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나사의 회전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6
헨리 제임스 지음, 민지현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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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현대어로 풀어 썼다는 '시카고플랜'이란 기획 시리즈 중 하나다.  

시카고플랜이란 1929년 시카고 대학 제5대 총장으로 취임한 로버트 호킨스가 ‘철학 고전을 비롯한 세계의 위대한 고전 100권을 달달 외울 정도로 읽지 않은 학생은 졸업을 시키지 않는다’는 취지에 ‘존 스튜어트 밀’식의 독서법을 적용한 고전 철학 독서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이걸 처음 들었을 때 가히 악마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단 한 권의 고전도 제대로 읽기 어려운데 100권을 달달 외울 정도로 읽으라니. 미친 독서법 아닌가. 그런데 문득 존 스튜어트 밀식 독서법이라는 게 뭔지 궁금해졌다. 그건 첫째, 쉽게 쓰인 책을 읽는다. 둘째, 고전을 통독한다. 셋째, 고전을 정독한다. 넷째, 정독하며 필사한다는 것이란다. (오늘날엔 필사에 대한 의견이 좀 분분하다.) 즉 이 독서법을 로버트 호킨스는 자신의 대학교 학생들에게 적용해서 삼류대학에 지나지 않던 대학을 지금의 최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명문 대학으로 만들었고, 그것을 일명 '시카고 플랜'으로 부른다는 것.    


그러니 솔직히 작품보다는 이 시리즈 자체에 관심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어느 때고 고전이 즐겁게 읽힌 적은 거의 없다. 배에 힘을 똭 주고 읽어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게 고전이다. 평소 쉬운 말로 나온 고전은 없는 걸까 불만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실력 없는 목수가 연장 탓한다지만, 영원한 고전이라던 성경도 다양한 버전이 있는데, 고전이라고 그러면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는가. 그 마음을 알아주듯 이렇게 풀어쓴 고전이 나와주니 반갑다. 


이번에 읽은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은 평소 읽고 싶었다기보다 이 시리즈를 알고 싶어 읽었다. 내용에 대해서는 잘 나와 있고 이미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리뷰에서 자세히 다뤘기 때문에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다만 헨리 제임스는 19세기 리얼리즘 소설의 대가이자, 20세기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정도는 알아 둘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현대 심리 소설을 그중에도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했다는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분명한 건, 기존에 나와있는 이 작품의 번역본이 어떤지 나로선 비교불가이긴 한데, 이 책 자체로는 막힘없이 잘 읽히긴 했다. 그러니 존 스튜어트 밀 독서법이 추구하는 첫 번째 쉽게 쓰인 책을 읽는다는 것엔 부합하는 것 같다. 그렇게 첫 번째 단추가 꿰어지면 나머지도 어렵지 않게 따라올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 하나로만 보자면 재미는 별로 없다. 그게 추리나 심리 스릴러를 잘 즐기지 못하는 나의 한계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탓도 없진 않아 보인다. 이미 후대의 작가, 영화감독, 드라마 연출가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줬으니 그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을 즐기다 새삼 그것의 원조격인 작품을 읽고 감동하기란 쉽지 않을 수 있다. 솔직히 고전 대부분은 지루하지 않은가. 물론 그 지루함을 넘어서야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고전 100권을 달달 외워야 졸업하는 대학이 있다는 것도 놀랍긴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해 보면, 내가 언제 한 번 책을 그렇게 해지고, 뚫어지고, 달달 외워본 적이 있었던가. 그 졸린 성경도 지금까지 20번이나 채 읽었을까 싶다. (내가 그쯤 읽었다고 놀라지 않기를 바란다. 이 지구상엔 수십, 수백 번 읽은 사람도 많으니.) 지금도 여전히 읽고 앞으로도 계속 읽을 거긴 하지만 솔직히 좋아서 읽는 건 아니다. 물론 그렇게 읽다 보면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긴 한데 그런 걸 발견할 때마다 왜 이 구절이 지난번엔 눈에 안 들어왔을까 싶은 때도 많다. 이렇게 영원한 고전이라는 성경 한 권도 아무리 읽어도 달달 안 외워지던데 과연 졸업할 때까지 100권을 읽는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성공하든 못하든) 그렇게라도 해서 고전을 독파한다면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긴 하겠다. 고전을 읽으라는데 일부러 읽기는 쉽지 않다. 공부도 한때라고 이왕 해야 하는 거라면 가급적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는 게 좋겠지. 성경 구절을 외우는 것이 좋다고 해서 사춘기 시절 그나마 몇 구절 외운 적이 있다. 그건 정말 잊고 있다가도 생각나기도 한다. 하지만 성인이 돼서는 굳이 뭔가를 외우고 살 필요가 없다 보니 외우는 뇌는 점점 퇴화되었다. 더구나 들고 다니는 컴퓨터라는 스마트폰이 생기고부터는 외울 필요성을 더 못 느끼고 있다. 힘들이지 않고 열심히 하지 않는 건 공부가 아니다. 그건 금방 잊힌다. 봐라. 옛날 초등학교 때 전과 보고 베낀 숙제 치고 기억에 남는 거 하나 있나. 언제 적 얘기를 하고 있냐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몇 년이 되었건 가장 빨리 교과 과정을 잊었다는 것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니의 공부와 독서를 반성해 본다. 어떤 작가는 까뮈의 <이방인>이 좋아 지금까지 몇십 번을 거듭해 읽었고, 각 번역본을 다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내가 어느 때 한번 그런 적이 있는가. 좋은 책인 줄 알면서도 두 번 이상 읽은 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처음엔 어떻게 시카고 플랜처럼 읽을 수 있어했는데 공부엔 왕도가 없다. 성경이든, 고전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그 누구든 거듭해서 읽고 또 읽고 그야말로 책이 구멍이 나도록 읽는 것밖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난 시카고 플랜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또 그런 의미라면 이 시리즈는 별 다섯 개를 주는 것이 맞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내용은 지루할 수 있으니 읽을 사람은 신중하라는 의미에서 별 하나를 감한다. 계속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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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12-08 16: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카고 플랜‘이라니 필사의 힘이 대단하긴 한가 봅니다. 생각해보면
영화에서 영미권 대학을 배경으로 한 장면을 보면 역사의 주요 사건들을 년도,날짜까지 줄줄이 외우는거 대단해 보이더군요. 그런데도 재독보다는 늘 새로움에 눈길이 가는 저는 아직 멀었나봐요ㅎㅎ 스텔라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22-12-09 09:56   좋아요 2 | URL
필사에 대한 긍정과 부정론이 있는데 존도 그렇고
호킨스도 그렇고 옛날 사람이니 긍정하겠죠. 근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듭해서 읽어야 한다는 것엔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래요. 새로운 책이 자꾸 나오니 눈이 그리로 돌아가요. 그래도 노력해 보려구요. ㅋ
잘 지내죠, 미미님?^^

서곡 2022-12-08 1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씨서재로 들어오니 빨간 크리스마스시즌 스킨이 근사합니다!

stella.K 2022-12-09 10:01   좋아요 1 | URL
아, 맞아요. 알라디너들 PC로 잘 안들어 오시죠? 전 스맛폰과 놋북을 같이 쓰고 있어서 가끔 벽지를 바꿔 줍니다. 빨간 성탄벽지는 저도 첨 써 보는데 분위기가 나쁘지 않네요. 서곡님은 크리스마스 장식 안 하시나요?^^

서곡 2022-12-09 10:17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작성할 때는 피씨로 합니다 / 스킨 바꿨습니다 덕택에 업되어 ㅎ 연말 잘 보내시길요!

