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예술 -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침묵을 배우다
알랭 코르뱅 지음, 문신원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침묵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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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렵다. 장르 불문, 2017년 상반기 읽은 모든 책 중에서 <침묵의 예술> 읽기가 가장 어려웠다. 속된 말로, 딸렸다. 이해력과 배경지식뿐 아니라 '느림'을 다른 차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시간감각의 면에서 다 딸렸다. 첫 페이지부터 다시 읽기를 수 차례. 읽을 때마다 문장 문장이 처음 만나듯 새롭다니 '무식함'을 자학하며 읽었다. 프랑스 역사가, 특히 미시사(micro-history)의 대가 알랭 코르뱅의 고도로 세련된 문체는 암호같다 못해 몽환적인 느낌까지 준다. 프루스트, 릴케, 위고, 졸라, 발자크 등의 문학가부터 마그리트나 루소, 반 고흐 등 화가와 파스칼을 위시한 철학자와 엘리아스 등 역사학자 등 언급하는 인물만도 수십 명이다. '침묵'이라는 절대 화두 아래 양과 질에서 압도적인 자료를 샅샅이 뒤져 찾고 수 놓아 문학작품처럼 엮어내다니, 80대 노학자의 높은 경지가 느껴진다.

<침묵의 예술>에서의 '침묵'은, 층간 소음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가벼운 범주가 아니다. 사막이나 바다, 건축물과 연관되는 공간적 침묵,  유사성 면에서 침묵과 닮았다는 아이들처럼 존재의 침묵, 인간관계로부터의 침묵, 성스러움을 희구하는 이들의 신과의 침묵소통, 체화된 예의로서의 몸의 침묵 (강연 중에 방귀를 뀐다든지 트름 한다든지를 삼가게 하는 몸단속), 죽음이라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의 고요 등 범주가 넓고도 깊다.

*

프랑스 역사가가 생의 성숙기에서 이처럼 깊고 넓게 침묵을 성찰한 이유는 무엇일까? 알랭 코르뱅은 "이 책에서 과거의 침묵을 환기하는 이유는 침묵의 탐색, 밀도, 준수, 전략, 풍요로움과 더불어 말의 힘에 있는 양상이 침묵하는 방법, 즉 나 자신이 되는 방법을 다시 배울 수 있게 해주기 때문 (9)"이라고 직접 알려준다. 알랭 코르뱅은 "끊이지 않는 접속으로 개개인을 현혹해 침묵을 두렵게 하는 하이퍼미디어(9)" 를 현대인이 침묵을 두려워하거나 과소평가하게 된 요인으로 보는 것 같다. 위 문장을 읽는데 갑자기, 18대 박근혜 정부는 사이버컬처를 타겟 산업으로 권장하면서 정작 '종이책 안 읽는 대통령과 정부였다'는 평이 겹쳐 떠올랐다. 야단스러운 속도감은 되려 침묵의 느림과 밀도가 갖는 힘에 밀리기도 한다. 20170420_185938_resized.jpg

