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izabeth Moon. 크리스마스. Going Solo. Moon. 강추위. 카페에서 외투 껴입기. 혼커피 혼독. The Speed of Dark. 2021 Top3 소설. 



2021년의 크리스마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크리스마스 특수를 누렸을 카페, 손님이 적어 공간이 휑하다. 오래 한자리 차지하기 미안해서, 3번이나 주문한다. 라떼에서 시작해서 아메리카노, 다시 카모마일을 마시도록 [어둠의 속도]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집중했는데도  500여 페이지를 읽는데, 꼬박 5시간이 걸렸다. 5시간 중 5 minutes은, 작가 엘리자베스 문(Elizabeth Moon 1945~)에게 마음 속 찬사를 보낸 시간이었을 것이다. 


[잔류 인구 Remnant Population]는 2주 전, 표지에 혹해서 집었다가 가슴 벅찬 채 마지막 장을 덮었던 소설이다. [어둠의 속도]는 내가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확실히 깨닫게 해 준 작품이다. "엘리자베스 문"을 좋아한다. 앞으로 더 많이 좋아할 것이다.  엘리자베스 문. 



Szymon Sokół/ CC BY_SA 3.0 



엘리자베스 문의 대표작, [어둠의 속도](2002)는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 버금가게 내 마음에 큰 진동을 일으켰다. 내가 읽고, 경청하고, 공부하는 근원의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세상 보는 시선을 알기 위함이다. 노력해왔지만, 벽이 있다. 그 벽에 올라서는 경험을 나는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작가로서 엘리자베스 문의 공명 능력은 마법적이다. 그녀는 [어둠의 속도]에서 주인공의 정신 세계로 들어가 이야기한다. 이 소설은 "비정상," "자폐증," "질병" 등의 라벨로 정체성을 덕지덕지 도배당한 청년 '루'를 주인공 삼아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루'는 자신을 '비정상'에 가둬두는 사회적 시선과 제도를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할 수 있고, 자기 안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는 인물이다. 게다가 후각, 청각 등 지각능력뿐 아니라 인지력까지 천재적이다.



하지만 그를 고용한 회사는 '루'를 비롯한 소위 자폐증 직원들을 채굴할 자원으로 보기 때문에 이들의 뇌를 개조하는 실험을 제안한다. 독자는 루가 "나는 나 자신이기를 좋아합니다. 자폐증은 나 자신의 한 부분입니다. 전부가 아닙니다."라며 "장애"를 한 인격을 판단하는 단일기준 삼는 세상의 시선을 반격할 때, 루가 그 수술을 받지 않기를 기대한다. 독자는 루가 감각하는 세상의 다채로움과 열린 가능성에 부러움마저 느낀다. 질병의 증세로 폄하하기 이전에, 그건 소중한 자질이니까. 하지만 끊임없이 '넌 달라'의  '경계' 밖으로 내몰려 온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루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엘리자베스 문의 경이로운 공감, 공명 능력에 감탄했던 나는 소설의 부록으로 실린 '인터뷰'를 읽고 나서야 이해한다. 아기를 입양해서 18년 키워온 어머니로서, 작가는 (소설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자폐인) 자신의 아이를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앎/알지 못함/안다는 것을 알지 못함" "어둠/빛" 등의 짝패 아닌 짝패도 사실 작가가 아이와 실제 나눴던 일상 대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또한 Moon은, (내가 그토록 존경하는) 올리버 색스의 저작을 탐독하며 [어둠의 속도]를 준비했다. '인터뷰'를 읽고 나니, 내가 왜 [어둠의 속도]에 열광하는지가 더 분명해졌다. 나 아닌 사람(들)의 집에 조심스레 노크하되, 발자국 남기지 않으려는 절제된 존중심. 상대를 바꾸(고 싶을지라도)려기 보다는 먼저 알려는 노력. 