Falstaff 2022-12-08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헨리 제임스 좀 읽었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인간인데요, 읽은 제임스 가운데 가장 짧은 분량이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 <나사의 회전>이었습니다.
제임스의 원작도 그러하거니와 이걸 오페라로 만든 벤자민 브리튼을 감상하면서도.... 뇌가 완전히 뒤집히는 줄 알았습지요. 근데 이걸 막힘 없이 잘 읽으셨다니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시카고 프로젝트는 벌써 90년 전 이야기니까 뭐 그리.... ^^;;

stella.K 2022-12-09 10:56   좋아요 1 | URL
그렇다는 말이 있긴하더라구요. 근데 이 책은 비교적 무난하게 잘 읽혀요. 하지만 재미를 추구하는 독서라면 비추에요. 추리 보단 스릴러라고 보는데 뭔가 있을것 같은데 결국 김 빠지게 끝나니까 재미가 없더라구요. 그럴바엔 히치콕 영화를 보는게 낫죠.
아, 이 시카고플랜이 90년된 거군요. 그럼 울나라엔 너무 늦은거네요. 그래도 기대는됩니다. 저는 고전울렁증이 있어서요.
근데 뇌가 뒤집히는군요. 😆

기억의집 2022-12-09 0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을 게 많고 볼 게 많아서 한번 이상은 잘 안 읽거든요. 과학책 빼고. 소설은 재독이 별로 없는데 우리 애들은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그래요. 그래서 나름 전문성을 발휘 하더라고요. 몇년 전에 핸리 제임스 책 읽을 때 나사의 회전 읽었어요. 나름 괜찮게 읽긴 했는데… 그렇다고 인상적이지 않었어요. 이 외 한 두편 더 읽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고전을 아예 안 읽기로 해서. ㅎㅎㅎ

stella.K 2022-12-09 10:57   좋아요 0 | URL
오, 영특한 자제를 두셨군요. 전 재독, 삼독하는 사람들 보면 부럽더라구요. 과학책이면 어떻습니까? 전 과학책 좋아하시는 기억님 부럽습니다.
맞아요. 고전은 고전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죠.ㅠ

페크pek0501 2022-12-13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겨 아주 좋습니다. 눈에도 확 뜨이고...
탁상 달력, 저도 두 개 챙겨 놓았지요. 새 달력을 받을 땐 설렘이 있는 것 같아요.
내년에 또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모두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길 빕니다.
스텔라 님께도...

stella.K 2022-12-13 18:22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죠? 전. 빨간색은 강해서 안 썼는데 써 보니까 괜찮네요.
빨간 거 좋아하면 나이들었다고 하는데…ㅋㅋ

그러게요. 전 올해 무탈한 편이었는데 과연 그러고 안도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무탈하면 행복한 거라고 하더군요.
언니도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요, 평안하고 복된 새해 맞으시기 바랍니다.^^
 
그림으로 배우는 경제사 - 부의 절대 법칙을 탄생시킨 유럽의 결정적 순간 29,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이강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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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세상을 많이 바꿔놨다.

3년 전 이맘때 정부의 발표를 듣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 사태를 전시상황에 비유하며 꼭 이길 것이라며 비장미마저 느껴지게 했다. 나라들마다 국경을 봉쇄하고, 날마다 몇 명의 감염자가 나왔는지를 세고,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와 그에 대한 저항을 하고,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보다 그 이후가 훨씬 더 어려울 거라고 예측했다. 그 예측은 조금도 빗나가지 않아 지금은 코로나가 어느 정도 안정세에 접어드니 이번엔 고물가에 그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를 올리고 난리도 아니다. 그리고 이 상황은 또 당분간 지속될 거라고 한다.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현재를 살고 있다.


전쟁이 가장 무서운 줄 알았다. 그런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전쟁보다 무서운 게 전염병이란 걸 이번에 철저하게 깨닫는다. 전쟁을 조기 종결시켰던 게 패스트였으니. 하지만 어찌 보면 전염병이 진짜 나는 놈은 아니었다. 그건 경제였다. 하지만 문제는 난 경제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왜 코로나 상황이 벗어날 만 하자 지금의 경제 상황을 맞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부끄럽지만 난 고물가인데 왜 금리를 자꾸만 올리는 건지 이해를 못 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내가 경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야겠다는 자각을 하게 만든 개기가 됐다. 그래서 고른 책이 이 책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책은 재밌긴 한데 내가 알고 싶은 것엔 역부족은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책 선택을 잘못한 것 같다는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경제의 역사나 흐름을 이해하기에 좋은 책임에는 틀림없는 것. 또한 나 같이 무조건 경제학 울렁증이 있는 사람에게 구미가 당길만 하다. 비록 유럽 경제에 국한되어 있긴 하지만, 새삼 학창 시절 이후 내가 언제 이런 세계사 공부를 해 봤던가 살짝 반성도 되면서 나름 즐겁게 읽었다. (지금은 학교에서 세계사를 어떻게 공부할지 궁금하다.) 


사실 역사란 다각적인 각도에서 봐야 한다. 지리, 문화, 정치, 경제 등 유기적으로 봐야 하는데 경제사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할 말이 많구나 싶었다. 게다가 그림으로 배운다는 부제처럼 매 장마다 당대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 삽화처럼 들어가 있다. 그림으로만 봤을 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렇게 경제사의 흐름과 함께 보니 그림이 더욱 의미 있어지며 과연 유명 화가의 그림도 결국 시대의 산물이구나 싶다.   


역사에서 배운다고 우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이런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중세시대 페스트일 것이다. 물론 페스트가 중세시대 처음 출연한 것은 아니다. 전염병의 역사가 언제 처음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페스트의 첫 출연은 고대 로마라고 한다. 그리고 2차 출연은 1346년에서 1353년까지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 3년도 버거운데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절을 보냈으니 그때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더구나 마땅한 치료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 시기에 또 여러 가지 파생된 문제들이 나타났는데 그중 하나가 신의 형벌을 피하기 위해 '면벌부'가 성행했었다고 하니 또 그로 인한 경제적 파급 효과는 어땠을까.  