 
미시사 중에서도, 시간, 공간, 소리, 냄새 등 감각적인 주제를 다루는 데 탁월하여 '감각과 감수성 역사 연구의 선구자'로 불린다는 알랭 코르뱅은 역사가답게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침묵의 의미와 그 변화 양상을 살핀다. 개인적으로 "침묵에도 전략이 필요하다"는 소제목의 6장이 가장 흥미로웠다. 침묵보다 말이 위험하다는 현대적 확신의 뿌리를 저자는 궁정 사회의 모델에서 찾는데 엘리아스(Norbert Elias)를 빌어왔다. 풍습의 문명화가 "규범의 내면화와 관련된 침묵 명령의 무게가 늘어(103)"가는 모습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즉, 교양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말의 침묵뿐아니라 '기관들의 침묵(103)'으로 압축되는 정숙한 몸가짐(성적 쾌락의 소리를 삼감, 트림과 방귀를 삼감)이 점차 요구되어 왔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유럽의 맥락일 테인데,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의 침묵의 의미 변화와 현재는 어떠할까? 한국에서는 어떤 학자가 이 주제를 다뤄왔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
세대나 성별, 연령 등 여러 변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2017년 한국 사회에서는 즉각적인 반응, 즉각적인 소통이 현대적 매너로 여겨지는 듯 하다. 단체 카톡방에서 '묵묵부답 = 예의 없음'으로,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 점유를 '스스로 왕따 만들기' 테크닉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으니. 느리게 반응하고 때로는 반응으로서의 말을 삼가고,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는 이들을 유별난 존재 취급하기도 한다. 침묵을 통해 개인으로서의 내가 성장하고, 타자와 더 깊이 관계 맺는 그 힘을 <침묵의 예술>을 읽으며 꿈꿔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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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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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훈 공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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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커피가 안 받나 보다. 고작 두 잔 마셨는데, 새벽 5시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김훈의 아홉번째 장편 소설, 나에게는 처음 읽은 김훈의 소설인 <공터에서>를 스탠드 하나 켜놓고 다 읽었다.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김훈 작가의 문장 그 진지한 흡인력에 '아, 소설가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겠구나. 한국 문학의 수호신이라는 별명이 거저 얻어진 게 아니겠구나' 싶었다.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리뷰를 뒤져보니, 김훈 작가님 못지 않은 문장력을 뽐내는 리뷰들이 많았다. 그 작가에 그 팬심이라할까. 고수들끼리 통하는 '소설과와 독자'의 핑퐁 같아서 흐뭇했다.

난, 아주 우울할 때 <공터에서>를 읽어서, 감상도 핑퐁처럼 가벼울 수 없다. 정신적 피로감으로 기운이 쪽 빠져서 문장을 다듬기도 어렵다.

*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공터에서>의 표지 한 쪽에 그려진 말이 눈에 들어왔다. 김훈의 의도대로라면 늘씬하고 힘 넘치는 경마장 말이 아니라 비루한 말이어야 했다. 김훈이 한국 현대사의 흐름이라는 배에 태운 주인공들은 '마 馬' 씨였다. 1910년, 1948년 생의 아버지 마동수와 그 차남인 마차세를 위시하여 장남 마장세 외 여러 인물이 스냅사진을 어지러이 걸어놓은 벽장식 처럼 얽혀서 등장한다. 2017년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김훈 작가가 한 말을 살펴보니,  