책은 사람들이 생각해 낸 질문에 답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답하지 않았던 질문을 생각했다. 나는 늘, 아무도 한 적이 없으니 내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쩌면 다른 누구도 생각해 낸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둠이 먼저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무지의 심해에 처음으로 닿은 빛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질문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332)



*본문 203쪽 세번째 줄, '싶죠'를 '시죠'로 잘못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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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2-26 16: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커피를 3번이나 주문할 정도로 재미있게 읽으셨나보네요 ㅋ 역시 책은 카페에서 읽어야 잘읽히더라구요 ^^ 리뷰를 보니 완전 궁금해집니다~!!

얄라알라 2021-12-27 22:11   좋아요 1 | URL
동감합니다, 새파랑님!!! 카페에서 읽으면 냉장고 문도 덜 열고, 카톡 확인도 덜 하고~.
다른 분들 대화는 백색 소음 삼기 딱 좋고...

고양이라디오 2021-12-27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을 거 같아요^^ 흥미로운 책이네요ㅎ

얄라알라 2021-12-27 22:12   좋아요 1 | URL
저는 어쩌면 작가가 이렇게 자폐인 주인공 1인칭 시점으로 잘 이끌어갈 수 있나....책 읽는 내내 계속 경탄했거든요. 다 읽고 인터뷰를 읽고 나니, 그제서야 조금 의문이 풀렸습니다. 엘리자베스 문, 시간 여유 나실 때 접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멋진 작품이예요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사이토 고헤이, 2021)에 폭 빠져서 사이토 고헤이의 세상 읽는 방식을 흉내내보고 싶다. 그는 자본주의가 내부의 모순을 외재화하는 방식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기술적 전가, 공간적 전가, 그리고 시간적 전가


이 중, 시간적 전가는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자면 "대홍수여, 내가 죽은 뒤에 와라!"의 태도이다. 사이토 코헤이는  "현재가 번영하기 위해 미래를 희생시키는" (47) 시간적 전가로 인해 "미래 세대는 자신들이 배출하지도 않은 이산화탄소 때문에 고통을 겪게 될(47)" 것이라 한다. 








나 역시 환경 이슈를 책, 기사, 영상물로 매일 접하지만 "나중에 밀려올 해일"로 미뤄두기 때문에 태연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다가 오늘 우연히 [공포의 먼지 폭풍]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내게 '먼지폭풍'이라면 영화 [Interstellar]에서 스크린을 휘덮던 스펙테클적 재앙일 뿐이었다. 실제 1934년 5월, 미 남부 평원을 괴롭히던 먼지폭풍이 동부해안 지역까지 날아왔을 때, <뉴욕타임즈>에선 "주부들을 바쁘게 만들었다" 수준으로 논평했다 한다. 



하지만, 이 폭풍의 파괴력과 후폭풍은 어마어마해서 작물과 가축뿐 아니라, 사람들까지 아프거나 죽어나갔다. 먼지폭풍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Okies라며 따돌림 당했다고 한다. 삶의 터전과 재산을 잃은 것만도 서러운데, 기후 난민은 이등 시민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저자 돈 브라운이 시종일관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먼지폭풍"을 자연재해라 하지만, 인간이 초래한 재앙이다. WW1의 시작과 함께 급증한 밀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땅을 갈아 엎어 밀밭을 만들고 가축들을 방목하면서 대초원의 풀들이 사라졌던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람들의 몫이다. 1930년대 문제일 뿐이라고? 2020년대 농업이 소진하는 대수층의 물은 머잖아 고갈될 것이라 한다. 불길하다. 또 다른 '먼지폭풍'이 등장 준비 중일지도 모르니.....






 [공포의 먼지 폭풍]처럼 어린이 대상의 환경 교육에서 환경 문제를 미래형 시제가 아닌 현재형 혹은 과거 시제로 전달하는 방식이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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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1-12-24 0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무서워요….ㅠㅠ

얄라알라 2021-12-24 11:47   좋아요 0 | URL
이 글 쓰면서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봤는데, 공포감이!!
그런데 동부 해안지역에서는 ‘주부들 (먼지 터는 일) 귀찮게 일으키는‘ 수준으로 경험했기에 같은 재앙에 대해서도 온도 차이가 있나봐요.

