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루미 시집
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 지음, 정제희 옮김 / 시공사 / 2019년 1월
평점 :
페르시아의 위대한 시인이라는 루미를 언급한 이야기를 여러 권의 책에서 만나고 궁금했었다. 무려 800년 전에 태어난 시인의 시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오늘날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이자 종교인으로 추앙받는 루미를 이제라도 만나게 된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페르시아어의 코란’, ‘신비주의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6권 분량의 『마스나비』 중 1권을 발췌 번역한 『루미 시집』은 총 75편으로 되어있고 신, 고독, 사랑, 삶을 노래한 산문시다. 전통적인 신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신과 하나가 되기를 진정으로 원했으며 노탁발승 샴스 타브리즈를 만나 진정한 사랑을 체험하고 그와의 안타까운 이별의 그리움을 ‘태양’이나 ‘불꽃’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오래전에 쓰인 루미의 시이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시였다. 종교적인 색채가 느껴지는 시도 있었고 삶에 임하는 태도를 알려주는 교훈적인 내용, 마음을 치유해 주는 편안한 시도 있었다. 이 시집을 시작으로 나머지 ≪마스나비≫도 차례로 번역되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삶에서 슬픔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고 삶은 불타는 듯한 슬픔과 함께한다. 삶이 끝난다면 가도록 두어라. 하지만 아! 당신은 머물러라. 당신같이 아름다운 자가 없으니.(중략)
조개는 인내하지 않으면 진주를 품을 수 없다. 사랑으로 탐욕이란 옷을 찢는 자만이 욕심과 삶의 어려움에서 완전히 정화된다.
그러니 기쁘라! 아! 사랑은 우리의 행복. 아! 모든 문제를 고치는 명의. 아! 헛된 오만과 긍지의 치료제. 아! 우리의 플레톤이자 갈레노스.
흙으로 빚어진 육신은 사랑을 통해 하늘로 날아오르고, 신도 춤추며 온다.(P20~21)
고작 발에 박힌 가시도 빼내기가 힘든데 하물며 마음에 박힌 가시는 어떻겠습니까?
마음에 박힌 가시는 아무리 작은 가시라 해도 누군가가, 또는 누군가에게 슬픔을 준 흔적입니다.(P25)
(전략)새는 아래로 위로 납니다. 새의 그림자도 새처럼 납니다. 어리석은 자는 새의 그림자를 잡기 위해 계속해서 달리다가 곧 지치고 맙니다.
하늘을 날고 있는 새의 그림자인 줄도 모르고 그림자의 주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림자를 향해 화살을 쏘느라 화살집이 빕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림자를 좇느라 화살집이 비고, 삶이 저물어갑니다.
그림자를 쫓는 사냥에 삶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의 그림자는 당신을 보살피고 그의 그림자를 통해 당신을 보호합니다.(P35~36)
8백 년이나 되는 오래전에 지은 시이지만 지금도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야 함에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겉모습을 좇아가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 이 순간의 소소한 기쁨을 놓치며 살아가는 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아무리 빨라도 후회는 언제나 늦는 법, 그것을 깨닫게 될 때는 세월은 벌써 저만큼 앞서가고 한숨만 남을 뿐이다.
(전략)스승을 찾으십시오. 죽음에 대한 선조들의 지혜를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종교가 죽음에 대해 말합니다. 당신을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해줄 것입니다.
스승을 찾지 마십시오. 모든 스승은 당신 자신입니다.
그 스승을 아는 것 또한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주체가 되어 사람들의 대상이 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방향을 따르지 말고 자신의 방향을 따르십시오.(후략)(P38~39)
죽음에 대한 지혜를 알기 위해 스승을 찾으라한다. 성공이라는 명제 아래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세상이다. 유한한 인생임에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가끔 잊고 산다. 다행인지 최근 죽음을 주제로 다루는 책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 죽음을 자주 상기한다면 현재의 시간을 좀 더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혼자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많은 선택과 결정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기에. 스승은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승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전략)석류를 산다면 웃고 있는 것을 사십시오. 그 웃음이 씨앗이 되어
새로운 소식을 전해줄 것입니다.
웃고 있는 석류가 정원을 웃게 하듯 지혜로운 자와의 대화는 나를 지혜롭게 합니다.
당신이 아름다운 대리석이라면 당신 마음의 주인에게 닿아 보석이 될 것입니다.