 저는 이 시대 전체를 전체로서 묘사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고심 끝에 고심참담해서 도입한 기법은 우선 전체를 다 통괄할 수 없는 자로서는 어떤 디테일한 세부 사항, 디테일에 갑자기 달려들어서 날카롭게 한 커트 찍어 버리는 스냅적인 기법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디테일을 통해서 디테일보다 더 큰 것을 어떻게 드러냄으로써 이 괴로운 글쓰기를 돌파하자는 생각을 했었고. 그 다음에는 이렇게 포착된 디테일들을 그리는데, 이 펜에 스피드를 매우 빠르게 해가지고 빠른 속도로 그 골격만을 그려내고 세부사항을 그려내지 말자. 빨리 펜을 빨리 움직여야겠구나. 그래서 미술로 치면 크로키 같은 기법을 써야겠구나.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035207&plink=ORI&cooper=NAVER&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저는 이 시대 전체를 전체로서 묘사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고심 끝에 고심참담해서 도입한 기법은 우선 전체를 다 통괄할 수 없는 자로서는 어떤 디테일한 세부 사항, 디테일에 갑자기 달려들어서 날카롭게 한 커트 찍어 버리는 스냅적인 기법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디테일을 통해서 디테일보다 더 큰 것을 어떻게 드러냄으로써 이 괴로운 글쓰기를 돌파하자는 생각을 했었고. 그 다음에는 이렇게 포착된 디테일들을 그리는데, 이 펜에 스피드를 매우 빠르게 해가지고 빠른 속도로 그 골격만을 그려내고 세부사항을 그려내지 말자. 빨리 펜을 빨리 움직여야겠구나. 그래서 미술로 치면 크로키 같은 기법을 써야겠구나.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035207&plink=ORI&cooper=NAVER&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리뷰를 쓰는 지금, <공터에서>가 옆에 없다. 기억에 의존하는 글쓰기.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라는 해냄 출판사측의 홍보문구처럼 주인공들은 수레바퀴가 굴러갈까봐 두려워하는데 이미 자신이 그 수레에 타고 있음은 늘 예감한다. 장남 마장세는 외모까지 꼭 빼 닮은 아버지와 운명이 겹칠까봐 한국땅을 '거기에서'라고 타지화하고, 마차세 역시 부인이 임신 소식을 알리는 그 순간 아버지의 혼령이 고등어 한 손 들고 서 있는 환영을 본다. 마차세의 부인 박상희는 <공터에서>를 통털어 가장 해바라기 같은 존재인데, 마차세와 결혼하던 날 아주버님과 대면하고 '마 馬'씨 가문의 핵심으로 한 발에 들어가버린 듯한 느낌을 갖는다. 얼핏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치매 걸린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베트남전에서 살아돌아온 자가 자신이 사살한 전우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개개인의 관계나 운명이라기보다는 반성도 사과도 성찰도 없이 관성처럼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

*
일제 시대, 순경에서 끌려가  피터지게 매 맞고 나와 먹던 선지 해장국을
남산 경찰서에 끌려간 터지고 나온 이가 또 먹는다.
*
남과 북, 정치적 이념으로 양분되어 총을 겨누던 전쟁이
다른 형태로 지속된다.
*
김훈 작가가 참 큰 일을 하신 것 같다. 일흔에 이른 본인도 체력이 예전과 달라 힘드셨겠지만, 이렇게 중요한 정리를 소설을 통해 해주었으니 스스로 떳떳하고 홀가분할 것 같다.
*
영웅이 아닌 비루한 사람들에게 연민과 애정.
가루처럼 흩어질 듯한 낱낱의 비루함이 모여서 실체로서의 덩어리가 된다. 힘이 된다.
*
박상희라는 인물에 가장 공감이 가는
그녀는 해바라기가 아닌 태양. 그녀의 온기와 열기로 마차세가 따뜻해진다.
작가에게 박상희라는 인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공터에서>를 다 읽고, 그 많던 마 馬씨들보다도 박상희의 다음 날이 가장 궁금해진다. 이유가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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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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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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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탓으로 봄볕을 포기한 채 자발적 집콕, 독서로 5월을 시작하다. 쌓아놓고 책 읽는 즐거움. 척추 건강과 바른 자세를 강조한 책, <죽음의 밥상>, 육아서, 심리서, 그 중 가장 먼저 집어서 단숨에 읽은 책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나이가 한 자리 숫자이던 시절 어린 나는, 내가 천재인 줄, 선택받은 하늘의 존재인줄 알았다. 일곱 살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여덟 살이 되어서도 강력한 자기 환상은 별로 깨어지지 않았다. 미술 시간에 거듭된 시행착오를 겪기 전까지는. 나이 한 자리 숫자의 나는 연필을 들면 독후감 상이 나오듯,  크레파스를 들면 멋진 그림이 뚝딱 나오는 줄 알았다. 절대 그렇지 않았다. 미술 시간이건 미술 대회에서건 다른 친구들이 완성작을 낼 때, 나는 여전히 머릿 속의 그 많은 생각들을 좁은 종이에 다 담을 수가 없어서 밑그림으로 고심하다 종 울리는 소리에 울상이 되곤 했다. 하루키가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라는 장에서 말한다.  대중은 술에 쩔어서 부시시한 머리를 한 채, 갑자기 영감 받아 휘리릭 소설을 쓰는 천재 소설가의 이미지를 좋아하겠지만, 자기는 그와 반대로 스스로 훈육해왔다고.