중국의 황사도 폭풍은 아니어도 규모가 엄청나겠죠? 찾아볼수록 걱정만 차곡차곡. 모래가 차곡차곡...

얄라알라 2021-12-24 11:48   좋아요 0 | URL
난티나무님^^ 해피 크리스마스, 따뜻하게 보내세요. 저는 혼까페 혼커피^^
난티나무님께서는 가족분들과 해피해피~^^

han22598 2021-12-24 0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실제로..dust storm 이 일어나는 곳이 있습니다....ㅠㅠ

얄라알라 2021-12-24 11:45   좋아요 0 | URL
han님, 제가 제 글 다시 들어와서 보니 dust ball이라고 적었네요.
실존적인 공포를 느껴보지 못한 방관자적 태도가 저에게 있나봐요. storm은 무시무시한 거대일텐데, ball이라고 적은 제 무의식은 무엇인지..


han님, 거대한 모래폭풍 겪으실 때, 온갖 생각 다 드셨겠어요..
저는 왜 1930년대 모래 폭풍 피해 CA로 이주한 사람들을 같은 미국인끼리 그리 차별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더라고요. 국경 밖에서 온 이민자도 아니고...

페크pek0501 2021-12-24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심각한 문제를 다들 알지만 미루고 산다는 느낌 들어요.
환경 문제를 다룬 녹색평론 읽고 멍했어요.

고양이라디오 2021-12-24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라님 메리스크리스마스입니다^^

정말 환경문제는 심각한 거 같아요. 그런데 쉽게 체감이 안되서ㅠㅠ

얄라알라 2021-12-26 13:24   좋아요 0 | URL
메리 크리스마스 고양이라디오님!

저는 어제 <코로나 이후의 세상 + 세계> 두 권 들고 까페 나갔다가 <어둠의 속도>만 읽고 왔네요^^

좋은 일요일 보내시길.

2021-12-25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26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텀블러에 음료를 마시면

에코백을 들면

친환경 정책에 투표하면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을 거라 믿는가?


출판사에서 뽑은 홍보문구가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판매지수 높이는 데 분명 기여했을 것이다. 커피 생두 값이 2~3배 오르든 말든 모닝커피로 하루 시작할 터이고, 친환경 라벨 붙은 제품 광클릭 결제하고, 에코백 십수 개 구비했는데 '인류세'의 지속을 고민한다고? 당신? 질문이 가시처럼 내 허영심에 꽂혔다. 


데믹 훨씬 전 경험이다. 친환경 유통업체에 주문한 유기농 상추 한 봉지가 개별 포장되어 왔다. 상추 무게 50배쯤 나갈 종이 상자 안에, 옥수수 재활용 완충제로 '방탄' 포장된 상추 한 봉지, 얌전히 앉아 있었다. 아연실색했다. 내가 무슨 짓을 했지? 그날 이후, 나는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한다. 플라스틱 과포장 제품은 내려놓는 경우가 많다. 고객센터마다 과포장 개선을 요구하는 호소문을 남긴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겠지. 지구가 뜨거워지는 만큼, 소비할 제품은 차고 넘치고, 소비욕구는 더 뜨겁게 달구워진다. 체념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가 내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사이토 고헤이는 Kohei Saito '에코,' '녹색,' '그린'의 수식어로 위장한 선진국의 소비 패턴 바꾸기만으로는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GS(글로벌 사우스)를 쥐어 짜내 희생시켜서야 가능한 '제국적 생활양식Imperiale Lebensweise'을 누리면서도, 기후위기를 막겠다는 주장은 현실도피적 위장이라고 맹 비난한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착한 소비, 윤리적 소비' 녹색 혁명green revolution' 그린 뉴딜 따위는 모조리 그린 워싱 green washing이다.  지구공학geoengineering의 최첨단 기술이나 자본주의의 탈물질화로 기후 위기를 막겠다고 어벤져스가 움직인다 해도, 그전에 인류세부터 끝난다는 전망이다.  


