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기자

  뉴욕 사람들이 오래도록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1964년 키티 제노비즈라는 여성이 살해된 것이지요. 그는 대낮에 범인에게 30분 동안 쫓기며 세 차례나 공격당했습니다. 38명이나 되는 이웃들이 창문에서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돕기는커녕 누구도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러 일이 가능했을까요.

뉴욕대 학자 달리는 어느 심리 실험에서 방에 있는 한 학생에게 간질 발작 연기를 시켰습니다. 이 경우 옆방에 단 한 명이 있을 때는 도와줄 도와줄 확률이 85%였지만,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이 4명이 더 발작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도와줄 확률이 38%로 떨어졌습니다. 즉, 사람들은 여럿이 함께 있으면 행동에 대한 책임이 희석된다는 결론이었지요.

니콜 기드먼이 주연한 '도그빌'은 도그빌이란 작은 마을에 연약한 여성 그레이스가 숨어들면서 시작됩니다. 처음엔 호의적이던 사람들이 그에게 현상금이 나붙은 것을 알게 되면서 숨겨주는 댓가로 가혹한 노동을 요구합니다. 그레이스는 성적으로까지 학대하던 사람들은 결국 목에 개목걸이까지 채워 감금합니다.

'도그빌'은 결국 집단은 악(惡)이라고 말하는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인간이란 존재가 지닌 마성의 핵심에는 집단성이 있다는 것, 하나하나 살펴보면 나름대로 설량하지만 집단을 이루면 가혹한 행동도 망설이지 않고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혼자서 악마가 되려면 대단한 '자질'을 타고나야 하지만, 집단 속으로 들어가면 마음 한구석 작은 불씨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악마가 될 수 있습니다. 중국 문화혁명기를 다룬 영화 '패왕별희'의 눈먼 대중들로부터 대공황기 '도그빌'의 살벌한 마을 사람들까지, 그들이 행한 도를 넘는 악행은 결국 군중심리에서 발원한 것입니다. 2 차대전이 끝난 뒤 열린 나치 전범 재판을 보면서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악의 얼굴이 이토록 평범하다니"라고 즉각적으로 탄식했던 것은  악의 집단적 속성을 잠시 잊은 채, 그 악행에 동참한 지극히 평범한 개인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자니 기타'에는 이런 대사가 나오지요. "군중이 되면 사람이 달라져. 짐승같이 되어버리지. 뭔가 부술 것만 찾다가 나중엔 닥치는 대로 죽이게 돼."

집단은 개인의 선한 속성이든 악한 속성이든, 그것을 극대화하는 경향이 있지요. 문제는 선한 것조차 극대화되면 악에 가까워 진다는 것입니다. 선이 정말 선다워지는 건,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을 때 주저하면서도 그렇게 하는 순간'이 아닐까요. 흔들릴 수 없을 만큼 확신에 가득찬 선을 우린 독선이라 규정한 뒤 악에 가까운 특성으로 분류하잖습니까.

아도르노는 "전체는 거짓이다"라고 했던가요. 하지만 이를 뻔히 알면서도 집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 삶의 곤궁함이 있습니다. '도그빌'의 그레이스가 모진 수난을 다 받아가면서도 마을에 남으려 한 것은 파국을 빚지 않기 위해서지만, 결국 이 영화는 파국으로 끝나지요. 하지만 그레이스처럼 파국을 만들 잠재력을 갖지 못한 대부분 사람들에겐 집단의 힘은 거부하기 쉽잖은 악마의 유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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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신의학 스트레스 전문가는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단 두개의 원리가 있다. 첫째,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지 마라. 둘째, 모든 것은 사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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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벤치 2004-03-27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것이 사소한 것인지 깨닫기에는 우리 인생 전부라는 시간이 걸릴때도 있지요 그래서 언제나 저는 '지금이 임종'이라는 생각으로 욕심을 다스린답니다

stella.K 2004-03-27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아님 말 듣고 보니 정말 맞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사소한 것인지 당시론 깨닫기 어렵지요. 지나 놓고나면...
 
