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바탕으로 메이지 정부는 법률, 교육, 금융, 군대, 교통부터 옷과 음식 등 일상생활까지 서양식 근대화를 추진했다. 헌법을 만들고의회를 구성하는 등 덴노 중심의 근대국가 체제를 갖춘 일본이 가장먼저 한 일은 해외 침략이었다. 이들이 따라 배운 국가들이 모두 서양 제국주의 국가였으니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 P57

제1차 세계대전은 일본 경제의 황금기를 가져왔다.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전쟁을 하는 동안 일본은 전쟁 물자를 만들어 팔았으니까 - P57

우리가 이미 알다시피, 끝이 보이지 않는 대공황을 탈출하기 위해 일본이 선택한 것은 전쟁이었다. 만주사변(1931)-중일전쟁(1937)-태평양전쟁(1941)을 연달아 일으키며 일본은 전쟁에 올인했고, 결과는 파국이었다. 전쟁 말기의 도쿄 대공습으로 10만 명,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수십만 명의 일본 민간인이 죽었다. 마지막까지 덴노를 지키기 위한 ‘옥쇄 작전‘(후퇴 없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작전이 펼쳐진오키나와에서는 전체 인구 중 4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은 일본인뿐 아니라 아시아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재앙이었다.  - P59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멈췄던 일본의 공장은 한국전쟁의 군수물자를 대기 위해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후에도 일본에서는 해마다 10퍼센트 이상 경제가 성장하는 ‘진무경기‘가 이어졌다(진무는 일본의 첫 덴노로, 우리로 치면 단군 같은 존재다. 즉 ‘진무경기‘란 ‘단군 이래 최대 호황‘과 같은 뜻이다). 일본의 고도성장은 도쿄 올림픽(1964년)과 오사카 엑스포(1970년)를 거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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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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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김정선은 20년 넘게 남의 문장을 다듬는 교정 교열 일을 하면서도 동사의 맛, 소설의 첫 문장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교정 교열 일을 20년도 넘게 했다니 그 분야의 전문가라 할 만하겠다. 책을 읽다가 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일드 <수수하지만 굉장해!> 가 떠올랐다. 패션 잡지 편집장이 꿈이었던 코노 에츠코가 7년이나 도전하여 취업에 성공했는데 처음 맡은 일이 교정 교열이었다. 양질의 교정 교열을 위해 작가를 직접 만나거나 현지답사까지 하는 등 열정을 쏟는 교정자의 일상을 보면서 재미는 물론 뭉클한 감동까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책을 통해 알게 된 교정자의 일상은 조금 달랐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문장과 씨름 해야 하는 고뇌의 과정도 엿보였다. 다루고 있는 내용은 저자가 많은 문장을 다듬으면서 얻어낸 좋은 문장 표현과 한 저자와 나눈 메일 내용을 사이사이 소개하고 있다. 교정 교열에 대한 규칙만 알려주었다면 지루한 느낌도 있었을 텐데 그러한 에피소드도 곁들여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맨 처음 다루고 있는 내용은 적ㆍ의를 보이는 것ㆍ들’ 5가지와 굳이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표현 3가지 등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도 모르게 중독(?)이 된 채 쓰고 있는 익숙한 문장 표현이 많다. 아마도 평소에 글쓰기를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다가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놀랄 것이다. 이 중 몇 가지를 소개해 보겠다.

 


<예시>


사회 현상, 경제 문제, 정치세력, 국제 관계, 혁명 사상, 자유주의 경향


<교정의 예>

사회 현상, 경제 문제, 정치 세력, 국제 관계, 혁명 사상, 자유주의 경향(p19)

 



접미사 ‘-과 조사 ‘-그리고 의존 명사 과 접미사 ‘-도 무의식적으로 자주 쓴다는 사실을 번역 수업을 통해 깨달았다. 그저 무심코 쓰다 보니 습관으로 굳어지지 않았나 싶다.하지만 좀 더 나은 표현을 쓰려고 궁리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단어에서 ‘-을 빼니 훨씬 깔끔해졌다. 늦게라도 간결하고 좋은 문장 표현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싶다.

 


조사 ‘-의 예도 들어보자.


1. 문제 해결

2. 음악 취향 형성 시기

3. 이제는 모든 걸 혼자 힘으로 해내야만 한다.

4. 부모와 화해가 우선이다.


나열한 문장은 ‘-를 빼고 아래와 같이 다듬을 수 있다.



