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식품의 숨겨진 비밀 - 유전자 조작 기술이 가져온 악몽!
후나세 슌스케 지음, 고선윤 옮김 / 중앙생활사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1. 요약 。。。。。。。    

 

     책은 킹콘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로 시작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농업회사인 미국의 몬산토에서 만들어낸 유전자 조작 옥수수인 킹콘을 먹인 실험용 쥐에 자신의 몸집만한 크기의 암 종양이 생긴 사진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저자에 따르면 이 미국산 옥수수는 콘 시럽과 사료 등으로 가공되어 현재 전 세계의 먹거리를 거의 지배하고 있다시피 하다. 책에서는 몬산토사가 자사의 이익을 위해 저지르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음모들 회전문 인사를 통해 정부정책에 직접 관여하거나 생물특허를 통해 농민들을 지배하고, 나아가 유전자조작으로 자가 재생산이 불가능한 터미네이터 종자를 만들어내기까지 이 소개된다.

 

     저자는 무엇보다 유전자 조작 식품들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동물실험에서 이미 여러 차례 문제가 나타난 바 있고, FDA같은 관계당국에서 내주는 승인은 회사에서 낸 자료를 가지고만 평가를 하기 때문에 반쪽짜리일뿐더러, 짧은 시간 내에 급격하게 발현되는 독성이 아닌 장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시험된 바 없다는 이유들이 여기에 등장한다.

 

     책의 후반에는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비정상적인 가축들에 의해 생태계가 교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미국에서는 유전자 조작 작물과 함께 세트로 판매하던 목적형 제초제에 내성을 가진 잡초들이 나타기 시작했고, 인도와 중국 등지에서는 해충을 막는다는 몬산토산 유전자 조작 목화를 공격하는 해충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것. 이는 해결하기 위해 다시 독성이 높은 농약을 뿌려야 하고, 이 악순환이 계속될수록 농민들의 경제적인 부담만 늘어날 뿐이었다. 저자는 이런 예들을 통해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2. 감상평 。。。。。。。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책의 짜임새에 관해서는 한 마디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을 것 같다. 우선 책 전체의 구성에 논리적 흐름이 약하다. 이런저런 소재들을 언급하는 것이야 좋지만 그것들이 하나의 큰 논리 안에 잘 꿰어져 있을 때에야 가치가 있는 거지, 이렇게 산발적으로 늘어놓는 차원에서 끝내버린다면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될까 싶다.

 

     저자의 접근 방식도 좀 문제다. 저자가 비판하고 있는 상대방이 소위 과학적인 결과를 가지고 나온다면, 그것에 대해 감정적으로 맞받아치는 것보다 상대 주장의 허점을 차근차근 집어 가는 게 더 효과적이다. 여기에 상대편이 가진 윤리적인 문제점들을 곁들인다면 그 효과는 배가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이런 시도들은 아주 살짝 시도되다가 곧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감정적 도발이 차지하고 만다. 유전자 조작으로 털이 하나도 없이 부화한 닭은 분명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킨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라면 아예 극단적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는 이상 동일한 감정적 비난을 방어해야 할 차례가 곧 돌아오지 않을까.

 

     책 전체에 걸쳐서 끊임없이 모종의 음모론이 등장하는 것도 좀 안타깝다. 이런 음모론에는 별다른 증거나 논리적 설명이 따라오지 못하곤 하는데, 여기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몬산토사는 손톱 끝까지 일루미나티라는 출처가 불분명한 주장을 기정사실화 하고는, 그것이 세계 최대 비밀결사 조직인 프리메이슨의 중추 조직(51)이라는 데까지 나간다. 프리메이슨이 유전자 조작 식품으로 세계를 지배하려고 한다는 건지..

 

     저자는 계속해서 유전자 조작이 신의 섭리를 어긴 것이라는 식의 표현을 보이는데, 이것만 보고 저자가 어떤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봐서는 안 된다. 저자 자신도 밝히고 있듯 여기에서 이란 자연을 가리킬 뿐이니까(154, 180). 그런데 그러면서도 전능함이나 악마와 같은 사고들을 자유롭게 써 내려가는 건 또 웃기다(175).

