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페커의 기독교 기본 진리 시리즈의 네 번째 책(나온 순서대로가 아니라 내가 읽은 순서)이다. 제목처럼 이번 책에서는 십계명을 다룬다. 십계명, 나아가 율법 자체에 대한 간략한 고찰과 십계명의 각 조항들의 내용에 대한 설명,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회적 의의까지 다룬다. 얇은 책이지만 나름 충실한 구성이다.
저자는 율법을 단순히 오래된 종교규정으로 보지 않는다. 율법에서 저자는 “도덕적 절대성”의 존재를 읽어낸다. 상대주의가 일반화되고, 거대한 도덕적, 윤리적 실재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커져가는 시대에서 이는 상당히 중요한 논점일 것이다.
최근에는 아예 이를 넘어 힘의 논리가 가장 우선되는 야만의 시대로 이행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곳곳에서 거짓 정보에 근거해 (심지어 그것이 거짓으로 밝혀진 후에도) 과격한 주장을 남발하는 극우들이 설쳐대는 시대다. 네 이웃에게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가장 고전적이면서 상식적인 주장마저 눈앞의 정치적 이익, 혹은 자기가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집 아래 내어깔리는 시대다.
기독교를, 그리고 성경을 떠나버린 인류는 결국 그렇게 스스로 무너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의 도덕적 절대성에 대한 강한 옹호를 시도하는 저자의 의견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시리즈의 앞선 책들과 마찬가지로, 십계명 본문에 관한 해석은 대체로 보수적이고 건전한 수준이다. 책의 볼륨이 얇아서, 또 애초의 의도에 따라 복잡하고 어려운 설명은 없고, 말 그대로 기본적인 교리에 대해 학습하려는 목적에 맞도록 간략한 설명으로 되어 있다.
다만 십계명이 여러 율법 조항들보다 더욱 특별한 지위를 가지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 조금은 회의적이다. 십계명 역시 큰 항목에서 보면 율법의 한 조항들이고, 율법의 효능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끝났다고 보는 것이 기독교의 전통적인 이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율법의 한 조각을 붙들고, 그 문자적 준수에 신경 쓰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개인적으로는 율법이 구원에 있어서의 효용은 없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측면에서의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그리스도인은 그 문자적 준수에 머물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따라야 한다. 십계명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그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간편하지만 좋은 설명이 담긴 책.
“예수가 우리에게 주신 이야기에서 나이가 드는 것은 원수가 아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부르신다.
탐욕스럽게 “이 세상에서 오래 사는 것에” 집착하다 보면
우리는 예수의 말씀과 생명을 잃어버릴 수 있다.
- 폴 스티븐스, 『나이듦의 신학』 중에서
현 시점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두 개의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 두 나라의 현재 최고지도자는 모두 전범이다. 푸틴은 벌써 5년째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일으킨 최악의 독재자이고, 트럼프도 그 못지않게 독재적 성격을 드러내면서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이란 전쟁을 시작한 범인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경향은 비단 트럼프가 집권하고 나서 새롭게 시작된 건 아니다. 전임 대통령인 바이든은 무기 판매를 대외 정책의 중심으로 가져왔고,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뒷받침할 무기를 꾸준히 공급했다. 뿐만 아니라 중동에 미군을 꾸준하게 늘려왔다. 심지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오바마 역시 가공할 만한 액수의 무기를 팔아치웠고, 이른바 드론 대통령(드론으로 어떤 목표물을 지정해 제거할 지를 결정하는)으로서의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겼다는 증언도 있다.
요컨대 트럼프라는 괴물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이미 미국은 어느 정당, 어느 인물이 대통령이 되든 전쟁의 광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 책은 그 주된 원인을 군산복합체(책에서는 “전쟁 기계”라고 표현한다)에서 찾는다. 미국이 군비합중국이 되었다고도 말한다.
오늘날 미국 국방예산의 절반 이상은 군대에 직접 사용되는 대신 민간기업으로 흘러간다. 방산기업의 CEO는 연간 2천 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데 반해, 적지 않은 군인 가족들은 푸드뱅크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는 이유다. 세금이 이들 방산기업으로 대가 흘러가는 동안, 다른 분야에 대한 정부 지출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전쟁을 위해 개발된 도구들은 자국민 통제에도 사용되고 있는 중이다.
방산기업들의 이런 막대한 수입은 엄청난 규모의 로비를 통해 유지되고 확장된다. 의원 1인당 2명의 로비스트들이 방산기업을 위해 고용되어 활동하고 있는 가운데, 의원 한 명당 27만 5천 달러 이상을 매년 로비자금으로 쓰고 있다. 그들이 정부로부터 받는 세비(와 각종 유지비)가 20만 달러 안팎인 것을 고려하면, 로비를 통해 얻는 돈이 더 많은 셈이다. 당연히 이들은 물주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게 된다.
오늘날 방산기업들은 이른바 싱크탱크들에도 막대한 후원금을 보내고, 다양한 대학들과의 연계를 통해 학계의 지지를 이끌어 내고, 영화와 게임 같은 엔터테인먼트업계와도 손을 잡고 좀 더 부드러운 세뇌도 시도하고 있다. 말 그대로 전방위적인 활동이다.
그렇게 미국은 전쟁기계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제는 멈출 수가 없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동안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미국은 지속적으로 다양한 분쟁에 개입하고, 종종 일으키기도 할 것이다. 어떤 인격자가 대통령이 되든지, 이 구조를 깨뜨리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책 말미에 저자들은 새로운 평화운동으로 전쟁기계화 된 정부와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 운동의 중심은 참전 용사들, 핵실험장 인근의 피해 주민들, 무기 개발과 생산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 그리고 국방부가 정부의 재량 예산의 절반 이상을 가져가는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과 투자가 절실히 필요한 지역의 주민들이고. 하지만 이게 과연 트럼프를 두 번이나(아니 그 중 적지 않은 수는 세 번이나!) 대통령으로 뽑아주는 나라에서 어느 정도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지는 솔직히 조금은 회의적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으나, 근래의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 가운데서, 우리나라는 무기수출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여론 역시 거의 전적으로 이런 현실을 환영하는 상황. 그런데 정말로 그래도 되는 걸까? 전 세계에 무기를 파는 것을 기뻐하는 우리는, 전쟁기계화의 첫 걸음을 내딛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