1. 문제 해결

2. 음악 취향이 형성되는 시기

3. 이제는 모든 걸 혼자 힘으로 해내야만 한다.

4. 부모와 화해하는 일이 우선이다.(p22~23)

 

특히 2번과 4번은 ‘-를 빼고 문장 일부를 다듬어 좀 더 다양한 표현으로 교정할 수 있다.

  


이번에는 것ㆍ들을 무심코 쓰게 되는 문장의 예를 들어보겠다.


<예시>


1. 사과나무들에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2. 수많은 무리들이 열을 지어 행진해 갔다.

3. 내가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

4. 인생이라는 것을 딱 부러지게 정의하기 어렵다면



<교정의 예>


1.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2. 수많은 무리가 열을 지어 행진해 갔다.

3.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4. 인생을 딱 부러지게 정의하기 어렵다면(P28)

  



이 예시에서 우리가 ‘-이나 ‘-을 얼마나 남발하는지 알 수 있었다. 특히 무리는 단어 자체에 이미 복수의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을 붙일 필요가 없다. ‘적ㆍ의를 보이는 것ㆍ들습관적으로 적ㆍ의ㆍ것ㆍ들을 무심코 붙이면 문장을 읽는 독자들이 적의를 보인다라는 재치있는 언어 유희로 기억하고 글쓰기에 실천해 보면 어떨까.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에 대한 내용도 무척 공감한 부분이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에 대한(대해)’, ‘-들 중 한 사람, ’-들 중(가운데) 하나, ‘-들 중 어떤’, ‘-같은 경우’, ‘-에 의한’, ‘-으로 인한등의 표현을 얼마나 자주 쓰는지. 이 중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같은 경우


같은 경우에는, 중국 같은 경우, 같은 경우

 


이 문장을 살펴보면 경우’, ‘중국경우’, ‘경우가 동격이 된단다. 무심코 쓴 표현이 비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같다‘-같은등의 표현을 자주 쓴다는 걸 떠올렸다. 이 표현을 습관적으로 쓰다 보면 확신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는 대상에까지 쓰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제가 합격했다니 정말 꿈만 같아요라고 할 때는 형용사 같다가 어울리지만 어제 친구랑 밥 먹고 영화를 봤던 것 같아요라고 쓰면 어색한 표현이 된다.

 



마지막으로 얘기하는 내용은 문장 다듬기이다. 문장을 쓸 때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주어와 술어가 호응하도록 배치해야 하고 관형사나 부사처럼 꾸미는 말은 각각 체언과 용언 앞에 제대로 놓아야 하며 수와 격을 일치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기본 원칙 외에도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있는데, 누구나 문장을 쓸 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써 나간다고 했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누구나 문장을 읽을 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읽어 나간다는 얘기다. 실제로 문장을 읽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으며 문장을 쓰는 방법도 그와 다를 수 없다고 했다. 과연 그렇구나. 너무 당연한 말이라 이런 원칙이 있다고는 상상도 못 했다. 더구나 한국어 문장은 영어와 달리 되감는 구조가 아니라 펼쳐 내는 구조라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풀어내야 한단다.

 


<예시>


계속 걸어간 나는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나는 계속 걸어서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p196)

 



언뜻 보면 비슷한 의미 같은데 저자의 분석을 보니 차이가 느껴졌다. 위의 문장 계속 걸어간 나는이 만드는 거리와 그 뒤로 이어진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가 만드는 거리가 다르다는 것이다. 앞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밭은 느낌이고, 이렇게 거리가 일정하지 않으면 뭔가 펼쳐지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고 했다. 반면 두 번째 문장은 거리가 일정하게 펼쳐 낸 문장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문장의 주인이 문장을 쓰는 내가 아니라 문장 안의 주어와 술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문장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면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넘어가거나, 문장의 기준점을 문장 안에 두지 않고 내가 위치한 지점에 두게 되면 자연스러운 문장을 쓰기가 어렵다고 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으므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은 평소에 생각지 못한 거라서 신선하고 유익한 공부가 되었다.