어쨌든 페스트는 중세 시대를 지배하던 헤게모니에 변화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사람의 몸값이 치솟았고, 노동의 가치가 올라갔다고 책은 밝히고 있다. 노동력이 곧 자본이 된 것이다. 그에 따라 하층민들이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당시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 귀족과 영주의 간섭과 횡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길드를 조직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각 분야의 독과점 형태와 이익집단으로 변했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당연한 결과는 아니었을까. 그래도 이 시기만큼 노동을 인정해 주는 시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같은 전염병의 시대를 거치지만 노동의 가치는 페스트의 시대만큼 좋아지지는 않고 있다. 그건 비대면으로 인한 자동화 시스템의 확대, 나날이 정교해지는 AI의 등장으로 사람이 설 자리가 오히려 더 줄어들고 더 이상 노동을 신성한 것으로 보지 않는 시대를 맞았다. 과연 역사에서 배우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역사가 코로나 이후의 시대에 대해 새로운 비전과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하건 그 시대나 이 시대나 전염병이 모든 사람에게 나쁘게만 작용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힘든 시기 속에서 어떤 사람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지혜를 배우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경제사란 한마디로 돈의 흐름과 향방을 쫓는 분야이긴 하지만 인간이 잘 살기 위한 노력과 모험은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고, 그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사실 우리는 역대로 돈에 대한 애증을 퍼부으며 살았던 것도 사실이다. 경제사는 또한 바로 그런 걸 쫓는 분야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돈에 누가 웃고 웃었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상 이것을 가장 탁월하게 보여줬던 건 메디치 가문은 아니었을까 한다. 너무나 유명해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긴 한데,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인 안나 마리아 루이사 데 메디치는 특별히 기억해 볼만하지 않을까 한다. 그녀는 사망 직전 소유한 예술품을 피렌체에 기증한다. 단 조건이 있다. 모든 기증품을 피렌체 밖으로 반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피렌체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고, 후에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된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피렌체를 한 해 관광 수입으로 먹여 살린다. 그야말로 돈이란 이렇게 쓰고, 이렇게 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그저 돈을 벌면 무조건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쓰려고 하지 않던가. 요는 모든 사람이 메디치 가문 같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얼마를 벌던 정승 같이 쓰자는 말이다. 돈을 남기기보다 정승 같이 쓰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아무튼 재밌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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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2-01 15: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넵 조만간 일독하겠습니다. ㅎㅎ 우피치 미술관인가 하여튼 저 안나 마리아 루이사 데 메디치의 동상을 봤었어요. 메디치가의 마지막 후손이었던 그녀 덕분에 오늘날의 피렌체가 있지않나싶더라구요. 로렌초 데 메디치 이후에 메디치가는 뭐 영 아닌 후손들로 인하여 망해먹었지만 말이죠.

stella.K 2022-12-01 15:40   좋아요 1 | URL
ㅎㅎ 어느 집이나 문제아들은 있기 마련이잖아요. 대단한 가문임엔 틀림없죠.
그나저나 바람돌이 님도 재밌게 읽으셔야 할 텐데ᆢ저기 쓰기도 했지만 저같이 경제학 울렁증이나 세계사 공부한지 오랜 분이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mini74 2022-12-01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렌체 빈출 불가라니 피렌체사랑이 대단한 멋진 언니네요 ㅎㅎ페스트 보면 지금 우리 모습이랑 닮았단 생각 많이 들더라고요. ~

stella.K 2022-12-02 16:03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정말 똑똑하고 통 큰 언니죠?
피렌체 가 보지 못했지만 어찌보면 자신의 예술품 가지고
피렌체를 산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정말 영리해요.

결국 전염병 이길 장사 없는 거겠죠.

기억의집 2022-12-02 0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피렌체 가문은 대단한 가문 같아요. 이 가문덕에 지금 이탈리아가 평생 관광으로 먹고 살고 문화 대국으로 기억되고 있으니깐요!! 저는 예전엔 그냥 돈 많은 귀족 가문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시 보이기 시작했어요!! 저는 홍사훈의 경제쇼 자주 듣는데, 이 분 참 매력있어요!! 금리가 높아지면 소비를 안 한대요. 소비가 줄어들면서 인플레가 잡힌다고 하네요. 전 유튭 끼고 살아서… ㅎㅎㅎ 한편으로는 이제 저물가 시대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해요.동시에 저금리 시대도 오지 않을 거라고.. 지난 이십년 같은 시대는 오지 않을 거라는데.. 아무래도 금리 높으면 사는 게 버겁죠. 저는 그나마 대출 없어서 괜찮은데.. 대출 많이 받으신 분들 힘드실 것 같어요!!

stella.K 2022-12-02 16:12   좋아요 0 | URL
오, 기억님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알겠어요.
그런 거였군요. 하지만 우린 지난 세월 동안 돈 갖다 쓰라고
빚 권하는 사회를 만들었잖아요.
그래놓고 돈 줄을 죄어 놓으면 반발이 여간 아닐텐데요.
저도 작년에 은행 원금 상환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고마워요. 기억님은 참말로 모르는 게 없어요.ㅋ
저도 그런 방송도 좀 보고 경제 지식도 쌓고 그래야 하는데
엉뚱하게 경제사나 읽고. ㅋㅋ

yamoo 2022-12-05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경제사와 문화사 책은 유익하고 재밌습니다. 두깨가 있지만 작가의 역량에 따라 매우 치밀하고 풍부한 사례들을 접할 수 있죠. 전쟁사도 재밌고, 전염병사도 재밌어요. 분야별 역사는 일반 세계사와는 다르게 디테일 면에서 매우 유익합니다. 어렵지도 않고요. 경제사는 그 중에서도 매우 주류적인 분야라 일독하면 좋죠. 어떤 책이라도 좋아요. 저는 주로 교과서 류의 책을 읽었는데, 일반 교양서와는 밀도 면에서 좀 다른 거 같아요. 물론 교과서라 지루하긴 하지만 정보는 많이 습득할 수 있어요. 어쨌거나 경제사류는 읽어 놓으면 무척 도움이 되는 분야입니다~~^^

stella.K 2022-12-05 19:56   좋아요 0 | URL
ㅎㅎ 야무님은 도대체 모르는 게 뭡니까?
정말 그야말로 척척 박사시군요.ㅋㅋ
이 책 경제사를 알기는 정말 좋더라구요.
경제 이론이 어렵지 역사가 뭐가 어렵겠습니까?
그렇군요. 교과서가 주는 밀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학교 땐 교과서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객관적 판단이 어려웠는데
졸업한지도 한참 됐는데 이제야 좀 알고 싶더라구요.
우리나라가 오래 전부터 교육에 비판을 많이 받아서 그렇지
공부 자체는 세계 어디 내놔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어요.
오히려 여타의 나라에선 배우고 싶어한다는 말도.
이런 거 지금 사춘기 아이들한테는 안 먹힐 거고 나이들어 공부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잘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고맙슴다.^^
 

지난 주말 본의 아니게 몇편의 영화를 몰아서 봤다.

지난 한 주간 동안 G TV에서 가치봄 영화를 결제없이 볼 수 있는 이벤트를 했는데 난 그걸 금요일 밤 잠자기 전에 알았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걸. 괜찮은 최근 한국 영화를 원없이 볼 수 있었던 기회였는데 많이 못 봐서 아쉬웠다.