 

     문제는 역시 책에서 공격하려고 하는 대상을 정확하게 지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유전자 조작 자체를 반대하는 건지, 그것이 우리가 먹는 식품과 관련된 부분을 반대하는 것인지 부터가 불분명하다. 예컨대 저자는 거미줄은 같은 굵기의 강철보다 몇 배나 높은 강도를 지닌 최첨단 바이오 소재인데, 여기에서 착안해 거미의 유전자를 양이나 소 등에 이식해 새로운 섬유소재를 개발하려는 것도 문제 삼는다. 하지만 유전자 조작으로 기존보다 단백질 함량이 훨씬 높은 우유를 만들어 개발도상국의 유아들에게 공급하겠다는 미국의 한 박사를 향해서는 따뜻한 마음이라고 칭찬하기까지 하고 있으니(142) 이런 혼란은 저자 자신도 해결하지 못한 것 같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하나 같이 단순하지만은 않다. 다국적 종자회사의 횡포는 여러 나라들의 농민들을 파산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여기에는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려는 미국의 악의적인 국내법 조항들도 관련되어 있다. 생태계의 교란이나 안전성 등도 하나같이 중요한 문제들이다. 다만 책장을 넘길수록 신뢰감이 들지 않는 저자의 글쓰기 방식은 정신을 자꾸 산란시키기만 한다.

 

     유전자 조작 종자회사들의 횡포를 비롯해 이 책에서 다룬 문제들에 대한 보다 상세하고 잘 정리된 접근을 원한다면, 반다나 시바의 테라, 마드레를 비롯한 책들이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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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자유주의의 임무가 왕의 권력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진정한 자유주의의 임무는

의회 권력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 될 것이다.

 

- 허버트 스펜서, 개인 대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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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고층빌딩이 즐비한 강남이 아직 논두렁이던 시절, 그 땅을 개발해 시세차익으로 한 몫 잡아보겠다는 군부독재정권과 그 와중에 자신의 사욕을 채우려는 정권의 실세들, 그리고 다시 그들이 부리는 깡패들이 어울려 만들어 낸 욕망의 구렁텅이를 배경으로 한 영화.

 

     고아원에서 자란 종대(이민호)와 용기(김래원)은 친형제처럼 지내온 사이지만, 함께 살던 판잣집이 철거되면서 깡패집단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우연한 사고로 헤어진 두 사람은 3년 후 재회하고, 서로 다른 조직에 몸담게 된 그들은 이 진흙탕에서 몸 뉘일 곳 한 자리를 찾아 더러운 싸움을 시작한다.

 

 

 

 

2. 감상평 。。。。。。。   

 

     개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4천원에 내려 받을 수 있게 해 놨다. 극장상영이 끝나면 다운로드나 케이블방송 쪽으로 2차 판매가 시작되는 일이야 자연스럽지만, 가격이 이렇게 금방 떨어지는 건 좀 특이하다. 김래원, 이민호 같은 이름값 좀 있는 배우들이었는데도 이렇게 금방 싸게 나오는 건 그만큼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 아닌가도 싶다.

 

     사실 영화 내용 자체도 그다지 인상적인 부분이 없다. 스토리는 진부하고, 주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고, 시종일관 폭력의 폭격이 이뤄지다가 심지어 두 시간이 훨씬 넘는 런닝타임 때문에 지루하기까지 하다.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 하나는, 세상에 깡패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는 것. 어차피 이권으로 맺어진 인연은 더 많은 이권을 위해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것이고, 돈 될 때야 형님 동생이지 돈 떨어지면 남보다 못한 관계로 전락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영화 속 수도 없이 등장하는 배신 장면을 통해 반복적으로 울려퍼진다.

 

 

     이 영화에 가장 필요했던 덕목은 절제가 아니었나 싶다. 이것저것 다 담아 넣다보니 확실히 어수선해진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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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의 가장자리 - 선생님도 학부모도 모르는
모토야마 리사 지음, 하성호 옮김 / 재미주의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1. 줄거리 。。。。。。。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해진 이지메를 소재로 한 일종의 교육만화다. 이 작품이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부분은 실제로 이와 관련된 일을 겪거나 지켜봤던 학생들이 보낸 편지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이야기들이라는 것. 총 마흔네 개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작가는 집단따돌림이 일어나는 이유와 그것에 참여하는 이들의 심리, 그로 인한 피해의 심각성과 대처하는 방안 등을 풀어낸다.

 

 

2. 감상평 。。。。。。。  

 

     집단따돌림과 폭력 등 학교를 중심으로 한 십대들의 반사회적 행동들이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한국보다 일본이 먼저였다.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묘하게 닮아 있는 이 두 나라는 서로의 문제까지도 비슷하게 공유하고 있다. (물론 대개는 우리가 일본을 따라가는 양상이지만, 이게 꼭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배워왔다는 의미는 아니다) 학교폭력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젠 해외토픽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 우리 곁에서도 드물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먼저 그 문제 자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학교폭력이란 게 그 원인을 규정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로 돌아가기도 한다. 가해자라고 해서 무슨 엄청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 자신도 다른 곳에서는 부모나 교사 등에 의한 피해자이기도 하다. 책을 보면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부분이 이 지점이었다.

