 저마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나는 회사에 출근하여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에 대한 혐오만 쌓이는 까닭은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한계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를 이렇게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볼에 닿는 바람이 좋았고, 높아만 가는 하늘이 좋았고, 그 속에 머무는 나 스스로가 좋았던 까닭이다. 오늘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 소슬한 바람이 불고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공원 벤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가. 나는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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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여자 불편해
최영미 지음 / 이미출판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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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9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흔하디 흔한 삶의 권태가 공원 벤치 위에 무더기로 버려진 아메리카노의 빈 용기처럼 뒹굴고, 삶의 권태로 답답한 일상의 흐린 시야를 통해 삶의 희망, 활력, 용기, 의지 등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온갖 단어들을 끄집어내는 일은 작은 기적과도 같습니다. 나는 손에 든 수필 한 권이 부끄러워 이따금 주변을 살피고, 때로는 내 것이 아닌 양 벤치 위에 멀찍이 내려놓기도 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책을 좋아하는 이의 비애는 그처럼 사소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소중한 지면을 제공한 신문사와 잡지사 등 여러 매체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기록하지 않으면 허공에 흩어졌을 시간들이 번듯한 형체를 갖추어 책이 되어 나왔으니, 문장이 모여 삶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  (p.218 '책을 내면서' 중에서)


최영미 시인의 산문집 <난 그 여자 불편해>를 불편한 자리에 앉아 불편한 시선을 받으며 그예 다 읽고 말았습니다. 시인의 산문집을 유독 좋아하는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책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책의 정서가 꽤나 불편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에서 미투 운동이 활발하던 당시 최영미 시인 역시 자신을 괴롭혔던 한 원로 시인을 고발했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마련이지만 현실을 넘어 미래를 직시할 줄 모르는 인간은 자신이 가진 권력이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의 슬픈 단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 거북했던 그 언론사와 지금은 잘 지낸다. 생애 최초의 재판에서 절반의 승리를 거둔 뒤 내가 내린 결론은 '앞으로 재판은 하지 않는다'였다. 재판은 시간을 오래 잡아먹는다.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 몇 년간 나는 글다운 글을 쓰지 못했고, 언론사와 적이 되면서 책이 팔리지 않는 등 손해가 막심했다."  (p.54)


얼마 전 나는 인근의 작은 사찰에 들렀다가 난데없는 벌의 공격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예고도 없이 날아든 벌은 내 손등에 벌침을 꽂고는 이내 사라졌지만, 벌독으로 퉁퉁 부어오른 손등은 며칠 동안 나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벌에 쏘인 나의 고통이 이럴진대 하물며 시인이 겪었을 고통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럼에도 최영미 시인은 그저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지난 월요일 아침부터 고은 시인의 문단 복귀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들의 문자와 이메일이 쏟아졌다. 등단 65주년 기념 시집과 대담집을 출간하며 "5번의 가을을 보내는 동안 시의 시간을 살았다"고 고은 시인은 지난 5년을 회고했다고 한다. 고은은 2018년 여름 나를 상대로 뻔뻔스럽게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고 1, 2심에서 내가 모두 승소했다. 원고 고은의 대법원 상고 포기로 나의 승소가 확정되었으나, 2019년 겨울에 재판이 끝나기까지 나는 두 번의 가을을 보내며 고통의 시간을 살았다. 나는 진실을 말했지만, 진실만으로는 부족했다. 진실을 증명해야 했다."  (p.64)


코로나 시국을 겪는 동안 여러 매체에 발표되었던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이 책은 시간의 순서대로 글을 배치한 까닭에 마치 시인의 일기를 몰래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1부 '어떤 싸움의 기록'은 미투 재판 사회문제를 다루는 논쟁적인 글들을 모아 놓았으며, 2부 '인간은 스포츠 없이 살 수 없다'는 축구 야구 수영 등 스포츠 칼럼을, 3부 '어렵다고 생각한 일이 가장 쉽더라'는 유년의 추억, 사업자가 된 사연, 집수리 등 시인의 일상을 담은 글들이 대부분입니다.


글은 마음의 창이라고 합니다. 똑 부러지는 시인의 성격답게 문장은 정갈하여 지나치게 감성적이거나 불필요한 수사가 덧붙여진 문장은 찾기 어렵습니다. 마치 어느 칼럼니스트가 쓴 글처럼 말입니다. 무릇 시인이라 함은 일반의 평범한 사람들보다 공감 능력이 배는 뛰어난 족속인 까닭에 스스로를 통제하거나 절제하지 않으면 표현에 있어서도 다소 부풀려지거나 자칫 샛길로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최영미 시인의 글은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런저런 고통을 감내하면서 얻은 단단함 때문일 테지요.


"지구 온난화를 막자고 말만 하지 말고 실천을 하자. 우리 사회는 에너지를 절약하는 노력을 너무 안 한다. 밤늦은 시각, 텅 빈 거리에 미친 듯 환하게 깜빡이는 전광판 네온사인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생활 에너지 부족에 허덕일지도 모른다."  (p.194)


새벽녘에 쏟아지던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반짝 맑은 하늘을 보여주더니 오후가 되자 다시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렇듯 변덕스러운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다만 우리가 속이지 않고 솔직하기만 하다면 삶이 조금 변덕스럽더라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오늘의 날씨처럼 말입니다. '가을비 한 번에 내복 한 벌'이라는데 오가는 계절을 준비하듯 우리의 삶에도 따뜻한 위로가 스몄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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