본 영화 중 최고는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물론 이 영화는 오래 전부터 영화 전문 채널에서 방송해 주긴했지만 끝까지 눈에 불을 켜고 볼 자신이 없어 보기를 밀어뒀다. 그러다 이번에 볼 수 있어 얼마나 좋던지.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좋다. 단지 좀 우려스러운 건 이제 이준익 감독은 컬러로는 영화를 안 만들건가 하는 것과 전기 영화 같지 않은 전기 영화를 만들건가 하는 거다. 이러다 자기 스타일에 빠져 예술 영화를 만들겠다고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설경구의 연기도 볼만했지만 이정은과 변요한의 연기가 정말 좋았다. 옮길 순 없지만 가끔씩 툭툭 튀어 나오는 명대사도 좋고. 정말 정약전은 자신어보를 어떻게 썼을까 궁금해진다.


한때 이 영화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아서 궁금하긴 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 궁금증을 풀었다. 일단 나쁘지 않았다. 독립영화스럽긴하다. 독립영화라면 저예산에 상상력의 자유로움 아니겠는가. 장국영이라 우기는 귀신이 찬실이 자취하는 집에 산다는 설정부터가.ㅋ 


솔직히 뭘 가지고 찬실이가 복이 많다는 건지 모호하다. 그나마 우연히 알게된 연하의 영화감독과 연애에 성공했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고. 영화에서 보여준 거라곤 성공 못한 사람은 연애도 못한다는 그렇고 그런 통념을 역시 뛰어넘지 못했다. 고작 영화가 보여주는 건 영화 감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영화가 엎어지고 인생이 뭐냐고 한탄하다 결국 없는 희망을 짜내어 다시 영화의 길을 간다는 (그것도 프로듀서였지 아마?) 다소 억지스럽고 자위적인 내용이 다다.


그나마 다소의 리스크를 안고 장국영이라 우기는 귀신을 과감하게 기용했다는 것이 나름 주효했던 것 같기도 하다. 김영민이 정말 장국영을 연상시켜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 배우가 심상치 않았는데, 나는 이배우를 나의 최애 드라마인 <나의 아저씨>에서부터 봐왔다. 민소매 런닝셔츠에 사각 팬티를 입고 맘보춤은 장국영의 트레이트마크 아니던가. 그 패션은 따라하되 맘보춤은 추지 않는다.


그래도 이 영화를 좋게 보는 건, 찬실이 역을 맡은 강말금의 역도 좋았지만, 특별출연처럼 출연했던 윤여정이 찬실이 자취하는 집 쥔할머니로 나와줬다는 거다. 이미 오래 전부터 주류영화에서 잔뼈를 키워왔던 윤여정이 이런 독립영화에 기꺼이 출연을 허락했던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여튼 그녀는 너무 멋진 배우라고 생각한다.


왠지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을 것 같고, 찬실이는 감독의 페르소나 일 것 같다. 감독이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만들었겠구나 싶기도한데 스토리가 역시 좀 아쉽다. 


강하늘의 나오는 영화는 다 좋(옳)다.

불만 아닌 불만이라면 전반적으로 사춘기의 첫사랑의 감성이 있다는 거고, 이제 이런 영화에 강하늘은 마지막 영화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강하늘이 얼마 전 드라마에 나오던데 등급이 있더라. 그런 것으로 봐 좀 다른 면모를 보여주지 않을까 싶은데 조만간 볼 생각이다. 암튼 이 영화는 아기자기한 청춘 영화다. 강하늘 좋아하고 청춘 영화 좋아하는 사람에게 강추다.


                       

                    


사랑은 눈이 멀다. 사랑엔 눈이 없다. 

뭐 그런 실상을 보여주는 영화라고나 할까? 그냥 엎치락 뒤치락하는 그렇고 그런 로코 영화는 아닐까 싶었는데 의외로 가면 갈수록 꽤 괜찮은 영화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감독이 조은지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알고 있는 그 조은지 배우 맞나 했더니 맞다. 오래 전부터 조연으로 감초 연기를 도맡아 왔던 배우다. 언제부턴가 TV엔 뜸한 것 같았는데 감독으로 나오다니. 새삼 반갑고 감독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다니 달리 보게 만든다.


뭐 로코인만큼 재미는 보장한다. 그런데 눈여겨 봐야하는 건, 주인공 김현(류승룡 분)을 좋아하는 유진 역의 무진성이다. 여기서 유진은 남자다. 그렇다. 유진은 소위 말하는 게이다. 그것도 늙다리 소설가이자 대학 강사인 김현을 좋아하는. 김현을 좋아해 그가 다니는 대학에 들어왔고, 김현이 1년을 쉬자 덩달아 휴학계를 쉬고 다시 대학 강단에 복귀하자 그도 복학을 하는 집요한 사랑꾼이다. 사실 겉으로만 멋있어 뵈는 소설가지 알고보면 갈수록 글도 못 쓰고 첫번째 부인과 지금의 부인과 엎치락 뒤치락 삼각관계다. 그것도 모자라 사춘기인 전 부인이 낳은 아들과도 그다지 좋은 관계도 아니다. 그것도 부족해 이번엔 게이가 자기를 좋다고 쫓아 다니니 확실히 웃픈 인물이다 . 그도 같이 좋아하면 좋겠지만 김현은 동성을 좋아 할 마음이 전혀 없다. 그러니 골치가 아플 수 밖에. 그나마 유진이 악마적 속성을 가진 인물이라면 좋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상당히 반듯하고 좋은 감성도 가졌다. 관객인 내가 봐도 꽤 매력적이다. 


솔직히 난 성적으론 보수적이고, 동성애를 다룬 작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동성애자를 혐오해서라기 보단, 난 가끔 드라마에 동성애를 슬쩍슬쩍 다루는 걸 보면 오히려 더 화가난다. 그걸 만드는 사람은 동성애를 옹호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의식있는 사람인가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싫다. 물론 처음엔 어느 정도 약발이 먹힐 수도 있겠지만 자꾸 그러면 오히려 동성애자들만 더 이상하게 만드는 꼴이 되는 건 아닌가 싶고, 그런 일방적인 되다만 장면을 보여주는 것 보다 이 영화에서처럼 차라리 문제제기를 보여주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그러므로 서로를 이해의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동성애자들 중엔 유진이처럼 반듯하고 매력적이기만 하겠는가. 하지만 무조건 같은 성을 같은 사람만 보면 침을 질질 흘리는 이상한 인물로 그리는 거 같은 동성애자가 봐도 기분 나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영리하게 보여줄 것만 보여줬다는 생각이 든다. 나 같은 사람이 보고 나서도 기분 나쁘지 않고 오히려 깔끔한 느낌을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 밖에 몇 편의 영화를 보다가 말았다. 역시 뭔가를 한꺼번에 몰아보는 건 내 취미는 아닌 것 같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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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11-29 11: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산어보>랑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저도 봤었는데 재밌었어요.
찬실이에서 윤여정 배우님의 대사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사람도 꽃으로 오면 좋겠다고!!
근데 김영민 배우가 <나의 아저씨>에도 나왔나요? 아....ㅋㅋㅋ 잠깐 다른 드라마랑 헷갈렸네요. 맞아요. 불륜남으로 나왔었죠. 연기를 너무 잘해서 엄청 미워하고 욕 하면서 봤었어요ㅋㅋㅋ 아이유도 연기 잘 했고^^
저도 <나의 아저씨> 넘 좋아서 두 번 봤어요ㅋㅋ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아직 못봤었는데 한 번 봐야겠군요. 강하늘이라니!!!
강하늘이 이젠 연기 스팩트럼이 선이 굵은 드라마에 어울리는 배우라 첫사랑 감성에 어울리지 않는 걸까요?
전 <재심> 영화에서 강하늘의 조연 역도 좀 아깝단 생각이 들 정도로 계속 강하늘 쪽으로 눈길이 가더군요. 연기를 너무 잘 하는 배우에요^^

