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끄러운 달걀 두상에 곱상한 얼굴의 아이와 [아몬드]? 어려운 퍼즐이다. 제목과 표지의 조합만으로는 장르를 추정하기 까다롭다. 하지만, 100만권 판매 기념 특별판까지 나온 걸로 보아, 국민(청소년)소설인가 보다. 왜 유명하지? 호기심은 검색질을 부른다. 폭풍검색 결과 "100만"은 사설논술학원과 창비출판사의 합작 쾌거일까 싶을 정도로, [아몬드]는 초등 대상 논술학원마다 필독서로 올려 놓았다. 호기심은 더 커졌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면?


고작 3장 쯤 넘겼으려나, 벌써 7명이 죽어 나갔다. 6명은 '묻지마 칼부림'의 피해자 혹은 가해자로서 죽었고, 한 초등학생은 집단폭행 당해 '맞아' 죽었다. 모두 공개된 열린 공간, 길 위에서 일어난 살인이다.

어라? 초등필독도서가 뭐 이래? 도입부에서 7명이 죽어? 그것도 칼부림과 폭행으로? [아몬드]를 읽기 시작한지 몇 분 안 되어 당혹감을 넘어, 거부감까지 느낀다.



하지만 이내, 작가가 극한 상황들을 연달아 설정한 이유를 이해한다. 주인공 선윤재의 감정표현불능증Alexithymia을 극적으로 드러내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윤재는 자신은 물론 타인의 감정을 잘 파악하지도, 감정표현을 하지도 못한다. 상황에 맞는 감정대응법을 수학공식처럼 익혀서 사회생활을 시도하지만, 쉽지는 않다. 남들과 좀 다르면 "괴물" 소리 듣기 쉽상인 세상이니까.



윤재 어머니는 그런 아이를 안타까워하며, 아몬드를 먹인다. 주술적 효과라도 기대하듯, 아몬드를 먹으면 아몬드와 외형이 비슷하게 생긴 감정 관여하는 뇌 부위가 좋아질 거라고 믿으면서.....그렇게 윤재는 아몬드를 밥처럼 꼬박꼬박  먹는다.



손원평 작가는 제목을 왜 하필 아몬드로 지었을까? [아몬드]를 읽는 내내, 이 질문을 놓지 않았다. 작가는 이렇게 힌트를 주었다.


나에겐 아몬드가 있다.

당신에게도 있다.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거나

가장 저주하는 누군가도 그것을 가졌다.

아무도 그것을 느낄 수는 없다.

그저 그것이 있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아몬드 프롤로그



막연하게, 사랑의 온기 혹은 양분일 거라고 '아몬드'의 상징성을 추측한다. 도입부의 폭력성 때문에 [아몬드]에 편견이 생길 뻔 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도 '칼'과 '칼부림'은 등장한다. 피와 피해자도 등장한다. 그런 이유로, 초등학생 대상 논술학원에서 이 책을 필독도서 추천하고 교재 삼는 데 대해 껄끄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괴물"이라고 분류된 이(들)의 성장가능성과 변신의지, 교감과 소통을 통한 성장 등 작품 기저의 메시지가 마음에 든다.


사실 [아몬드] 간략 리뷰 남긴 이유는 2022년 12월 9일자로 검색되는 [아몬드] 저작권 침해 이슈 때문이다. 백희나 작가 마음 고생에 비하면 손원평 작가가 경험한 불쾌당혹감은 낮은 수위일지 모른다. 하지만, 남의 작품 허락없이 가져다 쓰는 행위에 느슨하게 낮은 수위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강력 대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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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2-12-12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몬드> 이런 책이었군요. 자주 본 책이라 궁금했는데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2-12-12 15:49   좋아요 1 | URL
고양이 라디오님,
반가우세요

조금 기다리면 라디오님의 ˝아바타2˝리뷰가 올라오겠지요? 저도 개봉만 기다립니다

아몬드는 하도 그동안 추천을 많이 받아서 기대치가 과도히 높았나봐요

손원평 작가 후속작 [튜브] 좋았어요^^

고양이라디오 2022-12-12 21:44   좋아요 0 | URL
아이맥스로 보고 싶은데 매진이네요ㅜ

저도 기대됩니다 아바타ㅎ

얄라알라 2022-12-12 23:38   좋아요 1 | URL
와....저도 고양이라디오님 댓글 보고 바로 예매사이트 들어가봤는데

후아!!! 놀랍네요!
 