하지만, 기술이나 정책의 비전문가인 대중으로서는 '(나 한사람이라도) 에코백 쓰고, 텀블러 들고 다니면기후위기 브레이크 밟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지' 착각하게 되는 현실이다. 기후위기의 큰 그림을 볼 수 없는 데다가, 그 그림마저 그린 워싱으로 덧칠되어 우린 눈을 가리니까. 예를 들어, 선진국에서는 ICT 산업과 서비스 산업이 발달하면서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를 향해간다고 장미빛 전망 보이지만, 실상 선진국은 여전히 GS의 천연자원을 채굴함으로써 재료발자국이나 키우고 있다. (2장 "기후 케인즈주의의 한계" 참조)


이런 극단적인 암울 주장에 우리는 이미 익숙하다.  이미 임계점 코 앞이다. 늦었다... 


하지만, 사이토 고헤이는 젊은 학자이다. 마르크스 전문가로서 비전도 분명하다. 인류가 곧 멸종하리라는 암울한 경고를 하려고 [지속 불가능한 자본주의]를 쓰지 않았다. 사이토 고헤이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지구적 차원의 "탈성장 코뮤니즘"으로 대전환한다면 희망이 있다고 처방한다.  



탈성장 코뮤니즘? '탈성장'과 '코뮤니즘'은 녹색과 빨간색, 대치관계 아닌가? 의문 품는 독자에게는 사이토 고헤이는 맑스 전문가로서 촘촘히 대답한다. late Marx는 [자본론]을 썼던 Marx와는 사뭇 달라졌다고. 유럽 중심주의, 성장중심주의에서 벗어나 GS, 생태문제에 눈을 돌렸다고. 그래서 우리가 late Marx에게서, 코뮤니즘에서 기후위기를 타파할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사이토 코헤이가 말하는  " 세계적인 대전환 (237)"은, "자본주의 극복민주주의 쇄신사회 탈탄소화라는 목적들이 한데 모이는 삼위일체 프로젝트(352)"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해법과, 2021년 시점에도 진행 중인 예시는 직접 책에서 찾아보기를. 



10페이지도 넘게 메모하며 읽었지만, 리뷰가 미완성이다. 2022년 12월에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리뷰를 다시 쓰겠다고 약속하며. 이번 주는 사이토 코헤이 교수의 동영상 강의 탐색 주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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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24 1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사랑 님이 올려 주시는 책들
장바구니 속에 차곡, 차곡,
건강, 행복 가득 북사랑님
🎄 ℳ𝒶𝓇𝓇𝓎 𝒞𝓇𝒾𝓈𝓉𝓂𝒶𝓈 🎅🏻
。゚゚・。・゚゚。
゚。  。゚
 ゚・。・゚
⠀()_/)
⠀(。ˆ꒳ˆ)⠀
ଫ/⌒づ🎁

얄라알라 2021-12-24 11:27   좋아요 1 | URL
감솨합니다~~~ 저는 책보다, scott님 올려주신 와인이 더 좋아요. 적어도 12월 24일에는 !

scott님처럼 멋진 인사를 드리지는 못하지만, 마음을 담아 메리 크리스마스
 


   




12월 6일부터 시행 중인 "백신 패스"를,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어른사람과 대화 기회가 생길 때마다 화두로 꺼냈지만, 번번이 대화로 진행하지 못했다. 대부분은 에둘러 차단했지만, 화내려는 사람도 있었다. 팬데믹 장기화의 시대, 백신 접종은 단지 개인의 안녕뿐 아니라 시민의 의무와 권리, 그리고 국가가 복잡하게 얽힌 배선이기도 하다. 독일의 철학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Richard David Precht)의 표현대로 코로나는 우리를 "타인과 의학적 운명 공동체"(15)로 엮어 놓았다. 프레히트는 불확실성과 예외성이 증폭된 코로나 시대야말로, 사회구성원의 입장과 태도가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전제 아래, 다음의 화두를 던진다. 