stella.K 2022-11-29 14:45   좋아요 2 | URL
김영인 배우는 정말 장국영을 연상케해요.
저는 영화에서 먼저 알려지고 나중에 드라마로 나온 줄 알았더니
드라마가 더 앞섰더라구요. 보통은 영화가 먼저 아닌가요?
책나무님도 강하늘 좋아하시는군요.
저의 최애 배우죠.
물론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 보여주니까 현재는 제 나이로 나와요.
그런데 청춘물에 너무 많이 나오는 건 아닌가 싶어서요.
요즘엔 영화 보다 드라마를 많이 보죠.
그냥 소설 읽는다 생각하고 봐요. 그러다 보니 영화가 좀 멀어졌어요.
우리 영화 여전히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들긴하더군요.
근데 결제해 보는 건 좀 아깝다 싶더군요. ㅋㅋ
장르만 로맨스도 함 보세요.
의외로 괜찮았어요.^^

2022-11-29 1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29 1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22-11-30 13: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산어보에서 이정은 특히 참 좋더이다. ^^
변요한은 이번에 청룡 조연상 수상하더군요.
주말에 몰아서 많이 보셨네요. 찬실이는 감독의 페르소나 맞는데 보다가 말아서 다시 봐야겠어요. 강하늘 배우 동주에서도 그렇고 마음에 들어요. 제 맘에 들면 뭐하냐만은 ㅎㅎ 전에 무슨 여행 프로그램에서 여럿이 나왔는데 반듯하면서 에너지 넘치고 배려심에 성격 좋고 밝은분위기 메이커였어요. 스텔라 님에게 양보할게요 ㅎㅎ

stella.K 2022-11-30 13:45   좋아요 2 | URL
ㅎㅎㅎ 그럼 강하늘은 저만을 위한 배우로! 고마워요.ㅋㅋㅋㅋ
전 정말 강하늘이 그렇게 좋더라구요.
뭐 좋아하는 배우가 강하늘 뿐이겠습니까만 정말 마음이 훈훈해지는 게
좋더라구요. 제가 연예인을 좋아하고 그러지 않는데 그러는 거 보면
나이들었나 봐요.ㅠ

<찬실이는...> 나쁘진 않은데 좀 과대평가를 받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요.
꽤 좋은 평가를 받았던데 그렇겠까지...? 좀 그랬어요.
우리가 지금까지 봐온 독립영화의 전형일뿐인데.
출연진이 좋긴하더군요.

mini74 2022-11-30 1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자산어보 좋아요 ㅎㅎ 흑백이라 수묵화느낌나고 ~ 나의 아저씨는 울면서 봤는데 찬실이는 아직 못 봤어요. 강하늘 잘 생겼죠 ㅎㅎ 동주에서 반한 *^^*

stella.K 2022-12-01 13:13   좋아요 1 | URL
앗, 역시 미니님 배우 볼 줄 아시네요.
강하늘은 사랑입니다!! ㅎㅎ

저도 <나의 아저씨>는 정말 울컥했어요.ㅠ

yamoo 2022-12-12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산어보....정말 끝내주게 좋은 영홥니다. 캐릭터가 좋고 연출력이 발군이라 흑백영화지만 매우 우아한 재미를 선사하는 보기드문 명작이죠. 개인적으로 설경구를 매우 싫어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배우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힘을 빼고 연기하는 설경구를 보니, 내가 알던 그 설경구가 맞나하는 의구심이 들더이다.
더군다나 이 영화을 통해 왜 정약전이 자산어보 책 1권만 달랑썼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여태까지 동생 정약용이 500여권을 쓸 동안 그는 왜 저서가 달랑 한 권 뿐일까...계속 의문이 들었는데, 이 드라마를 보고 바로 해결됐습니다. 정약전은 진정한 애너키스트였던 겁니다. 18세기에 말이죠!!
전 이준익의 모든 영화들 중 자산어보가 가장 감명깊었습니다~~

stella.K 2022-12-05 20:08   좋아요 0 | URL
앗,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1권만 썼나요?
전 그런 것도 몰랐습니다. 동생 책 봐주느라고 그랬을까요?
영화에서 보면 동생 책 봐주고 그러잖아요.ㅋ
영화 정말 좋죠?
전 어제 <동주>를 다시 봤는데 4번인가? 다섯 번째 보는데
다시 봐도 좋더라구요.
설경구에 대한 평가가 여럿이긴 하더라구요.
잘할 땐 잘하고 못할 땐 못한다. 그러니까 항상 잘하는 배우는
아니라고 하는데 전 좋아하지는 않지만 잘하는 배우인 것만큼은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준익 감독은 거의 천재라고 봐야죠.
단지 천재들이 그렇듯 자기 세계에 빠지는 경향이 있잖아요.
혹시 그렇게 되는 건 아닐지 싶은데 쓸데없는 걱정이겠죠? ㅎㅎ

yamoo 2022-12-12 15:22   좋아요 1 | URL
네, 정약전은 자산어보 한 권만 남겼어요. 그 어떤 유학 주석서나 유학에 관한 책을 남기지 않았어요. 정약용만큼 뛰어난 학자였는데, 철학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그는 책을 남기지 않았어요. 영화를 보다보면 그 힌트가 나옵니다!
 
조선의 大기자, 연암
강석훈 지음 / 니케북스 / 202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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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이 스스로를 기자라고 한다고 했을 때 난 좀 얼떨떨했다. 

그렇다면 난 이제까지 그를 무엇이라고 알고 있었을까? 실학자겸 문장가 아니었나? 소설가라고도 하고. 그것은 또 허균과 얼마나 많이 헷갈리던가. 기자가 그리도 오래된 직업이었나 하는 의구심이 일기도 했다. 기자는 우리나라엔 적어도 20 세기 초에나 생겨난 직업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연암은 무려 1780년 건륭제의 70회 생일을 맞아 진하 사절단으로 북경으로 갈 때 자칭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것은 또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거의 1 세기나 앞선 것이기도 했으니 긍지를 가져도 좋을만하겠다. 기자라는 직업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기자가 쓴 글을 좋아해서 이 책을 읽었다.  