영혼에 순결한 사랑이 흐르는 자에게 마음을 주십시오.
선한 사랑이 없는 자에게는 마음을 주지 마십시오.
절망이 있는 곳으로 가지 마십시오. 희망은 분명 존재합니다.
어두운 곳을 향하지 마십시오. 태양은 분명 존재합니다.(후략)(P52~53)
석류가 ‘웃고 있는’ 이라는 표현에 시선이 멈춘다. 알알이 잘 영글어 빨갛게 익은 모습일까. 넘치는 기쁨으로 밝게 웃는 얼굴을 활짝 핀 꽃에 비유하듯이 석류의 모습도 그렇겠지. 한 가지 걱정에 빠지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마음먹기에 따라 절망보다는 희망을 선택할 수 있다. 아침에 떠오르는 밝은 해를 바라보며 불끈 힘이 솟아오르지 않은가.
말은 갑자기 혀에서부터 뛰쳐나온다.
그것은 활에서 나오는 화살과도 같다.
아! 아들아, 쏘아진 화살은 되돌릴 수 없다.
급류를 막으려면 수원지를 막아야 한다. 수원지를 막지 않으면
온 세상을 집어삼킨다. 온 세상을 황폐화한대도 놀랍지 않은 일이다.(후략)(P78)
베푸는 자에게는 계속하여 풍족하게 해주시고 그들이
베푸는 만큼 채워주십시오.
인색한 자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마시고 그들이 인색한
만큼 빼앗아주십시오.
사랑에 있어 너그러운 사람은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나무의 잎이 진다면 영혼의 가난함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너그러움으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대도 그의
자비로움이 당신 손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씨앗을 심으면 씨앗 창고는 비겠지만 밭에서 곡식이 자랍니다.
씨앗을 창고에 두기만 한다면 쥐가 와서 모조리 먹어버릴 것입니다.
세상은 이런 일들로 가득합니다. 그의 공고한 사랑을 느껴 보십시오.
(P120~121)(시 전문)
베푸는 일은 따뜻한 관심이며 사랑이다. 누군가에게 나누어주는 일은 줄어드는 마이너스가 아니다. 나눔은 따뜻한 사랑의 전파를 타고 흘러간다. 씨앗을 심은 후 ‘빈 창고’와 밭에서 풍성하게 자라는 곡식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베푸는 일은 ‘씨앗’을 심는 일이다. 그 ‘씨앗’은 더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며 풍성한 사랑으로 돌아온다는 지혜를 깨닫게 된다.
(전략)우리가 열망하는 모든 달콤한 것들은 그 안에 시간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루비가 아름답게 빛나고 광채가 나려면 수년의 햇살을 받아야 하고, 채소가 자라기 위해서는 두 달이, 장미가 자라기 위해서는 꼬박 일 년이 걸립니다.
뱀의 독이 약이 될 때가 있고 불신도 허락될 때가 있습니다.
덜 익은 포도는 떫지만 잘 익으면 아주 달콤해지고
항아리에 담겨 발효되면 훌륭한 식초가 됩니다.
현명한 자가 독약을 마시면 넥타가 되지만 미성숙한
자가 독약을 마시면 감각이 마비됩니다.(P131~132)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쓰디쓴 인내와 시간의 비밀이 필요하다는 것은 진리다.
저절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성공에는 절실함과 노력이 필요하듯이 세상만사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보석 루비, 채소와 장미꽃도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
엄청난 슬픔과 마음의 상처도 결국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하지 않은가.
세월이 약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가는 존재인가보다.
(전략)부족함은 뛰어남의 거울입니다. 고난은 힘과 영광의 거울입니다. 모든 반대되는 것은 그 반대되는 것에 의해 보입니다. 식초를 먹고 나면 꿀이 달다는 것을 압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보고 완벽해지기 위해 급히 서두르는 자는 그이 곁으로 갈 수 없습니다.
그 자신이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자만심만큼 영혼에 고통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P164)
결핍 뒤에 뛰어남이 숨어있다. 어둠의 고난은 밝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들여다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강단 있는 마음이 있다면 원하는 자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삶이란 비슷한 것 같다. 그토록 오래 전에 선지자들이 고민하던 것을 지금의 우리도 고민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는 인간, 우리의 삶은 그 이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루미의 시를 만나고 많은 부분을 공감하면서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곁에 두고 시인 루미와 자주 만나 마음의 대화를 나누고 싶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