2022년 가을은 조지 오웰, 에릭 아서 블레어에 입덕 시즌으로 기억될 예정. 대표작 [동물 농장]과 [1984]만으로는 부족해서, 그래픽노블 평전 [조지오웰]과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다시 읽다](김욱동, 2012)까지 읽었다. 영문학자 김욱동의 얇은 설명서는 조지 오웰 입덕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작가와 작품을 쉽게 풀어줄 뿐 아니라, 여러 출판사의 번역판 문장들을 대차비교 해준다. 예를 들어, "매너(혹은 메이너) 농장"으로 통했던 the Manor Farm" 의 제대로 된 번역은 "장원 莊園 농장"임을 명확히 한다.



김욱동은 또한, [동물 농장]을 정치풍자 우화가 아닌 생태주의적 관점의 "녹색 소설"(106쪽)로 읽어보라고 권한다.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 발전주의의 상징, 풍차. 다른 종의 생존과 번식 과정에 개입하여 (우유와 계란을) 슬쩍 슬쩍 취하기만 하는 인간, 소비만 할 뿐 내어놓을 줄 모르는 인간중심주의를 반성하며 읽어보라는 권고이다.

*

"녹색소설" 얘기가 나왔으니, 작품 구상 계기를 언급해야 겠다.

1889년 어느 날,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을 껴안고 울었던 게 과연 정신착란 때문이었을까? 김욱동은, 니체가 마부의 가혹한 채찍질에 당하는 말을 가여워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조지 오웰 역시 학대당하는 동물을 가엽게 생각했다. "저런 짐승들이 자신의 힘을 깨닫게만 된다면 우리(인간)은 그들을 통제할 힘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유산자가 노동자 계급을 착취하는 것과 똑같이 인간이 동물을 착취한다는 생각이 갑자기 뇌리에 스쳤다." 이것이 [동물 농장] 구상 계기였다. 하지만, 구상 후 6년이 지나서야, 조지 오웰에게는 집필에 몰두할 여유가 생겼다. 1943년 11월부터 44년 2월까지 넉 달 집중적으로 썼다고 한다. 탈고 이후, 조지 오웰은 출판사를 찾느라 고생 했는데 심지어 고국에서조차 책 내기가 어려웠다(영국 정보부의 압력으로...). [동물 농장]은 1945년 8월 17일에서야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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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11-14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이 자리에 있던 댓글은 삭제합니다. 좀 과했습니다.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내용은 김욱동 선생을 까는 거였는데, 까도 까는 정도가 문제지, 너무 깠습니다. 혹시 고소당하까봐서리......
^^;;;;

2022-11-14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15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Falstaff 2022-11-15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밀 답글을 썼는데, 제 글에 비밀답글이라 얄라님이 읽으실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ㅋㅋㅋ

페크pek0501 2022-11-27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물동장을 인상적으로 읽은 1인입니다. 기발한 소설이죠.
알라 님과 책이 겹치는 신기한 날, 오늘은... 그래서 좋은 날!!!
 
내 아버지의 집
파코 로카 지음, 강미란 옮김 / 우리나비 / 2017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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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지워진 기억] 읽은 후, 파코 로카 작품이라면 더 찾아 읽기로 맘 먹었고 바로 실행. 과장 없는 일상성, 친근한 에피소드와 정서, 열린 결말 그리고 잔잔한 감동 안겨주기가 작가의.특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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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지 못할 걸 알면서도 채우는 뷔페 접시처럼, 잠 잘 시간이 다가오는 데 눈에 들어오는 책은 죄다 읽고 싶은, 생체시계 거역의 마음은 뭘까? 게다가 포크질 순서도 무작위, 포크 타겟도 즉흥 변경. [1984]가 최초 타켓이었는데, 디스토피아 소설 양대산맥이라는 [멋진 신세계]로 맘이 바뀌었다. 다시 읽을 책을 바꿨다. 왠지 밤이 무한 연장 허용될 것 같은 탐욕스러운 착각 속에서 [튜브]로 다시 타겟을 바꿨다. 고전 읽기 전에 현대소설을 애피타이저 삼으려는 계산이었다.


**

얼마 전 읽은 [아몬드]는, 귀에서 남의 침 떨어질 만큼 숱하게 추천 받아왔으나 내게 큰 감동을 주지 못했다., 100만부 명성에 물음표 품었던 차였다. [아몬드]가 워낙 히트였던지라, 차기작은 전작만큼 뜨기 힘들겠다고도 추측했다. 하지만 [튜브]는 손원평 작가에게 죄송할만큼, 재미있었다. 작가가가 "누군가의 의뢰 혹은 주문에 기대"(270) 썼다는 [튜브]는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는 긴 응원편지였다. 제목이 [튜브]인 까닭과도 맞아 떨어진다.