기자가 쓴 글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내가 읽은 건 문학이나 출판 분야에 한정되었으니 이렇게 역사적 인물을 대상으로 쓴 글은 이 책이 처음이다. 게다가 저자는 중국 특파원이(었)다. 그러니 기자로 본 연암 연구라고나 할까. 책이 제법 묵직하다. 저자가 왜 주제를 그렇게 잡았을지도 알 것 같기도 하다. 중국 특파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으니 과연 기자로서의 연암을 추적하고 싶었을 것이다. 더불어 기자는 과연 어때해야 하는지를 고민했을 것이다.   



연암은 1737년(영조 13년) 음력 2월 5일 처사 박시유와 함평 이 씨(?) 사이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조부 박필균은 지평, 교리 등 벼슬을 했지만 아버지 박시유는 벼슬에 별 뜻을 두지 않고 조용히 살았다고 한다. 때문에 연암은 조부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연암 역시도 과거를 포기하기도 했으니 그 점은 아버지를 닮은 듯도 하다. 또 그게 과거를 볼만한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는 과거 시험장에서 답안을 쓰긴 했지만 내지는 않고 과감히 그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고 한다. <과정록>을 보면 그가 쓴 고체시가 하도 기이하고 뛰어나 친구들이 그것을 외웠을 정도라고 하니 가히 천재급 아닌가.  



그는 왜 그랬을까. 원래 과거에 합격하는 것이 그의 목표가 아니었다. 그렇게 하므로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무언의 항거 수단이었고 그러한 저항을 통해 양반 사회의 이중성과 허위의식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진정한 선비 정신으로 가다듬고자 했을 것이란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 시절이나 이 시절이나 입신양명은 보통 사람의 한결같은 꿈인가 보다. 연암이 멋있는 건, 그는 타고난 배경과 학식이 있음에도 그것에 매이지 않고 자유했다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연암이 생각하는 기자는 어떤 사람일까.  

읽다 보면 그가 술을 부어 먹을 갈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딱 이것만 읽으면 멋과 풍유가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그렇진 않다. 그때 하필 물이 없어 급한 대로 술을 썼던 것이다. 급하게 기록해야 할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에게 필수인 적자생존이란 말은 최근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 아니구나 싶다. 그나마 가까이 술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것마저도 없었다면 어쩔 뻔했을까 싶기도 하다. 솔직히 인간의 기억이 그리 오래지 못하고 누구는 7초 이상을 가지 못한다는 말도 있던데, 먹이 어디 7초 안에 갈아지는 물건이던가. 휘발되는 자신의 기억력을 어떻게 부여잡았을지 말이 좋아 멋이지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그에 비해 현대에 들어와서 아날로그 시대 땐 수첩과 볼펜을 썼을 것이고, 지금은 스마트폰을 필수 도구로 사용할 것이다. 과연 기자의 적자생존이 그 옛 시대보다 나아졌는지 기자들에게 물어볼 일이다. 



물론 실제로 그런 고사성어가 있긴 한가 보다. 말안장에서 붓과 벼루를 꺼내 술로 먹을 간다는 뜻의 손주마묵. (그런데 한자사전에선 찾을 수가 없다. ㅠ) 과연 낭만적이다. 연암이 풍유 정신과 적자생존의 정신은 모두 갑이었으니 둘 다 가능했을 것이다. 



이 책이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연암의 기자 정신과 글쓰기 정신이다. 

그중에서도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연암이다. 

기자들 사이엔, 'Something about everything, everything abdut something'이란 말이 있다고 한다. '기자는 모든 것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하고, 어떤 것은 모두 알아야 한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어찌 보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 같기도 하다. '모름지기 기자라고 하면 정치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어떤 분야에서라도 예측 불허의 뉴스거리가 발생하면 언제든 취재할 수 있는 일정 정도의 상식과 교양이 필요하며 달팽이 촉수처럼 늘 안테나를 세우고 기사를 취재할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제너럴리스트로서의 기자다. 그리고 이것의 진가는 열하일기가 보여준다.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연암은 어떠한가. 앞서, 과거에서의 제출하지 않은 시험답안을 친구들이 외울 정도라고 했던 것처럼 연암은 박학다식 박람강기(다양한 책을 읽고 기억을 잘함)의 스페셜리스트였다. 대형 르포르타주인 열하일기의 큰 주제는 바로 신진 문물제도 도입과 이용후생을 통한 부민 강국을 모색하는 '조선의 국부론'이었다. 그런 만큼 연암은 탁월한 경제 전문가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기자는 과연 어떠한가. 연암 같은 기자 어디 없냐고 찾는 것이 아니다. 과연 오늘날의 기자에게 자기 전문분야는 있는지, 일부러 자기 분야 외엔 다른 것엔 일체의 관심을 갖지 않으려는 우물 안의 개구리는 아닌지 모르겠다. 또 그것은 기자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인이라는 사람일수록 외골수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통섭을 외치기도 한다.  



오늘날의 기자를 두고 사람들은 기레기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그만큼 기자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가짜 뉴스도 많아졌고, 직접 보고 발로 뛰기보다 인터넷 어디선가 있을 법한 기사를 자기 구미에 맞게 살짝 고치고 자기가 쓴 양 하는 기자도 많다고 한다. 또한 진실을 파헤친다는 미명 하에 오히려 싸움을 부추기거나 사람의 말초신경만을 자극하는 보도도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내 주위엔 신문과 뉴스 안 보고 산다는 사람도 많아졌다. 골치가 아프다는 거다. 그때마다 기자는 한숨을 지을 것이다.  



물론 세상에 이런 기자만 존재하겠는가. 분명 좋은 기자도 많을 것이다. 매스컴이란 게 워낙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다 보니 부풀려지고 때문에 좋은 글을 쓰는 기자의 글이 묻힐 때도 많을 것이다. 어떤 기자가 됐건 기사의 기술만을 배우지 말고 기자의 정신을 배웠으면 좋겠다. 연암은 나라의 부국강병과 실사구시를 추구하며 글을 썼다. 어떤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항상 발로 뛰며 현장을 중시했다. 그저 지면이나 겨우 채우는 것 같으면 그 사람은 기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한마디로 연암에게서 배웠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기자 역시 여느 작가 못지않게 글 쓰기 노하우를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연암은 법고창신의 작법을 강조했다. 즉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으로, 그는 법고만 있어도 안 되고, 창신만 고집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글을 쓰기를 격려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암의 시대에도 남의 글이나 베끼거나 글의 모험을 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사실 오늘 날도 글쓰기에 관한 책들은 노하우만을 전수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아 그 밥에 그 나물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서 글 쓰기에 관한 책은 잘 골라야 한다. 가급적 노하우는 글 쓰기 초보 때 읽고 이렇게 옛 선인들이나 창작의 정신에 대해 다루어 놓은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의 글을 쓰는 일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지만 이건 나도 잘 안 된다.ㅠ)