 전출처 : 비발~* > 낱말의 <음성적 가치>

   말들과 더할 수 없이 덧없는 인상들과 유희하기를 즐기는 몽상들에 관한, 환상에 관한 모든 자료들을 수집하면서 우리는 한번 더, 표면에 머물러 있고자 하는 우리의 의도를 고백한다. 우리는 태어나는 이미지들의 얇은 층만을 탐험할 따름이다. 아마도 가장 약한 이미지, 가장 단단하지 못한 이미지라도 깊은 진동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감각적인 삶의 피안 전체에서 형이상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다른 양식의 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특히 침묵이 어떻게 인간의 시간과, 인간의 말과, 인간의 존재에 동시에 작용하는지를 말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책 한 권이 소요될 것이다. 그 책은 씌어졌다.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Le Monde du silence』를 읽어볼 것이다.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곽광수 번역, 민음사, 339

   때로 한 언어 요소의 소리, 한 글자의 힘이, 그것이 그 한 구성요소로 되어 있는 낱말의 깊은 생각을 열어주고, 확정한다. 막스 피카르트의 훌륭한 저서, 『인간과 말Der Mensch und das Wort』에서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을 수 있다ㅡ<파동Welle이라는 낱말 안의 W는 그 낱말 안의 파동을 함께 움직이게 하고, 숨결Hauch이라는 낱말 안의 H는 숨결을 올라가게 하며, 단단한fest, 굳은hart이라는 낱말 안의 t는 단단하고 굳게 한다.> 이러한 고찰로서 『침묵의 세계』의 철학자는 우리들을, 음성 현상과 로고스의 현상이ㅡ언어가 그 고귀성을 전부 지니고 있을 때ㅡ서로 조화하게 되는, 가장 예민한 감수성의 경지로 데리고 간다. 그러나 우리들이 낱말의 내적인 시, 한 낱말의 내적인 무한을 살기 위해서는 명상을 얼마나 느리게 이끌 줄 알아야 할 것일까! 모든 위대한 낱말들, 시인에 의해 웅대함에 초대되는 모든 낱말들은, 우주의 열쇠, 외부의 우주와 인간 영혼의 깊이ㅡ이 이중의 우주의 열쇠들이다.
                                                                                                           앞의 책, 359-360

   '숲'이라고 모국어로 발음하면 입 안에서 맑고 서늘한 바람이 인다. 자음 'ㅅ'의 날카로움과 'ㅍ'의 서늘함이 목젖의 안쪽을 통과해나오는 'ㅜ' 모음의 깊이와 부딪쳐서 일어나는 마음의 바람이다. 'ㅅ'과 'ㅍ'은 바람의 잠재태이다. 이것이 모음에 실리면 숲 속에서는 바람이 일어나는데, 이때 'ㅅ'의 날카로움은 부드러워지고 'ㅍ'의 서늘함은 'ㅜ' 모음 쪽으로 끌리면서 깊은 울림을 울린다.
   그래서 '숲'은 늘 맑고 깊다. 숲 속에 이는 바람은 모국어 'ㅜ' 모음의 바람이다. 그 바람은 'ㅜ' 모음의 울림처럼, 사람 몸과 마음의 깊은 안쪽을 깨우고 또 재운다. '숲'은 글자 모양도 숲처럼 생겨서, 글자만 들여다보아도 숲 속에 온 것 같다. 숲은 산이나 강이나 바다보다도 훨씬 더 사람 쪽으로 가깝다. 숲은 마을의 일부라야 마땅하고, 뒷담 너머가 숲이라야 마땅하다.
                                                                                         김훈, 『자전거 여행』, 75-76

   제가 당신을 당신이라고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 속으로 사라지고 저의 부름이 당신의 이름에 닿지 못해서 당신은 마침내 삼인칭이었고, 저는 부름과 이름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건너갈 수 없었는데, 저의 부름이 닿지 못하는 자리에서 당신의 몸은 햇빛처럼 완연했습니다. 제가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몸으로 당신을 떠올릴 때 저의 마음속을 흘러가는 이 경어체의 말들은 말이 아니라, 말로 환생하기를 갈구하는 기갈이나 허기일 것입니다. 아니면 눈보라나 저녁놀처럼,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말의 환영일 테지요. 
                                                                                         김훈, 『화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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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벤치 2004-03-27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침묵과 말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그것이 글쓰기가 아닐까요
 

 기대했던 것처럼 굉장한 울림이 있었던건 아니지만, 그래도 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던 영화란 생각이 든다.

