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권세 - 전체주의 공포와 기능장애에 빠진 민주국가들에서 기독교의 정치적 증언
톰 라이트.마이클 F. 버드 지음, 홍종락 옮김 / 야다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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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교회와 정치 사이의 관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일부에서는 교회와 정치가 무슨 상관이냐고, 교회는 정치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안전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처음부터 성경은 “제국에 완전히 잠겨 있는 책”이라고 말한다. 성경 속 이야기들이 역사상 등장했던 수많은 제국들의 영향을 받았던 한 작은 민족의 이야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성경 어디를 펴더라도 그 시대 이스라엘에 영향을 강하게 주고 있는 제국을 발견할 수 있다. 성경부터가 정치적 상황에서 떨어져서 쓰인 책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경과 교회는 일찍부터 세상의 권력체계에 대해 신적 인정을 부여해 왔다. 쉽게 말해 성경은 세상의 통치자들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라는 기본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빌라도 앞에서의 예수님도(요 19:11), 로마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도(롬 13:1), 흩어진 교회에 편지를 썼던 베드로도(벧전 2:17)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교회는 단순히 그런 세상의 질서를 관망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러 시대, 여러 모양으로 직접 정치의 영역에 참여하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긍정적이고 혁명적인 변화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 결과 악과 착취에 거의 제약이 없었던 사회에서, 기독교적 미덕이 점차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66).


저자들은 좀 더 본질적으로, 예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해 있는 나라라면, 그것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과실현된 종말론이라는 안일한 선택지를 피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없으니까. 또, 하나님은 이 세상의 (악한) 통치자들을 책망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점 또한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건 이런 성경적 흐름 가운데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비춰보는 일일 것이다. 2024년에 출판된 원서를 기준으로, (책 서문에도 언급된) 이미 이스라엘과 가자 전쟁은 몇 년간 이어지고 있고, 그보다 한 해 앞서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침략으로 시작된 전쟁 역시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시점으로 몇 주 전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 또한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교회는 이런 시대 속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우리 시대 가장 큰 불행은, 세계적으로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두 개 나라의 통치자(푸틴과 트럼프)가 전범이라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두 전범들은 꽤나 친하게 지내고도 있는데, 이는 전에는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빌라도와 헤롯이 예수를 죽이려는 재판을 앞두고 친구가 되었다는 기록(눅 23:12)을 떠올리게도 한다.


내부적으로도 우리는 바로 얼마 전 대통령이 일으킨 친위쿠데타를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한눈에도 불법적 요소로 가득한 범죄였지만, 황당하게도 전국의 수많은 교회들이 나서서 (마치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듯) 그런 내란범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그리고 여전히 이어가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니 종교는 아예 정치에 관심도 두지 말라는 식의 또 다른 극단주의적 정치이론이 횡행하는데도 제대로 입조차 열지 못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자업자득일지도.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하는 질문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다. 물론 교회는 (일반적으로) 폭력을 지지할 수 없고, 가난하고 힘이 없는 이들을 착취하는 일에 반대해야 한다. 또 저자들은 정부가 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의 신앙에 어긋나는 요구를 한다면 불복종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도 덧붙인다. 어떤 군주나 통치자도 “절대적인” 의미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니까(203).


다만 이 불복종의 수위에 관해서 저자들은 “비폭력적”인 수단으로 한정하려는 듯하다.(여기에 그다지 우호적으로 인용하지 않기도 했던 칼뱅의 주장이 인용되기도 한다) 저자들은 폭력을 허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조차 우려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대통령이 임명한 완장을 찬 사설청부업자들(ICE)이 날마다 국민들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있는 미국 현실이 바뀔까? 러시아의 독재자는 평화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내려놓을까? 가자 주민을 학살하는 이스라엘 총리는?


사실 이 부분은 앞서도 언급했던, 저자들이 긴급하게 붙인 “추신”에도 어느 정도 언급되어 있는 문제다. 저자들은 “이스라엘 인질들이 여전히 가자 지구에 억류되어 있고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거리에서 죽어가는 지금” 거창한 성명에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고 긴급성을 인식하면서도, 겨우 “위험한 수사적 표현을 접하거든 이의를 제기하라”고 촉구할 뿐이다(22). 이의제기로 문제가 해결될까?


물론 폭력이 동원되는 직접 행동은 위험하다. 애초의 목적이 아무리 숭고하더라도, 폭력은 금세 사람들을 변질시킨다. 사람들의 목을 자르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안에서 또 다른 독재자가 출현하기 마련이라는 것은 프랑스혁명을 통해서 충분히 입증된 사실이기도 하다. 결국 다시 저자들의 결론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걸까. 교회는 '기독교 민족주의'에도, '시민 전체주의'에도 저항하면서 최종적인 권위가 하나님에게 있음을 고백하면서 비판자로 살아야 한다고. (필연적으로 양측에서 욕 먹기 딱 좋은 포지션이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특정한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보낼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끝끝내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구도 그리스도를 대체할 수 있는 메시야가 아니다. 또한 우리와 “다른(극단적으로 생각이 다르기도 할 것이다. 예컨대 내란범을 옹호한다던가)” 사람들은 늘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유혹을 물리치고, 이른바 “당당한 다원주의” 안에서 우리의 위치를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결론짓는다.(결코 쉽지 않은, 마음이 편치도 않을 일이다)