  • 국민은 국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 이와 관련해 코로나 사태는 현재의 사회적 상태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의무란 무엇인가?]는 위 질문들을 정치철학자의 관점으로 분석하고, 비판하고, 제언까지 하는 프레히트의 최신작이다.



© Raimond Spekking / CC BY-SA 4.0 (via Wikimedia Commons)



얇아서 금세 읽을 거라 생각했지만, 반쪽짜리 이해력을 보충하고자 [의무란 무엇인가?]를 깨알 메모하며 읽고 관련 도서도 찾았다. 칸트, 벤담, 키케로, 푸코, 토크빌 등의 인용 파트가 어려워서 이해력이 반토막 나기도 했지만, 프레히트가 방역 비협조자에 보이는 모멸적 태도를 완전히 수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두 번 읽었다. 본문에서 프레히트가 코로나 방역에 덜(혹은 안) 협조하는 국민들을 표현하는 용어들을 찾아보았다. 다음과 같다. 


  • 반항몰이해, 트집
  • 이기주의자연대파괴자
  • 스스로 핍박 받는 레지스탕스 혹은 영웅이라 착각
  • 폭력 수반한 음모론자 - 5G 통신탑 파괴
  • "분노한 소수의 바보들(34)"
  • 국가를 불복종 대상 삼아 저항. 저항할 대상도 제대로 모르고 저항하면 이는 바보 같은 짓. 
  • "근거 없는 의심에 기반(101)"
  • "국가로부터 좋은 보살핌을 받는 시민들이 오히려 성을 내며 소아병적으로 반항하고고의로 공익의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 (109)



위에 나열한 국민의 속성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탈도덕화"인 셈이다. 프레히트는 의무를 다하지 않으며 권리주장 하는 국민을 이해할 의향이 전혀 없다. 비판의 수위를 높인다. 당신들은 국가를 적 삼아 음모론이나 퍼뜨리고, 방역 협조도 안 하고 세금은 내기 싫어하면서 왜 경찰서, 소방서, 공공병원, 무상공교육, 수도와 전기를 당연한 권리인 양 누리고 사느냐고 조롱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예멘이나 아프가니스탄, 남수단, 소말리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같은 나라가 천국"(108)이라면서. 


프레히트는 시민들의 (파렴치한??) 탈도덕화가, 이익추구를 최우선시하는 터보 자본주의와 관련된다고 분석한다. 즉 사람들이 "국가를 서비스 제공자로 보기 시작하고, 자기 자신은 언제나 최상의 서비스가 주어지기만 바라는 고객 또는 소비자"(108) 행세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인간의 내면, 정신세계, 인간의 공동체에 스며든 결과라는 것이다. 



프레히트가 보기에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이기심은 민주적 시민의식과 충돌한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민주적 시민의식의 생성과 발현을 저해한다. "성과 사회를 대체한 이익 우선 사회는 성실, 공정, 신뢰성 같은 시민 계급의 중심 가치를 비웃는다. (132)" 프레히트는 독일 사회에 제안했다. 자발적으로 안 되면, 강제로 연습이라도 시키자고. 그는 "사회적 의무 복무 통해서 시민 문화와 새로운 사회계약의 실천을 연습" (147) 시킬 수 있다고 본다. 시민 참여와 봉사 등 사회적 의무복무를 제도화하여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내면화하고 실천하라는 제안으로 나는 이해했다. 