 

     그저 나쁜 놈들 잡아다 혼내주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이 문제의 복잡함이 있다. 물론 가해자들의 행동은 그에 따른 처벌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친다면, 그 아이들을 그런 상황으로 몰고 가는 사회구조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될 뿐이다. 아이들은 결국 어른들을 보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를 보고 닮아가는 게 아닌가.

 

     영화들마다 폭력배들의 의리를 멋지게 묘사하기에 바쁘고, 사람을 찌르고 때리는 수위는 시간이 갈수록 원색적으로 그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픽션 속에서만이 아니라 실제 생활 속에서도 우리는 줄서고, 불의에 눈감고, 뒷돈 받고,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나쁜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아이들이 제대로 커가는 걸 바라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한 게 아닐까.

 

 

     책은 이 풀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지만, 그 자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당사자인 아이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들어보는 것은, 어른들의 시각으로 문제를 또다시 제멋대로 정의하고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게 먼저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 문제가 먼저 심각했던 일본은 우리보다 좀 더 많은 경험과 준비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만화로 되어 있는 데다가, 어쭙잖은 이론과 분석 대신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담아내려고 노력했기에 읽기에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일본식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을 넘어가는 형태의 책은 보기에 불편했다. 일본만화를 자주 보는 아이들에겐 이쪽도 익숙한 걸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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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 - 기독교 생사학의 의미와 과제 기독교 인문 시리즈 6
곽혜원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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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책은 현대인들의 죽음의 질이 상당할 정도로 낮아졌다고 지적한다. 특히 질병사의 원인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암을 예로 들면, 다수의 사람들이 임종직전까지 공격적인 항암치료를 받느라 심신이 모두 탈진된 채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 저자는 죽음에 대한 성숙한 성찰, 소위 죽음학에 대한 연구의 부족을 꼽는다.

 

     책은 죽음에 대한 오랜 고민을 자산으로 가지고 있는 종교, 특히 그 중에서도 기독교적 배경을 언급하는 데 몇 장을 할애한 뒤, 뇌사, 안락사 혹은 존엄사, 완화치료, 고독사 문제, 자살 등 실천적인 문제들에 관해 논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죽음에 대한 좀 더 깊은 논의와 정리가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2. 감상평 。。。。。。。  

 

     책을 열면서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십수 차례 이상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고, 그 과정에서 예전엔 중환자실이라고 불렀던 집중치료실과 일반병실을 몇 번이나 오고 가셨더랬. 책에도 잠시 언급된 것처럼 집중치료실의 일상은 그 자체가 힘겨운 나날이다. 24시간 꺼지지 않은 조명에, 환자들마다 무거운 벽처럼 투박한 의료기기들에 둘러싸인 채 주기적으로 체크를 하는 간호사와 의사들의 점검을 받는다. 한밤중에도 불이 환하게 켜진 상황에서 제대로 잠을 자는 게 어디 쉬울까? 덕분에 그곳에 누워있는 환자들은 하루하루가 쇠약해지는 게 다반사. 그리고 제법 여러 사람들이 운명을 하곤 한다.

 

     과연 그게 적절한 죽음의 과정일까. 이 책에서 저자가 묻는 질문은 곧 내가 품고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책은 막연하게 품고 있던 문제의식을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제기하고 있어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죽음에 관한 주제로 박사 논문까지 썼던 저자답게,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단지 소개나 정리 개념을 넘어서 좀 더 실질적인 해결책에 관해 모색한다.

 

 

     사전의료의향서와 사전장례의향서의 작성부터, 호스피스와 완화의료의 필요성에 대한 강력한 제시는 흥미로웠고, 고독사와 자살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경제적 접근을 강력하게 반복하고 있는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저자는 기독교적인 대안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이런 식의 사유가 나머지 내용들과 밀접하게 연결되기 보다는 좀 느슨하게 덧붙여진 듯한 느낌이다. 기독교적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는 독단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기독교적 접근 자체도 생각만큼 깊은 데까지 짚어주는 게 아니라 아쉽다.

 

     책의 마지막에 덧붙여진 서평은 비판적 고찰이라는 제목을 붙이기엔 확실히 부족해 보인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가지고 있는 전제가 무엇인지를 지적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전제가 어떤 부분에서 모자라고 부당한지를 논리적으로 밝혀내기 보다는 시종일관 감정적인 부정을 하는 데 급급했다. 차라리 뺐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일이 없을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는 것도 바쁜데 죽는 일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문은 강력하긴 하지만, 삶의 이유를 생각할 수 있는 건 인간다움의 한 특성이 아니겠는가. 삶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그 삶마저 추하게 만들곤 한다. 그래서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삶을 제대로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회피나 외면이 아니라 제대로 된 수용과 대비를 위한 대화를 시작하기에 괜찮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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