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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평점 :
이 책의 저자 김정선은 20년 넘게 남의 문장을 다듬는 교정 교열 일을 하면서도 『동사의 맛』, 『소설의 첫 문장』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교정 교열 일을 20년도 넘게 했다니 그 분야의 전문가라 할 만하겠다. 책을 읽다가 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일드 <수수하지만 굉장해!> 가 떠올랐다. 패션 잡지 편집장이 꿈이었던 코노 에츠코가 7년이나 도전하여 취업에 성공했는데 처음 맡은 일이 교정 교열이었다. 양질의 교정 교열을 위해 작가를 직접 만나거나 현지답사까지 하는 등 열정을 쏟는 교정자의 일상을 보면서 재미는 물론 뭉클한 감동까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책을 통해 알게 된 교정자의 일상은 조금 달랐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문장과 씨름 해야 하는 고뇌의 과정도 엿보였다. 다루고 있는 내용은 저자가 많은 문장을 다듬으면서 얻어낸 좋은 문장 표현과 한 저자와 나눈 메일 내용을 사이사이 소개하고 있다. 교정 교열에 대한 규칙만 알려주었다면 지루한 느낌도 있었을 텐데 그러한 에피소드도 곁들여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맨 처음 다루고 있는 내용은 ‘적ㆍ의를 보이는 것ㆍ들’ 5가지와 ‘굳이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 표현 3가지 등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도 모르게 중독(?)이 된 채 쓰고 있는 익숙한 문장 표현이 많다. 아마도 평소에 글쓰기를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다가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놀랄 것이다. 이 중 몇 가지를 소개해 보겠다.
<예시>
사회적 현상, 경제적 문제, 정치적 세력, 국제적 관계, 혁명적 사상, 자유주의적 경향
<교정의 예>
사회 현상, 경제 문제, 정치 세력, 국제 관계, 혁명 사상, 자유주의 경향(p19)
접미사 ‘-적’과 조사 ‘-의’ 그리고 의존 명사 ‘것’과 접미사 ‘-들’도 무의식적으로 자주 쓴다는 사실을 번역 수업을 통해 깨달았다. 그저 무심코 쓰다 보니 습관으로 굳어지지 않았나 싶다.하지만 좀 더 나은 표현을 쓰려고 궁리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단어에서 ‘-적’을 빼니 훨씬 깔끔해졌다. 늦게라도 간결하고 좋은 문장 표현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싶다.
조사 ‘-의’의 예도 들어보자.
1. 문제의 해결
2. 음악 취향의 형성 시기
3. 이제는 모든 걸 혼자의 힘으로 해내야만 한다.
4. 부모와의 화해가 우선이다.
나열한 문장은 ‘-의’를 빼고 아래와 같이 다듬을 수 있다.
1. 문제 해결
2. 음악 취향이 형성되는 시기
3. 이제는 모든 걸 혼자 힘으로 해내야만 한다.
4. 부모와 화해하는 일이 우선이다.(p22~23)
특히 2번과 4번은 ‘-의’를 빼고 문장 일부를 다듬어 좀 더 다양한 표현으로 교정할 수 있다.
이번에는 ‘것ㆍ들’을 무심코 쓰게 되는 문장의 예를 들어보겠다.
<예시>
1. 사과나무들에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2. 수많은 무리들이 열을 지어 행진해 갔다.
3. 내가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
4. 인생이라는 것을 딱 부러지게 정의하기 어렵다면
<교정의 예>
1.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2. 수많은 무리가 열을 지어 행진해 갔다.
3.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4. 인생을 딱 부러지게 정의하기 어렵다면(P28)
이 예시에서 우리가 ‘-들’이나 ‘-것’을 얼마나 남발하는지 알 수 있었다. 특히 ‘무리’는 단어 자체에 이미 복수의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들’을 붙일 필요가 없다. ‘적ㆍ의를 보이는 것ㆍ들’은 ‘습관적으로 ‘적ㆍ의ㆍ것ㆍ들’을 무심코 붙이면 문장을 읽는 독자들이 ‘적의’를 보인다’라는 재치있는 언어 유희로 기억하고 글쓰기에 실천해 보면 어떨까.
또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에 대한 내용도 무척 공감한 부분이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에 대한(대해)’, ‘-들 중 한 사람, ’-들 중(가운데) 하나, ‘-들 중 어떤’, ‘-같은 경우’, ‘-에 의한’, ‘-으로 인한’ 등의 표현을 얼마나 자주 쓰는지. 이 중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같은 경우
나 같은 경우에는, 중국 같은 경우는, 그 같은 경우에
이 문장을 살펴보면 ‘나’와 ‘ 경우’, ‘중국’과 ‘ 경우’, ‘그’와 ‘ 경우’가 동격이 된단다. 무심코 쓴 표현이 비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같다’와 ‘-같은’ 등의 표현을 자주 쓴다는 걸 떠올렸다. 이 표현을 습관적으로 쓰다 보면 확신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는 대상에까지 쓰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제가 합격했다니 정말 꿈만 같아요’라고 할 때는 형용사 ‘같다’가 어울리지만 ‘어제 친구랑 밥 먹고 영화를 봤던 것 같아요’라고 쓰면 어색한 표현이 된다.
마지막으로 얘기하는 내용은 ‘문장 다듬기’이다. 문장을 쓸 때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주어와 술어가 호응하도록 배치해야 하고 관형사나 부사처럼 꾸미는 말은 각각 체언과 용언 앞에 제대로 놓아야 하며 수와 격을 일치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기본 원칙 외에도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있는데, 누구나 문장을 쓸 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써 나간다고 했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누구나 문장을 읽을 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읽어 나간다는 얘기다. 실제로 문장을 읽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으며 문장을 쓰는 방법도 그와 다를 수 없다고 했다. 과연 그렇구나. 너무 당연한 말이라 이런 원칙이 있다고는 상상도 못 했다. 더구나 한국어 문장은 영어와 달리 되감는 구조가 아니라 펼쳐 내는 구조라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풀어내야 한단다.
<예시>
계속 걸어간 나는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나는 계속 걸어서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p196)
언뜻 보면 비슷한 의미 같은데 저자의 분석을 보니 차이가 느껴졌다. 위의 문장 ‘계속 걸어간 나는’이 만드는 거리와 그 뒤로 이어진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가 만드는 거리가 다르다는 것이다. 앞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밭은 느낌이고, 이렇게 거리가 일정하지 않으면 뭔가 펼쳐지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고 했다. 반면 두 번째 문장은 거리가 일정하게 펼쳐 낸 문장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문장의 주인이 문장을 쓰는 내가 아니라 문장 안의 주어와 술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문장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면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넘어가거나, 문장의 기준점을 문장 안에 두지 않고 내가 위치한 지점에 두게 되면 자연스러운 문장을 쓰기가 어렵다고 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으므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은 평소에 생각지 못한 거라서 신선하고 유익한 공부가 되었다.
글쓰기에 깊은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좋은 문장을 쓰고 싶을 것이다. 오랜 시간 교정 교열의 현장에서 길러낸 유익한 팁이 가득 들어있다. 글의 행간에서 저자의 감성도 엿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전문 교정자로서 단호함이 느껴져서 더욱 진정성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