다만 현실 가운데서 이 결론이 어떤 식으로 실현될지는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다. 우리가 그런 실제 모델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오늘날처럼 전 세계가 극단화 되어 있는 정치 지형 가운데서 과연 가능할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또, 분명 악하고 잘못된 권력에 대해 단지 말로만 비판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하는 부분 역시 조금은 답답할 수 있다. 하지만 교회는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소망으로 세워지지 않았떤가. 어쩌면 이런 삶이야말로 가장 교회다운 모습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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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여정
김영한 지음 / 아가페출판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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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여정”이라는 표현이 붙어 있긴 하지만, 사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흔히 말하는 공생애의 마지막 한 주간(고난주간)과 부활로 마무리 되는 짧은 기간의 사건들을 복음서를 중심으로 정리한 책이다(페이지도 꽤 적다).


총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마다 하루 동안의 일정을 담고 있다. 저자의 간략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기는 하지만, 신학적인 논의로 깊이 들어가는 않고, 대체로 복음서의 기록을 이어붙이거나 연결해 설명하는 방식으로 글이 진행된다.


고난주간(과 부활주일)에 하루 한 씩 읽으며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책으로 보인다. 물론 성경을 직접 읽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성경의 문장들이 조금은 딱딱하게 느껴지거나 어려운 사람도 있을 테니까. 그런 경우엔 이런 책도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을 듯.


무슨 새로운 관점이나 정보가 담긴 건 아니지만, 사실 이 기간에는 우리의 지적인 만족을 찾는 것보다는 (루이스가 말했던 것처럼) 지적인 교만을 회개해야 하는 시간에 가까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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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복음주의자들은 뭐가 문제일까요?”

와이넌스는 잠시 생각했다.

“미국이요.”

그가 대답했다.

“그들 중 너무 많은 이들이 미국을 숭배하죠.”


- 팀 앨버타, 『나라, 권력, 영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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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가방 2026-03-12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우리나라 (자칭) 복음주의자들은 왜 미국을 숭배하는 건데...;;;

카스피 2026-03-14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뮈 복음주의자든 자칭 반미주의자든 미국물 좋아하는 거는 다 마찬기지인데요 뮐,..
 


전원희 목사님과의 토크 두 번째 이야기. 

이번에는 교단에 관한 이야기를 가볍게 나눠봤습니다. 

(너무 진지하게 보지 말아주세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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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다 큰 교사가 울고 있어요 - 선생님이 된 제자에게 보내는 편지
홍지이 지음 / 다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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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간 교사로 일했던 작가가 이제 자신처럼 교사의 길을 걷고 있는 제자에게 교직에 있으며 경험했던 다양한 일들을 풀어내는, 그리고 자신과 같이 이런 저런 문제와 벽들에 부딪히며 의기소침해 있을 제자를 격려하는 내용을 담았다. 후기를 보니, 실제 제자 모델이 있기도 했지만, 좀 더 확장해서 후배 젊은 교사들 일반에게 보낸다는 느낌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10여 년이라면 그렇게 교사 생활이 길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교사 정년이 60대 초중반이니까 20대 말, 30대 초반에 교사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면 최소한 수십 년은 하게 될 테니까. 책 가운데는 20대 초반 임용고시를 보기 싫어서 기간제 교사일을 시작했다는 내용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대학 졸업 후 바로 일을 시작했다면, 30대 중반쯤 교사직을 그만두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작가는 이 생활의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 모든 것이 미숙하고, 실수가 많은 시기만을 경험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 10여 년을 몇 군데 학교를 거쳤다고도 하니, 어쩌면 신입 교사들의 아픈 부분을 가장 자주, 많이 경험했다고 할 수 있을 듯. 이 책은 딱 그런 이들을 위해 쓰였으니까. 책은 처음 교사를 하는 젊은이들이 겪었던, 그리고 겪을 수도 있는 다양한 아픔들을 따뜻한 문체로 위로하고 격려한다.




이른바 사회에 나오면, 어느 조직에 들어가든 처음에는 실수투성이이고, 혼도 나고 하는 법이다. 그게 교사 같은 공무원 조직이라면 조금 더 경직되어 있을 수 있으니, 젊은 사회 초년생에게는 모든 것이 어려울 수밖에. 작가 자신도 당시에는 꽤나 반발하고, 화를 삭이고 했던 사건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나이를 먹어 당시 상대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는 느낌이다. 모두가 그런 시절을 겪어 왔던 것처럼.


결국은 좋은 사람, 그리고 좋은 어른을 만나는 게 참 중요한 시절이었다는 느낌이다. 불합리한 것들을 요구받고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따라야 하는 햇병아리들을 누군가 그늘이 되어 잠시 덮어줄 수 있다면, 조금은 수월하게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작가도 그런 이들을 몇몇 만나기는 했던 것 같은데, 교직을 일찍 떠난 것을 보면 조금은 힘에 버거웠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나도 어느새 기성세대의 일부(변두리 이긴 하지만)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이제 조금은 품을 넓혀서 새로 시작하는 이들이 조금은 더 쉽게 첫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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