좀 더 쓰고 싶더라도 20매 정도에서 딱 멈추고, 오늘은뭔가 좀 안된다 싶어도 어떻든 노력해서 20매까지는 씁니다. 왜냐하면 장기적인 일을 할 때는 규칙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150)...(중략)....이사크 디네센은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매일매일 20매의 원고를 씁니다(151).

즉 살바도르 달리가 영감을 얻기 위해 숟가락을 들고 낮잠을 자다 꿈을 그리듯, 요행과 우연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지겨울 만큼의 성실성으로 꾸준히 한 땀 한 땀 꿰어 나가는 것이 소설 쓰기라고. 글 쓰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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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설을 잘 모른다. 아예 친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작가로서의 하루키가 독특하다는 이야기를 인터뷰 기사나 평론 등을 통해 전해서 또 전해 들어서 그가 어떤 사람일까 무척 궁금했다. 가장 궁금했던 점은, 그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삼십 년 째 매일 달린다는 점이었는데. 그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 가장 인상 깊고 공감가는 장이었다.

 

달린다는 행위가 몇 가지 '내가 이번 인생에서 꼭 해야 할 일'의 내용을 구체적이고 간결하게 표상하는 듯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중략)...'오늘은 몸이 좀 안 좋아. 별로 달리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이건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라고 나 자신에게 되뇌면서, 이래저래 따질 것 없이 그냥 달렸습니다. (186)

 