 [튜브]는 주인공의 자살 시도 실패로 시작된다. 34쪽에서야 작가는 "이쯤에서 우리는 김성곤 안드레아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라며, 실패에 이골 난 중년 남자를 묘사한다. 가족에게는 메마르고 성미 더러운 남자, 거듭 실패해도 성찰보다는 "남 탓" 강도를 높이며 스스로 "점점 더 가망 없는 인간"(51)으로 끌어내리는 남자. 그 김성곤은, 자신의 12년 전 사진 속에서 해맑았던 옛 표정을 보고는 "변화"를 시도한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불수의근화된 "썩"소, 구부정한 등과 거북목을 몰아내고 "그 찬란했던 시절"로 돌아가는 시도 말이다. [튜브]는 [아몬드]에서처럼, 손원평 작가의 웃음 지뢰가 군데군데 터진다. 예를 들어, 구부정 자세부터 고쳐보려는 김성곤의 속내도 모르고, MZ세대 진석은 옛 사장님의 뻣뻣하고 부자연스러운 태도에서 조폭을 연상한다. 



작가는, "튜브"의 구원 메타포 만큼이나 독자에게 응원과 위로가 되는 문장도 김성곤의 독백으로 배치해놨다. 


이 자식은 불씨 하나가 없어. 아니 아예 없진 않은 것 같은데  그게 아직 켜지질 않았지... 진석은 켜지지 않은 성냥 같았다. 작은 불씨만 한번 탁 켜주면 밝게 빛을 뿜어낼 텐데 그 한방이 없는 아이였다. 그렇지. 성곤은 포기하듯 뇌까렸다. 우리 모두 그 한방이 없기에 다들 이렇게 평범하게,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 (102)



누군가 불씨를 켜주길 바라는 수동태 삶보다는 내 불씨, 너의 불씨, 서로 불어서 일으켜주는 "함께' 프로젝트가 이왕이면 좋겠다. 아마, 그런 의미에서 손원평 작가도 김성곤이 대성공을 거두게 된 사업을 '지푸라기 프로젝트"라 이름지었을지 모르겠다. 지푸라기 하나로는 개미도 못 살리지만, 숱한 지푸라기를 엮으면 사람 살리는 안전망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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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0-24 0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함께 프로젝트가 절실합니다^^ 튜브 한번 읽어보고싶네요.

얄라알라 2022-10-24 12:03   좋아요 1 | URL
[튜브] 다 읽고 나니, 리뷰가 쓰고 싶어져서 결국 [멋진 신세계] 손 못댔는데
제가 감정 이입을 많이 해서 그런가, [아몬드]보다 훨씬 몰입 잘 되었어요^^ 재밌다고 추천드리겠습니다. 화가님 ~

초원 2022-10-24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라공주여, 알라딘 서재에서 참여할 수 있는 <함께 프로젝트>는 뭐가 있는지 알려주셔요?.

얄라알라 2022-10-24 12:06   좋아요 0 | URL
이크, 초원님께서 이렇게 한 문장 짧지만 그냥 지나가기 어려운 의문문을 올려주시니, 머릿 속이 빠르게 움직이는데요...그러게요. <튜브>의 주인공도 온라인 기반 ˝지푸라기˝ 프로젝트를 상상하고 현실화했는데,
알라딘 온라인상에서도 뭔가 ˝함께 프로젝트˝를 도모할 수 있을까요? 아! 고민됩니다^^ 좋은 생각 있으시면 말씀해주시어요^ ^
 


스캇 펙이 저명한 정신과의사라는 것 외에는, 디테일한 사전 정보 없이 접해서 그랬을까? [거짓의 사람들] 읽기는 황톳길인 줄 알고 양말 벗었는데, 모래밭, 자갈밭을 지나야 끝나는 맨발걷기 여정과 같았다. 가뿐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늘어나자 점점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분명 스캇 펙은 서문에서 경고했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주위 사람들을 악인으로 여길 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랑으로 감싸라."(10)

[거짓의 사람들]이 위험한 책이라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책 읽는 내내 '악인'으로 생각하고 싶은 타인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악마의 얼굴을 외부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위험할까? 자기성찰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조급한 시도일 것이다.  "타인을 판단할 때는 신중히, 신중함은 자기 자신을 살피는 데부터 시작된다." 스캇 팩은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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