정치도, 철학도, 정치철학이라는 학문도 모르는 독자로서 나는 이 대목에서 이해력 반토막 났다. 프레히트에게 국가는 증류수처럼 불순물 없는, 터보 자본주의의 파쇄력 영향을 받지 않은 신성영역인가?  물론 프레히트의 표현처럼  코로나 시대 국가(독일)의 방역정책이 "연대적 생명 정치의 의무를 다하는 일"(54)이자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국가가 '적절성의 원칙'을 지켜 '필수적인 조치'를 수행하는지 궁금해하거나 딴죽 거는 시민의 행위도 '소아병적 반항'인가? 통치에 의문을 품는 시민은,  '탈연대, 탈의무, 탈도덕''의 이기적 연대파괴자로 비약되는가? 만약 국가가 당장의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에 전력투구하면서 기후위기 문제를 뒤편으로 던져두었을 때, 딴죽을 거는 방편으로 비협조하는 시민이 있다면 그는 이기적 연대파괴자인가?(내가 프레히트를 오해했는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의무란 무엇인가?]를 읽고, 국가, 국민의 의무와 권리에 대한 생각이 선명해진 부분도 있지만 혼란스러워진 부분도 있었다. 프레히트야 말로, 자본주의가 조장하는 이기심과 탈연대를  진정한 적(?)으로 제시하면서 그 극복을 위해 결국 국가에 과의존(?)하지 않는가? 한국 사회 병역의무처럼, 독일 사회 정년퇴직한 은퇴자들에게 '의무적 사회 복무'를 수행시킴으로써 시민으로서 연대의식과 소속감을 키우자는 제안은 굉장히 국가 의존적 방편이 아닌가? 국가의 힘을 덜 빌고, 자본주의의 파쇄력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의무란 무엇인가?]  읽고 나서도 개운하지 않아서......
오늘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를 종일 공부했다! 1987년생 사이토 고헤이!!!!!!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진보적 저술에 주는 '도이처 기념상' 역대 최연소 수상자이다! He deserves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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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0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20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20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21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23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거서 2021-12-21 19: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읽었는데 심봉사가 한쪽 눈을 먼저 뜬 기분! 실눈으로… ㅋㅋㅋ
저도 공부하고 있어요! ^^

얄라알라 2021-12-20 22:51   좋아요 2 | URL
오거서님, 저도 실은 오늘 종일 제 책상에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빨간 표지 보이게 해놨어요.
저는 자본론 발췌발췌 읽고 기억도 못하는데, 사이토 고헤이는 마르크스가 남긴 독서 일기며 작은 단서들까지 탐정처럼 훑고 읽으며, 어마어마한 공부력을 감추지 못하네요. 이런 책은 한 두 번 읽어야 정리가 될 것 같아서 오늘 밤 다시 2차 리딩 도전하려합니다^^

오거서님께서도 읽었다고 하시니 같이 공부하는 기분이라 좋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1-12-21 18:33   좋아요 2 | URL
오거서님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말씀하시는 거죠? 민주주의라고 쓰셔서ㅎ

오거서님과 얄라님이 좋다고 하니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오거서 2021-12-21 19:30   좋아요 2 | URL
덕분에 오기를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북사랑님이 핵심을 짚어주셨고요,
이 책 말고도 자본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책들이 최근에 많아지고 있는데 특히 이 책은 마르크스를 다시 보게끔 해주더라구요. 마르크스를 잘 몰랐다는 깨달음도요. 저자의 쉬운 설명 덕분에 저한테 공부 의지가 생겼어요. ^^

고양이라디오 2021-12-23 15:46   좋아요 3 | URL
오오!!! 오거서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욱 보고 싶어요! 새해에 꼭 읽어보겠습니다^^

오거서 2021-12-23 19:40   좋아요 3 | URL
고양이라디오님 새해 목표 중 하나를 알게 되었어요. 비밀을 알게 된 기쁨 ㅎㅎㅎ
완독을 응원합니다! ^^;
 

   

반다나 시바, 제러드 다이아몬드, 닉 보스트룸, 놈 촘스키, 장 지글러, 스티븐 핑커, 지그문트 바우만, 리베카 솔닛.....