게으름 피우리 않고 육체를 잘 유지해나가는 노력 없이, 의지만을 혹은 영혼만을 전향적으로 강고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198)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에 따라 사고 능력도 미묘하게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사고의 민첩성, 정신의 유연성도 서서히 상실됩니다. 나는 어느 젊은 작가와 인터뷰할 떄, "작가는 군살이 붙으면 끝장이에요."라고 발언한 적이 있습니다. 그건 좀 극단적인 말이었고 예외도 물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물리적인 군살이든, 메타포로서의 군살이든. 많은 작가들이 그런 자연스러운 쇠퇴를 문장 기법의 향상이나 성숙한 의식 같은 것으로 보완하지만 거기에도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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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혼자 있는 시간의 힘>과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묘하게 많이 겹친다. 두 작가 모두 일본의 중장년층인데다가 (하루키 1949) 사이토 다카시(1960) 개인주의적 성향이 뼛 속 깊이 박혀있는 이들이어서 그럴까. 두 사람 모두에게서 '남에게 피해 최소화하고, 내 존재감을 굳이 남에게 드러내지 않되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스스로 강해진다. 강인한 몸과 마음 (사실 둘은 하나인데)으로 원하는 바를 꼭 성취해낸다'의 정신이 느껴진다. 참 독특하다. 두 권의 책을 시간차를 두고 읽었는데, 마치 한 사람의 목소리로 충고와 질책받은 느낌이 든다. 내 어떤 아킬레스 건을 차인 걸까?
다 밀어두고, 이것부터 기억하고 실천하자.
"이래저래 따질 것 없이 그냥 쓴다. 쓰기 전, 혹은 쓰다가 달린다. 이래저래 따질 것 없이 그냥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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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여자들에겐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 혼자만 알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그 여자만의 1% 특별한 모임
최상아 지음 / 레드베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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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여자들에겐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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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사람들이 모여 다른 누군가를 또 발가벗기는 느낌이랄까. 주로 매일같이 목욕탕에 나와 시간을 때우는 사람들을 보면 자식들 시집 장가 다 보내고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목욕탕에서 일과를 시작하는 나이 지극하신 분들이 대부분이다.(34) … (중략)…10년 또는 20년 뒤에 할 일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매일 목욕탕으로 출근하고 싶지 않다면 남의 일보다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집중할 것을 찾아보자 (35)." 알 사람은 안다. 이 문장이 "너 그렇게  칠랄레 팔랄레 놀다가 지방대학은 커녕 나중에 날품팔이나 딱 하게 생겼다."라는 비난과 거의 비슷한 효과가 있음을. 대학 졸업장, 혹은 한 때 빛나던 커리어의 추억을 뒤로 하고 목욕탕으로 출근하는 아줌마와 할머니가 되기를 원하는 젊은 여성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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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는 여자들에겐 커뮤니티가 필요하다>의 저자 최상아는 "잘 나가지 않는 여자들"에게 각성을 촉구한다. 책 읽기 전에는 이 서술형의 제목이 이례적인지라 "커뮤니티 =  사회적 연대 solidarity"로 확장해서 이해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보니 여기서의 커뮤니티는 좁은 의미로는 네이버naver나 다움 daum의 주부회원 위주의 까페를 말하고, 크게 말하면 산후조리 동기, 문화센터 동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모임, 심지어 수영 수강생 모임이나 다이어트를 위해 모인 모임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조금 당황스러웠다.  사람은 누구가 자신의 경험 틀 안에서 세상을 채색하기 마련이라고, 이런 '커뮤니티론'은 최상아 자신이 네이버 까페 "김포 한아름http://cafe.naver.com/momroom2013/"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면서 점차 사회로 진출한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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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통상의 부정적 이미지와 달리 수다떨기는 진화적으로 인간에게 잇점이 있는 행위이기도 하다. 저자는 "잡담력 雜談力"이라는 말을 빌어와서 "서울교대 나왔어도 전업주부"였던 자신이 어떻게 온라인 까페에서 칼럼을 쓰다가 틈새시장의 개척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가사노동을 돈으로 바꾸며 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수많은 블로거, 카페 운영자 등이 보잘것없다고 부끄러워하는 대신 그것을 자신의 직업으로, 능력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62)" 저자 최상아 역시, 네이버 까페의 회원으로 시작했다가 까페 운영자 역할을 위임받으면서 이를 직업으로 삼은 케이스이다. 저자는 온라인 까페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일부는 인정하지만, 순기능이 더 많다며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지는 것이 아니라, 단단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모 母 집단지성의 힘 (105)"이라고 표현하며, 성남 보호관찰소가 분당 서현 기습 이전을 강행하자 인근 엄마들은 3교대로 철회운동에 나서며 조직적으로 항의한 사례를 든다. 또한  자신도 '달에서 온 토끼'라는 오프라인 기부까페를 통해 기부문화를 유도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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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타 비슷한 주제의 페미니스트적 책들과 <잘 나가는 여자들에겐 커뮤니티가 필요하다>의 가장 뚜렷한 차별점은 생활밀착형 구체성에 있다. '사적 (private)/공적(public) 영역'이니 '양성평등'이니 '연대의식'이니 하는 용어 하나 안 쓰고도 메시지를 분명히 전한다. "당신 예전에 당신이 가졌던 능력 그리워 하고 현재 처지 한탄이나 할 거야. 아냐. 일어나 살펴봐. 일 할 거리를 찾아봐.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하는 식으로 아주 구체적인 사례들 실제 인물들을 소개해준다. 엄마들 모임할 ˖ 오프라인 장소 활용하는 법, 비영리민간단체 등록하는 법, 아파트 단지안에서 강사로 돈버는 방법, 커뮤니티 회원으로부터 유기적 협조 이끌어내는 방법, 공동육아 등 커뮤니티 활용하여 돈 버는 법 등.