마패, 하모니카, 야구공 대신 새끼줄 뭉치 등 소도구를 적절히 잘 사용한 것이 돋보였다.

일본 발음도 잘 들어보면 멋이있는 것 같다. 전엔 그런 거 특별히 신경 안써는데...

무엇보다 신구와 송광호는 너무나 잘 어울리는 부자지간이란 생각이 든다. <반칙왕>에서도 그러더니, 이 영화 역시 둘의 어울림이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확실히 송광호는 꽤 괜찮은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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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im 2004-02-06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강호, 배역을 참 잘 소화해내죠..
저는 이 영화에서, 얼빵한 머리모양을 하고 잠시 나온 조승우가 너무나도 기억에 남았답니다. ^^ (제가 조승우를 좀 좋아하다보니;;)

stella.K 2004-02-07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그때 말을 돌보던 청년이 조승우였죠? <클래식>의 이미지와는 넘 달라서 그만, 배역도 적은데다가...! ^^
 

A. 영화에 대한 일반적 이해

1) 그래엄 터너 <대중 영화의 이해>

2) 이효인 <영화 이야기 주머니>

3) 구회영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가지 것들>(한울)

 

B. 영화 분석, 이론, 비평

1) 조셉 보그스 <영화 보기와 영화 읽기> (제3문학사)

2) 토머스 소벅, 비바안 소벅 <영화란 무엇인가>(거름)

3) 데이비드 보드웰, 크리스틴 톰슨 <영화예술>(이론과 실천)

4) 수잔 헤이워드 <영화사전: 이론과 비평>(한나래)

5) 팀 비워터, 토마스 소벅 <영화비평의 이해>(영화언어)

 

C.  영화 역사, 장르, 운동, 산업

1) 잭 엘리스 <세계영화사>(이론과 실천)

2) 야마다 카즈오 <영화가 시대를 말한다>(한울)

3) 로빈 우드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

4) 토마스 샤츠 <할리우드 장르는 구조>(한나래)

5) 제임스 모나코 <뉴 웨이브 1, 2>(한나래)

6) 서울 영화집단 <새로운 영화를 위하여>(학민사)

7) 조재홍 <세계 영화 기행 I , II>(거름)

 

D .특정 분야에 대한 입문/연구서

1) 곽한구 엮음 <컬트 영화, 그 미학과 이데올로기>(한나래)

2) 사이드 필드 <시나리오란 무엇인가>(민음사)

3) 스티븐 캐츠 <영화 연출론>(시공사)

4) 에드가 모랭 <스타>(문예출판사)

5) 리처드 다이어<스타-이미지와 기호>(한나래)

6) 오치 마치오의 <마이너리티의 헐리웃>(한울)

 

E. 영화 감독론 또는 감독의 전기

1) 프랑수아 트뤼포 <히치콕과의 대화>(한나래)

2)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길>(민음사)

3) 잉그리트 베리만 <창작 노트>(시공사)

4) 리처드 라우드 <장 뤽 고다르>(예니)

5) 데이비드 톰슨, 이안 크리스티 엮음 <비열한 거리- 마틴 니콜세이지>(한나래)

6) 로날드 헤이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한나래)

7)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봉인된 시간>(분도출판사)

8) 크리스틴 최 <내 영화의 진실, 내 사랑의 자유>(명진 출판)

9) 김영진 <미지의 명감독>(한겨례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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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im 2004-02-06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 영화의 일반적 이해 부분에 루이스 자네티의 <영화의 이해>가 들어가면 더 좋을거 같네요.

stella.K 2004-02-0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책이 있었군요. 사실 이 도서목록은 제가 작성한 것이 아니라서리... 깜빡했습니다. 늦었지만 영화 감독 김홍준님이 작성하신 것임을 밝혀드립니다. '이쿠, 실수할뻔했네...' (긁적 긁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