고백하자면 난 지금 이 책을 다 이해하고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한 3분의 1이나 이해했을까?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못한지도 모르겠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땐 두 마리 토끼를 염두했다. 기자의 글을 좋아한다고 했던 만큼 저자의 글을 즐기고 더불어 연암도 알게 되는.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건 저자가 글이 못 써서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연암에 대한 이해가 일천해서다. (솔직히 저자가 조금 더 풀어썼다면 하는 욕심도 없지 않다.) 그래도 내가 저자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건 저자가 정말로 연암을 좋아하는가 보다. 그리고 그런 저자의 자세가 좋았다. 누군가 닮고 싶은 모델이 있어 그를 끊임없이 연구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건 단순히 기술만을 추구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제고 여유를 가지고 다시 한번 정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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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2-11-18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저도 무척 좋아해요. 20대부터 꾸준히 읽고 있는데 느낌이 매번 달라요. 박지원 선생은 문이과 통합형 천재가 아닐까 싶어요. 이 책의 작가도 박지원 선생을 사랑하시는 모양이에요. 이해가 됩니다.^^

stella.K 2022-11-18 18:29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저는 박지원은 잘 몰라서 읽는데 좀 그랬습니다.
mokl2000님은 박지원을 좋아하시니
이 책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합니다.
정말 저자가 연암을 많이 좋아하는 게 느껴집니다.^^

바람돌이 2022-11-18 2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박지원 좋아해요. 그의 산문을 읽으면 정말 시대를 뛰어넘는 자유로움이 느껴진다죠.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생각의 지평을 보여주는 분입니다. 고미숙선생인 박지원과 정약용을 비교한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라는 책을 썼는데 여기서도 아무리 봐도 매력적인 사람은 연암 박지원입니다. ^^

stella.K 2022-11-18 20:27   좋아요 2 | URL
어련하시겠습니까? ㅎㅎ 그러고 보면 박지원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저는 그저 찜만 했습니다. 분발해야겠습니다. 고미숙 선생이 그런 책도 썼군요.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찜합니다. 좋은 주말보내십시오.^^

희선 2022-11-19 0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다보니 읽지는 않은 책 제목이 생각났습니다 연암처럼 써라만 생각났는데, 찾아보니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네요 stella.K 님은 연암한테 관심을 가지고 이런 책을 보셨군요 저는 이름만 압니다 그런 사람이 한둘은 아니군요 연암 박지원이 기자였다니 그 시대 기자였네요


희선

stella.K 2022-11-19 09:49   좋아요 1 | URL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제목 같네요. ㅎ 다산과 연암에 관한 책이 의외로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연암이 기자였다는 건 이책에서 첨 알았네요. 연암도 연암이지만 기자가 쓴 책을 좋아해서요ᆢ😂
희선님, 좋은 주말요!^^

페크pek0501 2022-11-27 1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연암에게서 문장을 배우는 책을 읽었었어요. 당대 문장가 어쩌고 하면서 홍보했던 책 같아요.
이젠 책 제목도 기억이 꽝, 이네요. 흐흐~~

stella.K 2022-11-27 20:27   좋아요 1 | URL
ㅎㅎ 저도 그래요.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기껏 남이 애써 말한 것도 알아 듣지도 못해 딴소리하고.
뭐 이러면서 사는 거죠. 세월 앞에 장사 없다잖아요.
그냥 대충 살기로 했어요.ㅋㅋ
 

이 영화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눈물을 자아내는 영화일 것이 분명해 보이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의외성이 강했다. 우선 생각보다 최루성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고, 스토리는 그다지 새로워 보이진 않는데 담백하다. 새로워 보이지 않는 대신 과연 이런 엄마가 있을까 의문스럽기도 하다. 이를테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남아선호 사상에 남아 있지 않은가. 더구나 배경이 전라도 깡촌이다. 그렇다면 그 보수적 경향 때문에 여느 엄마라면 아들을 더 끔찍이 여겼을 법한데 영화는 반대로 딸을 더 끔찍이 여긴다. 내 새끼. 내 새끼 하며 불면 날아갈까 그런 애지중지가 없다. 


나름에 이유는 있다. 

엄마가 이 영화의 화자인 지숙을 낳기 전 얼굴도 모르는 언니를 낳았지만 얼마 안 있어 죽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자신이 태어났는데 엄마가 거의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퍼붓는 것이다. 그런데 비해 지숙의 남동생은 거의 학대에 가까운 수준으로 구박을 한다. (아들이야 구박은 해도 그 기저엔 남아선호가 깔려 있으니 그러려니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이만하면 엄마의 딸에 대한 사랑이 어느 정돈지 짐작이 갈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서사를 따라가기보단 인물에 집중해 보는 것이 좋다. 엄마 역의 김혜숙 배우의 연기가 단연 압권이다. 워낙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라는 건 이미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입증한 바 있으니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이 영화에서 시골 깡촌의 촌부 역을 그야말로 찰떡 같이 소화해 낸다. 그녀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볼만하다.


      

    우리네 엄마들은 왜 그렇게 바리바리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시는 건지...



이 엄마의 딸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하냐면, 원래 종교가 천주교다. 신부에게 고백성사를 하는데 딸을 그렇게 지켜주고 싶다면 묵주나 십자가 목걸이라도 해 줄 일이지 자꾸 부적을 해 주는 것이다. 그것이 죄라는 걸 아니 자꾸 고백성사를 하는 것이다. 신부는 그러면 안 된다고 단단히 충고하려 하지만 답답증에라도 걸린 걸까? "아, 신부님도 아를 낳아 보쇼. 내 맴을 알텐께. 아참, 신부는 결혼을 안 하니 아를 못 낳제. 그러니 나 마음을 알리 없지." (뭐 이 비슷한 대사를) 하며 속죄소를 박차고 나간다. 



그만큼 딸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나 같으면 그런 사랑 줘도 안 받고 숨이 막힐 것 같은데 적당한 사랑만 준 울 엄마가 얼마나 고맙던지. 솔직히 요즘에 과연 이런 엄마가 있나 싶다. 할머니라면 가능할 것 같긴 하다.


어쨌든 지숙도 엄마가 자신을 사랑해주니 사랑은 길을 잃지 않는다고 못지않게 엄마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정말 나만이 하는 사랑이다. 그렇게 사랑하면 누구에게 말해도 부끄럽지 말아야 하는데 지숙은 촌스러운 엄마가 자기 엄마라는 걸 차마 남에게 드러내지 못한다. 그래서 학부모 참관수업을 위해 나름 학교에 조신히 차려입고 온 엄마를 거의 쫓아 보내듯 돌려보낸다. 문득 이 지점에서 난 그 옛날 나의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학급 환경미화를 위해 물품을 준비해야 했는데 조그만 나의 몸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니 일단 나는 학교에 먼저 가고 엄마는 마침 집에 와 계신 외할머니를 시켜 그 물건을 보내겠다는 것이다. 지금 같으면 퀵을 시켰겠지. '학교에 누구를 보내겠다고? 외할머니를...?' 그건 안 될 말이었다. 내가 외할머니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누구한테 내보일 만큼 자랑스러워했던 것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는 나름 오랫동안 한복에 쪽진 머리를 하고 계셨다. 