따라서 이 책은 실제 전업주부로 노후까지 갔다가 남편의 원망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는 여성들에게 특히 의미있고 유익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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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아쉬운 점은 최상아 저자가 300여 페이지의 저서에서 내내 이야기하고 있는 '여성 모인 커뮤니티'의 가능성과 힘을 보다 구체화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해갈 보다 거시적인 커넥션. 가장 쉽게 말해 사회문화적인 맥락과 정책 지원에 대한 언급이 조금 보완되었더라면 한다. '아줌마들끼리 모여서 / 수다나 떠는/ 까페 통해 불법 이익이나 추구하려는' 등, 여성 특히 엄마들 커뮤니티에 대한 부정적 편견 때문에 끓어올랐던 분노가 이 책의 집필 계기였다고 한다. 저자 최상아는 현재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그 분노를 더 큰 긍정의 힘으로 키워서 커뮤니티 판을 더 키울 힘 있는 혁신가가 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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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내공 - 이 한 문장으로 나는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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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 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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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의 힘>에 큰 감동과 자극을 받은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마치 나를 속속들이 아는 오랜 친구가 십여년 만에 만난 내 등짝을 격려 반, 질책 반 한 대 후려쳐준 듯 했다. 저자 사이토 다카시의 문장 문장이 내 마음을 파고 들고 마음을 단단하게 해주었다. 바로 이 맛이 독서의 맛이겠지만, 단 한 번도 인생 동선에서 교차해본 적 없는 일본인 저자가 어느 부분에서는 마치 내 마음을 대신 문장화해준 것 같아서 무척 놀랐다. "자기계발서" 장르의 책에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해왔지만 사이토 다카시만은 예외. 그가 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따끈따끈한 상태로 독자를 기다린다는데 덥썩 물지 않을 수가. 단숨에 읽었다.
그런데 왜? 같은 저가가 비슷한 문체와 생각의 흐름으로 채우긴 마찬가지인데 <혼자 있는 시간>에 비해 <한줄 내공>이 주는 감동과 충격은 그 강도가 훨씬 약한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마다 인생 마라톤에서 유별나게 힘든 시기가 있는데 "독서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지극히 일반론적인 주장을 반복하고 있어서일까? 같은 저자인데, 책 읽고 이처럼 받은 감동의 강도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쓴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읽는 사람의 절실함이 약해져서일까. 후자가 맞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더욱 각성할 필요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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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의 힘>에서도 자세히 이야기했지만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극도로 고독하고 낮게 엎드려 지냈던 시절을 겪었다. 박사과정을 마쳤으나 별 볼일 없이 가난한 시간강사로 뛰며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삶을 살기도 했다지만 그 고독의 시간을 독서를 통한 자기담금질로 채워서 결국 현재 일본 메이지 대학 문학부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인생의 행로에서 "벽"을 만났을 때, 그 불안과 회의감을 극복시켜주는 힘은 바로 독서력에서 온다고 한다. 보다 자세히 이야기하면 "책 속 한줄"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언어는 정신의 구현(11)"이기에 "고난을 극복하는 힘과 끈기는 언어를 통해 전해진다. 즉 책 속에서 만난 한줄 문장을 통해 그 글 쓴이의 끈기와 희망을 흡수하며 독자 역시 자가치유되고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가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독서법은 너무나 고전적인 방법이라 오히려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좋은 문장을 만날 때마다 밑줄 치면서 읽기,"와 "크게 소리내어 읽으며 읽기." 실로 저자가 그 방법을 통해 큰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저자는 또한 대학에서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에게 "내 인생의 책"이나 "내 인생의 한 문장"을 소개하는 기회도 많이 만드는 듯 하다. 자신을 성장시켜 준 방법론을 일본의 젊은 세대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그래서인지 <한줄 내공>은 특히나 젊은층을 독자로 겨냥해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인상을 준다. 나 역시 <한줄 내공>에서 "한줄"을 꼽으며 리뷰를 마치려 한다. 


 

지금의 고비를 넘겨야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 갈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내거나 필사적으로 달려들지 못하는 이유는 '승부감각'이 둔해져 있기 ˖문이다. 벽을 돌파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몸을 내던질 만한 단단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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