 



글쓰기에 깊은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좋은 문장을 쓰고 싶을 것이다. 오랜 시간 교정 교열의 현장에서 길러낸 유익한 팁이 가득 들어있다. 글의 행간에서 저자의 감성도 엿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전문 교정자로서 단호함이 느껴져서 더욱 진정성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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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개천에서 난 용‘의 상징이라면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기다림의 아이콘‘이다. 훗날 사람들은 "오다가쌀을 찧고 하시바가 반죽한 천하라는 떡을 도쿠가와가 먹었다."고 이야기했다. - P47

전국에 시장이 들어서고 부유한 상인(조닌)들이 생겨났다. 이들은도시에 살면서 무사와 다이묘, 심지어 쇼군에게도 돈을 꿔줄 정도로막대한 경제력을 자랑하며 화려한 문화를 주도했다. 이를 ‘겐로쿠 문화‘라 부르는데, 대중 스타 탄생의 산실이었던 가부키와 가부키 배우들의 화보집이었던 우키요에 등이 겐로쿠 문화의 상징이다. - P49

1868년, 반막부파는 무쓰히토 덴노의 왕정복고 쿠데타에 성공했다. 이른바 ‘메이지 유신‘이었다(메이지는 무쓰히토 덴노의 연호다). 가마쿠라 막부 이후 700년 가까이 지속되던 무사 정권이 종말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메이지 덴노는 거처를 교토에서 에도로 옮기고는 도시 이름을 도쿄: 동쪽의 수도로 바꾸었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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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노 중심의 지배체제는 다이호(大] 율령의 반포로 정점을 찍었다. 중국에서 시작된 율령은 동아시아고대국가의 기본 법령이자 ‘국왕 중심 고대국가‘ 확립의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이제야 일본 열도에나라다운 나라가 생긴 셈이다. 일본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호류지 등 찬란한 불교 문화를 꽃피운 시기도 아스카 시대다. - P29

원정의 권력을 물리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바로 이 무렵 새롭게 등장한무사단이다. ‘새롭게 등장했다니, 그렇다면 이전에는 무사가 없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고대의 전사는 대부분 징발된 농민이었다.
이들을 지휘하는 귀족들도 직업적 전사 집단이 아니었다. 헤이안 시대에 와서야 ‘싸움이 직업인 무사들이 나타났다. 당시 지방에는 새로운 토지를 개간한 장원들이 생겨났는데, 장원의 영주들이 스스로를지키기 위해 조직한 무사단이 시작이었다.  - P35

60년 가까이 지속된 남북조의 분열기를 끝낸 것은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손자 요시미쓰였다. 그는 남조와 북조를 통합했을 뿐 아니라견당사 이후 수백 년간 중단되었던 중국과의 공식 무역을 재개하면서 막부의 경제적 기반을 다졌다. 덕분에 무로마치 막부는 요시미쓰 - P39

대에서 전성기를 맞았다. 지금도 관광객이 몰리는 교토 금각사가지어지고 전통 가면극인 노와다도가 발달한 것도 요시미쓰의 치세였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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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기행은 우리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요시노가리 역사공원의 청동검과 독널무덤, 쓰루하시의 백제문, 군함도의 무너져 내린 건물들에서 때로는 우정으로 때로는 증오로 이어진 일본 속 우리 역사를 느껴볼 수 있다. 이건 역사책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다. 이를 통해 우리와 일본의 과거를 알고,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고민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 P7

조몬 시대, 그러니까 일본 신석기시대의 특징은 ‘엄청 빠른 토기,
너무 늦은 농경‘으로 요약할 수 있다. 놀라지 마시라. 1960년대 처음발견된 조몬 토기는 무려 ‘세계 최초의 토기‘로 인정받았단다 (2012년중국에서 더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1만 년 가까이지속된 조몬 시대 내내 본격적인 농경의 흔적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이거 참 이상하다. ‘신석기 혁명농업 혁명‘ 아닌가? 토기 또한 농사로 생산한 곡식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것이고, 맞다. 하지만 모든 지역이 그런 것은 아니다. 조인들은 농사 대신 수렵과 채취로 살아갔다. - P23

하여간 그렇게 1만 년 가까운 세월을 보낸 기원전 300년 무렵, 거23

짓말처럼 갑자기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것도 대규모 관개시설까지 갖춘 벼농사가. 뿐만 아니라 각종 청동기며 철기까지 다양한 도구들이 쏟아지듯 나타났다. 더불어 토기의 스타일도 확 바뀌었다(야요이] 시대란 새로운 토기가 처음 발견된 지역의 이름을 딴 것이다). 놀라자빠질 일이 아닐 수 없다. - P25

새로운 물건과 기술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실제로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다만 하늘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건너간 점이 다를 뿐. 이른바 ‘도래인‘들이 볍씨와 농사 기술, 도구들까지 싸들고 바다 건너 일본으로 도래한 것이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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