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어떤 한국어 관형어는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끝이 적으로 끝나는 관형어입니다. 특히 딱딱하고 어려운 내용을 담은 명사에 접미사 ‘적‘이 많이 붙는데, 이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합니다. 19세기 후반에 서양어에 대응하는 한자어를 일본과 중국에서 만들어내면서 추상명사의 관형사형은 끝에 무조건 접미사 ‘적‘을 붙이다시피 하여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 P137

‘적‘은 한국어에 너무 깊숙이 들어왔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안 쓰기가 어렵습니다. 방금 앞 문장에도 ‘적‘이 들어갔지요. 그렇더라도
"적‘을 남발하는 글은 좋지 않습니다. 글의 내용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이 글을 어렵게 꾸며서 독자가 주눅 들게 만드는 글은비겁한 글입니다. 말하는 중에도 ‘보편적으로‘, ‘일반적으로‘, ‘대체적으로‘, ‘인간적으로‘처럼 ‘적‘이 들어간 말을 많이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히 머릿속에 든게 많은 것처럼 꾸미려고 ‘적‘이 들어간 말을 남용하는 정치인이나 연예인을 텔레비전에서 가끔 봅니다. - P137

일본어는 많이 다릅니다. 일본어는 한국어 ‘의‘에 해당하는 를 영어의 of 못지않게 즐겨 씁니다. 일본어가 영어를 직역하면서 영어 of해당하는 가 일본어로 깊숙이 들어왔기 때문일까요? 꼭 그렇지는않습니다. 일본어에서는 아주 일찍부터 널리 쓰였습니다.
오노 스스무라는 일본 언어학자에 따르면 는 고대 일본 시가를 모아놓은 《만엽집》에서 이미 많이 쓰였습니다. 가령 越海 浦처럼 00가 심심치 않게 튀어나옵니다. 이것은 ‘고시(越)라는 나라의 바다에 있는 다유히라는 곳에 있는 만‘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일본어에서 벌써 이렇게 여러 번 겹쳐 써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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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역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형용사 entire, regular, solid를각각 부사 ‘샅샅이‘, ‘꼬박꼬박‘, ‘꼬박‘으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여기서영어 형용사를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옮길 때 요긴한 원칙 하나가 나옵니다. 영어 형용사는 한국어 부사로 옮긴다는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한국어 부사는 영어 형용사로 옮기면 좋겠지요.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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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입니까. 갑자기 껴안았다‘보다는 ‘와락 껴안았다가,
갑자기 낚아챘다보다는 덥석 낚아챘다가, 기온이 갑자기 떨어졌다‘보다는 ‘기온이 뚝 떨어졌다가, 갑자기 겁이 났다‘보다는 ‘덜컥 겁이 났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보다는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가. 갑자기 화를 냈다‘보다는 ‘버럭 화를 냈다‘가 그때그때 상황을 구체적으로 실감나게 그려내는 부사를 많이 거느린 한국어의 강점을 잘살린 번역일 것입니다. - P117

영한사전에 풀이어로 나온 한국어 부사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영한사전에서 automatically를 찾으면 보통 자동적으로‘나 ‘기계적으로‘
가 나옵니다. 하지만 영한사전의 풀이에 얽매이지 말고 맥락에 알맞게automatically를 때로는 ‘알아서‘로, 때로는 ‘척척‘으로, 때로는 ‘저절로‘로 옮길 수 있어야 합니다. blindly는 영한사전을 맹목적으로 좇아
‘맹목적으로‘라고만 옮기지 말고 때로는 ‘무작정‘이나 ‘마구‘ 또는 ‘함부로‘나 덮어놓고‘로 옮겨주어야 합니다. literally는 영한사전을 문자그대로 좋아서 ‘문자 그대로‘라고만 옮길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나
‘영락없이‘, 또는 ‘곧이곧대로‘나 ‘거짓말 안보태고‘로 옮겨주어야 합니다. 포괄적인 뜻을 지닌 영어 부사는 구체적인 뜻을 지닌 한국어 부사로 옮거주자, 이것이 이 장에서 첫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원칙입니다. - P118

좋은 번역의 기준을 도착어인 한국어가 아니라 출발어인 영어에 얼•마나 충실한가로 따지는 사람일수록 그냥 울부짖었다‘보다는 ‘우우울부짖었다‘라고 해야 원어에 더 충실한 번역이 됩니다. 원문에 동사가하나뿐이라고 해서 번역문에서도 동사를 달랑 하나로 번역해주어야만충실한 직역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영어는 동사 하나로 한국어 동사와부사의 뜻을 한꺼번에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는 두 언어의 구조적 차이를 감안하면 ‘우우 울부짖었다‘는 의역이긴커녕 오히려 원문에 더 충실한 직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가령 "Music blaredout from the open window." 라는 영문은 "열린 창문으로 음악이 꽝꽝 터져나왔다."라고 하면 blare라는 동사에 담긴 의성어 부사의 뉘앙스를 충실하게 담아낼 수가 있습니다. 영어 동사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달랑 한국어 동사 하나로만 번역하지 말고 한국어 부사를 덧붙일 수 있으면과감히 덧붙여라. 이것이 이 장에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둘째 원칙입니다. - P120

 영어에는 ‘우르르‘라는 부사와 ‘모이다‘라는 동사를 한 몸에 지닌 throng이라는 동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The children thronged into the hall." 이라고 번역할 수 있지요. "관중이 경기장으로 꾸역꾸역 모여들었다."는 "Spectators crowded intothe stadium."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의태어나 의성어 같은 부사가 들어간 한국어 문장을 영어로 번역할 때는 부사에만 매달리지 말고 그 부사의 뜻과 한국어 동사의 뜻을 한몸에 지닌 영어 동사를 찾아라, 이것이 이 장에서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셋째 원칙입니다. - P121