도대체 안희경은 누구? 다양한 분야 초고수들과 대화가 술술 통할 만큼 박학다식 + 인맥이 글로벌 거미줄?


인터뷰어 "안희경"이 궁금해서 [나의 질문](안희경, 2021)도 읽었고, 랜선 북토크를 통해 작가의 목소리도 들었다. 코로나 시대 '돌밥돌밥' 자식들을 챙기는 엄마이면서 일 욕심이 대단한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 분,  코로나 시대에도 쉬지 않았다. 7인의 인터뷰를 진행했고, [내일의 세계: 지금 여기 인류 문명의 10년 생존 전략을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엮어냈다. 



[2021. 05. 20. 제러드 다이아몬드]


내 빈약한 어휘의 체이지만, 기억하기 쉽게 체에 거른다. 


  •  우주산업에 투입할 자본을, 당장 지구 당면 문제해결을 위해 풀어야 한다.
  •  (개발도상국 포함) 전세계 백신 접종은 공공선의 실천이 아니라, 나 자신, 내 집단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  지구인이여! 코로나19보다 더 심각한 지구적인 문제 해결의 시스템을 위해 힘을 모으라. 그것은 기후위기이다! 
  •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인의 방역 협조 태도는 이들의 공동체 지향community-Oriented 문화를 드러낸다. 이는, 개인주의적이 밀농사와 대비하여 공동체적인 쌀 농사와 관련된다. 
  •  4가지 긴요한 문제: 핵무기 위험, 기후변화 위기, 자원고갈 문제, 불평등
  • "실제로 미국은 3천만 명의 나라다. 미국은 3억 명을 내다 버렸다. 엄청난 불평등이 존재한다. 한국의 불평등 보다 훨씬 심대한 불평등이 미국 안에 있다." (44) 
  • "30년 후에는 모든 것이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됩니다....30년 안에 풀어야 합니다. 만약 2050년까지 이 문제들을 풀지 못한다면, 죄송합니다. 우리는 너무 늦을 겁니다." (50)





[2021. 07.02. 케이트 레이워스]

  • "도넛(안전지대) 모양의 경제 모델_ 그 누구도 도넛 가운데 구멍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사회적 안정망으로 지켜내는 목표" (61)
  • 암스테르담에서 도넛 경제학 모델을 시 정책에 도입, "순환경제" 현실화하겠다는 선언. 2020년. 
  • 덴만크의 유리병 재활용률은 95%. 법으로 플라스틱 규제. 
  • "사회적, 생태적, 지역적 지구적 렌즈로 우리 주변을 살피자." (63)
  • 한국 대통령 후보에게서 기후 비상사태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고 안희경이 한탄하자, 케이트 레이워스의 응답은 "정말인가요? 당장 우리에게 닥친 긴급한 사안이잖아요."(78)
  • 소유하지 않는 소비: 과연 환경을 위해 전기차를 구매하는 '생각 있는 소비자'가 되어야 할까? 아예 자동차 소유 자체를 포기할까?
  • 정부의 중대한 역할: "기후 위기 돌파할 방향성 설정 같은 거대 규모 프로젝트나 에너지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는 정부 아니면 할 수 없다." (69) "조세와 규제, 구조를 다시 설계하고, 사회에 변화를 가져오는 투자를 늘리고 공공재의 역동성을 강화할 능력은 오로지 국가만 갖고 있다." (70)
  •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governance) 기업의 그린 워싱?




[2021. 07.05. 다니엘 코엔]


  • 현 팬데믹 위기로 디지털 자본주의로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 "디지털 경제는 서비스 경제의 위기에 대한 응답.
  • 디지털 시대, 'HIomo digitalis' 배출. 
  • 국가의 역할: 디지털 자본주의, 자본의 힘 길들이는 데 국가가 나서야.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본소득에 찬성한다



[2021. 06.22 조한혜정 오프라인 직접 인터뷰] 


※ [선망국의 시간]을 무척 불쾌하게 읽었던지라, 촉 세우고 인터뷰를 읽었다.