그때 외가가 부천에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그곳은 꽤 시골이었다. 시골이야 나이 든 여성들이 한복에 쪽진 머리가 흔했으니 그걸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는데 문제는 할머니가 그다지 예쁜 스타일은 아니었다. 입도 크고, 코도 큰 그야말로 여장부 스타일이라 가끔 뵈면 어린 마음에도 놀라곤 했다. 물론 그건 할머니가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면 이내 가려지곤 했지만 그게 또 남의 눈도 가릴 만큼은 아니었으니 누가 할머니를 알게 되는 것이 싫었다. 어린아이의 눈도 눈 아니겠는가. 


할머니는 학교에 5분도 채 계시지 않았을 것이다. 물건만 담임 선생님께 바로 넘겨 드리고 가셨으니. 그런데 왜 내 얼굴이 화끈거리는 건지. 아마도 그때가 내가 위선을 처음으로 경험한 때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날 집에 돌아와 할머니한테 얼마나 미안했던지. 용서를 구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모른 척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가 떠오르면서 영화 속 지숙의 마음이 너무 이해가 가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사랑하면 신도 시샘을 한다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자신의 사랑으로 딸이 승승장구하고, 시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해 토끼 같은 손녀도 낳아 이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싶을 때 하필 딸이 췌장암에 걸린다. 처음엔 아무런 이유 없이 혼자 친정에 온 딸이 그저 반가울 뿐이었는데 사랑하면 직감은 더 예민해지는 법이다.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는 것도 수상하지만 결정적인 건 딸이 욕실에 들어간 사위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그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건, 그 후 지숙의 투병과 이를 간호하는 엄마를 통해 모성을 보여주려 했다면 그렇고 그런 뻔한 드라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제 보면 다시 못 볼 엄마를 만나고 기차에서 헤어지고 바로 딸의 장례식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딸을 먼저 보낸 엄마의 절절한 슬픔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본지 하룬가 이틀 후에 이태원 압사 사고를 뉴스를 통해 접했다. 처음에 그 보도가 참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나름 치안이 잘 되어 있다고 하는 나라. 밤을 낮 삼아 돌아다녀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은 몇안 되는 (아마도 거의 유일할지도 모르는) 나라에서 160명 가까운 사망자가 났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차라리 세월호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물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사람이 다니는 좁은 골목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압사 사고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다소 못 살고 후진 국가라면 이해할 것도 같다. 이런 선진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뉴스는 건조하라만큼 사고 경위와 사상자를 보도하고 있는데 눈에선 알 수 없는 눈물이 자꾸 흘렀다. 내가 이 정돈데 하루아침에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는 어떤 마음일까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내가 이런 소식을 접하려고 그 영화를 봤던 걸까? 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2, 30대의 피해가 가장 컸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런 생각이 전혀 도움은 안 된다는 걸 알지만, 하나 아니면 둘 낳는 시대에 그들의 부모는 어떤 자식에게서 이 슬픔을 위로받을 수 있을까. 그 자식을 가슴에 묻기까지 또 얼마나 가슴 쓰리고 참혹한 시간을 보내야 할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영화는, 엄마가 딸의 장례식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엄마의 일상은 이미 예전의 일상과 같지 않다. 이제까지의 일상은 사랑으로 충만한 일상이었다면 앞으로의 일상은 하늘나라에 간 딸을 만나기 위한 부서진 일상을 사는 것이다. 영화는 저 세상으로 간 딸에게로 가기 위한 첫날을 세는 것에서 끝이 난다. 

오늘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며칠에 해당하는 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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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11-04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보고 엄청 울었던 영화에요. 지금 일이 있어 시청에 왔더니 합동분향소가 있네요. 헌화했습니다. 많이들 찾으시네요. 하나의 사건을 두고도 보고 말하고 걱정하는 관점이 어찌나 제각각 다른지 놀랍고요. 그게 당연하겠지만요.

stella.K 2022-11-04 14:10   좋아요 1 | URL
역시 보셨군요.
전 의외로 담백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ㅠ
관점이 다르니까 할 얘기도 많은 거겠죠?
김혜숙 씨 연기가 참 인상적이더군요.

시청에 오셨군요.
그래도 슬픈중에 위로가 되는 건
이렇게 시민의 한 사람으로 알지도 못하지만 같이 슬퍼한다는 거겠죠.
현장에선 심폐소생술도 같이 했다고 그러고.
잘 하셨네요.^^

프레이야 2022-11-04 15:23   좋아요 0 | URL
아뇨 영화는 담백하고요. 이번 사건 사고를 두고 보는 초점과 하는 말들이 다양해요.

stella.K 2022-11-04 16:50   좋아요 0 | URL
이크, 제가 오독했네요. 제가 이렇습니다. ㅠ

바람돌이 2022-11-04 1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부님과 엄마의 대화가 재밌네요. 우리 옛날 어머님들 진짜 딱 저러셧을걸요.
자식을 먼저 보낸 슬픔은 어떻게 해도 극복이 안될거 같아요. 이태원사건 이후 계속 우울해서 무슨 말을 하기도 어려웠는데 아마도 제가 나이가 들어 희생자분들의 주 연령대가 우리집 애들 나이이다 보니 더 참담해지는듯 합니다.

stella.K 2022-11-04 16:57   좋아요 1 | URL
뭐 그만큼 딸을 사랑한다는 표현일텐데 재미있죠? 저는 이제 저의 엄마를 말리지 않습니다. 정말 이고 지지 못 할 때가 올 테니까. 대신 지난번처럼 정류장에 나가 있으려구요. 운동삼아서. ㅋ
맞아요. 다 비슷한 연령대 부모, 자식들이라 남의 일 같지가 않죠. 영화도 이런 식으로 연결이되고. 에고~ 그냥 한숨만 나오네요.ㅠ

라로 2022-11-04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를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뭐 그건 그렇고, 쭉 읽어 내려오면서 묵직하게 글을 쓰셔서 그런가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 생각은 못했는데 이태원 사고의 희생자들의 부모에겐
어쩌면 단 하나인 자식일수도 있겠군요.ㅠㅠ
자꾸 알아갈수록 참담한 마음입니다.

stella.K 2022-11-04 17:01   좋아요 0 | URL
자식이 열이 있어도 한 자식 없으면 다 마음 아픈거죠. 근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 죽어간 분들의 부모는 어떻게 사나 걱정이되더라구요. ㅠㅠ

페넬로페 2022-11-04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보면서 울 것 같아요.
자식을 먼저 보내는 상황은 언제나 슬프고 힘들잖아요.
세월호도, 이번 이태원 참사도 젊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안타까운 맘이 크지만 그들을 잃고 비통해 할 부모의 마음까지 생각되어 더 맘이 무겁네요^^

stella.K 2022-11-04 19:17   좋아요 1 | URL
맞아요. 이 영화 지금은 보지 마세요.
저는 사고 전에 봐서 그냥 담담하게 볼 수 있었는데
이런 일이 있고 보면 슬퍼질 것 같아요.
울고 싶을 때나 덤덤할 때 보세요.
2, 30 때면 한창 예쁘고 보기 좋을 땐데 피워보지도 못하고
죽어갔다는 게 넘 마음이 아프네요.
다신 이런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말이죠.ㅠ

2022-11-07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07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