결국 영어를 한국어답게 잘 번역하려면 한국어 어휘를 많이 알아야한다는 당연한 결론이 나옵니다.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어 부사와 동사의 뜻을 한꺼번에 지닌 영어 동사를 떠올릴 수 있으려면 풍부한 영어 어휘가 번역자의 머릿속에 들어 있어야합니다. 어휘력이 빈약하면 틀에 박힌 한국어 문장과 영어 문장밖에나오지 않습니다. 단어를 많이 알아야 독해도 잘하고 번역도 잘할 수있습니다. 영어는 특히 동사를 많이 알아야 하고 한국어는 특히 부사를 많이 알아야 합니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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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서 명사와 형용사의 비중이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은 영어가 대상을 고정된 실체로 분석하고 추상화하고 일반화하는 데 그만큼 강한 언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물론한국어에 비해서 그렇다는 뜻입니다. 프랑스어는 영어보다 명사의 비중이 더 높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어를 영어로 직역하면 평이한 문장도굉장히 딱딱하고 어려워 보입니다. - P115

동사는 어떤가요? 동사는 말 그대로 움직임을 담아내는 말입니다.
동적이지요. 배가 떠났는지 멎었는지, 템스 강이 넘쳤는지 말랐는지,
속도가 빨라졌는지 느려졌는지를 나타냅니다. 부사는 동사가 가리키는 변화를 좀 더 자세히 묘사할 때 씁니다. 배가 ‘꾸물꾸물‘ 떠났는지
‘느릿느릿‘ 멎었는지, 템스 강이 ‘콸콸‘ 넘쳤는지 ‘바짝‘ 말랐는지, 속도가 ‘확‘ 빨라졌는지 ‘뚝‘ 떨어졌는지를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싶을 때 부사를 씁니다. 동사처럼 부사도 정적이지 않습니다. 동사와 부사는 시간 속에서 어떤 대상이 나타내는 변화를 순간순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데 알맞은 말입니다. 동사와 부사의 비중이 한국어에서 상대적으로높다는 것은 한국어가 대상이 변화 과정에서 드러내는 순간의 모습을총체적으로 파악하여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나타내는 데 상대적으로강한 언어라는 뜻입니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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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강조하지만, 수동태 문장은 될수록 능동태 문장으로 바꾼다는것이 자연스러운 한국어 번역문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일본어와 한국어는 주어를 잘 안 써준다는 면에서 비슷한 면이 많지만바로 이런 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한국어는 주어는 안 쓰더라도문장은 될수록 능동문으로 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역동적이고 힘찹니다. 일본어는 될수록 수동문으로 만들려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일본어 같으면 수동태가 자연스러운 "先生KLSE" 같은 문장도 한국어는 "선생님한테 야단을 맞았습니다." 또는 "선생님한테 꾸지람을 들었습니다."라고 능동문으로 나타내줍니다. - P93

한국어는 동사의 비중이 영어보다도 더 큽니다. 한국어는 영어와는달리 주어의 비중이 아주 작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영어는 감탄문과명령문을 제외하고는 문장 안에 주어가 꼭 있어야 하지만 한국어는 주어에 별로 기대지 않는 언어입니다. - P100

한국어와 달리 영어에 수동태가 많은 이유는 영어에 타동사가 그만큼 많기 때문입니다. 타동사가 발달했다는 것은 어떤 행위나 작용의주체를 따지는 데 민감하다는 뜻입니다.  - P101


고립되다‘. 고립하다‘처럼 자동사이면서 ‘되다‘ 꼴과 ‘하다‘ 꼴이 모두 가능한 말도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자동사에는 되다‘를 못 쓰는것이 원칙입니다. ‘되다‘는 타동사를 자동사로 써줄 때 필요하니까.
원래 자동사인 동사에는 덧붙일 수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자동사인감소하다‘를 ‘수출이 크게 감소되었다."라고 써주는 사람이 작가와 기자 중에도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타동사에는 자동사를 타동사로 만드는 ‘-시키다‘를 못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배제하다‘, ‘노출하다‘는 모두 타동사입니다. 따라서 ‘학생을 배제시킨 교육‘이나 ‘햇볕에 맨살을노출시켰다." 같은 표현은 과잉입니다. ‘학생을 배제한 교육‘이나 ‘햇볕에 맨살을 노출했다."라고만 해도 됩니다.
- P106

한국의 작가와 독자는 "게 하다‘라는 사역 표현에 무척 익숙합니다.
번역서에서 워낙 그런 문장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지요. 대표적인 예가옛날에 국어 교과서에 실려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던 독일 작가 안톤슈나크의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입니다.
제목부터 그렇지만 이 수필에는 "게 하다‘는 사역의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첫 문장이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시작되는 이 아름다운 수필에는 ‘슬프게 한다‘라는 표현이 그다음에도 여러 번 나옵니다.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 문장 하나만 놓고 보면 "우는 아이를 보면 슬퍼진다." 라고 간결하게 옮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 P108

가령 이렇게 해주면 어떨까요. "이것을 보면 항상 나는 창 앞에 한 그루의 늙은 나무가 선 내 고향이 생각난다." 원문에 충실한 번역에서는주어가 사물인 ‘이것‘이지만 한국어에 충실한 번역에서는 주어가 사람인 ‘나‘로 바뀝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이 ‘나‘를 지워야 더 자연스러운 한국어가 되기도 합니다. 사물이 주어로 오는 영어 타동사문장을 사람이 주어로 오는 자동사문장으로 바꾼다. 이것이 좋은 한국어 문장을 만드는 비결의 하나입니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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