  • 조한혜정 역시 [선망국의 시간]을 의식해서였을까, 이렇게 말했다. "창창한 아이들 앞에서 계속 망한다라고 말하면 정말 폭력이죠. 그래서 '기쁨의 실천'이라든가 다른 표현으로 시대를 이야기하려 애 쓰는데 잘 안 되네요 (176)"
  • 조한혜정의 인터뷰는 다른 6인의 인터뷰이와 명명백백 차별되게 저명 인사의 인용과 추상적 개념어가 많이 올라온다. 우선 인터뷰어 안희경이 조한혜정 인터뷰의 키워드로 제시한 '파상력'은 사회학자 김흥중에게서 나왔다. 그 외에도, 도나 헤러웨이를 인용하고, 본인이 1992년 썼던 [탈식민지 시대 지식이늬 글읽기와 삶읽기]를 위시하여 포스트 콜로니얼 논의, 에드워드 사이드를 언급한다.
  • 다른 책에서도 이 부분 읽어본 것 같은데 조한혜정은 자기 자신을 에드워드 사이드 반열에 올리며 공통분모를 이렇게 말한다. "저(조한혜정)는 어릴적 세종문화회관에서 현대무용가 호세 리몽의 공연을 보기도 했고, 학창 시절에 신촌을 오가며 근대적인 도시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다 미국 중서부에 있는 대학으로 유학을 갔는데, 그 동네가 왜 그렇게 촌스럽게 느껴지던지요....우리(한국)이 항상 후진국이라 생각했는데, 가보니까 다른 거예요. 사이드나 저(조한혜정이)나 코스모폴리턴으로 성장했기에 격차를 느낀 겁니다." (180)



친환경 삶을 실천하는 생활인이자, 코로나 시대 돌밥돌밥을 수행하는 엄마로서의 안희경 작가를 좋아한다. 안희경 안의 불기운을 태평양 건너서도 느꼈고 경탄하기에, 안희경이 인터뷰이 목록을 계속 늘리며 좋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해주기 응원한다. 하지만, 안희경의 신문 연재 기사나 단행본들을 몇권 째 읽다보니 솔직히, 진부하게 느껴진다. 책 구성이나 인터뷰 형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터뷰가 깊이 들어가서 '핵'을 치고 나와야하는데, 인포먼트와의 교감없이(물론 안희경 인터뷰어는 일부 분들과는 초면 아닌 구면으로 인터뷰 진행했다), 나열식 질문들을 제한 시간 안에 던지는 방식으로는 핵이 드러나지 않는다. 



아무리 세계 유명인사들이 알려주는, 위기의 지구 구하는 해법이라한들 위로부터의 진단, 처방, 예측, 제시 제시, 제시...... 계속 듣다보면 에너지 쏠린다. 그 밥이 그밥. 언어 성찬으로 느껴진다.



 안희경 선생의 놀라운 공감능력과 친화력, 박학다식함의 장점을 살려서 다음 번엔 소위 보통 사람들 인터뷰를 책에 담아보면 어떠할까?  겉만 톡톡 건드리는 인터뷰를 나열하는 책보다는, 안희경 선생 주변 사람들 핵의 핵을 담아 밀도 높인 인터뷰집을 준비해주기를 팬으로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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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12-19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희경 님의 책을 읽으면 공부가 많이 되겠는걸요. 검색해 볼게요.^^

얄라알라 2021-12-19 16:31   좋아요 1 | URL
^^ 예, 페크님, 안희경 작가님 매력적인 분이시더라고요. 인터뷰어로 자신을 덜 드러내셨을 때, 또 에세이에서 본격 드러냈을 때 모두..

저는 여러 인터뷰 중 특히, 반다나 시바와 제러드 다이아몬드 인터뷰가 콕콕 와 박혀서 정기적으로 다시 찾아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